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볶음밥

아스타나의 짧은 여름은 빠르게 온 세상을 푸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봄이 시작된지는 한참이나 되었지만 그 동안 자주 찬 바람이 몰아 닥친 데다가 지난 5월 중순에는 눈까지 내렸었기에 마치 겨울과 봄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듯한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한 번 이곳을 찾아 온 봄기운은 잦은 한설에도 아량곳없이 나무와 언덕마다 신록으로 옷을 입혔고 이제는 거리의 가로수도 제법 큰 잎사귀를 자랑하고 있고 도로가의 잔디밭에도 길게 자라 올라온 잔디와 그 사이에 노랗게 피어 있는 민들레가 살랑살랑 머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일년을 살아보니 이곳의 겨울은 참 길다는 생각이 듭니다. 10월에 이심강 강물이 얼기 시작하면서 시작되는 겨울은 5월이 되어도 눈을 뿌려댈 만큼 오래 계속됩니다. 그래서 아침 기온을 토대로 대략 계산해 보니 겨울은 7개월, 봄, 가을이 각각 2주, 여름은 4개월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따뜻한 기온도 곧 뜨거운 더위로 변하겠지만.....이렇게 춥지 않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축복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곳의 겨울은 길고 깁니다.

이런 날씨 속에서 우리 가정은 또 다른 고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둘째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선화는 첫 아기 때와는 다르게 심한 입덧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임신 11주 인데...지금까지 계속 속이 메스껍고 소화가 되지 않으면서 머리까지 어지러운 증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주에는 아침, 저녁으로 찾아오는 추위에다 비,바람이 계속되어서 집 안에서 생활하던 선화와 형민이 모두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형민이는 까작스딴에 오고 난 뒤로 특별한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서 그 사실이 우리 부부에겐 언제나 커다란 감사 제목이었습니다. 물론 가벼운 감기 정도야 앓고 지나가지만 그거야...면역력을 획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가인 셈이니 오히려 반가운 존재입니다. 주변의 많은 갓난 아기들이 크고 작은 병치레로 힘들어하는 데도 형민이는 늘 즐겁게 뛰어 노는 장난꾸러기로 자라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활발한 활동력을 보이던 형민이도 이번 주 들어 감기에 걸리자 밥을 먹다가도 눈을 끔뻑거리며 엄마, 아빠 옆에 슬그머니 다가와 힘없이 두 다리를 뻗고 드러눕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주었습니다. 재미있는 비디오를 틀어 줘도 눈길을 주지 않고 움직임도 활발하지 않습니다. 밤 11시가 지나도 침대로 가지 않고 열심히 노는 형민이었는데... 10시가 되지도 않았는데도 엄마의 손을 끌고 자러 가자고 합니다. 병치레를 해도 착하게 하지요? 우린..형민이가 정상 컨디션이 아니란 걸 쉽게 눈치챘고...미열과 함께 힘없이 일찍 잠자리로 가는 형민이를 가엾은 마음으로 보살펴야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형민이 몸에는 붉은 발진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아마 어떤 바이러스가 형민이의 몸에 들어왔고 이에 대항해서 만들어진 항체에 의한 반응의 한 가지로 이렇게 온 몸에 발진이 생겼나 본데...목욕을 시키면서 울긋불굿한 형민이의 몸을 보며... 조그만 것이 고생한다 싶어 안타까왔습니다. 삼일째 부터는 다시 웃고 장난도 치지만... 아직도 몸 어느 구석이 불편한지 방바닥에 엎드려 아빠를 넌지시 쳐다 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선화입니다. 안 그래도 지난 몇 주 동안 심한 입덧으로 인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입맛도 없던 선화에게 닥쳐 온 감기증세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지요...늘 찾아오는 전구 증상인 두통과 코 막힘이 시작되더니...아니나 다를까 지난 가을에는 2달까지도 갔던 지독한 감기(상부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 가 다시 엄습했습니다.

전 감기에 걸려도 주로 눈이 아프고 두통이 심한 게 주증상인데...선화는 원래 알러지 체질이어서 코감기를 심하게 앓습니다. 콧물, 콧막힘과 함께 심한 두통을 보이는 게 특징입니다. 밤에 잠을 자더라도 숨이 막혀 잠이 오지 않아...소금물로 코 안을 씻어 내고 나서야 겨우 잠 들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선화가 이렇게 체력이 저하되고 앓기 시작하자...집안 일의 많은 부분을 제가 떠 맡아야 했습니다. 우린 이곳에서 가정부 마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어서 집안 청소나 설거지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사람이 산다는 게 어디 그런 것만 일이겠습니까?

형민이 목욕 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조금의 무게만 나가도 물건을 들어 올리는 일은 제가 맡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힘드는 일은 형민이 돌보기인데 집에 있는 동안에는 늘 형민이와 놀아 주어야 하는 게 큰 과제입니다. 둘째의 임신 후...15Kg이 훨씬 넘을 것 같은 형민이를 안아 올리는 것을 선화에게 금했기 때문에...형민이를 안고 움직이는 것도 전적으로 제 몫입니다.

화장대 위의 화장품 뚜껑을 열어 보는 형민이...

사실...이제 두 살이 다 되어가는 아기와 놀아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기는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참 신기할 정도로 휴식이 없습니다. 늘 무엇인가를 만지고 새로운 것을 시도합니다. 앉아 있으면 손을 잡아 끌기 때문에 쉴 수가 없고 서 있으면 안아 달라고 두 손을 치켜 올립니다. 한 번 봤던 물건이 다시 보이면 자기 손에 쥐어 달라고 조르고... 먹어선 안되는 것도 주워 먹으려 하고... 전화기 탁상이나 바퀴 달린 자동차 같이 위험한 곳에도 기어 올라가려고 합니다. 늘 컴퓨터 전원을 켜고...엄마 화장대에 있는 화장품을 다 꺼내 보고 영양 크림을 얼굴에 펴 바릅니다. 부엌의 식기를 바닥에 다 깔아 놓고 냉장고 안의 쥬스나 콜라를 달라고 합니다. 오디오에 자기가 좋아하는 테이프가 들어 있지 않으며 바꿔 달라고 하고 다른 소리가 나면 울어 댑니다. 비디오도 30분에 한 번씩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하고.... 좋아하는 그림책을 계속 읽어 줘야 합니다. 책상 위에 있는 필통이나 공구함 속의 드라이버나 나사를 다 꺼내길 좋아하고...테니스 공도 다 던져 봐야 합니다. 이런 아기를 돌보며 3-4시간만 함께 있다 보면 금방 온 몸은 녹초가 되어 버리지요...

누군가가 제게 묻더군요.."여가 시간에 뭐 하세요?"  사실 전 요즘...여가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집에 있는 모든 시간은 형민이를 돌봐야만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선화가 아픈 이후로...특히 형민이를 돌보는 일을 혼자 도맡아 있기에 늘 지쳐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둘째를 가진 데다 감기까지 걸린 선화는 이 일 저일로 뛰어 다니는 절 보며 많이 미안해 합니다. 하지만....어떡해 할 도리가 없지요...오히려 감기로 인해 몸이 약해지자 선화는 제게 더 의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약해 지면...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의지하게 되나 봅니다. 특히 까작스딴 땅에 형민이를 데리고 우리 부부 두 사람만이 달랑 날아 왔기에 이렇게 몸이 아프게 되면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린 아무리 아프더라도 매일 드리는 가정 예배를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긍휼이 여겨 달라고 늘 간구하지만.....늘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가 아플 때면 더 위로가 되나 봅니다. 몸이 안 좋아지면서...선화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사실...까작스딴에 온 지 1년이 넘었지만...이토록 선화가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로 솔직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외로움이 약해진 몸을 타서 엄습하나 봅니다.

그래서 선화는 요즘 잘 때...꼭 자기 손을 잡아 달라고 얘기합니다. 심한 코감기 때문에 옆으로 돌아 누워 잘 수도 없는 상태이지만....자기 손을 꼭 잡아 달라고 얘기합니다. 어젯 밤에는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오빠...나 보다 먼저 자지 마세요...내가 먼저 잠들면 좋겠어요....혼자 깨어 있는 거 싫어요...." 무척 약해 있는 선화의 맘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전 제가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잡은 손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늦은 밤을 뜬 눈으로 새워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아침의 태양도 떠 올랐습니다. 원래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형민입니다. 형민이는 항상 일찍 일어나서 우리 모두를 깨우는 게 순서인데...자고 있는 절 가리키며 "아빠...아빠..."하고 소리를 지르지요...그러면 전 형민이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아침을 맞습니다. 그런데 감기에 걸려 있는 형민이는 요즘 일어나자 말자 우는 일이 많아졌고 오늘도 몸을 뒤척거리며 늦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전 ......멀리서 뭔가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부엌에서 선화가 뭔가를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수돗물을 트는 소리가 나고...전기 렌지 위에 뭔가를 올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언제일어 났을까? 몸도 안 좋은데...더 자지......' 염려되는 맘으로 부엌으로 가 보니...역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잠옷 차림으로 부산히 움직이고 있는 선화였습니다.

사실...절박유산의 증세가 있는 와중에서도 ...또 감기 증세가 있는 상황에서도....선화는 늘...자기가 직접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전...아침은 빵을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선화는 형민이를 위해서 밥을 해야 한다고 졸랐고....제가 밥을 하겠다고 하면....옆에서 도와 주기만 하면 별 어려움이 없다고 얘기하며 직접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하지만...막상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선화는 늘 많은 일을 해야만 했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봐야 하는 전...그게 늘 불만이었습니다. '왜 쉬지도 않고 저러나.....'

그런데..오늘은 일이 벌어졌습니다......30분 정도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선화가 갑자기 주저 앉아 버린 것입니다. "오빠....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아요....이렇게 좀 앉아 있어야 하겠어요...저기 미역국 끓이는 냄비에 물 좀 더 부어 주세요..." 안 그래도 조마 조마 하는 맘으로 부엌에 있던 전....놀라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화도 났습니다.

"왜 말을 안 듣고 아침을 준비하려고 하니?....이러면 결국 우리 모두 더 나빠질 뿐이잖아...."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병원으로 나왔습니다. 병원에서 내내...아침 일이 떠 올랐습니다. 화를 낸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몸도 안 좋으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는 선화가 답답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집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오빠...오늘 목사님 댁에서 박 선교사님과 함께 점심 먹기로 했는데....가야 할 시간이예요...지금 집에 와 주세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전화를 끊자 마자...집으로 달려가...오늘 같은 날은 모임에 가지 않야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미리 약속한 모임이고 사모님이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이 있기에 안 갈 수 없다는 선화의 말에...전 환자 두 사람(선화,형민)을 데리고 목사님 댁으로 가야 했습니다.

목사님 댁에서 3시간을 있었나 봅니다. 사모님이 알마티에서 가져온 떡으로 떡볶이를 만드셨고 어렵게 구한 녹두로 빈대떡을 구워 놓으셨습니다. 선화는 입덧 하면서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얘기를 했는데...이걸 들으신 사모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우린 맛있게 먹고 참석한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두 사람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걸 아는 저로선....바늘 방석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빨리 집으로 가야 하는데.....' 그 생각 뿐이었습니다.

오후 5시가 다 되어...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선화는 온 몸이 지쳐 있었고 감기 증세는 더욱 심해져 있었습니다. 선화는 요즘 매일 오후에 2시간 이상씩 수면을 취해 왔는데...오늘은 식사 모임 때문에...낮잠을 자지도 못하고 계속 움직였던 탓에 더 피곤한 듯 보였습니다.

이럴 때...잔 소리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냥 선화를 침대로 보내고....아직까지도 장난 치고 안길려고 하는 형민이를 데리고 거실에서 놀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소금물로 코 안을 씻어내고 잠을 청하는 선화를 확인한 뒤...선화가 좀 쉬려면...저녁 준비는 제가 해야 할 것 같아 부엌으로 갔습니다.

사실 제가 제일 잘 하는 요리는 '짜파게티' 끓이는 겁니다. 학생 때부터...많은 손님들(?)을 집으로 청해서 짜파게티 끓였고 짜파께티 10개를 쫄깃쫄깃한 맛을 유지하면서 끓일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하지만 그걸 요리라고 할 순 없고...결혼 한 뒤로...선화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 같은 날에 늘 제가 하는 요리는 바로 '볶음밥'입니다. 볶음밥은 간단해서 만들기도 좋은데 각종 야채와 김치를 썰어 밥과 함께 후라이 팬에 볶으면 되는 거지요...

선화가 누운 틈을 타서...전 현재 집안에서 구할 수 있는 야채를 모두 꺼내 가로,세로,높이 1cm 씩의 정육면체로 잘랐습니다. 일단 빨간색의 당근을 잘랐고...쓰다 남은 양파도 있길래 이것도 조각을 냈습니다. 감자가 있으면 좋은데...오늘은 감자가 다 떨어졌나 봅니다. 한국이라면 김치도 있고 파를 쉽게 구하는데...김치나 파가 없고...햄도 오래 된 것 같아서 그냥  버렸습니다.

형민이와 전...자주 부엌에서 함께 일합니다...

선화가 깨어 나면 맛있는 볶음밥을 차려 주고 싶은데...남아 있는 야채는 당근과 양파가 다였지요...그래서 전...냉장고 한 귀퉁이에서 예전에 알마티에서 구해 온 단무지를 발견해서 이것도 정방형으로 썰었고...야채실에 하나 남아 있는 사과도 썰어 재료로 준비했습니다. 사실 볶음밖에 단무지와 사과를 넣어 본 적은 없지만....워낙 야채가 남아 있지 않은데다가... 뭐 맛있을 것 같기도 하고....선화를 놀라게 하고 싶은 맘도 있어서 이렇게 해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당근과 양파를 넣고 기름에 볶다가 보온 밥솥에 있는 밥을 넣으려고 봤더니...남은 밥도 적어 한 그릇 반 정도 뿐이더군요. '뭐 이 정도면 세 식구가 다 먹겠지..' 싶어 남은 밥을 다 넣고 다른 야채와 함께 볶았습니다. 물론 그럴싸한 냄새도 풍겼습니다. 한 숟갈 떠 먹어 보니...뭐...사과 때문에 약간 단 맛이 있긴 하지만...맛있을 것 같았지요...

자고 있는 선화를 다시 확인하고....거실에서 자동차를 타고 있는 형민이를 불러서 밥을 먹이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형민이 밥 먹이는 것도 큰 일이기에...선화의 일을 덜어 줄 겸 형민이에게 제가 만든 특식을 먹이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선화가 깨어나면 아주 고마워 할 거라는 기대도 하면서.....

그런데...먹다 남은 미역국과 함께 형민이에게 먹여 봤더니.....미역국물은 잘 마시는데...제가 만든 볶음밥은 모두 다 뱉어 내는 게 아닙니까? 왜 그러나 싶어...물도 먹이고 미역 줄기도 먹여 본 뒤...다시 한 숟가락 볶음밥을 떠서 먹였는데...역시 마찬가지로 형민이는 입안에 들어 있는 것을 다 뱉어내고 말았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 아마 형민이는 단 맛이 나는 볶음밥이 싫은가 봅니다...이 놈은 입맛이 좀 까다롭습니다. 이제 나이가 1살 하고 8개월 정도 되었는데 이 되었는데...7개월만 한국에서 살았고...1년 1개월은 까작스딴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한 살이 되기 전부터...된장국만 찾고 두부, 숙주나물, 미역, 마른 멸치, 북어를 좋아합니다. 얼큰하고 짭짤한 반찬을 좋아해서 제가 먹는 건 거의 다 먹을 수 있지요. 그런데..단 것은 싫어합니다. 아마...제가 만든 특별 볶음밥에 사과와 단무지가 들어간 바람에 형민이가 거부하는 것 같았습니다.

식은 미역국은 있는데.....밥을 안 먹는 형민이를 보면서....다시 밥을 하기로 했습니다. 쌀을 씻어 전기 밥솥에 넣고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이제 17분만 있으면 새 밥이 될 테고...그 밥을 미역국에 말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형민이와 책도 읽고 목마도 타고 춤도 추면서(형민이는 제가 춤을 추는 걸 좋아합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모습을 자꾸 보려고 형민이 앞에서 발을 들어 올리며 춤을 춥니다.) 시간을 보내며 밥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저녁 8시 가까이 되어...선화가 눈을 떴습니다.

하도 자주 코를 풀어서 코 주위가 빨갛게 달아 오른 선화는 오빠가 하루 종일....고전하는 걸 생각하며 그저 미안한가 봅니다. 완전히 눈을 뜨지도 못하고 "오빠....미안해요....오빠 말 들었어야 하는데....."  중얼거렸습니다.

"선화야...오빠가 볶음밥을 만들었다...그런데..형민이가 자꾸 입 밖으로 뱉어 내서...내가 다시 밥 하고 있다...."

이 말에...선화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습니다.

"선화야...왜 우니?" "아니예요....오빠가 볶음밥을 만들었다는 말을 들으니까....눈물이 나네요...."

'볶음밥을 처음 만든 것도 아닌데.....왜 울지? 지금까지 볶음밥을 만들었다고 울기까지 한 적은 없었는데...사과 볶음밥이라서 그런가.....'

이렇게 해서....우리 가정의 오늘 하루도 저물었습니다. 아마...사과와 단무지를 넣은 볶음밥은 다시는 만들지 않을 겁니다. 그 볶음밥은 너무 달고 형민이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이심강변의 유럽식 아파트를 뒤로 하고 웃고 있는 형민이...

하지만 사과 볶음밥을 만들면서....우리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고....상황이 힘들어질수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어야겠다는 열심이 내 속에서 우러 나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과 볶음밥은 의미가 있습니다.

선화는 늘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줍니다. 까작스딴에 와서 살았던 일 년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는 선화의 손길을 통해 매일같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빨리 선화가 병석을 훌훌 털고 일어나 주면 좋겠습니다. 진짜 제대로 된 볶음밥을 먹고 싶으니까요..... 2002.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