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돌이 되는 형민이

2002년 10월 5일은 형민이가 두 돌이 되는 날입니다. 엄마, 아빠를 따라 까작스딴으로 날아 올 때는 걷지도 못하는 7개월의 아기였는데...어느 덧 까작스딴에서 첫 돌이 지나고 다시 1년이 지나 두 돌을 맞게 되었습니다. 작년 첫 돌에는 아스타나의 모든 선교사님들을 모시고 축하 잔치를 벌였었는데.....이번에는 다른 손님을 초청하지는 않고 집에서 세 식구가 둘러 앉아 조촐하게 축하하기로 했습니다....아마 세 돌 때에는 친구도 생길 테니까...친구들을 초청하는 생일 파티를 벌일 것 같습니다만 올해는 세 가족만을 위한 사랑의 생일상을 차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그것도...한국이 아닌 까작스딴에서 1년 5개월이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란 형민이를 보며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까작스딴에 도착했을 때는 낯선 환경 때문인지 자다가도 새벽 1-2시에 깜짝 놀란 것처럼 자지르지게 울곤 해서 7개월의 형민이를 안고 아무도 지나 다니지 않은 알마티 사말의 밤 거리를 선화와 함께 왔다 갔다 하며 안심시키고 재웠던 게 엊그제 일 같은데...이제 온 동네 장난꾸러기들 틈에 끼여 흙장난을 하며 엄마 말도 곧잘 듣지 않는(?) 개구쟁이로 커 버렸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아침 기온은 영상 4도...초겨울 날씨를 보이고 있는 아스타나는 늦가을이 한창입니다. 도로에는 노란색의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아직 채 떨어지지 않은 단풍잎들이 여기 저기에 매달려 가는 계절을 아쉬워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 차례 눈이 내리고 영하로 떨어지면 겨울이 시작되는 거지요...

그래도 아스타나의 기후가 점점 따뜻해 지고 있다고 모두들 입 모아 얘기합니다. 옛날 소비에트 연방 시절 '쩰리노그라드' 라고 불리울 때의 아스타나는 그야 말로 40도 대의 혹한이 겨울 내내 밀어 닥치는 벌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98년 수도가 된 이후...계속 빌딩과 건물들이 들어 서고 인구와 자동차의 숫자가 점점 늘어 나면서 도시의 기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 가을에는 그렇게 비가 많이 왔었고 겨울에는 몇 십년 만에 찾아 온 온난 기후라며 온 나라가 떠들썩했었습니다. 올해도 아마 작년처럼 따뜻할 거라는 예측 보도가 나오고 있어 아스타나의 기후가 점점 따뜻해 지고 사람 살기 좋아지고 있음을 추측케 합니다.

아스타나는 도시가 건설되면서 모든 나무가 다 베어지는 바람에...도시 내에 숲이 조성되어 있기는 커녕 제대로 자란 큰 나무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도시의 메인 도로 중 "아바야" 라고 불리는 도로 주변에는 가로수가 제법 줄 지어 서 있어서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 주고 있지요. 며칠 전..우리 가족은 가는 가을을 아쉬워 하며 아바야 길에서 아스타나의 가을 정취를 담았습니다.

물론 도시의 남쪽 외곽이나 일부 아파트 단지 내에 나무가 제법 심어져 있긴 하지만...도시 안에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느낄 수 있는 가을 정취는 사진 속에 보이는 아바야 길이 유일합니다.

이 길에는 많은 정부 관청 건물들과 함께 아스타나 최고의 호텔인 "인터콘티넨탈 호텔" 그리고 대규모 스포츠 매장인 "메가 스포츠"  등이 위치하고 있기도 합니다.

까작스딴의 가을 색은 노란색이고 빨간색 단풍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작년 가을 우리 가정은 남쪽 알마티에서 가을을 보냈었는데..(당시 메데우의 가을 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알마티의 가을 역시 온통 노란색입니다.

한국에서는 하다 못해 담쟁이 넝쿨도 빨갛게 단풍이 드는데....이곳은 빨갛게 단풍 드는 나무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어릴 적부터 "금수강산" 이니 "내장산 단풍" 이니 하는 한국의 자연미를 별 생각 없이 바라보며 살았었는데...까작스딴에 와서 드는 생각은 '정말 한국의 가을이 아름다웠다' 라는 회상입니다. '삼천리 강산에 불이 붙었다' 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빨간 단풍이 온 산하를 뒤덮고 있는 한국의 가을....생각하면 할수록 그리워집니다.

차를 세워 두고 우리 가족은 낙엽이 떨어진 잔디 위를 걸어 보았습니다.

형민이는 발자국 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 소리가 신기한 듯....발걸음을 내딛으며 "하하하...." 웃으며 나무 사이를 뛰어 갑니다.

우리는 노란 단풍과 낙엽으로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거리에서 마음껏 이 계절을 느낍니다.

 형민이 뒤로 아직 푸른 잔디가 남아 있는 게 보이시죠? 아스타나에선 푸른 잔디 위에 눈이 내립니다. 작년 겨울이 시작 될 무렵... 아직 푸른 잔디가 채 마르기도 전에 눈에 덮이는 것을 보면서 우린 "역시 아스타나다..." 라며 중얼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바깥 활동이 가능한 때라 형민이와 집 근처 놀이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형민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놀이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나갈 때면 항상 신발장에서 자기의 장난감 봉지를 챙겨 듭니다. 그 속에는 흙장난 할 때 쓰이는 각종 뚜껑들과 작은 공이 하나 들어 있지요. 지난 봄에 놀이터에서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래 더미는 형민이의 가장 좋은 놀이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달라졌는데 조용히 앉아 조물조물 흙으로 노는 것보다  동네 형아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놀고 있는 축구장이 더욱 흥미로워 졌습니다. 거기다가 지난 월드컵 기간중에 있었던 경기들을 같이 보고 난 이후로 형민이가 공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달라졌습니다. 공을 차는 실력도 많이 늘어서 공을 딱 세워 놓고 멀리서 달려와 '뻥'하고 차는데..... 엄마보다도 훨씬 잘 찹니다. 그리고 축구공 모양이 그려져 있는 반 바지를 너무 좋아해서 늘 자기 자동차나 자전거에 넣어둡니다. 어쨌든 요즘은 놀이터에 나가면 우선 축구장 부터 기웃거립니다. 형아들이 없으면 들어가 놀 수 있지만 누군가 사용하고 있으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형민이도 이제 압니다. 때로는 축구를 하는 사내 아이들의 거친 몸동작에 가끔씩 모서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형민이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지요.

축구장에 동네 아이들이 축구를 하지 않고 흙장난을 하고 놀고 있으면 형민이는 슬그머니 자기 공을 꺼내 주위에 있는 형아에게 슬쩍 차 줍니다. 동네 아이들은 여유가 있을 때는 형민이와 몇 번 공을 주고 받지만 이내 자기들의 게임에 열중하게 되고 형민이는 짝을 잃게 되고 마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경기를 하지 않고 그냥 놀고 있는 형아들이 형민이와 놀아주기도 하는데 이런 형들을 만나면 형민이는 신이 납니다. 그러나 대체로 형민이는 딱 맞는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늘 아쉽게 집으로 들어오지요.

그러나 아빠와 놀이터에 나갈 때는 다릅니다. 아빠는 형민이의 좋은 축구 파트너가 되어 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빠는 엄마와 다르게 좀 더 위험한(?)놀이도 허용해 준다는 게 형민이의 구미를 당깁니다.

예를 들면 미끄럼들을 탈 때나 계단 오르 내릴 때 엄마는 늘 손으로 등을 받치면서 조심하라고 하지만... 아빠는 계단 같은 건 혼자 내려오게 만들고 미끄럼틀을 탈 때도 거꾸로 미끄러져 내려 오는 것까지 허용해 주니까요..

그리고 구름다리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도 아빠는 좀 더 높은 곳까지 혼자 올라가게 해 주기 때문에 형민이는 엄마보다 아빠와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빠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다 고 들어 오는 날은 현관 문을 열기도 전부터 "엄마!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밖에서부터 들립니다. 그리곤 들어와서 "아빠, 에에 (축구하는 시늉)" 라고 소리 지르면서 오늘 축구를 했다고 자랑을 늘어 놓습니다.

형민이가 아빠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게 또 한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목욕이랍니다.

저희집 욕조는 일자형이 아니고 조개모양이라서 여유공간이 많습니다. 아빠와 함께 할 때는 자기 욕조에 들어가는 게 아니고 큰 욕조 가득히 물을 담아 놓고 하는데 마치 작은 풀장 같이 넓습니다. 게다가 형민이는 최근에 아빠가 가르쳐 준 물총 놀이를 하느라 욕조에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신나게 놀다가도 어떤 일은 꼭 엄마에게 맡기기도 하는데 수건으로 닦는 일, 자기전에 기저귀 하는 것 등은 반드시 엄마가 해 줘야 합니다. 이렇게 잘 놀다가도...갑자기 특정한 일을 하려고 하면 엄마, 아빠 중 반드시 지정된 누군가가 해 주길 바라는 심리에 대해선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형민이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하겠다는 일도 점점 늘어가는데 화장실 물 내리기, 엄마 세수 후에 수건 꺼내 주기, 칫솔에 치약 묻히기, 가습기에 물 붓기 등등이 있지요. 만약에 형민이가 하겠다고 "에에..."하면서 달려오는데 우리가 먼저 그 일에 손을 댔다가는 난리가 납니다. 이럴 때는 반드시 원위치 했다가 다시 형민이 손으로 해야 합니다. 옷입기도 마찬가지인데 두달전부터는(22개월) 혼자서 바지 입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때 잘 하든지 못하든지, 거꾸로 입든지, 한쪽에 두 발이 다 들어가든지 그냥 두어야지 조금이라도 거들었다가는 다시 원위치 해야합니다. 이런 형민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스스로 하도록 시간을 충분히 줘야하는데.... 가끔은 형민이가 거드는게 오히려 우리를 더욱 힘들 게 만든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형민이는 우선 아빠를 찾습니다. 아빠 품에 안겨 잠을 완전히 깨고나면 어제의 피로는 완전히 100% 회복, 다시 신나는 하루가 시작됩니다. 아빠가 출근을 하고 나면 엄마와 학습(?)시간을 가지는데 주로 그림그리기, 책읽기 등을 합니다. 색연필은 돌 무렵부터 꺼내 줬는데 전혀 제 기능을 발휘 못하다가 18개월쯤 되어서 부터는 제법 그리기를 합니다 .요즘은 색 연필보다 크레파스를 더 좋아하는데 이 크레파스로 그리기뿐 아니라 꺼냈다가 제자리 넣기 놀이, 부러진 크레파스 고치기 놀이 등등에 이용하지요. 형민이가 제일 처음 그리기 시작한 것은 물고기입니다. 터키에서 물고기의 실체를 깨달은 뒤로 늘 물고기만 그렸었습니다. 물론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처럼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물고기가 아니지만 형민이 눈에는 예쁜 물고기로 보이겠지요.

그러다고 요즘은 멍멍이, 야옹이, 심지어 멍멍이 귀라면서 부분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역시 보아뱀처럼.... 그리고 엄마와 하는 놀이중에 네모, 동그라미 그리기가 있는데 바닥 모자이크에서 떼어와 공책에 대고 따라 긋는 것이지요.

엄마는 색칠 공부 책을 펴 놓고 공간을 메워서 색칠하는 것을 가르키려고 애를 쓰는데 형민이는 마구 낙서(?)만 할 뿐 전혀 칠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면서 아이를 기르는 것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게 됩니다. 특히나...전에는 전혀 하지 않던 행동을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하고 있을 땐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칼과 가위는 위험하기 때문에 엄마, 아빠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가르쳤고 형민이도 늘 그것들은 만지지 않고 "엄마, 아빠"하면서 자기 것이 아니라는 표현을 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신문지를 가지고 놀던 형민이가 한참이나 조용해서 (조용하면 반드시 사고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가 봤더니 아니! 그 위험하다고 했던 가위를 들고 오리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법 조심스럽게..... 이것을 본 뒤...다음 날 우리들은 유아용 가위를 사서 형민이에게 오리기 놀이에 사용하라고 선물했지요. 그걸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래서 요즘은 아침시간에 색종이 잘라서 노트에 붙이는 놀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만 잘라서 손으로 쭉 찢는 것이지만 갈수록 손 놀림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학습시간은 1시간에서 길면 2시간까지 합니다. 책도 보고 스티커도 붙이고.... 아이들에게 이런 집중력이 있다는게 때론 신기합니다. 형민이와 이렇게 지내다보면 엄마, 아빠의 창의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색칠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 글을 적는 시간은 형민이의 두 돌이 되기 전...토요일 밤입니다.

우리는 내일 형민이의 두 번째 생일을 어떻게 보낼까 지금 의논하고 있습니다. 형민이의 생일 케잌에 촛불을 밝힌 모습을 이번 업데이트에 함께 올릴까 하다 our story를 통해 올리기로 하고 두 돌을 맞는 형민이의 사연을 이 정도로 끝맺으려고 합니다.

오는 11월 11일 경...선화는 형민이를 데리고 둘째 아이 출산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갑니다. 이제 약 한 달만 있으면 3개월 간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형민이와 잠시 동안이나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싫게 느껴집니다. 형민이도 아빠와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래서..우린 형민이에게 지금부터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형민아....엄마랑 형민이랑...비행기 타고...한국에 갈 거지? (손 동작을 사용해 가며)"

"아빠...엄마...에에 ..."(통역:아빠하고 엄마하고 형민이랑 같이 가야 해요..)

"안돼..아빠는 못가...엄마하고 에에 하고...비행기 타고 갈 거지?"

"아빠...엄마...에에..."

 그래서 요즘 형민이를 보는 제 맘을 안타깝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잠시 가족이 헤어져 있어야 할 다음 달이 늦게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일 있을 형민이의 두 돌은 더욱 뜻깊게 다가 옵니다.

내일은 아빠랑 엄마랑 에에랑 함께....형민이가 좋아하는 "알렐루야..."노래를 틀어 놓고 케잌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돌을 맞는 형민이를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200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