유리 없는 겨울 자동차

아스타나는 겨울이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계속되는 따뜻한 기온 탓에... 겨울 답지 않다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는데...이번 주 들어 폭설과 함께 영하 14도 대로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겨울 도시 아스타나는 생기를 다시 찾았습니다.

우리 가족으로선....눈 뜨고 걸을 수 없는 세찬 눈보라가 불어와도... 도로가 스케이트 장으로 변해 살얼음판 위로 조심조심 차를 몰아야만 해도... 벌써 아스타나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인지라 느긋한 맘으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잠에서 깬 선화는 아직도 어두컴컴한 바깥을 의식하며 창 밖을 내다 보았고.... "야!...눈이 왔어요..." 라며 외쳤습니다. 수 없이 많은 하얀 눈가루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온 세상은 이미 하얗게 변해 있었지요.

눈은 하루 종일 내렸고 아스타나가 자랑하는 첨단 제설장비들이 하루 종일 도로 위의 눈을 치워도...저녁 5시 해가 질 때쯤 되어선...고스란히 얼음으로 꽁꽁 얼어 붙어 버렸습니다. 이쯤 되면 많은 자동차들이 스파인(못)이 박힌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하며 본격적인 겨울 자동차로 탈바꿈하게 되는데....한국이나 알마티에서 사용하는 스노우 타이어는 소용이 없고 반드시 이렇게 못이 박힌 타이어를 사용해야만 아이스하키장과 같은 이곳 도로 위에서 달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겁나는 것은...잠시 온도가 올라가서 눈이나 얼음이 녹기 시작하다가...다시 밤이 되어 온도가 뚝 떨어질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도로 위의 결빙 상태는 어느 때보다 미끄러워 지기 때문에 아무리 철저한 준비를 하고 도로 위로 나왔다 하더라도 차동차의 속도를 최소한으로 유지해야만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습니다.

저도...지난 겨울 동안....갑자기 바뀌는 신호등이나 무단 횡단으로 인한 급제동을 하다 팽이처럼 자동차가 빙글빙글 도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기에 올해는 감속 운행에 바짝 신경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언제 어떤 일이 생길런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눈이 온 다음 날...저녁 무렵..거실 창문을 열고 내다 본 거리의 모습입니다.

멀리 겨울 노을이 지고 있고...도로만 빼고는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습니다. 가로등 불빛도 보이고 달리는 자동차의 라이트도 밝게 빛납니다.

저희 집 앞을 지나는 이 도로는 "바라예바"라는 도로인데...도시의 주요 도로이기에 아무리 눈이 오더라도 밤새도록 이 도로를 유지하기 위해 제설장비를 이용한 작업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래도... 실제로 도로 위를 달려 보면...도로 바닥에 붙어 있는 단단한 얼음들 때문에  마치 비포장 도로 처럼 덜컹덜컹 거리지요.

다음 주 월요일이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선화는 아스타나의 겨울을 마음에 담고 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남편이 걱정되어 김장 배추를 구하러 이리 저리 수소문하고...바자르에 가서 돼지고기를 많이 사다 여러 번 먹을 수 있도록 썰어 비닐 봉지에 나누어 담아 냉동고에 넣어 두었고...만두도 직접 많이 빚어... 언제든지 멸치 다시국에 넣기만 하면 만두국이 되도록 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선화와 형민이가 출국하기 직전까지 날씨가 따뜻했다는 점입니다. 형민이는 한국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아스타나의 혹독한 추위를 경험하지 않으면서 야외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씩씩하게 그 동안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선화도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지내면서 마무리를 할 수 있었지요.

형민이는 '비'나 '눈'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을 때....가리키면서 눈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모자를 세 개나 눌러 쓴 형민이는 약간 기우뚱 거리지만 누구의 손을 잡지 않고 미끄러운 눈밭을 가로 질러 엄마를 따라 나섭니다.

이제 한국으로 들어갈 형민이는 부산에서 3개월 이상 지내다 돌아올 것이기에 이렇게 많은 눈을 구경하기 힘들겠지요.

사실...지난 주 우리에겐 어려운 일이 닥쳤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자동차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었습니다.

아스타나는 치안이 좋은 편이고 밤에도 가로등이 환하게 빛나는 곳이지만...밤중에는 차를 반드시 주차장에 세워 두어야 합니다. 밤 사이에...누군가가 자동차 유리를 깨고 자동차 내부의 오디오나 귀중품...또는 자동차 내에 보관되는 운전 면허증(이곳에선 '쁘라바' 라고 부릅니다.)을 훔쳐가기 때문입니다. 오디오 기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동차 면허증은 약간 의외인데....이 경우..."당신의 자동차 면허증을 주웠다...100불에 넘겨 주겠다" 라며 연락이 온다고 합니다. 그야 말로 뻔뻔스런 매매이지요.

우리가 알마티에 살고 있을 때... 3개월 동안 두 차례나 자동차 윈도우 브러쉬를 도난당했었습니다. 두 번 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한 뒤 저녁 늦게 나온 경우였는데...그래도... 밤새도록 집 앞에 차를 세워 두어도 자동차 유리가 깨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실 알마티나 아스타나나 일반적으로 주차장이 모자라기에...좀 늦게 들어 오는 경우 집 앞에 세워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아스타나에 올라 와서도...우리는 여러 번 밤새도록 집 앞에 차를 세워 두곤 했었습니다. 하지만...1년이 넘도록 한 번도 자동차에 무슨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고...그걸 보면서 전...'아스타나의 치안은 확실히 알마티보다 낫구나'...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최근 들어서 밤 늦게 테니스를 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집 앞에 자동차를 주차해 두고 집으로 들어 오곤 했지요.

그런데...지난 주....우리 차 유리가 깨진 것입니다. 전 날 늦게 집으로 돌아와 집 앞에 차를 세워 두었었는데...밤새 누군가가... 손으로 깨기 어려운 자동차 유리를 깨고 뭔가를 가져 가려 했던 것이죠.

썬팅한 유리인지라 산산 조각 나지 않고 창틀에 대롱 대롱 매달려 있긴 했지만...보기 흉칙했고...무엇보다 갑자기 사람들과 도시가 무서워 졌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지 않은 터라...멍하게 깨진 유리만 바라 보다... 없어진 물건을 찾아 보았습니다. 자동차 내의 오디오 장치는 괜찮았고...자동차 면허증은 제 경우에는 늘 지갑 안에 보관하고 있기에 특별하게 없어진 물건도 없었습니다.

아마...범인은 자동차 면허증을 노리고 차 유리를 깬 것 같은데...수확이 없었던 셈입니다. 하지만..애꿎게 차 유리만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차는 닛산 자동차라...아스타나에선 차 부품을 구할 수 없고 모든 부품을 독일이나 일본에서 수입해 오는데...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손실이 크게 생겼습니다.

문제는 자동차 유리를 주문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에서 비행기로 공수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적어도 일주일 가량 걸린다는 점이었습니다.

하필 자동차 유리가 깨진 다음 날...비가 많이 왔고 온도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우린...멀쩡하던 날씨가 차 유리가 없어지자 심술을 부린다며...'머피의 법칙'을 떠올렸고 할 수 없이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비닐로 텅빈 유리창을 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차장 자리가 모자라기 때문에 밤에는 차를 사용할 수도 없어...얼음 바람을 맞으며 테니스를 치러 강을 건너(?) 다녀야 했습니다.

반가운 유리가 도착하고 난 뒤...유리를 끼우기 위해 이곳의 자동차 공장을 찾았습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이 제가 잘 가는 자동차 공장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원래 "모스크비치 에스떼오" 라고 불렀던 곳인데...과거 소련 시절...주로 '모스크비치' 라는 자동차(모스크바 인근에서 만들어 내던 자동차)를 수리하던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뭐...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자동차를 다 수리하고 있는데...알마티에 비해 이곳 기술자들의 재주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자동차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항상 이곳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동차라는 게 겉은 멋지게 보여도 껍데기 하나만 벗기면 볼품 없는 물건이라는 걸 이곳에서 많이 느낍니다.

사진은 새 유리를 다는 모습인데요... 멀쩡해 보이는 외장을 들어내고 나니...그야 말로 뼈만 앙상한 자동차 뼈대가 나타났고...이 까작인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유리를 달 수 있었습니다.

마침...유리를 단 날은 앞에서 말씀 드린 폭설과 함께 아스타나의 기온이 뚝 떨어진 바로 그 전 날이었습니다. 만일 하루라도 늦게 유리가 도착했더라면...차 안에 앉아 눈을 맞으며 운전을 했어야 했겠지요...

게다가 한국의 산업 자원부 장관 일행이 아스타나를 방문하는 탓에...목요일 오후에는 그 선발대를 호텔로 안내하기 위해 차를 몰고 공항에 나갔어야 했었는데....이 날은 차 유리를 다시 장착한 바로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만일 유리를 제 때 못 달았다면...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중앙 부처 공무원들까지 차 안에 앉아 눈 바람을 맞으며 달려야 할 뻔 했습니다.

이런 우여 곡절 끝에 자동차는 정상화 되었고...선화의 한국행 준비도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요즘 우리가 즐겨 먹는 배를 들고 있는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원래 까작스딴에는 이렇게 한국 배처럼 생긴 배가 없고...그야 말로 서양배처럼 생긴 맛없고 달기만 한 배 뿐이었는데...최근 람스토르에 한국 맛과 유사한 배가 들어오고 있어 반가운 맘으로 자주 사 먹고 있습니다.

형민이도 벌써 '배' 라는 단어를 익혔고...람스토르에만 가면 '배'를 사달라고 졸라댑니다.....이렇게 똘망똘망한 형민이를 보는 것도 이제 3일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이별을 해야 합니다.

이번 주...전 몸이 좋지 못했습니다. 자동차도 문제가 생겼었고..한국에서 온 장관 일행도 있었고...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대처를 잘 못하는 바람에 몸살 기운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이제 곧 떠나야 하는 선화와 형민이에게 더 친절하게 잘해 주지 못했습니다..그게 못내 아쉽습니다. 떠날 때가 되면 항상 미련이 남고 섭섭한 법....남아 있는 시간 동안이라도 선화와 형민이를 더 많이 사랑해야 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공항에서 헤어질 때는 여전히 섭섭하고 아쉬울 것 같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가까와질 수록 쓸쓸해 지면서... 혼자 있기 싫어 지는 것은 단지....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만일까요? 200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