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통신원

대한 민국 온 나라가 태풍과 물난리로 정신없다는 소식을 접해 들으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내륙 깊숙한 곳... 까작스딴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똑같이 안타까운 마음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반도 국가이기에 매년 서태평양의 수증기와 고온의 해수가 만들어 내는 태풍에서 빗겨 갈 수 없는 내 조국은 매년 되풀이되는 시련을 겪으면서 더욱 강해지는가 봅니다.

이곳 까작스딴의 9시 뉴스에서도 국제 뉴스 시간을 빌어 한국의 태풍과 물난리 소식이 보도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내리치는 빗줄기와 바람 그리고 높은 파도...자동차도 집도 삼켜 버리는 거대한 물줄기가 주택가를 메운 화면이 이곳 방송국을 통해 나간 뒤 많은 사람들이 "당신 가족은 괜찮으냐?" , "한국의 당신 집이 괜찮은지 전화 해 봤느냐?" 며 안부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원래 까작스딴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고 한국 사람을 좋아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피부로 느낄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급상승했는데.... 'TV에서 본 잘 사는 나라' 한국을 한 번 만이라도 가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젊은 친구들도 생겼고 앞으로 한국어과로 진학하겠다는 학생도 만나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한국에 대해 뿌듯한 자긍심과 감사함이 있는 요즘.....물난리로 온 나라가 시름에 젖었다는 소식에 걱정스런 마음과 조심스러움이 함께 생깁니다. 아무쪼록 온 나라와 교인들이 힘을 합쳐 어려움을 잘 이겨 내었으면 합니다.

젊은 시절 동안...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외국 생활을 하게 된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앞으로의 우리 삶의 방향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매일 나누며 살아갑니다. 이곳에서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감정들은 특별할 수 밖에 없고.. 선교지라는 특성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지구적 범위에서의 한국의 의미, 교회와 선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2002년 3월부터 선화는 부산일보사의 국제 통신원으로서 기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산일보사는 부산에서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대표적 언론사입니다. 선화가 통신원 일을 맡게 된 것에는 장인 어른의 권유가 주된 배경이었습니다. 평소 신문을 유심히 잘 보시는 장인 어른께서 부산일보에서 해외 통신원으로 기사를 보내 줄 사람들을 찾고 있다는 내용을 발견한 뒤...국제 전화를 통해 선화에게 한 번 알아 보라고 얘기해 주신 데에서 사연은 출발됩니다. 인터넷을 통해 통신원 제도를 자세히 알아본 뒤 부산일보사 국제부로 메일을 보낸 선화는 국제부 차장 명의로 된 통신원을 맡아 달라는 답장을 받게 되고 3월부터 기사를 보내게 되었지요.

이 작은 변화는 선화에게 또 다른 성취 동기를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간호사 생활 3년, 기간제 보건 교사 기간 4개월이 사회 활동의 전부인 선화는 까작스딴으로 온 뒤 형민이를 기르며 외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부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만의 일에 대한 동경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좋은 일거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죠.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통신원들은 한 달에 두 번 원고지 5매 분량의 기사를 메일로 보내게 되는데 편 당 5만원 정도의 원고료도 국내 구좌를 통해 받게 됩니다. 물론 명예직에 가까운 일이지만 만일 한 달에 두 편씩 꾸준히 적는다면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 되겠지요. 하지만 선화에게 있어선 자신 만의 일이 생겼다는 게 더 흐뭇한 일입니다.

지난 7월 한국의 처가집에서 보내 준 소포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소포 속에는 몇 가지 음식 재료들과 형민이 장난감이 들어 있었는데 그 외에도 8개의 비디오와 신문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장난감 강아지를 받아 들고 기뻐하는 형민이 옆에 비닐 봉지로 싼 비디오 뭉치가 보이시죠? 8개의 비디오 안에는 월드컵 기간 동안의 월드컵  전 경기와 뉴스, 보도물, 드라마, 다큐멘타리 류 등이 빽빽하게 녹화 되어 있었습니다. 월드컵 뒷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저희 얘기를 들으시고 보내 주신 이 비디오를 보느라...우리 가정은 요즘 뒤늦게 지난 6-7월의 한국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비디오를 통해 월드컵 기간 동안 온 국민이 얼마나 특별한 체험을 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고 서해 교전 사태와 태풍 소식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 말고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 하나가 바로...그 옆에 놓인 신문 입니다. 그 신문은 다름 아니라....선화가 투고를 하고 있는 부산일보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알마티로 새로 파견된 국제협력의사 안병재 선생님으로부터 부산일보에 게재된 선화의 첫 기사가 실린 신문을 건네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당시 까지는 부산일보를 전혀 입수할 수 없었던 터라 너무 반가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칼라로 인쇄된 부산일보 국제면을 펼쳐 든 선화의 밝은 모습입니다.

사실 원고지 5매 밖에 안되는 적은 분량이지만 공적인 언론 기관에 보내는 내용인지라... 일반 국민들에게 쉽게 다가 가는 내용을 정확한 사실에 기초해서 작성하려고 선화는 무척 애를 씁니다.

현지 신문을 사서 읽어 보기도 하고....특별한 공휴일에는 그 뒷 이야기를 알아 내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덕분에 늦은 시간...제가 먼저 잠자리에 드는 경우도 생겼지만 자신의 이름이 찍힌 기사가 활자화 되는 기쁨을 맛 본 선화로서는 이 일에 쏟는 열심이 대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기사를 송고하면서 적게 되는 e-메일을 통해 독자로부터 격려를 받는 일도 생겼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참한 주부에게' 라는 제목으로 온 첫 팬 레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 부산일보에서 선화씨의 글을 읽었습니다. 나는 부산에 사는 50대 중반의 어정쩡한 세대입니다. 세상은 정말 좋아진 것입니다. 옛날에는 전화를 할려고 해도 그런 곳이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었는데, 잠간이면 많은 글을 보내고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국의 생활과 풍습을 직접 가서 보지는 못해도 선화씨 같은 통신원들이 있기에 많은 상식을 얻게됩니다. 앞으로도 자주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기 바랍니다.우쨋거나 여기와는 환경이 다르겠지만 몸 건강하시고 우리 韓民族의 번영과 발전을 빌어 주세요. "

신문사 일을 하고 난 뒤 처음으로 이런 메일을 받게 된 선화는 기쁜 맘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작은 얘기가 450만 부산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을 통해 널리 전해진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으니까요...

최근에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메일을 받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산광역시청 공업기술과에 근무하고 있는 000 이라고 합니다. 오늘 부산일보에 게재된 "카자흐의 가을 개학식"이라는 선생님의 글을 읽고 이렇게 소식을 드립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곳 부산에서는 9/29부터 제14회 부산 아시아 경기 대회가 열립니다. 저희들도 카자흐스탄 선수단을 서포터즈 하기로 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기장 응원시 응원 구호가 마땅치 않아 카자흐 대사관에 연락해 놓았으나 아직 연락이 없네요. 해서 현지에 계시는 선생님께 부탁을 드립니다. 이곳에 오는 카자흐스탄 선수에 대한 적절한 응원 구호가 있으면 좀 알려주십시요 한국어와 같이 현지어(한글로 발음 표기 포함)로 표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지에서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가족들 모두 건강 하십시요"

물론 저희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그 동안 이와 유사한 부탁이나 요청이 끊이지 않았지만...부산일보에 실린 선화의 글을 읽고 그 아래에 적힌 메일 주소로 보낸 사연이기에 선화의 반응은 남달랐습니다.

당장 교회에서 열고 있는 한글 학교에 출석하는 까작 학생들에게 찾아가 "힘내라..", "까작스딴 화이팅!", "가자!" 등의 구호를 까작어와 러시아어로 적어 오는 열심을 보였습니다.

까작스딴에 살고 있지만 이렇게 우리의 생활은 한국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전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인터넷 상의 한국 관련 기사를 스크랩합니다. 특별히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세계 경영에 관련된 내용들을 유심히 살펴 보는데....한국 안에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한국에 대한 여러 정보들과 객관적 사실들을 습득하게 됩니다.

아마....한국 안에 계속 살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가슴 깊이 한국을 생각하고 한국 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 대해 큰 집착을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 밖에 나와 있기에 더욱 더 '세계 속의 한국' 이라는 주제에 바짝 다가 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결혼하기 전까지 선화는 글을 정기적으로 쓸 기회가 없었습니다. 글 쓰고 정리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성훈이 오빠를 만나 결혼하고 살면서 오빠의 외압(?)에 못 이겨 한 두 편씩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것이 벌써 20 여회....이젠 글을 훨씬 조리있게 적을 수 있고 평범한 소재들 속에서 탄탄한 줄거리를 전개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여전히 일정한 기간 내에 글을 적어 보내는 것은 어렵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일곱 차례 기사를 보냈지만 어떨 때는 한 달에 한 편 보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다음 기사를 보낼 때가 되면 마치 편집장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어쩌나...빨리 글을 올려야 하는데....' 하며 걱정하는 선화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올 봄...미국이 아프카니스탄과 전쟁을 시작했을 때...까작스딴 알마티에 아프카니스탄 인근 국가의 원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제적인 현안을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부산일보 국제부에서 메일이 날아 들었지요.....내용인 즉... "오늘 국제면 톱 기사가 알마티에서 열린 국제회의였는데 그 바람에 최근 기사가 뜸해진 까작스딴 통신원 생각이 나서 메일을 보낸다" 는 것이었습니다. 즉...기사를 자주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독촉이 있고 나면...선화는 더욱 정신 없어 지지요..

하지만 남편의 입장에서는.... 홀 몸도 아니면서 형민이를 기르고 외국 생활을 해 내는 것도 대단한데 동시대적 흐름에 뒤지지 않으려고 신문사 통신원까지 자청하며 열심을 내는 아내가 자랑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형민이는 엄마와 함께 있으려고만 합니다. 이제 두 돌이 다 되가는 형민이는 옛날이 그리운 듯...이불 장 깊숙히 숨겨 둔 포대기를 꺼내 피노키오 인형을 업고 다니거나 자기를 업어 달라고 엄마에게 졸라 댑니다. 그래서 선화의 하루는 떨어질 줄 모르는 형민이와 함께 뒤섞여 돌아가는 물레 방아입니다.

물레 방아처럼 늘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돌아가는 것 같지만....그 힘으로 가정을 움직이고 신문사에 기사도 보내면서 선교지의 선교사들을 도우는 사람은 선화 입니다. 환경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의 앞을 개척해 나가는 통신원 아내를 둔 남편은 그래서 자랑스럽고 고마울 뿐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한국과 까작스딴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까작스딴 이선화 통신원의 활약이 계속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래 봅니다.    2002.9.7

 * 선화의 부산일보 기사는 마음의 글 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