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월이 지난 형민이........

이제 2001년도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 있네요. 이번 해의 가장 큰 변화라면 우리 가정이 까작스딴에 와서 정착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큰 변화는..... 바로 형민이가 우리 가정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2000년 10월 5일에 태어나 아직 혼자 앉을 수도 없는 형민이를 데리고 와서 낯설은 알마티와 아스타나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7개월을 넘기고 있습니다. 말도 알아들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새로운 것 투성이인 이곳에서...... 그래도 형민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앉고, 서고, 걷고 하는 형민이를 보면서 아이는 사람이 키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키우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돌이 지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형민이의 모습을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리고 여러분께 보여드리지 못하는게 때론 너무 아쉽습니다. 모두가 돌이 지나면 아이들이 가장 이쁘다고 하는데 요즘 형민이가 그렇습니다. 사람이 걷기 시작한다는 것은 일종의 작은 독립인 것 같습니다. 돌이 되면서 걷기 시작한 형민이는 이제는 다른 사람을 쫓아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약간 뒤뚱거리면서 팔자모양으로 뛰는 모습은 아슬아슬하게 보이지만 잘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요즘 형민이가 열심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 '계단 내려오기'입니다. 저희집 거실에는 베란다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거기 약간 높은 턱이 있습니다. 형민이가 의자 삼아서 앉아 있기 좋아하는 곳인데.... 요즘은 거기 올라서서 한걸음에 내려올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그러나 제 무릎 높이 쯤 되니 올라가긴 올라가지만 한걸음에 내려오기가 힘들지요. 옆에 벽을 짚고 살짝 한 발을 내려보지만 형민이에겐 너무 높습니다. 아주 가끔은 성공을 하지만 대부부은 앉아서 양 발을 먼저 내리고 내려오지요. 아니면 엄마 손을 잡고 내려오기를 합니다. 형민이 참 많이 자랐지요....

1. 형민이는 말이 많아요....

얼마전부터 형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은 "책"입니다. 그전에는 책의 제 기능이 상실되고 꺼내고 집어 넣는 장난감에 불과했는데 요즘은 그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 가서 제일 먼저 집어 드는게 책입니다. 저희 집에는 열권짜리 손 바닥 정도 되는 사이즈의 그림책이 있는데 그중에 형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요?"하는 책입니다. 상자를 열어서 열권중에 그 책을 딱 집어냅니다. 모서리의 색깔만 봐도 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어!" 하고 건내줍니다. "하나님!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요? 과학자, 선생님, 피아니스트, 우주비행사.... 그래요! 나는 **이 될래요."하고 끝이 나는데 마지막에는 팔을 위에서 아래로 휘저으면서 결심했다는 아이 모습이 등장합니다.

14개월..변찬석 선교사님 아들 다윗과 함께..

몇 번 형민이에게 이 동작을 했더니 책이 끝날 때 반드시 손을 높이 들었다가 휙! 내립니다. 그리곤 다시 읽어달라고 하지요.

이렇게 몇 번씩 책을 읽어주는 과정 속에서 형민이는 많은 것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돼지'하면 검지 손가락으로 한쪽 코를 꾹 누르지요. 그리고 토끼는 한손을 귀 위로 올리고 포도는 책에서 한 알을 떼서 입에 쏙 가져갑니다.

요즘들어 나타난 중요한 변화는 소리도 따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강아지가 나오면 "멍! 멍!"하고 "소!"하면 "음매 음매"한답니다.

오늘 아침에도 주차장에서 강아지를 봤는데 "엄마- 멍! 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 블록 통에서 사자 블록을 꺼내서 통이 붙어있는 그림속의 사자에 갖다 대면서 "쟈!" 합니다. 우린 이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여러번 시켜보는데 항상 대답을 잘 하지요.

그리고 얼마나 말이 많은 지.... 아무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형민이만의 언어가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는 같은 소리를 내는 걸로 봐서는 자기만의 언어가 있는게 확실 한 것 같습니다. 막 달려와서는 얼굴을 내밀며 뭐라고 이야기하고 가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마치 이야기를 해주는 듯이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전화기에다가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몇 마디 하고 깔깔 웃고 또 이야기하고..... 그런데 한국에서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꿔주면 절대로 말을 안 한다는게 좀 아쉽답니다. 원래 얼마나 말을 잘 하는데.....

2. 형민이도 꿈을 꾼답니다.

어느 날 밤, 저희 부부가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하고 있는데 먼저 자고 있던 형민이가 한 손을 천장을 향해 올리고 "어1 어!"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 행동은 형민이가 보통 놀면서 이야기 할 때 하는 제스츄어인데 자면서 그렇게 하더니 다시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전엔 자면서 "엄마-"라고 잠꼬대를 했습니다. 형민이도 꿈을 꾸는 게 확실하다는 증거겠지요. 그런데 형민이는 어떤 꿈을 꿀까요?

교회에서 엄마와 함께 뛰어 다니는 형민이

3. 심부름도 잘 해요.

이제 형민이는 몇마디 말을 알아듣는 것 뿐 아니라 일상 속의 많은 이야기를 알아듣는답니다.

"기도하고 밥먹자!"

"형민아 치즈 먹으러 가자.

"형민아 목욕하러 가야지..."

"이거 아빠한테 갖다드려."

"아빠, 다녀요세요. 빠이빠이""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각각의 물건들의 용도도 잘 이해하고 있는데 그래서 심부름도 잘 한답니다. 후라이팬을 렌지에 올리고 불을 켜고는 "형민아 기름 줘!"하면 싱크대를 열어서 식용유를 꺼냅니다. 그리고 빗자루를 들고 있다가 "형민아 쓰레받기 가져와!"하면 틀리지 않고 가져오지요.

저희도 형민이의 말을 많이 알아듣습니다. 뭔가를 향해 "어! 어!"할 때는 그게 물을 달라는 건지, 빵을 달라는 건지, 그리고 물을 줘도 제 물병에 달라는 건지 컵에 혹은 밥그릇에 달라는 건지 척 보면 알지요. 이건 정말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들꺼에요.

4. 엄마- 엄마-

한국보다 춥고 열악한 나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곳이 참 좋습니다. 저희 부부는 앞으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여유로움을 누리고 있지요. 그러나 형민이에게 이 환경은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이었으면 아주 바빴을 아빠와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너무 좋지만...... 아무래도 낯설고 또 추운 곳이라서 집에서만 지낼 일이 많다보니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적고 또래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다는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까작에 와서 낯선 곳이라서 늘 형민이를 우리 품에서 떼 놓지 못하고 키우다보니 유난히 낯을 많이 가렸는데..... 아직도 그렇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특히 남자들에게 낯을 많이 가리는데 가끔 다른 선교사님들 댁에 가면 얼마나 울어대는지..... 아예 얼굴을 파묻고 우는데..... 저희 부부는 한동안 곤혹을 치릅니다.

다행히 아이들에 대해서는 낯을 안 가리고 잘 노는데.... 특히 잘 놀아주는 예쁜 누나는 엄마보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누굴 많이 닮은 것 같지요?....) 형민이가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은 우선 그 사람 손을 잡아 자기 손에 놓고 꼭 잡아서 여기 저기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형민이의 이런 행동을 이해심있게 잘 응해주는 어린이들이 많지 않은데 그중에 아스타나 장로 교회 통역이신 김선생님 손녀딸이 비카가 형민이의 상대가 잘 되어줍니다. 요즘... 제가 주일 반주를 하는데 비카가 오는 날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비카와 노느라고 엄마를 안 찾으니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날에는 엄마 곁에 올려고 난리가 납니다. 아빠도 잘 놀아주지만...... 기본적으로 엄마가 제 옆에 있어야 되거든요.

청진기로 노는 형민이

5. 아빠! 예뻐....

형민이가 4개월 되던 때부터 3개월간은 아빠가 함께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대전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그 시기는 형민이에게는 사람을 익히는 시기였는데....... 긴 3개월동안 형민이는 아빠를 잊어 버렸지요.

이곳에 와서도 한동안 아빠보다는 엄마와만 있을려고 하는 형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형민이도 아빠를 잘 알고.... 또 아빠를 너무 좋아합니다. 아빠가 병원에서 돌아오면 신도 벗기전에 안아달라고 조르고.. 운전하고 있던 아빠가 잠시 차 밖으로 나가면 울고 난리가 납니다.

아빠와 노는 방법도 엄마와 다르답니다. 목마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말도 타고..... 그리고 바이킹이나 물구나무와 같은 스릴 있는 놀이를 할 수 있으니까요. 한번씩 아빠를 데리고 침대에가서는 아빠 배 위에  올라가 쿵쿵하고 뛰어 놉니다. 그러다가 아빠 가슴에 푹 안기고.... 아빠를 못살 게 굴지요.... 그러나 형민이도 아빠도 모두 즐거운 시간입니다. "아빠, 이뻐... 해봐"하면 아빠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기도 한답니다.

아빠에게도 이 시간은 너무나 행복하다고 합니다. 레지던트 시절이었다면 꿈도 꿀 수 없고 그리고 공보의나 군의관이었다고 하더라도 여기에서만큼 이렇게 형민이와 시간을 보낼 수 없을테니까요. 형민이가 "빠-"하고 아빠를 부르면 아빠는 가슴이 찡--하다고 합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아빠는 다시 바빠지겠지만 형민이에게는 늘 친구같은 아빠로 가슴에 남아있겠지요.....

아기 키우는 건 어렵습니다..11개월 때..알마티의 데이빗 김 목사님 댁 아이들과....

제 주변에도 아이를 가진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는 미국에 있는 윤희가 아들을 낳았고 내년 초에는 기욱이와 지선이 언니가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 딸을 낳은 지연이는 "아기 낳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키우는게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나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저도 그 말에 동감합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이전의 자기 생활은 완전히 변하게 되지요. 아기가 귀엽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니..... 거기다가 아기의 반응을 전혀 예측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1년정도만 지나고 나면 한결 쉬워질꺼라고.....

형민이와 함께한 14개월 반의 시간들은 저희들에게 가장 신기하고도 놀라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많은 인내를 요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하나님의 마음, 부모님들의 마음을 조금, 아주 조금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초보 엄마, 아빠..... 이제는 우리가 보여주는 대로 형민이가 자랄걸 생각하면 늘 조심스러워집니다. 오늘도 "기도하고 자자"하니까 얼른 일어나서 "기도손"하는 형민이를 보면서 우리가 먼저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2001.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