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된 형민이....

며칠 전...8월 5일이 형민이가 만 10개월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형민이는 정확하게 7개월 18일째가 되는 날...이곳 까작스딴으로 날아왔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집을 얻고 정착하게 된 것이 거의 형민이의 8개월째와 맞물려 들어갑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형민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앉을 정도였지요..그냥 눕혀 놓으면 방바닥을 딩굴거리고 배로 방바닥을 밀고 다니는 게 할 수 있는 것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집이 생기고...새로운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난 뒤 형민이를 키우면서 형민이의 자라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8개월 째에 들어서서는... 거실의 거울이 보이는 곳으로 안고 가면 제가 항상 거울 아래 선반을 탁탁 내리쳐 보이곤 했는데...어느 날 부턴가..형민이를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가면 아무도 안 시켰는데도 조그만 손으로 거울 아래 선반을 탁탁 내리치면서 제가 한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얼마나 신기했는지...선화나 저나...8개월 정도부터 엄마, 아빠가 하는 걸 따라 한다고 얘기하면서...형민이을 잘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형민이는 이 곳에 와서 처음에는 자는 시간이 규칙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니...까작스딴 오기 직전까지...전 군생활 8주에다 서울에서 있었던 협력의사 직무 교육 3주를 이수하느라...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없었고...우리 가족은 잠시 이산 가족이 되어야 했지요...그래서 형민이의 생활 방식을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곳 까작스딴에 오고 나서 첫 한 달은 항상 세 사람이 함께 다녔고..이후 2달 동안도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함께 지낼 수 있어서..형민이의 생활 습관을 차차 알 게 되었습니다.

형민이가 잠이 올 무렵인 10시 반 정도에는 어김없이 우린 형민이를 목욕시킵니다. 이 사진은 욕조에서 형민이를 목욕시킨 후 선화가 수건으로 닦아 주고 나올 때 찍은 사진입니다. 여기 물은 좋지 않습니다. 물에서 철 부스러기와 이물질이 많이 나오는데...마시는 물은 정수기로 걸러서 마시지만..씻는 물은 그렇게 할 수가 없지요...처음에 여기서 나오는 물로 형민이를 목욕시키려니...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시간이 차차 지날수록 우리도...이곳 생활에 적응해야만 했고..형민이도 그냥 샤워를 해야 했지요.....

8개월 째에는 형민이의 분유와 이유식 때문에 선화 마음 고생이 많았습니다. 분유를 가져 왔지만...한국에서 올 컨테이너를 고려해서 약 한 달 정도 분량만 가지고 왔는데..컨테이너가 두 달이 지나도록 이곳에 오지 않으면서...형민이가 먹어야 할 분유와 이유식을 현지에서 조달해야만 했습니다.

원래 형민이는 이유식으로는 남양유업의 아기밀...분유는 엡솔루트를 먹였는데...이곳 까작스딴에 그런 분유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원래 분유를 잘 먹지도 않는 형민이기에..그나마 형민이가 좋아할 분유를 찾는 건 큰 문제였습니다..람스토르와 다스따르 한을 다니면서 형민이가 먹을 만한 분유를 찾아 다녔고...이유식도 이것 저것 먹여 보았습니다. 이건 찬 물에 잘 녹지 않아서 싫고...이건 맛과 향이 이상해서 싫고...이건 물에 녹이고 난 뒤 젖병 바닥에 가라앉는 게 너무 많아서 싫고...형민이 분유를 찾는 선화의 마음은 좀 더 나은 것을 먹이고자 하는 엄마의 맘이었습니다.

형민이의 기저귀와 분유를 사러 다니면서...한국이 얼마나 좋은 물건이 많은 나라인지 실감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한국은 정말 상품의 다양성과 품질이 우수한 국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어렵게 스위스 네슬레에서 나오는 "NAN"이라는 분유를 사서 먹이면서...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 분유만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요...

형민이는 한국에 있을 때 많은 아기들과 사귀지 못했습니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많은 사람들을 접할 기회도 없었고...교회에 가도 형민이 또래의 아이가 많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간혹 교회에서 유치부 아이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즐겁게 노는 걸 보여 주면...형민이도 발을 열심히 내저어면서 자신도 함께 놀고 싶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웃고 했지요....그러나..까작스딴에 오고 난 뒤로는 많은 아기들을 만나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까작스딴은 어느 곳에 가든지 아기들을 길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고...옆 사진도 람스토르에서 어떤 까작 아이가 형민이에게 와서 호의를 보이는 것을 찍은 것입니다. 형민이는 움직이지 않는 캐리어 안에 있지만...다가온 까작 아기를 보고 반가운 듯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떨 때는 지나가는 아기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내저으며 뭐라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지요.

현지 아이들 외에도...한국 교민 사회에도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생각외로 많은 젊은 부부들이 와 있고..젊은 목회자들의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지요...그래서 저녁에..식사 초대를 받고 가 보면...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형민이 역시..식사 초대를 받게 되면...으례히 아이들 부대에 섞여서 놀아야 합니다.

물론 형민이는 이 당시만 해도 8개월 때였으니까..혼자서 어디를 다닐 수 없습니다...그래서 항상 저나 선화가 형민이을 데리고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가서 함께 놀아 주지요...그래서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늘 형민이와 함께 있어야 했고... 느긋히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다 큰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사진은 김동환 선생님 집에 초대를 받고 가서...다른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핑구" 비디오를 보고 있는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보다..아이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형민이의 성장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형민이를 위해 우린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지요.... 9개월 째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제 자꾸 일어서서 걸으려고 노력하는 형민이를 볼 수 있었는데 제 손을 의지하거나 ...아니면 침대 모서리나 의자 기둥을 붙잡고...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는 형민이는.... 9개월 내내 두 손을 엄마, 아빠에게 맡기고 거실과 안방 여기 저기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 곳에 와서 산 가구가 하나 있는데..그건 형민이 침대입니다. 이 나라는 침대의 매트리스가 형편없는데다가 더블 침대를 구하기도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는 침대는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작은 침대 두 개를 붙여 놓은 침대입니다. 처음에는 형민이도 그 곳에서 함께 자다가...점점 형민이의 공간이 필요해 지기 시작했고...우린 100달러를 들여서 형민이의 침대를 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잠결에 데굴데굴 구르는 형민이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벽처럼 안전 장치가 되어 있는 아기 침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형민이는 좀 자라자..잠에서 깨고 난 다음에는 엉금엉금 기어서 침대 난간에 손을 엊고는 두 다리로 우뚝 선 뒤...침대 건너 편의 우릴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만 몸이 넘어 오면 침대 너머로 떨어질 것 같은 곡예를 보면서도..형민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는 게 기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때였습니다. 한 낮에 잠이 들면 살짝 아기 침대에 눕혀 놓는데 우연히 안방 침대 쪽을 보면 잠을 깬 뒤 침대 난간을 잡고 서 있는 형민이를 발견하는 것도 이 때부터였습니다.

8개월 째부터는 형민이도 TV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랑 TV를 주로 보는데 광고 방송이 나오면 열심히 보다가 웃기도 하고 소리 지르기도 합니다. 선화는 화면에 관심을 보이는 형민이를 위해 이 곳에 와 계신 데이빗 김 목사님 집을 방문해서 그 집 아기들이 보는 미국 솔티 비디오를 빌려다가 보여 주었습니다. 형민이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화면에서 찬양하는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비디오가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질 않았습니다.

9개월 중반 정도에는 형민이의 머리가 너무 길다는 판단을 하고...온 가족이 쉐브첸코 길가에 있는 한인이 경영하는 미장원에 가서 이발을 했습니다. 저나 선화의 이발도 중요했지만..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형민이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었지요...날이 더워질수록 땀띠가 생기고...아빠를 닮아서인지..땀을 늘 줄줄 흘리기 때문에 긴 머리카락은 너무 더워 보여 하늘로 치솟아 자라는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오후 미장원이 떠나가라고 울부짖는(?) 형민이의 울음소리 속에서 미용사 아주머니와 저 그리고 선화 이렇게 세 사람이 형민이를 붙잡고 머리를 깎았습니다. 스포츠 형으로 아주 짧게 잘라달라고 부탁했고...아니나 다를까...바리깡으로 형민이의 머리를 빡빡 밀어 버렸습니다.

 

9개월 중반...이발을 한 형민이와 선화가..노을이 지는 창문가에 서서 아빠를 보는 모습입니다.

창너머로 지평선 아래로 지는 태양이 보이시죠....이곳에서 보면 정말 환상적입니다...

중앙 아시아의 대평원의 아스라이 이어지는 지평선 아래로 해가 질 무렵에는 하늘 빛깔은 도저히 물감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것입니다.

형민이는 이렇게 스포츠형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뒤...시원해 졌는지..땀띠가 많이 줄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형민이는 이제 한 손만 잡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앉혀 놓으면...뭘 잡든지..억지로 끌어 당겨서...짚고 일어 납니다. 그리고 상대가 아빠나 엄마라면...팔을 끌어 당겨서 어디론가 가자고 하지요...2주 전부터는 형민이 손에 붙잡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형민이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 가느라...우린 파김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궁금한 게 많은지..이 집안에 있는 문고리는 다 열어 보고...집 안에 있는 화장품, 볼펜, 컵...뭐든지 손에 닿는 건..잡아 보고 던져 봅니다. 게다가 한 손을 잡고 좀 걷다가...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여서 뛰어가려고  하는데..도대체 아무것도 안 잡고 혼자 서 있을 수도 없는 아기가 뛰려고 하는 걸 보면 기가 차지요......

 

10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엄마, 아빠가 없어도 아무거나 잡고 일어서서 한 손으로 몸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원하는 것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이제는 무릎으로 잘 기어 다닙니다. 사실...전에는 무릎으로 기려는 자세만 취했지...실제로 기어 다니지는 않았는데..요즘은 무릎을 기어다니는 것은 완전히 마스터했습니다.

10개월이 되었지만...엄마를 떠나지 않으려는 건 여전합니다. 8,9개월 때에는 낯을 가리기 시작해서 다른 사람은 근처에 가지도 못했는데..요즘은 그래도 좀 나아져서 몇 번 눈에 익은 사람이 다가와서 안아 주면...잠시 안겨 있기도 하지요...

그리고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달라진 건 형민이의 모방 능력입니다. 며칠 전부터는 제가 전화 수화기를 붙잡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선 거실에 있는 전화 수화기를 들고 귀에다 대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선화와 제가 형민이 앞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도리도리"를 보여 주었더니..아니나 다를까 형민이는 자기 머리를 좌우로 돌리며 "도리도리"를 따라 하더라구요...우리도 웃었고 형민이도 웃었습니다. 우린 너무 신기하고 즐거워 계속 도리도리를 하고...형민이는 엄마, 아빠 웃는 게 좋아서인지 더 환하게 웃으며 도리도리를 하고...선화 말로는 요즘에는 형민이 돌보는 게 조금 더 재미있어 졌다고 합니다. 뭔가 알아 듣고 따라 하니까 그럲다고 합니다.

치아도 이제 아래 쪽 2개가 완전히 올라왔고 위쪽 1개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형민이의 아랫쪽 이가 잘 나온 사진입니다. 우린 형민이를 기르면서 '고국에 계신 형민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형민이의 이러한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란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습니다.

형민이가 한 손만 잡고 여기 저기 뛰어 다니는 걸 보시면 정말 좋아하실텐데....

형민이 뒤쪽으로 보이는 벽을 가진 침대가 아기 침대입니다....

이렇게 낯선 땅 까작스딴에서 형민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이젠 햇볕에 제법 거슬려서...까작 아이들처럼 지내지만...이 곳에 있는 "말라도이 까레옛찌(어린 한국인)" 로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이곳 교회에서도 현지인 누나들로부터 전폭적인 사랑과 지지를 얻으며 까작스딴 생활을 하고 있지요...

형민이를 기르면서...아기를 기르는 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분유를 물에 타서 먹이긴 하지만...수 많은 열병 속에서..두어번 침대에서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한 시라도 눈을 팔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형민이는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형민이로 인해 우린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형민이 때문에 우리가 위로 받기도 합니다. 너무 황당한 일을 당할 때에도...천연덕스럽게 환하게 웃는 형민이의 얼굴을 보면...다시 한 번 힘을 내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13일 아스타나로 올라가서도...추운 날씨와 바람과 모기, 메뚜기들 사이에서도 아마 형민이는 잘 자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아기를 기르는 건 엄마, 아빠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요.....200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