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나 1병원 근무를 시작합니다.......

 지난 2001.9.3 월요일부터 아스타나 1병원에서 협력의사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까작스딴의 수도인 아스타나에 한국인 의사가 파견되는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그 동안 코이카에서는 알마티에 주로 의사를 파견해 왔으며...700여명의 한인들이 살아가고 인구 150만의 까작스딴 최대 도시인 알마티가 활동의 최적지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지요..하지만...수도인 아스타나에도 협력의사가 가야 한다는 당위성과 새로운 곳을 개척한다는 호기심이 절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습니다.

병원 근무를 위해서는 통역을 빨리 구해야 했습니다. 아스타나에는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통역이 전무한 상태라..그동안 영어-러시아어 통역을 사용하기로 하고 사람을 찾고 있는 터에...이곳에 있는 아스타나 장로 교회에서 열고 있는 한국어 교실에 나오는 한 젊은이가 자신의 어머니가 한국어를 잘 하는데...일만 있으면 아스타나에 오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해서 그 분을 오도록 했고...출근 3일 전 만나 보았습니다.

그 분은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에서 살다가...까작스딴에 온 지 20년 된 고려인이었습니다. 그동안 주로 농업에만 종사했고...통역의 경험은 전무한 분이었습니다. 남편이 몇 해 전에 사망했고..세 아들을 데리고 사는 가난한 분이였지요...고려인들이 하는 한국어라는 게 대부분 함경도나 평안도 사투리여서...솔직히 통역과도 통역이 필요한 상태였지만...하지만..당장 사람을 구하기 어렵고..누구나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함께 배우면서 병원일을 하자고 말하고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출근 첫 날...병원 앞에서 통역과 만나...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병원의 모습은 일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한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

 

이곳 까작스딴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행정 관청들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이지요...

하지만..병원 건물 자체가 그렇게 현대식이지는 못했고 내부 수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곳 아스타나에는 현재 4개의 뽈리끌리닉(외래 환자만 진료하는 병원)이 있는데... 1번 병원과 4번, 5번, 6번 병원이 그것입니다.

까작스딴에는 병원에 숫자를 붙여 구분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1번이라고 해서 다른 병원보다 뛰어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임의로 구별해서 부르는 것 같습니다. 입원 환자를 받는 병원(발닛짜)는 10군데 정도됩니다...이 중에는 어린이병원, 전염병 전문 병원, 산과병원, 결핵 병원, 피부 비뇨기 병원, 응급병원 등이 있습니다. 전 4개의 외래 병원 중 하나인 1병원에서 일하게 된 것이지요...아스타나 시내의 중심 도로 중 하나인 씨풀리나 42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통역을 통해 원장님을 만났습니다. 까작스딴은 의사의 90%가 여성입니다. 까작스딴은 여성의 사회 활동 비율이 아주 높습니다. 병원, 대학교, 은행, 보험회사...제가 가 본 이런 사무실에는 대부분이 여성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시내를 활주하는 뜨람바이 운전기사도 여성들이 많은 걸 보면..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물론 이 나라는 그 동안 사회주의 노선을 취한 소비에트 연방 안에 있었기 때문에...의사들이 국가 공무원처럼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급여를 받고 일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제 막 시장 경제체제로 탈바꿈하고 있지만...여전히 국민들은 돈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배출되는 의사 수에 비해 일할 곳은 적고...의사들의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의사들의 사회적 대우는 최저인 곳이 바로 이 까작스딴입니다.

제가 일하는 1병원도 아스타나의 정해진 지역 내의 사람만이 올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스타나 시내를 편의상 몇 개로 구분하고 그 단위 마다..병원을 하나씩 배정하는 것입니다...어떤 지역 내에서 환자가 발생했다면...반드시 그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병원으로 방문해야 하는 것이죠...그 대신...진료비와 기본적인 검사비는 다 무료입니다. 모든 것이 국가 재정에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물론 CT나 뇌파검사 같은 일부 검사항목은 따로 검사비를 받는다는군요....

 그리고 이 까작스딴은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처방전이 없는 일반의약품은 약국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전문의약품들은 의사의 처방전을 가져가야 합니다...그래서...병원에는 약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의사와 종이만 있을 뿐입니다.

 전 이곳 아스타나에서 올라오면서..한카병원에서 약을 조금 가지고 왔습니다. 이 나라의 시스템과는 다르게 ...진료를 하면서..필요한 약은 즉석에서 나누어 줄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국에서 약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그리고...가지고 온 약들을 이 병원 내의 약국에 맡길 경우...약의 관리와 효율적인 처방과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기에...일단 약을 진료실에 비치하고 방문하는 환자들에게 나누어 줄 예정입니다.

원장님과 내과 과장님(내과 과장도 여성입니다.)과의 인사가 있었고..제 방이 안내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할 방은 약 한 평 반 정도 되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책상 하나와 책장 하나가 놓여 있었고..환자가 누울 수 있는 침대가 하나 있긴 한데..너무 낮아서..허리를 많이 구부려야 진찰할 수 있는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또 전체적으로 낡고...손을 씻는 세면대도 아주 낡아 보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이곳 의사들은 모두 하나같이..이런 진료실에서 환자를 본다고 하니...제가 다른 걸 더 요구할 순 없었습니다. 똑같이 시작하는게 당연하니까요...통역이 앉을 의자를 옆에 하나 두고 나니...방이 가득 차 보였습니다. 그래서 첫 날은 '진료실 꾸미기'에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람스토르에 가서...책상을 덮을 천을 하나 샀고...꽃병과 꽂도 가져 왔습니다. 하얀 진료실 벽이 보기 싫어 달려과 벽시계도 구입했고...책상의위치와 책장의 위치도 한국에서 흔히 두는 방향으로 바꾸었습니다. 의자 하나가 너무 낡아...집에 있는 의자를 가지고 와서 진료실에 두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진료실에 앉으니...제가 아스타나에 왔다는 게 더욱 실감나더군요...

 

 

 왼쪽 사진은 1병원 1층에 있는 병원 접수처의 모습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이곳을 방문할 때는 돈을 내지 않습니다. 단지...방문했다는 기록만 남기는 거지요...우측 사진은 1층에 있는 약국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의약분업을 시행하면서 병원 내에 약국을 두지 못하도록 했는데..여긴 병원 내에 약국이 있더군요...

아스타나에서 사용하는 현지 약 목록을 구하기 위해...이 약국 문을 두드렸습니다. 젊은 약사 한 사람이 근무하고 있는데..제가 약간 어눌한 말로 약품 목록을 요구하자...6장 짜리 서류를 하나 내 주더군요...약 이름이 모두 러시아어여서..약 이름만 보고는 이게 무슨 약인지 알 수가 없고...따라서 제대로 약을 처방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이런 것들은 더 보완해야 하는게 저의 과제입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약은 처방전을 발행해서 줄 생각이고..현지에서 찾을 수 없는 약들은 한국에서 신청해서 함께 복용하도록 지도할 예정입니다. 하지만....근무를 시작한 지금...약의 종류가 너무 부족하고..약봉지를 봉하는 기계가 없어 많은 환자들에게 여러 날의 약을 나눠 줄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아직 많은 진료 도구들이 없는 상태입니다...그래서 제대로 진료실이 돌아가기 까지는 많은 날이 걸릴 것 같습니다.

 

 왼쪽 사진은 1병원의 벽 사이로 보이는 국회의사당의 모습입니다. 이 곳에는 정부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고...공원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우측 사진은 제가 근무하는 진료실의 크기를 보여 드리기 위해 촬영한 사진인데...마침 역광이 비쳐서...어둡게 나왔습니다. 하지만...진료실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보여 드리기 위해서...이 사진을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공간이 진료실의 대부분입니다.

그래도...첫 근무가 시작되고 나자....선화는 제가 일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한가 봅니다. 오후에..병원에 가서 진료실을 보고 싶다고 하길래...함께 다시 병원에 와서..진료실을 보고 함께 인테리어(?)에 대한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아직...한국인 의사가 왔다는 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우리 진료실 역시...한국에서 약품들이 더 도착해야 원활한 진료가 가능할 것 같아... 많은 환자들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진료실은 3층입니다. 3층까지 올라오면서...많은 것들을 지나치고 옵니다.. 병원 내부를 수리한다고 시끄럽고 어수선한 소음, 웃음기 하나 없이 총총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한국과 비교해서 턱 없이 낡은 시설물과 약국, 아침 8시부터 환자를 봐야 하는...낡은 의사 가운의 의사들...그리고...아프고 병든 사람들.....

한창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늘어갈때... 공산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참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지려면...계급 투쟁에 의한 폭력혁명이 이루어져야 하고...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태에 대한 불만이 인민들 사이에 전파되어야만 가능한데....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태에서도 감사하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어떤 뜻이 이루어질까 하고...기대하기에...계급 투쟁이나 폭력혁명이 그들 속에 뿌리 내리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아직 현지 약들의 성분을 잘 모르고...혈압계나 체온계 같은 진료의 기본 도구들이 비치되어 있지 않으며...진료실을 도울 간호사가 없고...약봉지를 봉하는 기계가 없어서 제대로 약을 봉지에 넣기도 힘이 들고...어렵게 구한 통역 마저...통역이 필요할 정도(?) 로 서로 의사 소통이 어려운 최악의 상태이지만....

이 속에서...절 향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 줄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물론 제가 한국에 물건을 요청하고..여기 저기 다니며 진료실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것들은 해야 할 일이지만...궁극적으로 환자들이 찾아 오고..찾아 온 환자들에게 적당한 약들이 제시되고...그들의 경과가 좋아지는 것들과 그 후로 이 곳에 미치게 될 한국인 의사로서의 영향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아스타나 장로 교회의 김목사님과 한 달에 한 번 꼴로 아스타나 주변의 가난하고 아픈 노인들의 집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기도하시고 말씀을 읽어 주시고 또 교회에서 준비한 물품을 전달합니다...전...아픈 부위를 만지고 물어 보고...청진하고 약을 붙이고 나누어 주는 일을 하면서..그 곳 사람들에게 제가 일하는 1병원으로 찾아 오라고 얘기도 해주고...움직일 수 없는 분들에게는 약을 전해 드리기도 하지요...그들은 모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돈을 주거나 물건을 나누는 일을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행여나...교인들에게 믿음이 심겨지기 전에..교회로부터 받을 떡고물(?)에 이곳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고 오시는 것 같았습니다.

전...1병원에서의 진료를 통한 공식적인 코이카 활동으로 이 곳 사람들을 돕기 원하고..이후 시간에는 교회와 함께...이곳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일의 방향을 잘 정하고 기도하고 해 나간다면...후회없는 아스타나 생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의 일들을 하면서..여러 경험들과 생각들이 축적되고 있습니다.

이 홈을 통해 제가 경험한 것들을 한국에 계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고...아울러..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사랑하는 분들에게 기도제목을 드리고 싶습니다.

선화와 함께 방문한 형민이는 조그마한 아빠의 진료실이 맘에 드나 봅니다.

 하나님은 덤벙대고..급하고..건망증이 많은 나를 사용하시려고 이 곳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그 분이 나를 아시기에...난 이곳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한 밤중에...'어떻게 내가 이 까작스딴 땅에 오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다른 제 동기들처럼...한국에서 공중보건의나 군의관으로 활동할 수 있었는데...그 때 왜 외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품었을까...되물어 보기도 합니다.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해서가 아니라...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더 실력있고..더 믿음이 돈독한 형제들도 많이 있는데도..하나님은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그게 간혹 믿겨지지가 않고 감격스럽기 때문입니다.

아마도..나로선..평생 잊지 못할 시절이 될...까작스딴..아스타나에서의 경험들이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는 것들로 가득찼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여러분들의 기도가 하나님이 하시는 큰 일의 도구가 사용될 것이라는 확신과 기쁨이 있기에...이 곳 생활은 기대로 가득차 있습니다.   200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