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작에서 얻은 첫 집 - 사말 드바 50번지

까작에서 제대로 정착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만 물질적인 조건으로는 무엇보다 임시로라도 거주할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할 것이고, 다음으로는 부산에서 이곳으로 보낸 화물들이 무사히 까작까지 도착해야 하겠지요....

까작에 도착한 건 수요일이었는데....이곳에서 살 집으로 이사한 건...삼일 뒤인 토요일이었습니다. 저의 최종 임지는 아스타나이기 때문에 알마티에서 현지 적응 훈련을 받는 1-2개월 동안만 거주할 집이라 오래 살 수는 없을 테지만....어쨋든 이 곳에 있는 동안에 머물 소중한 보금자리이기에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부터 기대하는 맘이 컸었습니다.

미리 와 계신 김 선생님의 도움으로 미리 봐 두신 두 군데의 집을 둘러 보았고 둘러 보자마자 바로 결정했습니다. 주소는 사말 드바 50번지 28호입니다.

사말 드바의 저녁 거리...한국의 강남입니다.

사말 드바는 이 곳에서 한국의 강남으로 불리는 주택가입니다.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가로등이 있고 치안도 좋은 상태입니다. 이유는 이 근처에 대통령 관저가 있었고 예전 소련 시절에 당원들과 공무원들이 주로 살던 지역이기 때문이랍니다. 게다가 저희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람스토르 라는 우리 나라의 E-마트 같은 큰 매장이 있어서 쇼핑하기에도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까작의 아파트들은 겉모습은 예전 공산주의 시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벽면의 도색은 전혀 되어 있지 않고 시멘트 채로 남아 있거나... 빗물과 함께 흘러 내린 녹이 드문드문 보이고 때 묻은 흰색이나 회색의 오래된 페인트칠만 구경할 수 있는 단조롭고 삭막한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건물의 색이 다양하고 깨끗하다면 주변의 수목과 어우러져 더 멋진 도시를 만들어 낼 텐데.......' 아쉬운 맘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집인 사말 드바 50번지의 입구 

까작의 강남이라는 사말 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건물 벽 도색을 언제 했는지....한 눈에 아주 오래된 건물임은 알 수 있는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고 아파트 주변에서 간이 축구 골대가 세워진 공터와 어린이 놀이터를 볼 수 있습니다. 주차장도 건물 주변에 있지만 제대로 시설을 갖춘 것이라기 보다는 길가에 세워 놓는 식입니다. 물론 사말에는 지붕이 있는 주차장도 있었습니다. 건물 내로 들어가보면 컴컴한 조명에 습기찬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고 눅눅한 시멘트 벽으로 건물내가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분필로 낙서된 벽면을 따라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네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서는데 엘리베이터 버턴에 불이 켜져 있으면 아무리 눌러도 우리가 서 있는 층으로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엘리베이터 버튼의 등이 꺼진 상태에서 눌러야 이 곳으로 엘리베이터가 달려 오게 되어 있지요...

 대부분의 집들은 이중 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깥쪽은 철문이고 안쪽은 나무문이 있어서 보안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긴 외부인에게 함부로 문을 열어 주어선 안됩니다.(한국도 그렇지만...) 경찰복을 입고 문을 두드려도...혹은 대통령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도 열어 줘선 안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회가 불안한  것이지요...(물론 사말은 좀 덜하다고 하지만....)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웃음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물이 군데 군데 녹이 슬어 있는 흰색이나 회색빛 건물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도 밝지가 않습니다. 통제와 획일된 삶을 영위해 오다 이제 막 개방이 된 까작스탄.....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도 사회적, 문화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게 분명한 듯 합니다.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 중.... 공산국가의 흔적이라고 보기 힘든 건 여성들의 옷차림입니다. 이슬람 국가라고는 하지만 러시아 정교를 믿는 러시아인들이 40%나 차지하는 데다... 독립 후 찾아온 개방의 물결로 인해 유럽 한 복판이라고 할 만큼 여성들의 옷차림이 화려합니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소녀들의 초미니 스커트와 상반신을 거의 다 드러내 보이는 옷 차림은....어느 봉사단원의 말한....'총각들을 위한 도시' 의 의미를 떠올리게 할 정도니까요....

 사말 드바의 우리집은 세칸짜리 집입니다. 이곳에서는 "몇 평?"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고 "세 칸짜리...","네 칸짜리.." 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세 칸 짜리 라는 말은 방 두 개에 거실 한 개가 딸린 집입니다. 물론 욕실이나 부엌은 기본이구요....세칸짜리라고는 하지만 한국으로 치면 약 사십 평 정도 되는 집인데...여기서는 작은 세 칸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까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집에서 사는 모양입니다.

거실에 혼자 앉아 있는 형민이의 모습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겉보기와 다르게 실내가 깨끗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아실 겁니다. 독립과 개방 이후...이곳에서는 집을 수리해서 월세로 임대해 주는 사업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몇 천불을 들여 집을 수리하더라도 몇 년만 집을 빌려 주면 본전은 쉽게 건질 수 있고...더 많은 수입을 거둬 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과 달리 이곳은 집을 임대해 줄 때 기본적인 물건들을 집과 함께 임대합니다. 저희 가정의 경우...한국에서 맨 몸으로 이곳에 왔지만....TV, 오디오, 냉장고, 전자렌지, 장롱, 침대, 쇼파, 책장, 책상, 식탁, 전화기, 세탁기, 솥, 냄비, 숟가락, 주방용품, 탁자 등....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거의 다 갖춰 놓은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통째로 임대하게 되니까....한국처럼....이사하는 데 힘과 경비가 별로 안 들지요........

 하지만 이렇게 편리한 주거 문화를 가진 이곳도 단점은 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이 곳의 가옥들은 거실과 현관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많은 집들이 실내에서 신을 신고 다니는 서양식 주거 형태를 취하고 있고....일부... 집 안에서 신을 벗는 집이라 하더라도...현관이 따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거실 한 쪽에 신발을 벗어 놓고 들어 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먼지도 많이 생기는 것 같고....한국에서의 깔끔한 생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로선...여간 거슬리는 게 아닙니다. 한 번씩 거실을 걸레로 닦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먼지를 볼 수 있습니다.(집이 너무 넓어 거실을 닦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 집의 또 한 가지 문제는 주방입니다. 싱크대의 개수대가 너무 작고 찌꺼기가 쉽게 걸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개수대가 작다 보니...설거지 하기도 힘이 듭니다. 개수대의 찌꺼기를 거르는 시설이 형편없기 때문에 조금만 설거지를 하면 물이 안 내려가고 찌꺼기가 걸려 몇 번이나 찌꺼기를 건져 내야 합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이 집에 들어온 뒤...설겆이는 거의 제가 다 하고 있는데...한국에 비해....개수대 찌거기 처리가 힘들다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한국과 달리....쓰레기 분리 수거를 안 하고 있어서...음식물 찌거기를 그냥 다른 쓰레기와 함께 버려도 된다는 장점이 또 있더군요. 그래도 한국에서부터 분리 수거 습관이 배여 있어 그런지...웬지 다른 쓰레기와 함께 아파트 밑의 쓰레기 하치장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는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하지만 분리 수거 시설이 안 되어 있는 이 나라에서는 이 정도의 양심의 노크는 눈 감아 버려야 하겠지요....

거실 벽에 세계지도, 알마티 시내지도, 까작스탄 지도를 붙였습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한국에서 이 정도의 집에서 사려면 꽤 많은 돈을 줘야 할 텐데...저희들은 전기세, 수도세, 유선 TV 시청료(월 14불을 지불해야 아리랑 TV가 나옵니다), 시내 전화료를 집세에 다 포함해서 한 달에 450 달러를 주기로 하고 계약했습니다. 꽤 좋은 조건에 집을 구했다고 다른 분들이 그러시더군요...저도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곳에 있는 대부분의 집이 그렇듯이 저희 집도 창문이 동서로 나 있어서 햇볕이 많이 들어오고 여름에는 그래서 더운 편입니다. 하지만 저희 집은 앞쪽 아파트 그림자 때문에 비교적 햇볕이 덜 들어와서 시원한 편이라고 김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해가 질 무렵인 밤 9시 넘어...형민이와 선화와 함께...집 밑에 있는 람스토르 까지 산책 겸 쥬스를 사러 가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이 곳에는 해가 지는 10시 가까이 되면 집에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 나오더군요...옹기종기 앉아 얘기하고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것을 보면서....세상 어디에 가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팝송 같은 것을 틀어 놓고 모델 처럼 걷기도 하고....댄스 같은 것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아파트 주변의 놀이터에서 한국 아이들처럼 고무줄 뛰기도 하고(여기도 고무줄 뛰기를 합니다. 정말 유래가 궁금하지만....) 남자 아이들은 주로 축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선화와 전...형민이를 업고(carrier에 싣고 다닙니다) 그네 주변에 서서....형민이에게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형민이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형민이의 눈에는 어른과 아이가 구별되나 봅니다. 특히 형민이 보다 한 두 살 많은 형님, 누나들을 보면...양팔과 다리를 흔들면서 함께 놀려고 안달입니다. 거기에 팡팡 튀는 공 같은 게 보이면 소리를 지르면서....마치 자기도 공을 차는 양....다리를 흔들어 대지요.....

 우리 집에는 조그마한 바퀴벌레도 삽니다. 한국보다는 작은데....이곳으로 이사온 지 몇 일 안되어 제법 많이 목격하고...대책을 강구해야 겠다 싶어 한국 식당인 로뎀에서 튜브형으로 된 바퀴벌레 약을 구입했습니다. 400탱게 정도 하던데....해충 방역 전문 업체에서 사용하는 강력한 바퀴약입니다.

 선화와 함께 바퀴벌레가 잘 다니겠다 싶은 곳마다 조금씩 약을 짜 놓았습니다. 다음 날....군데군데....바퀴벌레의 주검(?)들이 발견되는 걸 보면 정말 효과가 있다 싶었습니다. 혹시 한국에서 바퀴벌레로 고생하시는 분이 있으면 튜브형 바퀴벌레 약이 효과가 있음을 까작에서 임상 실험을 거쳐 알려 드립니다.

해가 질 무렵 거실의 창문에서 북쪽 지평선을 바라본 장면 

까작스딴에서 가진 첫 보금자리....아주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몇 번의 에피소드도 있었지만....그것도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까작에서 선화와 형민이...그리고 저....무사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지들...그리고 서부산교회 교우들과 새벽별 지체 및 방문자 여러분....비록... 멀리 한국에서 떠나 외롭게 나와 있지만....한국에서도 그랫듯이.....이 곳 까작 땅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살아가기에 슬프거나 외롭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