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작스딴의 쉬꼴라(학교)

이곳에서 어느 덧 8개월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살다보니 이곳의 학생들이나 학교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어떤 나라를 이해한다고 할 때...관광지나 명승지만 구경하고 돌아간다면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다행히 저희 가족은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었고...따라서 이곳의 문화와 사회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그 만큼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홈페이지에서 이런 것들도 조금씩 다루어 볼까 합니다. 물론 깊은 내용은 안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이렇게 해서 6+3+3..즉 12년의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이곳은 약간 다릅니다. 먼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같은 구분이 없습니다.  이곳 말로 쉬꼴라 라고 부르는 학교가 11년 과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고학년이 있고 저학년이 있지만...모두 11년간 쉬꼴라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또 쉬꼴라에서 공부하는 데에는 학비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연필이나 공책 값은 들지만...학교에 내는 공납금이 전혀 없습니다. 구 사회주의 국가 체제가 아직 계속되고 있는 셈이죠. 어쨋든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쉬꼴라에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도 7살이 되면 쉬꼴라에 가야 합니다. 며칠 전...저희 집 현관문을 누가 두드리기에 나가 보니...두 사람의 젊은 여자들이 우리 집에 아기가 몇 명이나 있고 나이가 몇 살인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그들은 올해 쉬꼴라에 입학할 학생들을 찾고 있는 이곳 관청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가구별로 몇 세의 아동이 있는지 전산화 되어 있지 않는 모양입니다. 일일이 찾아와서 올해 학교에 입학할 아이가 있는 확인하고 다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아직 할 일이 많은 나라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곳에 와 있는 선교사님의 아이들도 학교 갈 나이가 되면 이곳의 쉬꼴라에 다니게 됩니다. 김목사님의 두 아이(창영이와 창규) 모두 현재 쉬꼴라 7학년, 9학년에 재학 중이고 손목사님의 큰 딸(다은)도 쉬꼴라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쉬꼴라에서는 뭘 가르치는지 궁금해서...  김목사님 댁 아이들의 책상에 꼽혀 있는 교과서들을 자주 꺼내 봅니다. 문학, 수학, 과학...대부분의 과정들이 한국과 비슷한 내용들입니다. 하지만...한국만큼 교과목의 종류가 많은 것 같진 않았습니다. 한국은 쉬꼴라 7학년이라고 하면 중학생이니까...제 기억으로는 10개가 넘는 교과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여긴 그렇진 않습니다.

쉬꼴라 7학년이 마칠 때...유급을 시키기도 하는 중요한 시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계속 7학년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하고...쉬꼴라 9학년이 마치면..쉬꼴라 10,11학년으로 계속 진급할 수도 있고...원하는 경우...꼴리쉬 라는 다른 교육 기관으로 옮겨서 그 기간 만큼 계속 공부할 수 있습니다.

꼴리쉬는 한국의 칼리지(college)와 어원은 같을 지 모르지만...전혀 다른 것입니다. 꼴리쉬는 특별한 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고학년들을 위해 기존의 쉬꼴라 교과목에다 특별한 내용을 덧붙여 가르치는 일종의 특수 고등학교 같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외국어 고등학교, 과학 고등학교, 예술 고등학교..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쉬꼴라 9학년이 마치면 이런 꼴리쉬로 옮겨 갈 수가 있는 것이죠...최근 들어 이 꼴리쉬의 교육 과정이 3년으로 늘어나는 경향을 보여서 ...이렇게 되면 한국처럼 12년의 교육 기간이 걸리게 되는 셈입니다.

왼쪽이 지난 9월에 쉬꼴라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촬영한 것입니다.

까작스딴의 쉬꼴라는 대부분 1일 2부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학년이 오전 수업을 하면 저학년은 오후 수업을 하게 되는데...고학년이 된다고 하더라도 하루 7교시 이상의 수업은 좀처럼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보다 쉬꼴라에 다니는 학생들이 여유가 있다고 하겠지요...

또 이곳 쉬꼴라 학생들은 모두 교복을 입고 있습니다. 왼쪽처럼..정장 스타일의 교복이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교복은 모두가 반듯하게 입고 다니기 때문에...평등을 강조했던 구 소련 시절을 떠 올리게 됩니다.

까작스딴은 정장 문화입니다. 특히 아스타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침이면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모두 정장을 하고 있고..쉬꼴라에 가는 학생들도 정장 차림으로 걸어 갑니다. 물론 겨울에는 외투에다 목도리...때문에 교복을 구경할 순 없지만...그 밖의 계절 동안에는 흔히 보게 됩니다.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도 대부분 정장을 하고 나오고...어린 쉬꼴닉(쉬꼴라 학생)들도 까만 정장 스타일의 교복을 입고 오기 때문에 참 보기 좋습니다.

까작스딴의 쉬꼴라의 특징 중 또 한 가지는 운동장이 없다는 겁니다. 처음엔 그게 참 이상하더군요...체육 수업은 어떻게 할까?....여러 군데의 쉬꼴라를 지나 다니며 보아도 운동장은 없고 건물만 네모 반듯하게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른 분께도 물어 봤더니..이곳의 모든 쉬꼴라들이 운동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쉬꼴라 학생들의 체육 수업이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아스타나에는 커다란 스포츠 센터가 많이 세워져 있다고 말씀드렸는 거 기억하시지요?...알라타우 스포츠 센터와 까작스딴 스포츠 센터가 대표적인데....알라타우 스포츠 센터에서 쉬꼴라 학생들의 체육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까작스딴 스포츠 센터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을 겁니다.

수영장에 단체로 들어와서 체육 선생님의 지도 아래 수영을 배우고 있는 것도 보았고...실내 축구장에서 쉬꼴라 아이들이 실내 축구하는 것을 보고...저도 함께 공을 차기도 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뛰고 나니까...축구 시합이 마친 뒤...쉬꼴라 체육 선생님인듯 한 분이 수고했다고 얘기하더군요..

알라타우 스포츠 센터에서 여학생들의 체육 활동도 보았는데...배구 네트를 가운데 두고... 네트 건너편으로 공을 던지고 상대방은 그 공을 잡고 다시 반대편으로 던지는 ...약간 변형된 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까작스딴의 여러 학교(쉬꼴라)를 구분하는 이름은 간단합니다.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합니다. 1번 학교, 2번 학교, 18번 학교...뭐 이런 식입니다. 위 그림이 9번 학교 정문에 붙어 있는 명패를 촬영한 것인데...No.9 가 보이시죠? 그냥 몇 번 학교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호칭은 학교 뿐 아니라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금 아스타나에서 근무하고 있는 병원이 1병원 인 거 아시죠? 그 외 3병원, 7병원 등이 있습니다.

옆의 학교가 바로 9번 학교입니다. 9번 학교에는 손 목사님의 큰 딸 다은이가 다니고 있습니다. 이곳 쉬꼴라는 지역별로 하나씩 세워져 있지만...원하는 경우 다른 쉬꼴라로 전학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이상하게도..모든 쉬꼴라가 같은 커리큘럼으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진도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전학을 가게 되면...그 학교에 다시 적응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군요..다은이의 경우..처음 9번 학교로 전학을 가서...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았던 산수 문제와 교과목 진도 때문에 아주 힘들었다고 합니다. 제 진료실에도 가끔 찾아 왔었는데 잦은 두통과 코피..그리고 머리털이 잘 빠지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이겨 내며 이국에서 공부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늘...자녀들의 교육이 큰 걱정거리 중 하나인 것 같아 보입니다. 선교사님 자신들이야..하나님께 헌신하고 어려운 길로 들어섰지만...아빠, 엄마를 따라 낯선 이국으로 와...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고 그 곳 아이들과 공부를 하게 되는 자녀들의 경우 선택하지 않았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렇게 까작스딴에서 세월을 보내게 되면 결국 한국으로 들어가 공부할 수도 없게 되고...결국 선교지나 미국과 같은 3국에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야만 합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이렇게 선교지에서 학업을 이수한 것을 학력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실...미국의 경우..선교사 자녀의 경우...현지 학력 인정과 특별한 대학 전형..그리고 장학금 혜택까지 주어진다는데 한국은 아직 이런 면에선 뒤떨어져 있다 싶었습니다. 최근 MK(Missionary Kids) 사역이라고 해서...선교사 자녀들의 학업 지도를 위해 많은 대학생들이 선교지로 찾아 오고 있지만..아직 그 수가 모자라고...비자를 제한하는 선교지에서 활동하는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요...MK 사역을 위해 이곳에 왔던 이기형 선생님이 아스타나를 떠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쉬꼴라에서 학업 성취도를 표시하는 방법도 재미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0점" 만점의 점수를 사용하던지...."수,우,미,양,가" 또는 "우수,양호,보통,노력 요" 로 표시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곳은 1,2,3,4,5 의 숫자를 가지고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아이들은 만점을 받고 오면..."엄마..나 오늘...삐앗찌(5점) 받았어...." 라고 자랑합니다. 다섯이라는 숫자가 가장 잘 한 성적을 나타낸다고 하더군요.

방학은 어떻게 할까요? 우리 나라는 3월이면 신학기가 시작하지만... 구 소련 연방이던 이곳은 9월 1일에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5월 말이면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거의 3개월 동안 여름 방학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겨울 방학은 없습니다. 기말 시험을 보고 한 2주 정도의 짧은 방학이 있지만...한국의 봄 방학 정도의 수준이고...기본적으로 긴 여름방학만을 가진 체계입니다. 3월에 신학기를 시작하는 나라는 한국이나 일본 같은 극동 국가 뿐이라고 하더군요.(중국은 잘 모르겠습니다.)

두 아들을 쉬꼴라에 보내고 있는 김 목사님의 말씀으로는 이곳 쉬꼴라 남자 아이들은 패싸움도 잦다고 합니다. 다른 쉬꼴라 아이들과 힘 겨루기를 한다는 거지요...

또 고학년의 쉬꼴라 남녀 학생들끼리의 굴얏지(산책)도 아주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조혼 풍습과 맞물려...쉬꼴라 졸업하면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쉬꼴라에서 짝을 찾지 못하며 결혼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이곳 아이들은  활발한 이성 교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결혼하다 보니..한국보다 훨씬 많은 이혼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이곳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아..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기에  이혼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여성들은 모두 첫 결혼에 실패한 이들이고...아이들만 데리고 사는 젊은 여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원래 이슬람 교도들은  일부 다처제인데다가..전통적 가치관도 부재한 상태에 빚어진 일들이기에 어느 나라보다 가정의 몰락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Republic of Korea)도 심각하지만...여기 와 보니...까작스딴은 정말 거의 절망적인 수준의 가정 붕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부분을 두고...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이 빨리 이곳에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또...목회자 뿐 아니라...상담 사역자들도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지요...하지만...러시아어에 능통한 상담 사역자가 몇이나 될까요...앞으로 많은 관심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쉬꼴라를 졸업하고 나면...'인스찌뚜뜨' 나 '우니베르지쩨뜨' 를 가게 됩니다. 이 나라의 '우니베르지쩨뜨' 와 한국의 대학교(University)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구 소련 시절에는 아무 대학이나 '우니베르지쩨뜨' 란 단어를 달 수 있는 게 아니였다고 합니다. 특별하고 우수한 대학교에만 '우니베르지쩨뜨'를 붙였다고 하더군요.. 그 밖의 대학은 '인스찌뚜뜨' 로 불렀답니다. 하지만...구 소련 붕괴 이후..이런 구분은 사라지고 있습니다...그래도..아직 '우니베르지쩨뜨'를 다닌다고 하면...좋은 대학에 다닌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하지만 까작스딴에선 어느 대학을 나오든지 결과는 실업자입니다. 한국도 대졸 실업 문제로 온 나라가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이곳 까작스딴은 더 심각합니다. 까작스딴 독립 이후..국민들의 교육열은 높아져서...너도 나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만....막상 대학을 나오고 난 뒤 들어갈 직장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까작스딴은 독립적인 산업 기반이 전무한 나라입니다. 시내의 백화점과 슈퍼 마켓에 쌓여 있는 상품들은 모두 유럽이나 아시아 에서 수입된 공산품들입니다. 일부 농산물들을 빼고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인지라..국내 산업 기반이 하나도 없고..구 소련 시절...건설해 놓은 공장은 텅텅 비어 있고 기계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구 소련 붕괴 이후..이곳에 있던 러시아인 기술자들과 자본들이 모두 빠져 나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공부를 해도 비젼이 없습니다. 대학을 나와도 ....카지노에서 일하거나...노동을 하거나..외국인의 집에서 운전기사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극히 일부 상류층은 인맥과 혈연을 통해 국영 기업이나 고위 공무원에 취직되어 호사스런 생활을 누리지만...대부분의 평범한 대학 졸업생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저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러시아 여성 마샤도....이곳의 교육 대학을 졸업한 인재입니다. 하지만...일자리가 없어...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이 나라의 모든 직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아스타나의 의과 대학은 하나 입니다. 매년 천 5백명의 학생이 졸업하고 의사가 됩니다. 하지만...이들 중 직장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10-20% 뿐이라고 이곳의 의과대학생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병원에 배치된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5만원 정도 밖에 안 되는 월급 때문에...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개업은 생각할 수 조차 없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병원에 찾아갈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쉬꼴라 얘기를 하다가 우울해졌습니다. 하지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쉬꼴라 고학년이 되어도 공교육..그러니까 쉬꼴라의 수업 시간이 짧고 자유 시간이 많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고...창의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 이곳의 학생들입니다.  

 위 사진은 선화가 열심히 다니고 있는 영어 학원의 모습입니다. 학원 이름은 "보스톤" 이지요..선화는 벌써 4개월 이상 꾸준하게 이 학원에 계속 다니고 있습니다. 이 학원에는 쉬꼴라 학생들을 위한 반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쉬꼴라 6-7학년들로...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만...더 잘하기 위해 이 학원에 나와  영어를 배우고 있는 넉넉한 가정의 아이들입니다.

제가 지금 사진상에서 머리만 보이면서 서 있는 남자 애 한테 물어 봤지요...

"너...왜 영어 배우니?"

"좋은 회사에 취직하려구요..."

"여긴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니?"

"석유 회사요..."

이 곳 아이들의 꿈은 석유 회사...즉 "까작 오일"에 취직하는 게 꿈입니다. 까작 오일은 까작스딴의 카스피해에서 유전을 개발한 미국이... 까작스딴 석유의 독점 생산권과 운영권을 가지게 되면서 세운 미국 기업입니다. 미국은 까작스딴에서 석유를 발견하고 시추한 댓가로 까작스딴 석유를 향후 30년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 석유를 개발과 운용을 위해 까작 오일을 세워...엄청난 돈을 벌이고 있지요...

까작스딴은 자원 강국입니다. 석유,천연 가스, 석탄, 구리 등의 비철금속은 거의 세계 10위 권에 안 드는 것이 없습니다. 석유의 경우 사우디 아라비아보다 더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중 선진국들이 가장 많이 탐내는 게 석유입니다. 과거 중앙 아시아에서 석유가 나는 나라는 아제르바이잔 뿐이었다가...1990년부터 까작스딴의 카스피해에서 석유가 올라오게 되었는데....당시 미국의 Chevron 등의 정유 회사가 권력자들과 독점 계약을 맺고 마구 퍼내었고...1992년에는 얼마의 돈을 내고 향후 30년간 마음대로 석유를 캘 수 있는 계약까지 맺었다고 합니다. 게다가..까작스딴은 OPEC 회원국이 아니라서 석유를 캐면 무조건 수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내 석유가 부족해서 기름값이 산유국중에선 비싼 편이라고 합니다.(물론 한국의 1/3 가격이지만...) 까작오일은 미국계 회사인지라...월 3-4000달러의 보수를 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여러 가지 혜택을 사원들에게 많이 베푼다고 합니다. 그래서 까작스딴 아이들의 최대의 꿈은 이 석유 회사에 들어가는 게 되어 버렸습니다.

까작스딴의 쉬꼴라를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이곳은 정말 복음이 필요한 곳이란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오는 주일부터 제가 다니는 아스타나 장로교회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생겼습니다. 주일 예배 후 간단한 점심을 먹고 젊은이들만이 모이는 일종의 주일학교를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나라에서 젊은이로 살고 있는 그들에게 필요한 건...예수 그리스도이기에...교회는 이 일을 하기로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젊은이들 모임을 이끌고 나가기로 내정된 사람은 목사님이 아니라...바로 저 입니다. 목사님께서...젊은이들 모임은 목사님보다...나이가 젊은 제가 더 적격이라고 하시며 맡기셨습니다.

지난 주부터..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 오후..이곳의 학생들과 청년들을 앞에 두고 어떤 모임을 이끌어야 할까? 비단...언어 소통의 문제 뿐 아니라...찬양과 기도..복음을 위한 고민...공동체 놀이...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생각되면서 한동안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까작스딴의 학생들과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딛어 볼까 합니다.

형민이가...변찬석 선교사님(UBF) 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한 걸음씩 내딛고 있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주일 학교도 이렇게 한 걸음씩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이 한 걸음이 이 곳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의 생명으로 향하는 길잡이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세요....  200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