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작스딴에서만도 네 번째 집...

1999년 10월 16일 결혼한 우리 부부는 신혼 살림을 부산 학장동의 20평 짜리 아파트에서 시작했습니다. 비록 큰 아파트는 아니였지만 두 사람이 사랑하며 지내기에는 충분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두 사람만의 신혼 기간을 그 곳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가진 한국에서의 아파트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1년 7개월 정도...이곳 까작스딴으로 날아와야 했기 때문이지요.

까작스딴에서도 우리의 방랑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며칠 전 또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원해서 이사한 것이 아니라 집 주인이 12월말까지 임대 계약을 해 놓고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팔아야겠다고 연락을 해 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집 주인은 '까작오일'이라는 까작스딴 제일의 석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번에 다른 곳으로 발령받는 바람에 알마티로 온 가족들을 이끌고 내려가야 했고 아스타나의 집을 팔아 알마티에 새 집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합니다.

물론 계약서 대로...12월까지 절대로 나갈 수 없다고 버틸 수도 있지만 계약이 만료되는 12월에 다시 계약을 연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겨울에 이사를 하는 것보다 여름에 이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웃는 얼굴로 집을 나오기로 했습니다.

지난 3월...이사한 뒤 너무나 마음에 드는 집이라 기쁜 마음으로 소개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넓이도 110평방 미터나 되는 데다 건축 자재도 고급이고 방문이나 세면기 같은 것은 한국 자재를 사용했기에 유달리 정이 드는 집이었습니다. 지은 지 2년도 채 안 되었기에 빨간 벽돌로 지어진 궁전같은 집인데다.. 까작스딴의 보통 아파트와는 달리 복도나 계단도 마치 호텔처럼 깨끗하고 우아하게 만든 곳이었지요.

하지만 이젠 이사를 해야 하기에....약간은 착잡한 마음으로 새로운 집을 알아 보러 분주하게 다녔습니다. 이제 까작스딴 생활도 오래 하다 보니 집을 보는 안목(?)이 나름대로 생겨 집 고르기가 더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 경치와 전망, 방향, 가격, 주변 상가와의 접근성, 형민이 놀이터, 주차장 등을 고려하면서 도시 여기 저기를 돌아 다녔고 밤마다  이 기도제목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3개월 만에 다른 집으로 옮기는 상황이 벌어진 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섭섭한 마음은 금새 사라졌고 시간이 지날 수록 '하나님이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집을 주시려고 이렇게 옮기라고 하실까?'  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전에 살았던 집이 너무 좋다 보니...몸이 무거운 선화나 활동량이 많은 형민이를 고려할 때 그 보다 못한 집으로는 들어가고 쉽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부담이 더 되더라도 이전 집에 버금가는 좋은 아파트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스타나 시내에 있는 좋다는 아파트는 다 둘러 보았습니다.  

하지만 깨끗하고 멋진 집을 많이 보았음에도 우리 맘은 선뜻 한 곳을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턱 없이 높은 가격과 각 집 마다 가지고 있는 작은 단점(예를 들면 남향이 아니라던지...층수가 너무 낮아 경치가 좋지 않다던지...)들 때문인지.. 전에 집을 골랐던 때처럼 우리 맘에 강한 확신을 심어 주질 못했습니다. 분명히 지난 번 아파트 처럼 선화나 제 맘에 꼭 드는 집이 나타날 텐데....인내를 가지고 찾아 보았지만 오랫동안 그런 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스타나를 포함한 까작스딴의 주택 임대 방식은 모두 월세입니다. 우리 나라는 목돈을 주고 집을 임대하는 독특한 전세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은 미국이나 유럽과 마찬가지로 매달 일정한 금액을 주고 임대하는 방식입니다.

아스타나의 임대료는 한국보다 결코 낮지 않습니다. 한국 수준의 깨끗한 아파트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고급 아파트의 한 달 임대료는 월 600-800달러 정도 됩니다. 월 수입이 100달러 미만인 대다수의 까작스딴 국민들은 이런 아파트에선 도저히 살 수 없지요.

일반 국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대개 1-2칸 짜리 아파트인데 월 150-250달러 정도면 구할 수 있고 3-4칸 짜리는 250-350 정도 나갑니다. 하지만 이런 곳은 낡은 데다.. 한국에서 갓 살다 온 사람들에겐 불편하기 그지 없는 곳들입니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 좋다고 생각되는 3-4칸짜리 아파트를 구하려면 넓이나 가구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400달러는 주어야 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사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오래 된 아파트들은 구 소련 시절 정부에서 무상으로 분배해 주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어 공부를 하다 보면 러시아어 회화 속에서 '아파트를 샀다'는 표현보다 '아파트를 받았다(빨루찔)' 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식으로  아파트를 사지 않고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정부 고위 관료나 소위 높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해당되는데..그들은 이렇게 받은 새 아파트를 비싼 가격으로 빌려 주면서 이 사회의 상류층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과거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아파트에서 그냥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살고 있었던 이곳 사람들은 아스타나에 사람들이 몰려 들면서 임대 아파트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자 자신의 집을 여름 동안 세로 내어 주고 근처 시골로 내려가 물도 안 나오고 난방도 되지 않는 다차(일종의 농가)에서 살면서 얼마간의 돈을 벌기도 합니다.

 임대 수입이 괜찮다는 것을 눈치 챈 어떤 사람들은 돈을 빌려 자신의 아파트를 좋은 벽지, 고급 가구등으로 꾸민 뒤 전보다 비싼 가격으로 세를 놓아 수입의 증대를 꾀하는데 상당히 짭짤한 수입을 거둘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헌 집 수리(레몽뜨)가 늘어 나자 낡은 집을 수리하는 업자들도 호황을 누리고 있고... 어쨋든 임대료가 비싼 까작스딴의 도시에서는 이런 재테크 방식이 아주 유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백만원 짜리 월세 아파트가 즐비한 아스타나에서는 아파트 건설 붐도 활기를 띠고 있는데 인구 유입이 계속되는데다 아파트 임대료가 높기 때문에 재산 증식의 좋은 방법으로 새 아파트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상황들을 이젠 분명히 알고 있는 우리 가족은 어떤 집으로 이사해야 할 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토요 기도회를 막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오후...통역 아주머니로부터 집 보러 가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발행되는 생활 정보지에 나오는 부동산 관련 정보를 유심히 보다 괜찮은 집이 나왔다 싶으면 우리에게 늘 연락을 해 주셨습니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구요.

아주머니가 일러 주는 그 집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들어 봤지만 그렇게 기대할 만한 집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그 아파트 단지의 다른 집을 본 적이 있는데 별로 맘에 들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 주인이 꼭 한 번 와 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는 점과 다른 아파트에 비해 훨씬 가격을 싸게 부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어 그 집을 한 번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보통 집을 보러 다닐 때는 항상 선화와 형민이가 함께 동행하는데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에 저 혼자 나가 보았습니다.

사진에서 화살표가 찍힌 희고 노란색의 건물이 바로 그 건물입니다. 사진은 아스타나의 중심부 람스토르(대형 매장) 앞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사진의 왼 쪽에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지요. 

1년 전에 세워진 새 집인데...3개의 건물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아스타나의 가장 중심부에 놓인 아파트입니다. 지난 번에는 첫 번째 건물의 집을 구경했었는데..이번에는 두 번째 건물의 3층이었습니다.

혹시나...하는 맘을 품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어땠을까요?......환한 실내와 넓은 공간 그리고 하얗게 칠해진 벽을 본 저의 첫 인상은 '그래...이 집이면 되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밝은 실내처럼 내 맘도 환하게 밝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봤던 옆 건물의 집보다 100달러나 싸게 값을 부르고 있다는 점과 넓은 거실, 아스타나의 핵심부가 한 눈에 보이는 조망 등이 점차 내 맘을 끌었고.."잠시 기다려 달라" 는 말을 남기고 급히 집으로 가 선화와 형민이를 다시 돌아 왔습니다. 아무래도 선화도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선화도 이전 집 보다 좋은 세탁기와 넓은 발코니..집 전체에 깔린 마루 바닥 등에 좋은 점수를 줬고 형민이도 집이 맘에 드는 지 여기 저기 둘러 보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해서...우리의 새 집은 결정되었고 지난 4월 20일 까작스딴에서 하는 세 번째 이사를 했습니다. 이번 집은 결혼 후 다섯 번째 집이자 까작스딴에서 맞은 네 번째 집입니다.

작년 까작스딴에 처음 와서 알마티에 정착한 이후 3개월 만에 아스타나에 올라와야 했고 다시 두 번이나 이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왼쪽 사진은 건물의 근접 사진입니다. 근처의 건물들은 여전히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주변은 계속적인 재개발과 함께 신축 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활기찬 주택지입니다.

선화는 지난 번 집에 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집은 너무 좋지만...중심부에서 약간 떨어진 데다 진입 도로가 좋지 않아 형민이를 데리고 외출하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택시도 안 들어오는 외진 곳이라 상점이나 편의 시설이 멀고...무엇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택가의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아 제가 출근하고 나면 외롭다는 게 단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옮긴 집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이 드나 드는 주택가 한 가운데 입니다.

저희 집 거실이나 안방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면 아스타나 중심부를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진은 거실 창문을 열고 찍은 사진입니다.

파란 지붕의 박물관,  그 뒤로 보이는 터어키에서 건설한 사말의 아파트들, 그리고 그 왼쪽으로 보이는 람스토르와 노란색의 아스타나 타워....

아스타나 최대의 메인 도로인 레스푸브리카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병원 출근은 물론 테니스를 치러 가거나 장 보러 갈 때도 전 보다 훨씬 편리해 졌습니다.

거실도 이전 집보다 훨씬 넓고 세탁기도 이전 집보다 훨씬 좋고...빨래를 널어 말리기 좋은 발코니가 2군데나 있고....무엇보다도 이전 집보다 월 100달러나 싼 집이라 경제적으로도 훨씬 유익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3개월 만 산 집에서 급히 나오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어렵게 찾은 좋은 아파트인데 이렇게 급히 나오면 어떡하나....'하고 걱정했지만....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좋은 처소를 마련해 두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임을 깊이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에 우리 집의 여기 저기를 남깁니다.

위쪽 왼쪽은 집에 들어서자 말자 보이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넓은 거실입니다.

아래쪽 왼쪽은 서재와 작업실로 쓰이는 방이고 오른쪽은 침실과 형민이 장난감이 놓인 큰 방입니다.

이번 이사에 우리는 100% 만족하고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집이 넓어 이번 여름에 아스타나를 방문할 알마티의 코이카 식구들을 포함한 여러 방문객들을 맞기에도 편리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늘 부족하기만 한데...늘 풍족한 것으로 채워 주시는 우리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사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많은 분들께도 감사의 맘을 전합니다.    200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