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나의 추석

2002년 9월 21일은 추석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잇단 태풍과 물난리에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 온 추석 탓에 명절 분위기가 그렇게 밝진 못했겠지만......까작스딴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겐 무척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타국 땅 아스타나에서 추석을 맞는 모든 한국인들이 이심 강변의 큰 레스토랑 '즈벡졸리'에 함께 모여 명절을 축하했고... 이것은 아스타나 한국 교민 사회 역사 상 처음 있는 큰 모임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올해 들어 아스타나 한국 교민 사회의 대부분을 형성하는 선교사들의 모임이 매 달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긴 하지만... 전체 한인들을 다 품을 수 있는 모임은 가지지 못했었는데...바로 오늘...민족의 대명절을 맞아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축하하고 격려하는 모임이 열린 것입니다. 

6년 전인 1996년만 하더라도...까작스딴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한인은 2 가정 뿐이었고, 제가 아스타나에 올라온 작년 여름만 하더라도 아이들까지 다 포함해 20명에 미치지도 못했었는데......불과 1년만에 한국인들의 수가 급증해서 오늘 추석 잔치에 모인 숫자는 아기까지 다 포함해 32명이었고 현재 아스타나 전체 교민 수는 34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KOICA 소속이 10명, 선교사 소속이 23명, 사업가 1명)

사진은 저희 집 거실에서 내다 본 아스타나 도심의 풍경입니다. 람스토르 옆의 높은 노란색 건물 '아스타나 타워' 주변의 야경인데....밤마다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노랗게 빛나는 건물 옆으로 보이는 초승달이 보이시는가요? 추석이 되기 며칠 전에 찍은 사진인데...이 달이 이제 동그랗게 밤하늘을 밝히고 있습니다.

9월에 접어 들자 아스타나에는 한 차례 추위가 찾아 왔었습니다. 지난 9월 15일 아침 기온이 영하 4도로 떨어지면서 며칠 동안 겨울 날씨가 계속되었지요. 작년 가을도 그렇게 추웠었기에....이제부터 겨울이 시작되는가 보다 하고....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는데... 다시 따뜻한 기온이 도시를 감돌고 있습니다. 하지만...곧 다시 추워질 것 같습니다.

얼마 안 되는 가로수도 벌써 노랗게 물들었고...차도에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 저리 밀려 다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 이곳은 이미 가을이 한창 지나가고 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아스타나의 가을을 보면서 겨울 준비에 움츠려 들기 쉬운 요즈음....추석 명절은 우리들 마음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록 한국에서 떠나 있지만...이날 추석 모임을 위해 각 가정에서는 한 두 가지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고 모임 장소에서 서로의 음식을 나누며 정겨운 얘기를 나누기로 했으니까요...

모임 장소인 '즈벡졸리'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인지라...한인들의 추석 모임을 위해 무료로 장소를 제공하고 밥과 국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는 저마다의 솜씨를 자랑하는 음식들이 준비되었는데 아스타나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재료로 만든 한국 음식들이 많이 등장했고...떡과 같이 평소에 집에서 만들기 힘든 음식들도 많이 선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좋아 하는 양념 치킨도 나왔고 ...민물 고기로 만든 회, 녹두 묵으로 만든 팔보채, 산적, 약식 등....많은 요리들이 커다란 식탁에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야 말로 '십시 일반' 격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 이 큰 잔치상을 채웠다고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는 가족 없이 혼자 아스타나로 와서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4사람의 KOICA 단원들도 참여했는데...뜻 밖의 추석 잔치 상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친지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정겨움은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멀리 이국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즐거워 할 수 있기에 많은 위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또, 누구보다 신이 난 것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따라 나선 꼬마들이었는데...맛있는 음식 뿐 아니라  그동안 자주 보지 못하던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놀 수 있었습니다. 오랜 만에 많은 형님들과 또래를 만난 형민이는 모임이 계속된 2시간 내내 건물과 마당을 뛰어 다니며 즐거운 추석 시간을 보냈습니다.

추석 잔치 자리에는 이번에 새로 아스타나로 오게 되신 선교사님 가정이 소개 되기도 했습니다. 장로교(고신) 교단 파송 선교사이신데...그 동안 아스타나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라간다' 라는 도시에서 사역을 하고 계시다....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수도 아스타나에서 새로운 선교 활동을 펼치기 위해 올라 오신 분이셨습니다. 이 가정에는 두 아들이 있는데...국민학교 4학년, 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개구쟁이들입니다. 바로 이 네 사람이 아스타나 교민 사회에 합류하면서 숫자는 더욱 늘어나게 된 셈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저 역시 장로교(고신) 교단에서 어릴 적부터 자라왔기에 같은 교단 소속의 선교사님 가정을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게다가 선교사님은 이곳 아스타나에 오시기 직전...한국에서 여러 교회를 다니시면 선교 보고를 하셨는데 ....바로 제 여동생과 결혼한 이태훈 강도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포항 충진교회에서도 말씀을 전하셨고 여동생 부부를 통해 아스타나에서 제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오셨다고 합니다. 또 작년... 그러니까 2001년 7월 부산 항도교회에서 열린 여전도회 연합회 초청 집회에 말씀 증거 차 방문하셨다가 저희 할머니(할머니는 여전도회 연합회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로부터 까작스딴에 제가 가 있다는 얘기를 이미 들으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넓지만....까작스딴을 품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만날 수밖에 없기에 아스타나에서 선교사님을 만날 수 있어 너무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대로 선교사님의 사역을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저희 홈페이지를 통해 새로 오신 선교사님의 사역도 소개할 것을 약속 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희 홈페이지를 유심히 보시는 분이시라면 아스타나 선교지의 상황은 상당히 자세히 아시게 되고...더욱 이곳을 위해 구체적인 기도를 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희 홈페이지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선교지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이기에...한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아스타나를 기억하고 기도로 지원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왼쪽 위의 사진에서 파란 와이셔츠를 입고 활짝 웃고 계시는 분이 바로 새로 오신 남 선교사님이십니다. 그 동안 가라간다에서 학생 비자를 가지고 여러 어려움에도 많은 활동을 해 오셨는데...이번에 아스타나에 교회를 등록하고 지역 교회 사역을 시작하게 되셨습니다.

왼쪽 아래 사진은 함께 오신 사모님(선교사님)의 모습이십니다. 두 분은 부산에서 오래 사시고 포항에서도 사역을 하셨다는데...역시 말투에서 묻어나는 부산 사투리에 더욱 정겨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새로 조그마한 일반 가옥을 구입해서 교회로 사용하신다고 하는데....그동안 가라간다에서 사역을 계속 해 오셨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도시 정착이 쉽지 않으실텐데 앞으로 건강하게 새로운 사역을 잘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여러 분들의 기도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하마트면 추석 모임은 사라질 뻔 한 위기도 있었습니다. 즈벡 졸리 사장님과 제대로 연락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모임이 있기 이틀 전...이 모임이 확정되었을 때...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아마 선화 일 것 같습니다.

선화는 추석 같은 명절에 모두가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이번에도 두 가지 음식을 만들어 가져 가면 십여 가지의 음식들을 맛 볼 수 있다고 하며....늦은 시간 까지 약식과 산적을 만들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형민이에게 한복을 입히고...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차에 싣는 선화의 얼굴은 초등학교 소풍을 준비하는 아이의 얼굴이었습니다.

모임이 시작될 무렵...서로 돌아가면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30여명이 한 자리에 앉아 서로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지요.

앞에서 누군가 얘기할 때...선화와 형민이를 찍은 사진입니다. 선화도...형민이도...고개가 모두 앞 쪽으로 향해 있습니다. 형민이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아 듣지도 못할 텐데....모든 게 재미있고 신기한 듯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 보고 있습니다.

새로 오신 남선교사님의 두 아들이 아주 장난꾸러기라고 말씀 드렸었지요? 평소에 또래가 없어 심심해 하던 김기태 목사님이 아들 요한은 새로 합류한 이 두 형제가 무척 반가운가 봅니다. 모임 내내 세 사람은 함께 오락기로 게임도 하고 레스토랑 마당을 뛰어 다니며 놀았습니다. 그리고...이 틈에 형민이가 끼어 들었습니다.

또래의 아기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형이나 누나를 좋아하는 형민이로선....자신이 할 수 없는 많은 일(계단을 세 칸씩 올라간다던지...공을 멀리 찰 수 있고...복잡한 기계(오락기)를 마음대로 다루는 일)을 할 수 있는 형들을 따라 다니는 게 신이 납니다.

자기를 귀찮게 여기는 형들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열심히 형들의 꽁무늬를 쫓아 다니는 형민이는 뙤약볕에 얼굴이 타고 강가의 모기들에게 온 몸이 물어 뜯겨도 즐거운가 봅니다.

사실...전 모임이 계속 되는 동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형민이를 돌보기 위해 여기 저기 다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 선화는 레스토랑 2층의 연회석(?)에 앉아 오랜만에 만나는 여러 선교사님들과 자녀 양육에 관한 얘기와 새로운 먹거리에 관한 얘기들을 나누며 명절을 여유를 즐겼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형민이와 함께 뙤약볕이 쬐는 강가에서 뛰어 다녀야 했지만....만족스러운 하루였습니다. "더도 덜도 없이 한가위만 같아라.." 는 우리 민족의 추석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모임이 마치고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기념 촬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날 사진기를 가지고 온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전체 촬영을 위해 한 쪽 벽에 모두가 모였을 때...인화용 촬영에 앞서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것입니다.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재미있어 보이긴 한데...맨 오른쪽 아래에 형민이가 잘린 게 흠이라면 흠입니다.

이제...34명의 한국 사람들이 아스타나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또 다른 침례교 선교사님 가정이 오신다니...아마...올해는 40명 정도로 교민들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아스타나 개척의 역사...아스타나 선교 현장에 함께 동참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한 우리 가정은 2002년 추석을 이렇게 값지게 보냈습니다. 사실...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과 친지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이곳에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드리며 그 마음을 달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늘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02.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