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많은 나라...

까작스딴 도시 주거 형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의 겨울철 난방 방식은 중앙 난방식입니다. 전체 아파트에 동시에 공급되는 이 난방은 10월부터 시작되어 겨울이 끝났다고 판단될 무렵에야(?) 끝나게 됩니다. 한국은 벌써 늦봄이 한창인데...왜 갑자기 난방 얘기냐구요?   여기는 이틀 전인 4월 24일에야.. 난방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봄이 선언된 셈이죠...사실 지난 주에도 영하 6도의 기온과 함께 눈 내리는 겨울 날씨를 보였었는데...이번 주 들어선 햇살이 따갑게 느껴집니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서울의 낮 기온이 영상 26도인 걸 보았었는데... 이곳과 그 곳의 차이가 확 느껴지더군요...   

까작스딴에서 산 지 일 년이 되었지만...아직도 이 나라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평범한 일들을 제약 받게 되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들 게 되는데...몇 가지 소개할까 합니다.

1. 숨겨야 할 비밀 장소가 많은 나라....

이곳의 어떤 선교사님의 부탁으로 저는 몇 달 전부터 아스타나 현지와 선교 현장의 모습을 비디오로 녹화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선교사님을 파송한 선교 본부에서 이번 여름에 세미나가 있는데 그 때 이러한 영상물을 제출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디오의 내용에는 선교사님의 사역 뿐만 아니라 현지의 사회,문화,종교를 알 수 있는 영상을 담도록 되어 있어서....어느 날 도시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으려고 선교사님과 함께 밖으로 나왔습니다.

처음엔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아무래도 아스타나의 입구는 역이니까....아스타나를 소개하는 첫 화면에 기차역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죠...북적이는 사람들과 안내방송으로 시끄러운 역 구내와 플랫폼에서 이곳 저곳을 찍고 있을 때였지요....

잠시 후....정복 차림의 역 직원이 나와서 이곳은 국가 주요 시설이니까...촬영을 해선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보다 하고... 나오려고 하는데...경찰 한 사람이 다가 와...비디오 카메라를 집어 들며 "함께 갑시다..." 라고 말한 뒤 다짜고짜 우리를 구내 경찰서 인 듯한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제가 촬영한 화면과 신분증을 확인하더군요..다행히 제 신분증은 외교관에 준하는 신분을 표시하는지라...특별한 얘기없이 오히려 "미안하다...여기선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라는 말만 듣고 풀려(?) 나왔지만 비디오 촬영하다가 경찰서에 들어간 기분은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역 안은 안되나 보다 하고...역 광장으로 나가...아쉬운 맘에 멋있는(?) 역 건물을 멀리서 찍고 있는데....또 다시...경찰 한 사람이 달려 오더니 "촬영 하면 안된다...." 라며 우리를 역 밖으로 내 몰았습니다.

"그럼 어디로 간다...." 기차역도 이런데...공항은 더 할 것 같고....우리는 이곳의 백화점과 상가를 찍기로 하고 아스타나의 대표적인 백화점 "쭘"과 상가인 "람스토로"로 향했습니다.

백화점 현관을 들어서서 비디오 카메라를 드는 순간....날렵한 경비원 아저씨에 의해 우리의 시도는 좌절되었습니다. 이것은 람스토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입구에 설치된 자동문이 열리는 장면 뿐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우리의 촬영은 번번이 좌절되었는데....재래 시장의 식육점 코너에서도 고기를 파는 상인들에 의해 촬영할 수 없었습니다. 앞의 경우는 보안과 경비 때문에 촬영을 금지한 것이라면 이번 경우는 "혐오 시설"을 촬영해선 안된다는 명분이었습니다. 피가 묻은 고기들의 모습을 찍어선 안된다는 거지요......

휴가를 다녀오고 난 뒤...어제 선화와 형민이와 함께 산책을 나갔습니다. 얼음이 다 녹아 흙탕물로 변해 버린 이심강을 걷다가 하늘 저편에서 검은 구름들이 몰려 오는 걸 보고 비도 피하고 형민이 산책도 시킬 겸 시내 중심부에 차를 대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전 아스타나에 사는 우리 가정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관 하고 싶어 외출할 때마다 종종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나와 우리의 모습과 주변 모습을 촬영하는데...이 날도 주차장 옆의 러시아 극장과 앞 서 걸어가는 형민이를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경찰복 차림도 아닌 웬 젊은 아저씨 한 명이 내게 다가 오더니... 지갑을 꺼내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 주면서 어디론가 날 데려가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살짝 보여주는 그 신분증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알 정도의 러시아어 실력이 안 되지만....사복 경찰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따라 가지 않고...저희 신분증을 보여 주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물어 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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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비디오 카메라를 가리키더군요...이 근방에 대통령 집무실과 국가 주요 관청들이 있는데...이 곳에선 비디오 촬영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왼쪽 사진의 건물이 대통령 집무실입니다. )

그러면서 "신분증을 보여 달라....", " 촬영한 화면을 보자...."  라며 자기 수첩에다가 빽빽하게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곳의 이런 관행에 대해 고개를 늘 내두르던 우리 부부는 그 젊은 사복 경찰에게 되도 않는 러시아어로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농담이지요? 여기서 촬영을 하면 안된다는거....진짜예요?"

"뭐가 비밀이예요? 백악관 아세요? 백악관 앞에서 비디오 찍고 시위 하는 거 못 봤어요?"

"까작스딴은 정말 비밀이 많은 나라네요...뭐가 그렇게 비밀이 많아요?"

사복 경찰도 우리가 외교관 신분을 가지고 있기에 신분증만 물끄러미 보다가 그냥 "까작스딴은 원래 이렇다" 라는 말만 하고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10년전만 해도 까작스딴은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안에 들어있는 공산국가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방 진영의 언어와 사상을 얘기하는 것이라든지...국가에 대해 조그마한 불만이라도 주변 사람에게 토로했다가는 바로 KGB와 같은 비밀 경찰에게 잡혀 갔었다고 합니다. 언론과 사상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았던 딱딱하고 경직된 사회였지요...그러한 양극화 시대의 산물로 아직도 이곳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아직도 알마티와 같은 대도시에서도 경찰들이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세우고 신분증을 보자고 윽박지르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물론 요즘은 돈 몇 푼이라도 뜯어 보겠다는 생각에 그런 일을 하고 있지만...이것 역시 과거...다른 곳을 여행하던 여행자들과 외국인들에 대한 감시의 관행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하는 행동인 것처럼 보입니다.

 2. 서비스 정신 0 에 도전한다.

까작스딴에 와서 살면서 한국과 다르다는 느낌을 가장 많이...그리고 자주 받는 곳이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접할 때입니다. 크고 작은 상점, 우체국, 전화국 등을 다니다 보면 방문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쌀쌀하고 냉담한 태도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고객 만족, 고객 감동을 외치는 한국에서 30년 이상 살다 온 제 눈에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어색하게 와 닿는지 모릅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작은 상점에 음료수라도 하나 구입하러 들어가 보면...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마치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을 추궁이나 하듯이 물건 이름을 묻고는 아무 말 없이 건네 주는 물건 값을 받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10년 전 구 소련 시절...어쩌면 물건을 쌓아 두고 배급을 하는 측은 배분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물건을 파는 실적과는 상관없이 업무만 종사하면 되는 그들에게는 물건을 받기 위해 찾아 온 사람들에게 미소를 대할 필요는 더 더욱 없었겠지요.....자본 주의 경제가 들어온 지 10년이 되었지만...아직 이들 몸에 배여 있는 공산주의 시절의 잔재는 도저히 떨어 버릴 수 없나 봅니다.

이곳 러시아 여성들을 보면...우리가 전에 쉽게 접했던 미국인들보다 훨씬 더 미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몇 마디 말을 걸어 보면 부드러운 표정이나 웃음을 찾아 볼 수 없어서 오히려 무서운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 우위 비교는 이미 끝난 시대이지만...계획 경제 하의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느껴 봅니다.

우체국 같은 국가 시설의 서비스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 사람을 붙잡고 20분이고 30분이고 씨름하면서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안 중에 없는 것 기본이고....오후 2시 반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 점심 시간에...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은 혀를 내두르고 맙니다.

얼마전 한국에 차 종류를 보내기 위해 소포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이 소포를 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일단 창구 직원들은 영어를 하나도 모르고....가지고 온 소포 내용물이 국외로 반출해도 되는 건지 굳이 다시 찾아 봅니다.(그것도 모르나 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비치하고 있는 서류에 소포의 내용물을 다 적으라고 한 뒤...그 서류 작성 내용과 소포 내용물을 하나씩 대조하는데..이미 다 포장을 해온 소포라고 하더라도 다시 포장을 찢고 내용물을 보여야 합니다. 소포 안에 개인적인 편지가 들어가도 안 됩니다. 우린 왜...소포에 편지 넣는 게 불법이냐고 물었지만...그저 규정이라고만 할 뿐이었습니다. 억지로 봉투를 없애고 종이 한 장을 넣긴 했지만...마치 우체국에서 소포 붙이는 게 죄 짓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소포 비용도 비싸서 한국에서 까작스딴으로 소포를 보낼 때는 항공으로 보낼 때 1Kg에 5달러를 무는데...까작스딴은 배를 보내는 화물도 1Kg에 4달러가 넘어서 항공 소포는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위 사진이 이곳 아스타나 중앙 우체국 소포 담당 부서입니다.)

공항에 가 보면 가관입니다. 공항 시설이야...국가 경제가 안 좋으니까 낙후될 수 있지만...출입국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심사를 받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심사 하는 곳도 적어서 늘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줄을 늘어 서 있고... 수화물도 X-레이 검사를 입국할 때도 받아야 합니다. 입,출국 시에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텡게(까작스딴 화폐 단위)는 소지 금지라는 이유로 빼앗기 일쑤고... 입국 서류에 손에 든 가방의 숫자와 가진 달러의 총액 까지 적도록 해서 이를 일일이 검사하며 푼 돈을 챙기는 곳이 까작스딴입니다. 국무회의에선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고 떠드는 모양인데...벌써 공항에서 관광객들을 내쫒고 있지요.

매년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이제 아스타나도 러시아워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아스타나의 '메인 도로'는 자주 '메인 주차장'이 되고 맙니다. 교통 경찰들이 신호등을 꺼고 양 방향의 차를 다 정지시키기 때문이죠. 왜냐구요? 대통령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대통령만 그렇게 한다면 그래도 좀 낫습니다. 문제는 대통령 부인, 정부 주요 인사, 외국 귀빈...이런 사람들이 왔다 하면...아스타나 메인 도로는 어김없이 그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차단입니다. 도로 상에서 영문도 모르고 갇히게 되면..."또..오늘도 대통령 부인이 움직이나 보다...."하고 희한한 나라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서 '대통령을 위한 나라' 라고 비꼬아 말하곤 합니다.

오늘 어쩌다 보니...봇물 터지듯이 까작스딴에 대한 불평들이 쏟아져 나왔네요...에구...자제해야 하는데...이런 일을 겪으며 살다 보면...우리 가정이 원래 이곳에 올 때 가지고 온 생각이 퇴색되곤 합니다. 아니..오히려 미운 생각마저 들기도 하지요.

그럴 때마다...억지로..억지로 ...내 맘은 그렇게 잘 안되지만 사랑하려고 애써 봅니다.

때로는 "이 놈의 나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밉지만....내가 이곳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온 사람이라는 생각에 다시 "그래...이 사람들이 나쁜 게 아니지...워낙 가난하고...서비스 정신을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런거야...." 하고 받아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이것 역시 우리가 가진 '좋은 성격'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봐서는 도저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시면서까지 구원하시는 그 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오직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값없이 받아 누리게 된 구원의 소망을 생각하면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야지만 이곳에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절감합니다.

사진은 의료 사역을 위해 찾아가는 작은 시골 교회 베라교회(믿음 교회) 십자가 앞에서 우리 가족이 서 있는 모습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 같습니다. 뒤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능력 만이 우리를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니까요.

4월 24일로 중단된 난방으로 인해 현재 온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난방이 중단되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하루 이틀 기다리다 26일인 오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 봤습니다. 담당자 말로는 30일 경이나 되야 온수가 공급된다고 합니다. 난방 후 노후된 관을 청소하기 위해 시간이 걸린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생활을 귀찮게 만들지만....더운 물을 일주일간 사용할 수 없는 불편함 정도는 감사함으로 받아야겠습니다.

좋은 환경에 처했든지 궁핍한 환경에 처했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바울의 얘기는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겠지요?

(사진은  엄마 하나면 모든 것이  OK 인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                  2002.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