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작 초원을 가르는 47시간의 기차여행

2001년 10. 31부터 11. 2일까지 3일동안 기차를 타고 알마티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알마티 한국 대사관 내에 있는 까작스딴 주재 국제협력단 현지 사무소에 제가 아스타나 현지 근무를 위해 본국에 요청한 물품들이 안전하게 도착했고 이를 아스타나로 운송하기 위해 제가 잠깐 내려 갔다 오게 된 것입니다.

이번 일에는 운반해야 할 물품들이 약 60Kg에 달하는 것들이라 항공 운송 추가 경비 발생이 우려되어 철도편을 이용해서 운반하기로 했는데 그 중에는 자동 약포장기와 약포장지, 각종 약품과 진료실에 비치될 컴퓨터와 의료기 그리고 진료실 집기 구입을 위한 경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9월부터 아스타나 1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저로선...이 장비와 물품 지원들이 아주 절실했고 서둘러 본국에 요청했었는데...당초 11월 중순 경에 도착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빨리 현지에 도착되었고 이에 기쁜 마음으로 철도 여행을 자청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여러 물품들과 경비들이 도착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토요 기도 모임에서 전...이런 물품 지원들이 한국으로부터 속히 이루어져서 이곳에 있는 분들에게 좀 더 현실적인 지원을 원활하게 하게 해 달라는 기도 제목을 내어 놓았었는데.. 기도 응답이 빨리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공무 때문에 알마티를 방문하는 것이긴 하지만...까작스딴에 와서 처음으로 하게 되는 기차 여행에 내심...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가지고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북쪽 러시아의 황량한 동토를 시베리아라고 부르는 것처럼...까작스딴 중심부를 관통하는 허허벌판을 '카자흐 초원'이라고 부릅니다.

아마...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세계 지도를 자세히 살펴 보셔도 그 지역을 이렇게 부르고 있음을 금새 아실 수 있습니다. 유목민인 까작인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벌판...많은 양떼와 낙타들이 왕래하던 그 벌판에서는....지금도 사람의 모습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반도의 12배가 되는 땅의 대부분이 이런 황량한 벌판입니다...봄이면 올라오는 풀들이나... 말이나 양의 먹이가 되기에 의미가 있을 뿐..아무도 경작하지 않는 광야인 이곳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냥 이렇게 그대로 있는 셈입니다.

까작스딴의 철도는 예전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 구축되어 있던 것으로....남쪽 끝 알마티에서 출발해서 열차는 북쪽으로 달려 수도인 아스타나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철길은 북쪽으로 계속 이어져 북부 까작스딴을 관통해 러시아로 올라가게 되지요..그리고 모스크바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모스크바 방문을 철도를 통해 하고 있는데..이곳 아스타나에 계시는 분으로부터 최근 모스크바에 가는데 52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스타나와 알마티는 철도로는 1200Km입니다. 보통 급행 열차를 타면 21시간이 걸린다고 얘기합니다. 21시간.....한국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시간인데...이곳 사람들은 쉽게 철도를 통해 먼 지역을 방문하곤 합니다. 대국 소비에트 연방에 살았던 사람들답게....하루 이틀 정도의 열차 생활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서울-부산이 400km 남짓한 한국의 경우 새마을 호 열차면 4시간 반이면 도착합니다. 이 경우 산술적으로 따져도 1200km라고 해도 15시간이 이상이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이렇게 21시간이나 걸리는 데는 ...이 나라의 열차 속도가 빠르지 않은 게 한 몫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대사님이 이곳 아스타나를 방문하셨는데...내년 1-2월 중에 스페인 제 고속 열차가 이곳에 도입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아스타나-알마티 구간의 열차 주행 시간이 12시간으로 줄어들 거라고 하시더군요...만일 그렇게 된다면...아스타나에서 알마티로 철도 여행을 하는게 더욱 쉬워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예전 소비에트 시절을 떠올릴 구식 열차들은 점점 잊혀져 가겠지요....

아스타나 역에서 낮 12시 10분 열차를 탔습니다. 아스타나 역은 알마티 역보다 커지 않습니다. 기차 역은 '가라간다'나 '알마티' 역이 훨씬 더 큰 것 같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아스타나 역의 모습입니다.

 붉은 색의 아스타나 라는 글씨가 선명한 이곳을 처음 방문한 것은 아스타나에 온지 이틀만이었습니다. 아침 6시에 이곳에 왔었습니다....알마티에서 올라오는 IVF출신의 이기형 선생님을 마중 나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스타나 역에서 처음 느꼈던 그 때 그 기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잠이 다 깨지도 않은 이른 아침....여기 저기...가방을 맨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싸늘한 아침 공기를 뚫고 열차를 향해 종종 걸음을 치고 있고.....대륙을 횡단하는 철길 위해 놓인 오래된 열차는 마치 예전에 본 흑백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면서.... "닥처 지바고"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 것 같은 야릇한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지금도 이 철길은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유일한 교통 수단이고...만일 한국에서 이곳 까작스딴으로 컨테이너 물량을 보낸다고 하면...결국은 배를 따고 중국이나 러시아에 짐을 푼 뒤...이렇게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대륙의 내륙으로 들어오는 철길을 이용할 수 밖에 없으니....여러 모로 철도는 까작스딴의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진은 지난 8월...촬영해 놓은 아스타나 역 구내의 모습입니다.

이 날은 기차에 오르기 몇 분전까지 급하게 움직이느라 제대로 촬영을 못했었습니다....철도를 따라 전주가 있고 전선이 이어져 있는 건...우리 나라 모습과 마찬가지였고...많은 사람들이 커다간 보따리를 짊어지고 기차를 타는 모습은 어느 나라든지 똑같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통제 사회의 흔적을 여기서도 찾아 볼 수 있었는데....모든 사람의 신분증을 검사하고 나서야 열차 안으로 들여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기차가 달리는 중간 중간에도 철도 공무원 뿐 아니라 경찰까지 올라와서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신분증을 요구했고....특히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더 까다롭게 검색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 나라는 기차표 하나만 사면 어딜 왜 가는지 아무 상관이 없는데...이곳은 여행 허가증이나 비자 날짜, 외국인 등록증 등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알마티를 떠나는 날...우린 슬픈 소식을 접해야 했습니다. 그건...3개월 전, 이곳에 계시는 김명희 목사님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방문한 IVF출신의 이기형(고대 노어노문, 26)선생님이 이곳 관리들에 의해 한국으로 다시 쫒겨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기형 선생님은 1년을 계획하고 이곳으로 오신 분인데...처음 선생님을 초청한 교회에서 비자를 요청했을 때...이 나라에서는 3개월 짜리 비자만 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3개월이 다 되어가기에 비자 연장 신청을 했는데...이곳의 이민국 관리들이....더 이상 이기형 선생님이 까작스딴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비자를 연장해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인즉, 이기형 선생님은 교회의 요청에 의해 목사님의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이곳에 왔는데...그런 교육활동을 위한 선생님들은 이곳 현지에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한국에서 선생님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만일 그렇게 일을 하려면 이곳에서 일해도 된다는 노동허가증을 얻어야 한다는 이론을 폈습니다. 까작스딴은 요즘 외국인에 대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가뜩이나 일거리가 없는 까작스딴의 일거리를 뺏어 간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시간 일을 해도 외국인들은 자기들에 비해 몇 배나 많은 보수를 받는 걸 비교하면서...외국인 때문에 가난하게 산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기업들이 이 나라에 들어와 장사를 하는 바람에 까작스딴의 자원들만 팔려 나가고..자신들은 속 빈 강정이 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외국 기업이 들어오고 외자 유치를 하는 것은...까작스딴과 같은 나라가 더 잘 살기 위해 필연적인 과정인데도 그들은 이렇게 해서 들어온 외국인들이 자신들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 걸 보면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까작스딴의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많은 외국 기업들은 현지 근로자를 채용합니다. 이 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지요...한국에서파견 나온 근로자들에게는 한국 수준의 임금을 주고 현지 근로자들에게는 현지 수준의 급여를 줍니다.  하지만 현지 근로자들의 눈에 비친 모습은 자신들에 비해 훨씬 많이 돈을 받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미울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들이 돈 있는 척하다가..봉변을 당하기도 하고..요즘도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경찰이나 공무원들도 자기 나라에 도움을 주기 위해 온 봉사단원들에게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힘들 게 만들곤 하는 현실입니다...

어쨋든 이기형 선생님의 비자는 이민국 최고 관리를 만나 얘기를 해 보았지만 해결되지 않았고...도저히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알마티로 떠나는 그 날...우린 이민국 사무소 앞에서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를 이곳으로 초청한 목사님도 답답한 일이었고 당사자인 이선생님 자신도 갑작스런 날벼락에 무척이나 낙심한 하루였습니다.

다행히...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맘으로 회복되어....마지막 까작스딴 생활을 장식할 알마티 기차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고..전 혼자가 아니라 이기형 선생님과 함께 알마티로 가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가기에 적적한 길인데..말동무가 생겨 잘 된 일이었습니다.  

 사진의 형제가 이기형 선생님입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이곳 열차의 내부 구조를 알 수 있는데...왼쪽은 열차를 타면 나타나는 복도의 모습입니다. 외국 영화에서 흔히 보듯이 기차의 내부는 긴 복도가 있고 그 한쪽 편에 좌석을 갖춘 여러개의 객실이 쭉 들어 서 있는 구조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문을 열고 들어선 객실의 모습인데...4인 1실의 객실로 아래 위로 침대를 갖추고 있는 일종의 침대차입니다. 아래쪽에는 음식을 먹기 위한 조그마한 식탁이 붙어 있고....잠을 자지 않을 때는 4사람이 모두 아래층 침대로 내려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여행을 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여러 모양의 객실이 있는데..가격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이렇게 침대가 아니라 좌석으로만 된 것에서부터...4개의 침대가 아니라 한 객실에 2개의 침대만 있는 고급 객실도 있다고 합니다. 만일 선화와 형민이와 기차 여행을 한다면 2개짜리 침대가 있는 객실을 구하면...완전 가족 객실로 기차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기차 여행이라고 하면...창 밖으로 비치는 경치를 누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예상대로 기차가 달리는 21시간동안...차창 밖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광야가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넓은 땅에 사람이 지나다니기나 할까....' 기차 여행 내내 이런 생각을 하며 광활한 땅들을 멍하게 바라 보았습니다.  

비옥한 옥토가 아니라...단지 풀만 자라는 평원이라...겨울에 들어선 벌판은 이미 메말라 버린 앙상한 풀줄기만 남아...더욱 쓸쓸한 광야였습니다.

철도를 따라 달리는 전선과 함께 이런 모습만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차창을 통해 촬영한 사진인데...분위기는 대략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몇 장 소개합니다. 

넓은 카자흐 초원지대라 북쪽과 남쪽의 모습이 사뭇 달랐습니다.

옆의 사진은 아스타나 주변의 북쪽 벌판의 모습입니다. 눈은 녹지 않았고...아무도 없는 땅에 황량한 흙언덕들만 보입니다.

기차는 2-3시간 마다 큰 역과 작은 역에 정차하게 되는데..그 때마다 기차에서 내려 몸도 움직이고 공기도 쐬면서 이국땅의 흙냄새를 맡았습니다.

워낙 같은 모습만 이어지기에 어떨 때는 차창밖을 내다 보는 걸 포기하고 3-4시간 동안 잠을 자다가...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에 깨어 다시 차창밖을 보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똑같은 모습이지만...

덜컹거리는 기차지만..한국 기차보다 쿠션이 더 좋은 것 같았습니다. 마치 배를 타는 것 같기도 하고...마치 좋은 침대에 누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정도는 한국의 기차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철로 위에 눈이 많이 쌓여 그런지.... 아니면....누군가가 철로위에 돌을 얹어 놓았는지... 기차는 시종 일관 덜컹 거리며 남쪽으로 내달렸습니다.

가끔....마른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말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왼쪽 사진은 말들이 무리를 지어 눈 내린 벌판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에는 몇 마리 안 나오는데..처음 봤을 때는 수백마리가 벌판을 덮고 있었습니다. 유목민의 나라...까작스딴이 실감되는 순간이었지요....

어딜 가나...전선을 운반하는 전주의 모습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

저 전선을 보면서....까작스딴에는 아직도 큰 도시를 빼고는 수도와 전기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 올렸습니다.

눈덮인 황야에...전선이 유일한 문명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걸 보면서.....한국은 정말 복 받은 나라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습니다.

그 좁은 땅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농산물이 나오고 풍족한 먹거리가 제공되는지......그리고 그 좁은 나라가 어떻게 이곳 사람들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 만큼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는지...하나님은 대한민국에 큰 축복을 주시고 아울러 큰 소명을 주셨음을 황량한 이 벌판을 보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마티로 갈 때나 아스타나로 돌아올 때나...우리 둘은 항상 윗 침대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좋다는 아랫쪽 침대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윗침대로 올라가서 몸을 비스듬하게 눕힌 채....눈 앞에서 열기를 내는 전등을 벗 삼아...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떨 때는 너무 누워 있어 허리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어...우리가 있는 10호차에서 많이 떨어진 5호차 옆에 붙은 식당차로 가서....식탁에 앉아 오렌지를 사서 까 먹으며 차창 밖을 내다 보기도 했습니다. 위 사진은 식당칸에서 창 밖을 내다 보는 이선생님의 모습입니다. 긴 여행을 거치면서...불의의 귀환을 앞둔 이기형 선생님의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신데.....이기형 선생님이 3개월 동안 이곳에 온 것과 또 이곳에서 나가게 되는 것 모두....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 들여야 했습니다. 또 그러기에..그동안 선교지에서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가 앞으로 달려갈 길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더 필요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아마...이 긴 기차 여행이 그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1시간의 긴 여행을 끝내고 알마티에 도착한 뒤..알마티 2역에서의 모습입니다.

손에는 '삼사' 라는 이곳 사람들의 음식이 들여 있고...긴 여행에 지쳐 굳어 있는 얼굴이 눈에 띕니다.....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쁨이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곳 '알마티 2 역'은 자주 소개되는 곳입니다. 제가 까작스딴에 오기 전...부산일보사에서 연재한 '실크로드를 가다'의 까작스딴 편을 보고 왔는데....그 기자는 바로 이 곳 '알마티 2역'의 밤 풍경을 화보로 실었더군요....

그게 생각이 나...저도 이 역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옷은 아스타나에서 출발한 지라 두꺼운 파카를 입고 있었는데...알마티에 도착하자마자 15도가 넘는 열기(?)에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어 벗어 던져야 했습니다. 11월의 길목에 서 있는 알마티는 여전히 따뜻한 기온이 감도는 곳이었습니다.

 알마티에서 한카병원을 방문하고...코이카 현지사무소를 방문해서 물건을 인수인계하고...대사님과 인사를 나눴고 ..점심 식사는 대사님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이기형 선생님은 까작스딴에서 3개월동안 있었지만...대부분의 시간을 아스타나에서 보냈기 때문에 제 홈에 소개된 알마티의 명승지들을 한 곳도 가 보지 못했었습니다.

그게 정말 안타까와...그 날 오후는 이기형 선생님과 함께 메대우 계곡도 가고..메데우 위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리고 알마티의 번화가와 한국식당, 서점등을 다니며...짧은 하루를 지냈습니다.

처음 알마티에 도착하자 말자...아스타나에 올라가는 기차표를 예약했는데 이 날 밤 8시 10분 열차였습니다...선화도 기다리고 해서 알마티에서 하룻밤을 머물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린...또 다시 장거리 여행을 그 날 해야만 했습니다.

밤 8시 10분에 출발했으니...다음날 저녁 5시 10분에 도착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긴 여행을 보내고 있었는데...다음 날 낮 2시경...우연히 열차 시간표를 보다가...아스타나 도착 시간이 밤 9시 10분인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이게 뭐야?..." ...알고 보니...우리가 탄 열차는 철도상의 모든 역에 거의 다 서는 완행 열차였습니다.  총 25시간이 걸린다는군요....

우린 이 말에 또 한 번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는 기차에서도...함께 한 다른 두 사람의 현지인이 모두 재미있는 아주머니들이어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기차는 밤 10시 10분...그러니까 알마티를 도착한 지 26시간 만에 아스타나에 다시 도착했습니다. 

형민이와 선화와....즐거운 상봉을 한 건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오는 기차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나눴던 까작인들입니다.

제가 volunteer라고 소개했더니(물론 러시아 단어로...) 좋아하면서...한국어도 묻고...약도 보여 주면서 우릴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까작인들은 천성이 순박하고 착해 보입니다....지난 세기동안 공산주의와 유물론, 그리이스정교와 러시아 군주로 인해 그들의 삶이 억압당했지만 그들의 천진난만한 면은 이 사진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만 바로 영접할 수 있다면...이 황량하고 거친 눈덮인 벌판속에서 따뜻한 그리스도의 계절을 만날 수 있을 텐데...아무리 생각해도 불쌍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여기 와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부족한 지원 속에서 꿋꿋하게 이곳에서의 영적 싸움을 싸우고 계시는데 반해...전...한국에서 공급되는 충분한 물품과 경비를 등에 엎고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활동이 그저...시간만 보내는 명목상의 봉사활동에 그친다면...내게 주어진 이 많은 자원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부끄러운.... 한 달란트 받은 종의 파 묻어 놓은 달란트일 것입니다.  

이곳에서의 활동이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 쓰임이 되길 기도합니다. 26시간의 기차 여행을 통해...황량한 눈 덮인 카자흐 초원을 보았습니다. 이 넓은 쓸쓸한 땅 가운데서....약할 때 강함 되시는 그 분의 능력이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200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