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찾아 온 아스타나의 한겨울....

아스타나에 사는 것 중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것 중 하나가 혹독한 추위입니다. 영하 40도....이 글을 읽는 분 중 영하 40도의 추위를 겪어 보신 분이 계신 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휴전선 근방에도 추우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는데...어쨋든 전 영하 10도 이하도 제대로 겪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스타나에는 빠르면 9월 중 눈이 내리고 겨울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제가 아스타나에 8월 중순에 올라왔는데..그 때 거리에서 영상 40도를 본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었지요? 불과 한 달만에 겨울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까작스딴의 대부분의 아파트는 난방 방식이 중앙집중식입니다. 그 건물 전체가 어느 순간부터 난방이 시작되는 거지요...아스타나는 관공서나 병원 등의 건물들은 9월 말부터 난방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만큼 날씨가 춥다는 거지요...다행히 9월 중순 경에는 저희 가족이 한국에 들어가 있었고..9월 말에는 알마티에 머물렀기에..따뜻한 날씨..아니 더운 날씨를 경험하고 있었는데...이제 이곳에 올라 와서...10월의 아스타나 날씨를 바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10월 2일경에...아스타나에 눈발이 날리더군요...우린 "눈이다!..." 라며 좋아했지만...아무 눈 온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더군요...이제 겨울이 시작된다는 징조인 눈은 이제 혹독한 추위가 다가올 거라는 전조였기 때문입니다.

10월이 되자..이 도시의 아파트에도 하나 둘씩 난방이 시작되고...저희 집도 며칠 전부터 따뜻하고 훈훈한 기온이 감돌기 시작했었는데....어제 밤부터 갑자기 이곳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밤에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비와 함께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고..온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빨리 볼 일을 보고 차를 주차장에 두고 집에 들어온 뒤 ....선화에게 빨갛게 시린 제 귓볼을 만져 보라며...추운 날씨를 싫어하는 선화에게 겁을 줬던 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 날 밤...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시간을 흘렀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창은 하얗게 뭔가로 덮여 있었고...눈을 비비고 일어나 창밖을 자세히 내려다 보니...정말 솜뭉치 만한 눈덩이들이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10월 9일 밤부터 내린 눈은 10일까지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아스타나에는 청소부가 아주 많습니다. 특별한 산업 기반이 없다 보니..실직자 문제를 청소부 고용으로 해결하려는지... 많은 청소부를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데...이렇게 눈이 오면 열심히 도로에 앉은 눈을 치운다고 합니다...그래도...오늘 아침...이렇게 눈이 많이 쌓여 있는 걸 보면..밤새 눈이 많이 내린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어제 늦게 차를 주차장에 대는 바람에..다른 차가 아침에 나가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아침 일찍 제 차를 주차장에서 빼 주어야 하는데....눈 내리는 밖으로 나가는 게 슬며시 걱정되더군요......'얼마나 추울까...'

말로만 듣던 눈 내리는 겨울 아침....뜻밖의 하얀 아침을 맞는 우리 가정은 분주해졌습니다. 이제 그 지긋지긋하다는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막막함과 불안감이 선화와 제 맘 속에 서서히 찾아 들었고...우린 한국에서 가져 온 따뜻한 옷들을 떠 올리며...내복을 꺼내 입고...한국에서 가져온 파카를 꺼내 입고...군의학교에서 끼던 가죽장갑을 착용하고...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바람도 차고...펑펑 내리는 눈은 그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차가 걱정이 되더군요...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알마티에서 사온 겨울용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브레이크 라이닝도 갈고...겨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하나도 손을 봐 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 나오면서...앞유리에 쌓인 눈이 하도 많기에...와이퍼로 쓸어 내려도 해결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운전석에서 앞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전..어딜가나..카메라를 가지고 다닙니다)...이미 주차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차에 덮인 눈을 쓸어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선 많은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이라..별로 놀라지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전 많이 놀랐지요....온도가 갑자기 내려가다 보니...차도 적응을 하려는 건지 엔진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아마 엔진 회전수를 늘려 엔진 내부의 온도를 올리려는 모양이었습니다. 제 차는 rpm을 볼수 있는 장치가 없습니다...아마..시동걸고 움직일 때 평소때보다 rpm이 더 많이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알마티에서 100불을 주고 산 겨울용 타이어가 있습니다. 핀란드 제인데...타이어에 쇠로 된 스파이크가 박힌 것입니다. 마치 육상 선수들이 스파이크화를 신고 뛰듯이 미끌리지 않도록 타이어에 스파이크를 부착한 것인데...이것으로 언제 바꿀까...생각만 하고 있었는데...바로 오늘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이런 날이 수도 없이 많을  때고...온도가 떨어지면 항상 빙판 길일 텐데..더 늦기 전에 타이어를 갈아야 했습니다.

오늘 아침 그 타이어를 들고 출근하는 모습입니다..옷도 단단히 입었지요?  병원일이 마친 뒤...어렵게 현지인들에게 물어서.. 이곳 바겐바이 바띠르 길 가장 외곽에 있다는 자동차 수리하는 곳으로 찾아 갔습니다.짧은 러시아어로...몇 마디 하고....자동차 타이어를 바꿔 달라고 했고..다행히 그 쪽에서 무슨 말인지 알아 듣고...앞 타이어를 뒤로 보내고...앞쪽을 겨울용 타이어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말고도 겨울 준비할 건 많습니다. 며칠 전...선화의 겨울용 외투를 이곳 에브라지야 시장에서 하나 장만했습니다. 이곳은 모피나 가죽이 한국보다 훨씬 싼 곳이고 모델도 아주 다양하지만....여기서 입기 좋은 것은 ....한국에서 입기에 너무 두껍고 더운 것이기에..나중에 한국에 가서 입기 괜찮은 것을 고르려고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어렵게 하나 장만했지요.....한국에서도 무난한 것으로....

겨울을 위해...집에 전기 히터도 하나 장만했고...마침 오늘부터는 하루종일 집에 중앙 난방이 작동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이제 겨울 준비를 갖추는 겁니다. 내일은 밖에 나가 자동차 부동액도 손을 봐야 겠고...브레이크와 삐걱거리는 자동차 문도 손 볼 생각입니다....겨울이 다가오니까...지붕이 있는 주차장이 필요한데...여기는 지붕이 있는 주차장이 집 근처에 보이지 않아 걱정입니다...눈이 1미터 이상 오는 경우에는 자동차에 쌓인 눈을 걷어 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빨리 지붕이 있는 주차장을 알아 보는 것도 급선무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거..생각하지도 않았었는데....이렇게 이곳에 나와 있다 보니..자동차 부품, 부품의 러시아 이름, 자동차 관리를 알아서 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서...다 배우는 거겠지만....여기는 자동차를 수리하려면 부품을 직접 사 가지고 수리하는 곳에 가서 기술자의 손을 통해 차 수리를 해야 하기에 차를 손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시를 환하게 알고 있어야 필요한 부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어쨋든 아스타나 생활 2개월에...이제 이런 것들이 손에 익어 갑니다.

바깥 세상이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형민이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걸어다니는 사진은 이게 처음 공개되는 거지만...실제로는 돌이 되기 일주일 전부터 이렇게 혼자서 막 돌아다녔습니다.  

이제는 우리를 도우는 냐냐(가정부)에게도 장난을 걸고 잘 안기기도 하고...엄마가 없는 곳에서도 잘 놀고....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켜 놓고 무릎을 탁탁 쳐 가며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먹고 싶은 것이 있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손으로 가리키면서...말도 안 되는 말을 계속 큰 소리를  외쳐 댑니다.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니고...장난감들을 거실 저 쪽에서 부엌까지 나르는가 하면...아빠 방으로 가서...약품 박스의 약품을 밖으로 다 꺼내 놓으면서...하루 종일 혼자서 재미있게 놉니다. 불과 이 주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는데...돌이 지나고 나니..이제 독립을 하려나 봅니다. 이렇게 형민이를 떼어 놓을 수 있게 되니까...선화에게도 약간의 여유가 주어지는 것 같고...오늘은 ...이곳에 있는 영어학원에 선화도 등록하고 영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겨울이 찾아 오는 요즘....이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겨울을 준비하는 막연한 마음에...기쁨을 주는 일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지난 주한국으로부터....반가운 선물이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함께 지내던 써클인 새벽별(부산의대기독학생회 학사모임)에서 이곳 까작스딴으로 위문소포(?)를 보내 왔기 때문입니다.

한 달 전부터 이 소포가 이 곳으로 보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그 사이에 한국으로 들어갔다가 나왔고..형민이 돌잔치 하느라..제대로 알아보질 못했는데..며칠 전 우체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한국에서 소포가 도착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전..이곳 우체국에 가서 제 사서함 번호를 말해 주고...몇 가지 서류를 적고 나서....우리에게 보내진 25kg짜리 소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날이 형민이 돌잔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우린 형민이 돌잔치도 기뻤지만...이렇게 한국에서 보내 온 선물을 받는다는 기쁨에 하루종일 들뜬 기분으로 지냈습니다.

소포 안에는 펜 35개(세라믹 펜 2개 포함), 펜 라이터, 형광펜, 세라믹 펜심 1통, 딱풀 3개, 유리 테이프 1개, 가위 1개, 마스크 3개, 펜장 200알(20통), 동상연고 3개, 바퀴벌레 약, 오징어 3마리, 형민이 교육용 전화기, 하기스 기저귀, 창녕 5000 CD, window 2000, window 98 SE, MS office CD, 각종 비디오 CD, 공 CD, CD 케이스, 책(의사 전도왕), 약품집, 그리고 오뚜기 카레, 동서 보리차, 라면 1박스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희 홈을 통해 필요하다고 이미 알려진 것들이 대부분이기에...정말 반갑고 유용했습니다.

사실 여긴...제대로 된 펜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좋은 필기구들은 거의 없고 어렵게 일본이나 유럽에서 들어온 필기구들은 턱없이 비싸기에...한국의 질좋은 문방구들이 그리울 때가 많은 데...그런 것들이 산더미 처럼...들어왔으니..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선화와..전...까작스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값없이 주어진 사랑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둘이서 자주 얘기하곤 합니다.

물론 우리도 한국의 새벽별이나 식구들에게 이곳의 물건들을 부쳐 주어야 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물론 그것도 필요하겠지만...사랑을 입은 많은 한국의 지체들을 위해 더 기도하고 잊지 않고 문안해야 겠지요...그래도..아무리 생각해도...이렇게 시간과 경비를 들여 먼 곳에 있는 우리를 위해 애써 주는 지체들이 있음이 너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우린 이 소포를 받으면서...이곳에서 우리가 받고 있는 사랑을 나눠 주는 일에 더 진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보니...이런 사랑을 받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잘 알 수 있었고...이곳의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행복을 안겨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값없이 주는 것들에 대해 어색해 합니다...누군가를 돕는다고 얘기하면서도 어떤 댓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항상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곳 목사님의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2001년 5월...살구가 맛있고 체리가 이제 막 나오는 따뜻한 알마티로 도착했지만...20001 10월....눈이 쌓이고 추운 아스타나에서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준비할 것도 많고 필요한 것도 많지만....이렇게 한국의 많은 지체들이 우리를 생각하고 사랑해준다는 것만으로 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우리에게 보내진 이 선물들 속에 녹아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추운 곳에서...함께 살아가고 있는 까작인들과 러시아인들...그리고 우리 동포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시 한 번 새벽별 여러분들의 열심에 감사드립니다.    200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