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정들었던 알마티를 떠나면서...

(이 글은 알마티를 떠나기 전 날 밤...적은 글입니다.)

드디어 알마티를 떠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내일 오후 1시에 저희 아파트 앞에 저희 짐을 아스타나로 옮겨 줄 트럭이 도착하게 되고 고용한 일꾼들과 함께 짐을 트럭에 싣고 출발합니다. 물론 짐트럭과 함께...알마티에서 어렵게 새로운 번호판을 부여 받은 우리 차(닛산 서니)도 함께 출발합니다.

우린..그 다음날인 월요일 낮 12시 55분 비행기로 아스타나로 떠나는데 아마 오후 2시 30분에 도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스타나는 여기서 1100Km 북쪽에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서울-부산이라고 해도 500Km도 안 되는데...정말 넓긴 넓은 나라입니다.

알마티에서 알고 지냈던 많은 분들과 지난 두 주동안 섭섭함을 달래는 많은 모임들을 끝냈고...이제 알마티에서 하나 둘 새로 산 물건들을 정리하고...한국에서 온 아직 풀지 않은 짐들을 정리해서 거실 쪽으로 차곡차곡 쌓아 두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정말 험난했던 알마티에서의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막상 아스타나로 가게 되니까...그 동안 알마티에서 우리 가정이 겪었던 많은 문제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1. 알마티에 도착하자 말자 우린 제투스 호텔에서 묵었습니다.

알마티에 처음 왔을 때 묵은 제투스 호텔의 모습

당시에는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지냈지만 생각해보니... 참 힘든 호텔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4일 정도 묵었었는데...깨끗한 한국 호텔과는 달리 불편하고 지저분하고...먼지가 잘 앉는 담요를 덮고 자야 하는 상황이었죠...이 나라 사람들은 바닥에 카페트를 깔고 깃털을 넣은 요를 덮고 잡니다..깔끔한 걸 좋아하는 제게는 무척 받아 들이기 힘든 생활 방식이었지요....음식도 입맛에 안 맞고..여기 저기 인사하며 제대로 짐도 못 풀고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린 그 때부터 알마티 생활이 편하지 않을 거라는 암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사진은 아브라이 한-마까따에바에 위치한 제투스 호텔의 모습입니다.

2. 우리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official card가 바로 발급되지 않았습니다.

official card의 모습입니다. 대사관 소속의 신분임을 증명합니다.

일반 봉사단원과 달리 국제협력의사에게는 대사관 소속임을 증명하는 카드가 발부됩니다. 그걸 여기선 "official card"라고 부릅니다. 우리 가족의 여권이 일반여권이 아니라 관용여권을 사용하고 있음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형식적으로는 주재국(그러니까 까작스딴)의 요청에 의해 오기에 대사관 소속으로 신분이 보장되고 있지요...이 official card가 있으면 아주 편한데...대표적인 것이 차 번호판의 색깔입니다.

차 주인인 이 나라 사람인 경우는 자동차 번호판은 흰색이고 외국인인 경우는 노란색입니다. 그러니까...거의 모든 차가 흰색이나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다녀야 하지요..그렇지만 대사관 차량같은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는 차량의 번호판은 빨간색입니다. 이 빨간색 번호판을 달고 다니면..도로에서 교통 경찰이 마음대로 차를 세우거나 제제를 가하지 못합니다. 이곳 까작스딴의 경찰들은 ....차를 임의로 자주 세우고...운전자로부터 400-500텡게의 돈을 받는 것이 상례화 되어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돈을 내야 하는 현실이지요...

그러나 만일 우리 차가 빨간 번호판을 달 게 되면...알마티에서의 생활이 훨씬 편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official card가 있으면 여권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확실한 신분 보장이 되는 것이죠.....

문제는 이 official card를 받기 힘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까작스딴에서는 official card를 발급하지 않으려는 추세여서...주재국의 요청에 의해서 온 우리 가족의 경우에도 제가 하루 종일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외교관에게 주는 official card를 내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임자인 다른 선생님이 3주만에 나온 것에 비해 전 그 보다 훨씬 늦은 2달이 지나서야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많은 우여곡절 끝에 받아낸 것이죠......

어쨋든 official card를 빨리 발급받지 못해...법적으로는 제가 이곳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외국인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외국인들은 까작스딴에 오면 "오비르" 라는 일종의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 일반 외국인이 아니라 official card를 받아야 할 대상이므로 오비르 등록을 할 수도 없었고 이 때문에 많은 문제점들이 야기되었는데 대표적인 게 자동차입니다. 이 곳에 온지 7주만에 자동차를 구입했는데...차를 제 명의로 옮길 수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전 법적으로 까작스딴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그래서 공증을 하고...전 차 주인 명의로 흰색 번호판을 달고 있는 닛산 서니를 몰고 한 달간 다녔습니다. 다행히 경찰이 우리 차를 세운 적은 없었지만 함께 이곳에 온 치과 선생님의 차는 자주 경찰에 의해 정지되어...여러 번 돈을 건네야 했다고 합니다.

3. 또 다른 대표적인 문제가...한국에서 이 곳으로 보낸 컨테이너가 제 때 도착하지 못한 사실입니다. 사실 이 곳에 오기 전...한진해운항공으로부터...지금 까작스딴으로 가는 컨테이너가 있으니 급히 짐을 보내라는 연락을 받고 한국을 떠나기 보름전에 짐을 보냈는데....이 곳 까작스딴에 오고 난 뒤 20일 후에서야...그 짐이 아직 부산에 있다는 기가 찬 사실을 알 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었지요....사실 까작스딴은 우리처럼 컨테이너 단위가 아닌 소량의 화물을 운송하는 지역이 아님에도 한진해운항공 담당자의 말을 믿고 짐을 보냈는데..알고 보니 그 담당자가 공금 횡령 후 잠적했고...우리 짐은 공중에 붕 떠 버린 셈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 보내 컨테이너만 눈 빠지게 기다려 온 우리 가족으로선 청천벽력같은 얘기였고...이 일로 한국의 한진해운항공과  실제 짐을 보낸 부산해양상선...그리고 현지 지사 역할을 하고 있는 우즈벡스딴의 타슈켄트에 있는 해양상선 지사...그리고 이곳 까작스딴의 해양상선 에이젼트인 영어도 할 줄 모르는 현지회사와....힘들고 피곤한 전화통화를 수차례 해야 했습니다.

너무나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한진해운의 담당자로부터 들으면서...맘도 많이 상했고 한국의 부모님들도 많이 고생하셨지요....결국 우여 곡절 끝에 한국을 떠난 지 78일만에 컨테이너가 알마티에 도착했다는 얘기를 들었고...컨테이너 하치장에 컨테이너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너무 힘든 싸움이었기 때문이지요....

짐이 제 때에 도착하지 못함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은 산더미와 같습니다. 가족의 옷가지와 생필품이 부족했고...형민이 용품이 없어...힘들 게 알마티를 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부담감은 알게 모르게 평상시에도 선화나 절 힘들게 했고...컨테이너를 받는 과정에서도..수차례 짐이 도착한다는 날짜가 바뀌는 바람에 속 타게 전화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허탈한 표정을 지어야 할 때가 4차례나 되었습니다.

4. 막상 자동차 번호판 다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 차 입니다. 닛산 서니 1400cc입니다.

빨간색 자동차 번호판을 다는 일은 아스타나로 떠나기 1주 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정작 official card가 나와 차량을 제 명의로 옮기려다 보니...이전 차 주인이 제게 건네 주지 않은 서류가 있다는 걸 알 게 되었고...전 차주인이 독일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다행히도 아스타나로 떠나기 1주전에 돌아 온 그와 연락이 되어....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지요...이 번호판을 달기 위해 4일을 하루 종일 쫒아 다녔습니다. 대사관 여직원 옥산나의 도움과 현지 고려인의 도움...그리고 이곳 경찰서 관계자의 도움도 많이 받아야 했고....뒷돈도 많이 건네 주어야 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이 나라의 공무원들이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아 내기 위해..수많은 절차와 형식과 서류를 요구하면서 일을 천천히 처리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지요...사진은 빨간색 번호판을 달기 전...현지인 명의의 흰 번호판을 달고 있는 우리 차의 모습입니다. 차번호판은 B 704 CNM인데...B는 알마티 외곽의 차 임을 암시합니다. 어쨋든 무사히 새 번호판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5.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제 현지 급료가 50%밖에 지급되지 않은 것도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문제가 다 해결되었지만...그 당시에는 정말 힘이 들었지요...그래도 하나님께서는...한번도 우리 가정이 알마티에서 돈이 부족해서 힘드는 일을 겪게 하진 않으셨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딱 차량 구입비 만큼 돈이 생겼고....남은 돈이 떨어져 갈 무렵이 되면....국내에서 송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린....하나님이 먹여 주시는 떡과 물을 먹고 지난 3개월간 살았습니다.

람스토르의 과일 코너에서 형민이와 함께...

6. 형민이를 혼자 돌봐야 하는 선화의 힘든 생활은 전에도 얘기드린 바가 있고...저 역시 완전한 저의 근무지가 아닌 임시 근무지에서 일하다 보니....여러가지 면에서 어려웠던 점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이 모든 과정을 통해...우린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우리에게 주셨을까?'

우린 우리 나름대로 한국에서 까작스딴으로 오면서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도 했고...물건들도 준비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그러나...물건이나 짐들은 우리에게 조달되지 않았고....알마티 생활을 하면서...우리가 참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하나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알마티 초기 정착시절...우리의 생활이 풍족하고 문제가 없는 환경 속에 거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는 존재여서...애매하게 고통을 당하거나...문제가 생길 때...더욱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 가정 역시...알마티에 와서..우리가 준비하고 이 곳에 오는 과정에서 교만하고 기도가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더욱 기도하고 겸손하라고...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신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와 같이 알마티 생활을 하면서부터...밤마다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할 시간이 되어...이런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때로는 답답하고..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일들을 주신 분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아스타나로 옮겨 갑니다....아스타나로 올라가기 3일 전....극적으로 제 자동차를 제 명의로 옮기고 대사관 소속이라는 빨간 번호판을 단 차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현지 고려인 손에 부탁해서...아스타나로 차를 옮기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아스타나로 향하는 나의 행보에 한치의 빈틈없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따가운 햇살 아래서...자동차 번호판 문제로 땀을 흘리며...돌아 다니면서도...속으로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립니다...나로 하여금 더 움직이게 하시고..더 낮아지게 하세요....내가 하나님의 뜻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물론 알마티에서 겪은 멋지고 즐거웠던 일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너무나 상쾌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정말 이국적인 감탄에 젖은 적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로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형민이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까작스딴에서도 얘기를 듣습니다.

아스타나로 올라가면서....아스타나의 정착 초기에...우리 가정에 닥칠 많은 어려움을 생각해 봅니다...그리고...알마티에서의 경험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겸손이 하나님만 바라볼 것을 다짐합니다.

국제협력의사로 알마티에서 2개월 반동안 살면서....우린 너무나도 생생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