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지난 약속

아스타나는 지금 겨울입니다. 지난 주일부터 시작된 첫 눈은 3일 동안이나 계속 되었고 그 와중에 기온도 뚝 떨어져  창 밖의 온도계는 5일 내내 영하 7-8 도에서 올라올 줄 모릅니다.  인터넷을 통해 이봉주 선수가 부산 아시안 게임 마라톤 금메달을 목에 건 기사를 보았었는데...기사 내용 중 부산의 기온이 22도-24도를 웃도는 데도 이봉주 선수가 일찍 스퍼트를 시작했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제가 살던 부산이 22-24도의 낮 기온을 보인 바로 그 날....이곳 아스타나는 낮 기온이 영하 7도에서 머물렀으니....확실히 한국보다 일찍 시작되는 아스타나의 겨울이 실감되는 뉴스였습니다.

선화가 둘째 아기를 출산하기 위해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는 날짜를 11월 11일로 결정한 이후...우리 부부의 마음은 더 바빠졌습니다. 선화의 걱정은 혼자 아스타나에 남을 제가 제 때 끼니를 챙겨 먹고 깨끗하게 옷을 다려 입고 다닐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고 제가 가진 걱정은 무거운 몸으로 이끌고 홀 몸으로 형민이를 데리고 귀국해야 하는 선화의 어려움, 그리고 출산할 때 남편이 옆에 있어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국제협력의사 로서의 삶은 몇 번이라도 되풀이하고 싶은 멋진 삶입니다. 타국에서 이국적 정취를 마음껏 향유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있고 특별히 크리스챤으로서 선교지의 교회와 동역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있기에 선교지에서도 전문인 사역자로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아내의 출산과 관계되는 영역에 있어서는 불리한 게 사실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 수십명의 국제협력의사가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의 아내가 출산을 하려고 할 때에는 거의 대부분 아내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출산을 한 뒤 되돌아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유는 적어도 2-3개월에 걸리는 출산과 그 이후의 안정 기간 동안 한국에 남편이 함께 따라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지요. 휴가는 15일로 한정되어 있고...아내의 출산을 위한 특별 휴가는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선화의 귀국 날짜가 한 달 안으로 다가 오자...우리는 선화와 형민이의 항공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곳 여행사를 방문했습니다. 한국-까작스딴을 운항하는 비행기는 까작스딴 항공사 소속의 비행기가 유일합니다. 전에는 아시아나 항공이 운항하기도 했으나...올해 부터는 전면 운항이 중단되었습니다. 결국 까작스딴 항공사가 독점 운항하는 노선인 셈입니다.

에어 까작스딴(Air Kazakstan)...그러니까 '까작스딴 항공' 의 서비스는 눈에 띄게 좋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날으는 버스" 라는 얘기를 하겠습니까? 공항은 물론 비행기 내에서도 부족한 편의시설과 서비스로 인해 다른 나라의 여행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허다했는데....그것 때문인지...에어 까작스딴의 경제적 상태는 나빠졌고...결국 회사가 부도가 나고 회사의 일정 지분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에어 까작스딴의 국내 항공 노선 일부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서 이번에 새로 생긴 항공 회사가 에어-아스타나(Air-Astana)입니다.

이 신설 항공사는 에어 까작스딴의 알마티-아스타나 노선(가장 노른자위 노선입니다.)을 넘겨 받았고...현재 까작스딴 내에서 제 1의 도시 알마티 와 수도인 아스타나를 운항하는 항공사는 에어 아스타나 입니다. 에어 까작스딴은 국내 항공노선의 일부와 국제선만을 운항하고 있을 뿐입니다.

올해 5월부터 이 체제가 새로 시작되었는데...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으로선 Air-Astana 항공기를 자주 이용할 수 밖에 없게 된 셈입니다. 다행히 Air-Astana의 여객기는 모두 보잉사의 새 비행기들이라 훨씬 쾌적한 편이긴 합니다.

그런데...이 까작스딴 항공 업계의 변화가 선화의 귀국에도 작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원래...아스타나에서 한국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편을 이용하게 되면...아스타나--> 알마티 의 국내선 구간은 거의 공짜(15달러만 내면 되니까요...)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아시아나 항공' 과 경쟁 체제를 가지고 있던 까작스딴 항공은 아스타나에서 한국으로 가려는 사람을 유치하기 위해 자기 항공 회사의 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 아스타나에서 알마티 까지의 항공비는 거의 받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현재 아스타나-->알마티 노선은 '에어-아스타나' 항공사로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예전부터 실시해 오던 이 서비스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시아나 항공도 취항하지 않는 요즘과 같은 때에는 굳이 이 제도를 유지할 필요성도 못 느꼈겠지요...서비스는 경쟁을 통해 향상되는 법인데...어쩔 수 없이 선화는 아스타나-알마티 구간의 왕복 항공료 210 달러를 더 물어야 하는 추가 부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게다가.....또 다른 문제도 있더군요.

알마티- 서울 노선의 경우에도....우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왕복권을 예매했는데.....한국에서 얼마나 머무느냐에 따라 그 요금이 달랐습니다.

한국에서 1개월 간 머물다가 귀국하는 경우는 왕복 항공권이 550 달러, 3개월 안에 돌아오는 경우는 730 달러, 6개월 안에 돌아 오는 경우는 800 달러..이런 식이더군요. 선화는 11월 11일 한국으로 가서...출산 후 적어도 2개월은 안정을 취해야 하겠기에 아무리 빨라도 2월 말은 되어야 돌아 올 수 있으니...6개월 안에 돌아오는 경우로 계산하게 되어...가장 비싼 왕복권을 예매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까작스딴으로 방문하는 경우에도 이와 똑같은 시스템의 적용을 받는다고 하니까....요즘 까작스딴을 방문하려면 1개월 내인 경우 550 달러 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티켓을 끊는 경우 한국의 에이전트 사에서 받는 수수료 15 달러는 제외한 것입니다)

형민이의 경우.... 이제 만 2살이 넘었기에....요금을 내고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과 터어키를 오가는 비행기를 무료로 타고 다녔었는데...좋은 시절은 다 지나고....이젠 33% 의 할인 혜택을 받는 요금을 내야 합니다. 물론 6세 까지 국내선은 아직 무료로 탈 수 있습니다.

뭐....까작스딴의 항공 사정이 이렇게 달라졌다는 것 정도만 소개하려다가 주저리 주저리 돈 얘기만 늘어 놓은 셈이 되었네요...

헤어지는 것이 기정 사실로 다가온 우리 가족은 요즘 이별 연습을 하느라 바쁩니다.

형민이가 얼마나 아빠를 좋아하는지 아세요? 아빠와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탓에 아빠는 형민이의 소중한 친구입니다.

맛있는 것이 있어도 아빠에게 먼저 갖다 주고...문 소리만 나더라도 "아빠..." 하도 뒤돌아 보고....잠을 자는 중에도..."아빠..아빠.." 라고 잠꼬대를 하고...자고 일어나서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객관적으로 볼 때 아빠, 엄마가 똑같이 50%, 50% 로 형민이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만일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사라진다면 형민이가 받을 충격(?)은 아무래도 클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전에 말씀 드린 대로 미리 예방 주사(?)를 놓고 있는 중입니다.

아빠 또는 엄마 : "형민아....엄마랑 형민이랑 비행기 타고 한국에 갈 거지?"

형민: "응...."

아빠 또는 엄마: " 아빠는 안 가....형민이랑 엄마만 가는 거야...알겠지?"

형민: "예.."

형민이는 그냥 "알겠지?.." 라고 묻는 물음에 근성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인지....이 사실이 곧 닥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인지...."예..."라고 대답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내용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형민이에게 이 설명을 할 때 마다 제 마음은 쓰리고 아픕니다. 어제...그러니까 10월 16일은 선화와 저의 결혼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우리는 결혼하고 이제 만 3년을 함께 살아온 셈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 부부가 헤어진 것은 형민이가 4개월이 될 무렵....국제협력의사로 나오기 전...8주 간의 군사 훈련을 받는다고 헤어진 게 전부입니다. 그 외에는 늘...붙어 다니면서 세상을 함께 경험하며 살았었는데...이번에 다시 둘째의 출산으로 3개월의 이별이 예정된 셈입니다.

게다가...4개월의 형민이와 헤어질 적에는...그저 눈 앞에 아른 거릴 뿐이지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는데...벌써 두 돌이 지나....아빠와 거의 모든 대화를 할 수 있는 형민이와 헤어질 걸 생각하니 더 마음이 저려 옵니다. 조그마한 형민이를 늘 품에 안고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으로선 형민이와 떨어진다는 것은 제게도 충격(?)으로 다가 올 게 분명하기에...형민이를 붙잡고 이별 얘기를 할 때마다 내 마음에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이번의 이별이 더 기쁜 일을 위해 잠시 헤어지는 것이기에 참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선화가 까작스딴으로 돌아올 때에는 형민이와 함께 또 다른 아기가 품에 안겨 있겠지요? 최근 초음파 검사에서 둘째 아기는 딸 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출산해야 정확한 것을 알 수 있지만....아마 내년 3월 쯤에는 네 사람이 이루는 가족으로 바뀔 걸 생각해 보니....이것 또한 가슴 벅찬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시간들을 기다리며 지금의 이별을 준비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화의 한국행과 혼자 맞게 되는 출산의 고통 중에서 함께 계시기에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현실을 담담히 받아 들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혼 3주년 기념일....우리는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생각하기도 했으나....집에서 함께 비프 스테이크 고기를 준비해서 식사하기로 했습니다.

첫 결혼 기념일에는 형민이를 막 출산한 뒤..친정에서 몸조리 하느라 외부 출입을 할 수 없었고....작년 결혼 기념일에는 아스타나의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의 레스토랑에서 비싼 저녁을 먹기도 했었지만...형민이 때문에 고상하고 우아아하게 만찬을 즐기는 것은 당분한 물 건너 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저녁이었습니다.

형민이를 데리고 결혼 3주년 기념일을 챙기러 외식을 했다가는 온 동네를 쫓아 다니는 형민이를 보느라...한 사람이 쓸쓸하게 식탁을 지켜야 할 게 뻔하기에...우리는 모두가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집에서 기념일을 보내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래서...위 사진 처럼 람스토르(대형 매장)에 가서 유아용 카트를 끌고 다니며 장을 보면서  '비프 스테이크 용' 이라고 적힌 고기를 사서 돌아 왔습니다. 소금과 후추로 약간 절였다가 버터로 굽어 제법 그럴 듯한 비프 스테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아직 양식기 세트가 없습니다. 나이프 대신 과일 칼을 놓고....조만간 양식기 세트를 하나 사야겠다는 대화를 나누면서 특별 식사를 했습니다. 마침....하루 종일 낮잠을 자지 않고 견디던 ...형민이가 저녁 7시가 되어서야 곯아 떨어지는 바람에 두 사람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30분만 자고 일어나 엄마, 아빠를 찾아 부엌으로 찾아 온 형민이를 보게 되면서...다시 주위는 산만해 지면서 생활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1999년 10월 16일 부산 개금교회에서 결혼한 우리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평생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사랑하며 섬기며 살겠다는 약속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흘렀습니다. 1년 7개월은 한국에서...1년 5개월은 까작스딴에서 결혼 생활을 보낸 셈입니다.

3년이 지난 약속이지만...우리 부부는 아직 그 약속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저희 결혼식에 참여하셨던 많은 증인들께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까작스딴으로 온 이후...우리의 결혼 생활은 더욱 값지고 아름답게 다듬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살고 있었더라면...지금보다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지만...지금 누리고 있는 몇몇 행복들은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한국이 아니라...낯선 땅...까작스딴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결혼 3주년을 맞는 아직도 신혼인 우리 부부는 서로를 더욱 의지하고 아끼며 살아가게 되었고....한국에 있다면 많은 다른 사람들을 챙기느라 서로에게 소홀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는 외부 조건들이 적기에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우리 아기 형민이를 두 사람이 함께 하루 종일 열심히 돌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까작스딴에서의 생활은 우리 부부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켰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였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것이 결혼 3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인 것 같습니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선교지에서 충성하면서... 아울러 지금 우리가 맛 볼 수 있는 행복의 과일들을 즐기며 안식하는 것이...또 우리들 앞에 놓여 있을 또 다른 장애물과 벽들을 통과할 원동력이 되리라 믿습니다.  언제 만날 지 모르는 파랑새를 평생토록 기다리며 앞에 주어질 행복을 기대하며 사는 게 인생이라고 말들 하지만 ....제게 있어선....맡겨진 일을 열심히 수행하면서도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안식을 부지런히 찾아 풍성하게 누리며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한 번 뿐인 인생을 값지게 살아가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지난 3년 동안...우리 부부의 약속이 변치 않도록 ...한결 같이 우리 앞에서 우리 가정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내 맘의 가장 큰 감사를 드립니다. 또 그 분 앞에서...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도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2002.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