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저의 근무처인 한카병원을 소개합니다....
이곳에 온지 이제 2달 반이 지나갑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어리둥절하고 막막하기만 하던 것들이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고...제가 어떤 상황 속에 던져 졌는지 이제야 사태 파악이 좀 되는 것 같은 요즈음입니다. 이 홈페이지를 보시는 독자 중 어떤 분은 이 곳에 올라와 있는 저의 글들...특히...여러 가지 명승지 얘기와 가족 얘기들만 보시곤 제가 일은 안 하고 놀기만(?)하고 있는 줄 오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것 같아...이번에는 현재 알마티에서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인 한카병원을 소개 드리고...이 기회에 한국에서 왜 절 이 곳으로 보냈는지에 대해서도 얘기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5월 23일에 이곳 까작스딴에 도착한 뒤...한 달간의 현지 적응 기간을 마치고...6월 24일부터...바로 여기 알마티의 한카(한국-까작스딴 친선)병원으로 출근하길 시작했습니다. 첫 한 달동안은 오전에만 병원에 나와 이미 근무하고 계시는 내과 선생님의 일과를 보는 정도였고...며칠 후... 한카병원에 내시경이 들어오고 난 뒤로는 내시경 시술에 주로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한카병원은 대한민국과 까작스딴의 우호협력을 증진하고 까작스딴 국민 보건 증진을 위해 대한민국에서 150만불을 들여 까작스딴에 건립한 병원입니다.
왜 대한민국에서 까작스딴에 이렇게 돈을 들여가며 병원을 세워야 할까요?
여기서 우린 약간의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한 때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만 불이 넘는... 말 그대로 잘 나가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국내외적으로 '이젠 선진국가의 그룹인 OECD에 가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했고...마침내 한국은 OECD에 가입하게 됩니다. OECD는 협의체이고 의사 결정 방식도 만장 일치제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OECD에 가입하게 된다면 선진국 중심의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고 우리 나라의 이익을 세계 주류 사회에서 잘 대변할 수도 있기에 ..OECD에 가입할 필요는 충분히 있었던 거지요....
OECD에 가입하게 되면...OECD산하의 여러 위원회에 가입해서 국가 간의 현안을 토의하게 되는데 ...OECD에서 다루는 내용 중 한 가지가 바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개발 불균형 즉.."남북문제"의 완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세계 인구 58억 중 80%가 개도국 인구이며.... 이중 1/3 이 절대 빈곤(1일 1불 미만) 인구이고 세계 48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50불 이하의 최빈개도국에 속해 있습니다. 또 매년 1,300-1,800만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있고 세계 인구 증가의 98%가 개도국에서 발생하고 있지요...
이러한 문제는...지구촌 시대에...단지 개도국의 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범지구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도국에 의한 환경 파괴, 자원 고갈, 인구 증가, 난민 발생, AIDS, 마약 등의 범세계적 이슈에 대해 선진국가들의 공동 대처가 필요하게 되었고 개도국의 안정 없이 선진국의 안정도 보장받지 못하며 개도국의 경제 발전은 오히려 선진국에 기회로 작용한다는 점이 선진국가들에게도 새롭게 인식되어 선진국의 관심은 증가하게 되었습니다.....바야흐로 남북 문제(North-South problem)로 통칭되는 개발도상국가의 개발 문제가 인류가 지구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추진해야 할 21세기 중요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어쨋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소위 선진국에서는 개발도상국가에 도움을 주는 이른 바 "원조"를 하게 되는데..이 원조라는 단어도 요즘은 원조를 받는 나라(수원국)의 입장을 고려해서 국제협력, 개발협력이라는 용어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는 원조가 아니라 ODA(D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이며 '공적개발원조', '정부개발원조' 라는 용어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OECD에는 OECD 개발원조 위원회(DAC)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에서 선진국가들끼리 모여 서로서로 개도국에 ODA를 주는 것에 대해 협의하고 있는데...현재 22개국과 유럽연합이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원회에는 OECD 가입국이라고 해서 모든 가입국이 다 회원국으로 참석하고 있지는 않은데...만약 이 위원회에 가입하게 되면...GNP의 일정한 비율을 다른 나라를 위한 ODA로 사용해야만 하는 국제적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국제 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의 사명을 준수하고 있다는 것으로 통하고 있으니까요....그래서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했다곤 하지만...멕시코, 아이슬란드 등과 함께 비회원국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OECD 국가별로 GNP에서 ODA가 차지하는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1999년 자료를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호주 0.26%, 오스트리아 0.26%, 벨기에 0.30%, 캐나다 0.28%, 덴마크 1.01%, 핀란드 0.33%, 프랑스 0.39%, 독일 0.26%, 그리스 0.15%, 아일랜드 0.31%, 이탈리아 0.15%, 일본 0.35%, 륙셈부르크 0.66%, 네덜란드 0.79%, 뉴질랜드 0.27%, 노르웨이 0.91%, 포르투칼 0.26%, 스페인 0.23%, 스웨덴 0.70%, 스위스 0.35%, 영국 0.23%, 미국 0.10%입니다. 적어도 OECD 국가라면 다른 나라를 위해 평균 0.24%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지요...
그러면 한국은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요?.........한국은 0.08%입니다....최하위권이지요...그래서 한국은 아직 OECD 개발 원조 위원회에 정회원 자격으로 참석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언제든 참석할 수 있지만...그 위원회에 가입하려면 적어도 GNP의 0.24% 정도의 돈을 사용해야 하니...국가적으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도 한국의 입장으로는 OECD에서 그래도....선진국 흉내를 내려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ODA 비율에 따라 가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다른 국가에서 인정을 해 줄 수 있으니까요....그래서 현재 제가 소속되어 있는 국제협력단 같은 단체를 만들고 한카병원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나라에 무상 지원을 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율로는 덴마크 같은 북구 유럽 국가들이 높지만 총액 기준으로 하면 단연 1위는 일본입니다....일본은 150억 달러 이상을 사용하고 있고 미국은 비율은 작지만 2위의 금액으로 9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말이 많습니다. 이 ODA 통계에는 군사 원조는 제외하기에 군사 부문을 포함하면 미국이 1위라는 얘기도 있고...일본의 ODA는 순수하게 돕는 의미보다는 장사 속이 더 많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쨋든 이런 규모에 비해 한국의 금액은 3억불 정도밖에 안 됩니다......
제가 이 곳에 온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의 ODA 공여 활동의 일환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큰 뜻 아래에서.....)
사실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하고 까작스딴에서 있다 보면...조국인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아직 ODA의 비율이 국제 사회에서는 명함을 내밀기에 부끄러운 수치이기에...빨리 성숙한 나라가 되어...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한카병원 덕택에 알마티에서 살고 있는 700여명의 한인들은 다른 해외 동포들에 비해 많은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비록 까작인과 러시아인들을 위한 병원이지만...한국 사람도 많이 찾아 오고 또 쉽게 이용하기에 한카병원을 세워 준 국가에 고마움을 가지고 있습니다.....이곳에 와 있는 한 미국 의사는 알마티에 건립되어 있는 한카친선병원으로 보고 "very impressive!" 한 사실이라며...놀라움을 표현했다고 합니다...극동의 조그마한 나라인 한국에서 이 까작에 미국도 세우지 못한 현대식 병원을 세웠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거지요...
한카병원에는 내과, 외과, 치과, 한방과가 있고 외과, 한방과에는 정부파견의사이신 민병훈, 선종욱 선생님이 각각 파견 나와 계십니다. 내과와 치과는 국제협력의사가 담당하고 있는데....현재 내과는 김동환 선생님이 치과는 장재필 선생님이 근무하고 계십니다...제가 한카병원에서 근무할 수도 있지만...내과 선생님이 이미 계시기에...이 나라의 수도인 아스타나로 가게 되었고...아스타나에는 한카병원과 같이 한국인 병원이 없고 제가 가야 할 병원도 현지인 병원인 제 1병원으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처음 까작스딴에 파견되어 약 3개월동안 있었던 알마티의 생활은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스타나에 갔었더라면...정말 힘들었을텐데...이제 이 나라의 의료 시스템도 어느 정도 알 게 되었고...제가 어떻게 일을 해야 할 지도 이제는 짐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카병원에서 김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는 동안 전....주로 내시경을 맡아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전..레지던트 시절 주로 소화기 내과에서 내시경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내시경 기계는 올림푸스가 아니고 한국의 개업의들이 주로 쓰는 후지논 이지만....새 기계라서 성능도 우수합니다. 이 내시경으로 주 까작스딴 한국 대사님과 참사님...그리고 한카병원의 원장이신 민선생님의 위내시경 검사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한카병원 내시경실은 수면 내시경을 시행할 정도로 경험이 쌓이고 있고...요즘은 좀 더 나은 내시경 세척에 대해 고민할 정도입니다.
전 이런 병원에서...지난 2개월간 근무했었습니다. 이 곳 내과에서 근무하면서..요즘은 외래 환자도 가끔씩 보고....최근 시작한 건강 진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스타나로 올라가게 되면 여기와 같은 우수한 시설에서 근무할 수는 없습니다. 내시경만 해도...이 나라에는 모니터가 달린 내시경이 없지요...다 내시경 위에 달린 렌즈를 통해 직접 눈으로 보면서 시술하는 소위 "옵틱" 방식의 내시경만 있고 대부분 러시아 제입니다. 게다가 국가에서 경영하는 5병원 내시경 실을 가 보아도 내시경 시술을 쉽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윤활제의 사용도 전혀 없고...내시경 소독 역시...그야 말로 야전 병원 수준이었지요.....아마 아스타나도 그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요즘 아스타나에서의 진료를 위해 많이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사 문제와 함께 그 곳에서 까작인들을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요....대한민국에서 파견한 내과의 이성훈....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오는 8월 13일 아스타나로 올라갑니다. DAC회원국의 ODA 비율을 떠 올리지 않더라도....어렵게 대한민국에서 파견한 인력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열심히 일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될까요?........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