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아스타나...자동차가 얼었어요...

우리 가족이 따뜻한 한국을 떠나 먼 나라 까작스딴에서 맞는 첫 12월입니다. 한국이나 까작스딴이나 북반구에 있는 나라들이라 12월부터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북위 51도상에 위치한 이곳 아스타나에서 전에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동차에 관한 글을 적으면... 이내 많은 분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조언을 해 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유용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국에 계신 분들께 괜한 걱정을 끼쳐드리는 게 아닌가 송구스런 맘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뜻밖의 일들을 겪으면서 얻는 경험들을 글로 옮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제 성미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적어 봅니다.

겨울이면 추운 게 당연한 일이지만...이곳에 올 때부터 아스타나 추위에 대한 많은 경고(?)를 받고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11월부터 닥친 추위에도 내심 "이 정도야..."하면서 이곳 생활에 자신감을 가지며 지냈습니다. 그러나...시간이 점점 흘러 12월의 중순이 다가 오자....드디어 염려했던 일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주 전부터 낮 기온이 영하 16-18도였고..밤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져서 영하 24-28도 사이를 기록하기 시작했는데...그래도 그 정도는 살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로 자동차 안에서 생활하는데다가...옷을 여러 겹 입고 나가면...어느 정도 보온이 되기 때문이죠. 자동차도 유리에 성에가 두껍게 깔리는 것과 시동이 조금 느리게 걸린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자동차 앞 유리를 종이 박스로 덮어 둔 뒤로는 성에도 잘 생기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어제 아침부터..한 단계 더 심해진 추위가 아스타나를 엄습했습니다.

우린 부엌에 나 있는 창문 밖으로 온도계 하나를 매달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기 전에는 반드시 이 온도계 눈금을 확인하고 나갑니다. 일기 예보 보다도..이 온도계의 눈금에 더 익숙해 져서 눈금만 보면 대강 밖의 추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오늘 아침...이 온도계는 영하 30도를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보통 아침 온도가 영하 20도 정도이고 이것이 하루 종일 지속되는게 지금까지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는데...오늘 아침은 영하 10도 정도가 더 떨어진 셈이었습니다 .

어제는 주일이라...온 가족이 함께 교회로 가야 하는데..겁이 덜컥 났습니다. '큰일이다....한 단계 더 추워졌다......' 교회로 갈 준비를 서두르는 선화에게 자동차 시동을 미리 걸어 두겠다고 말하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게다가 전날 밤에 자동차를 주차장에 넣지 않은게 맘에 걸렸습니다. 워낙 저녁에 추웠던지라...자동차를 주차장에 넣기 귀찮아 아파트 앞 도로에 자동차를 그냥세워둔 것이죠...그게 맘에 좀 걸렸습니다. 아무리 지붕이 없는 주차장이라 하더라도...차가 여러 대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에 그냥 길가에 있는 것보다는 보온이 더 될 텐데....'하필 오늘 이렇게 추워질 게 뭐람......' 차에 별 문제가 없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물론 부동액도 새로 가득 채우고..엔진 오일도 좋은 것으로 교체했지만...온도가 너무 떨어지면 축전지의 충전 상태도 떨어지고...휘발유의 기화도 어려워지고...차 내의 여러가지 작은 관이나 밸브의 기능이 나빠져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일이 다반사인 이 곳에서는 한겨울 자동차 관리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바깥 공기는 말 그대로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습니다. 코로 들이쉬는 공기가 너무 차가워...기침이 날 정도였으니까요...노출된 피부는 한 10초만 있으면 따끔거리고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라...어서 차 안으로 들어가 약간의 성에들을 제거하고 난 뒤...조심스런 맘으로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차가 끔쩍도 안 하는 겁니다. 보통 시동이 안 걸리더라도...뭔가 "타타다..."하는 소리는 들리다가 마는 게 일반적인데...오늘은 단지.... 그냥 피스톤이 한 번 정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는 느낌이 드는 게 다였습니다.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고 그저 뭔가가 안에서 꿈지락 거린다는 느낌만 들고..........연달아...5-6번을 시도해 보았지만...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축전지 걱정도 되고 해서...일단 차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교회로 가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의 차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셨고...우린 오늘 택시 신세를 지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도로에는 몇 대의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그 차들은 땅 밑에 만들어 둔 주차장이나 보온이 되는 개인 차고에 있었던 차들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도 그런 개인 차고를 하나 사고 싶은데...저희 집 근처에서 잘 찾을 수가 없습니다. 빨리 개인 차고를 찾아서...앞으로 4월까지 계속 되는 이곳 추위에 대한 대비책을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안 그래도 한 달 전에...주 까작스딴 한국 대사님이 아스타나 추위를 걱정하시면서...전에 근무하셨던 캐나다 얘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는 주차장 마다...차 앞에 아주 열을 많이 발산하는 백열 전구 같은 걸 하나씩 걸어 둔다고 합니다. 밤새도록 불을 밝혀서 영하 40도에서도 차에 시동이 걸리도록 해 주는 장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까작스딴에는 그런 주차장은 없습니다.

거리에 다니는 차들을 부러운 맘으로 바라 보면서 교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인 12월 10일이 아스타나로 수도를 옮긴 기념일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다음 주인 12월 16일은 까작스딴이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날이라..공휴일로 지키고 있고 해서...지금 아스타나의 거리는 국기와 각종 현수막 그리고..반짝이는 장식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느끼면서 "도대체...몇 도로 온도계에는 나올까?...." 싶어서 교회 맞은 편에 있는 디지털 온도계로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처음 교회로 올 때는 이 온도계가 영하 30도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제가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햇볕이 비치면서 영하 28도를 기록하고 있더군요....그야말로 경이적인 기록이죠? 확실히 지난 주보다 수은주가 아래로 떨어진 게 분명합니다. 밤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갈 때는 자동차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데..이렇게 영하 30도 이하로 쑥 내려가 버리니까(아마 밤 기온은 영하 35도 이하였을 테니까...) 자동차에 문제가 생긴다는 걸 정말 몸소 체험했습니다. 물리적으로 낮게 떨어지는 온도 앞에서는 자동차는 어떻게 할수 없나 봅니다...

영하 30도의 아스타나 아침 거리의 모습인데요...독립 10주년을 알리는 현수막과 까작스딴 국기 그리고 축하 깃발들이 보이지요?

지금 아스타나의 메인 도로인 레스푸브리카에 자동차가 하나도 안 보이고...교통 경찰 만이 도로 중앙에 서 있는 거 보이시죠?

이 시간...까작스딴 대통령 나자르바이예프가 이 도로를 지나간다고...도로 위의 차들을 모두 우회시키고 도로를 비워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대통령이 지나가는 도로 위에 다른 차가 절대로 지나 다녀서는 안됩니다..독립 후 10년 동안 나자르바예프가 계속 대통령을 하고 있는데..이런 광경을 보면 이 나라가 민주 공화국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그래도..아랑곳 하지 않고..신호등을 보고 도로를 건너려고 도로가에 서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지요...

다시 자동차 얘기를 해야지요....자동차는 하루 종일 시동을 걸어 보려고 해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 뿐 아니라..보온이 되는 개인 차고가 없는 분들은 대부분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으니까...정말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었습니다. 어제 올라온 코이카 봉사단원 김용란 선생님과의 식사 약속도 지킬 수 없었고..무엇보다도..형민이를 데리고 다닐 수가 없어 아무 곳에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이 보다 더한 추위가 밀어 닥친다고 합니다...낮 기온이 영하 32-34도...밤 기온이 영하 40도....이젠 이곳이 그렇게 변하겠구나....란 생각이 드니까...앞으로 자동차에 대한 대비가 절실했습니다. 물론 아스타나의 낮 기온이 내년 4월까지 항상 영하 30도인 건 아닙니다...영하 20도 아래로 날이 풀릴(?) 때가 있지요....하지만...매서운 한파가 한 달에도 몇 번 밀어 닥칠 때마다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일입니까?

한번 동결된 자동차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내일 이곳 선교사님 한 분이...오셔서 제 차를 로프로 연결해서...따뜻한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그 분도 지금 자동차가 얼어서...그 주차장에 차를 넣어 두었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날씨가 풀려서 영하 10도 대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이미..방전된 축전지에는 전압이 거의 없을 테고...다시 축전지를 교환하던지 다른 차의 축전지를 이용해서 충전해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자동차 앞 덮개를 열어 보니...축전지가 하얀 눈과 얼음으로 싸여 있더군요..다른 분의 말로는 초 저온으로 인해 축전지의 전력이 거의 없을 때..무리하게 시동을 걸려다 보면...자동차의 또 다른 부속품에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닥칠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차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지붕이 없고 별로 보온이 안 되더라도..주차장에 차를 반드시 주차시켜야 할 것이고 이곳 현지인들처럼 차동차 앞 덮개를 열어서 담요 같은 것으로 라디에이터나 엔진 덮개 쪽을 덮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또..주차장 관리인에게 약간의 웃돈을 주어서...야간에 몇 시간 간격으로 자동차 시동을 걸어서 차가 얼지 않도록 조치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좀 더 근본적으로...빨리 보온이 잘 되는 개인 차고를 이 동네에서 찾아야 하겠지요...

한국에 있었으면...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했을 겁니다...그냥 부동액만 잘 갈아 줘도...겨울 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테니까요...하지만 이곳 아스타나에서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 말고도 앞으로 두 번의 겨울을 더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 저로선...빨리 이곳 겨울에 적응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갑자기 밀어 닥친 추위로 형민이가 감기에 심하게 걸렸었는데..이제 거의 다 나아갑니다.

지난 주에는 한 번도 형민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항생제등을 먹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집안에만 갇힌 선화와 형민이는 조금 답답해 합니다. 물론 오늘 같은 경우도 차가 움직이지 않으니까...우리 세 식구는 하루 종일 집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간혹 걸려오는 다른 선교사님들의 자동차 소식을 들으면서요....

사진은 우리 교회가 있는 미술관에 테러리즘을 반대한다는 이곳 아이들의 그림 전시회가 열렸을 때 그 앞에 서 있는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14개월 된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추워지면 우리보다 형민이 걱정이 더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셔서..형민이가 건강을 빨리 회복하게 된 것 같아 참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살 만한 시절...낮 기온이 영하 16-18도 정도 되었을 때..우리 가족이 중무장을 하고 아파트 앞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이 때만해도 전 ...이 곳 사람들이 쓰는 두꺼운 털모자(샤프까)를 아직 쓰지 않고 있을 때입니다. 이제 이렇게 추워졌으니 샤프까를 쓰고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 속의 이 모자도 쓰는 것과 벗고 다니는 것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모자를 안 쓰면 머리가 얼 것 같으니까요..

 2001년 까작스딴 아스타나에서 난생 처음 너무 추워서 차에 시동이 안 걸리는 경우를 맞고 있습니다.  나중에 돌아 보면 추억거리가 되겠지만...걱정도 되고...무엇보다도 초저온에서 자동차 시동이 안 걸리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드는 답답한 맘이 조금 있습니다.

빨리 이 추위가 지나가고 조금 따뜻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누군가의 차로 자동차를 굴려서 축전지에 충전을 시켜 보고...자동차 문제들을 점검하고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추위 준비를 제대로 할 텐데요....

아스타나의 추위를 처음 겪는 첫 해 겨울....누구나 겪는 시행 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내년에 이곳에  다른  코이카 단원이 올라온다면..다시는 이런 시행 착오를 겪지 않도록 제가 잘 보살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그렇게 힘들거나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나 겪는 경험이 아니니까요.....

한국도 2-3일 내로 추워질 겁니다. 까작스딴에 추위를 몰고 왔던 이 일기가 편서풍을 타고 고스란히 만주 벌판으로 날아갈 테니까요...추운 겨울에 몸조심하시고...저희 가정이 좋은 개인 차고(가라지)를 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200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