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비자, 카쟈흐스탄으로 가는 비행기표........

아침에 협력단으로부터 출국에 필요한 여권, 비자, 각종 증명서, 물품 등을 택배를 통해 받았습니다. 내일 이사를 앞두고 분주한 맘으로 하루를 맞았는데...때 마침 날아온 소포는 우리 맘을 더욱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형민이도 여권이 있습니다. 보통... 아기들은 엄마 여권 뒤에 사진 한 장 붙여서 여권 없이 엄마와 함께 움직이기도 하는데...형민이의 경우는 단독 여권을 만들었습니다. 혹시나....한국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형민이을 너무 보고 싶어 하시지는 않을까 싶어.....카작스탄에 양가 부모님들이 들어 오실 경우...형민이를 데리고 출국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장치입니다. 물론 다시 다른 분과 함께 형민이가 카작스탄으로 입국할 수도 있으니까요....

형민이 여권 사진 찍을 때...선화가 데리고 가서 찍었는데(그 때 전..서울에 있었지요) 사진사 아저씨 앞에서 얼마나 딴청을 피우던지...증명 사진 하나 찍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군요...하지만...이제 7개월 남짓한 형민이가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버젓한 여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조그만게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이 여권은 형민이가 자라고 나면 큰 기념이 될 것 같습니다. 만 3돌이 지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형민이의 기억 속에는 카작스탄이나 러시아어의 기억이 나이가 들어서까지 남아 있을지 만무하지만.....이렇게 아빠, 엄마와 함께 먼 나라로 날아 갔었다고 여권 속 사진까지 보여 주며 얘기해 준다면....먼 옛날의 낯선 추억 한 장면을 기억해 낼 지도 모르지요....

 갈 때는 에어 카작스탄 항공기를 타고 출발하는데...정확하게 얘기 드리면 5월 22일 저녁 8시 10분에 인천 국제 공항에서 출발합니다. 부산에서는 김해공항에서 KE1142편을 저녁 4시 10분에 타는데....김포공항에 도착하자 말자...수화물들을 따로 인천으로 보내기 위해 수속을 한 뒤 영종도로 이동하게 되지요...

에어 카작스탄 항공기는 일본까지는 직항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에는 직항로가 있습니다. 옆 사진은 비행기표를 넣은 항공사 봉투의 뒷면을 촬영한 것인데...대강 보면 아실 테지만....실질적인 수도인 알마티에서 출발하는 항공편들은 주로 유럽을 향해 출항하고....당당히 한국이 그 사이에 끼어 있지요...

아마도 10여만에 이른다는 고려인들과 최근 카작스탄과 가까와진 한국과의 국제적 관계 때문이겠죠.....전...아직 외국 국적의 항공사를 이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KAL이나 아시아나가 아니라 약간 불안하기도 하지만.....친구 말대로...KAL은 사고 났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카작스탄 항공기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으니....안전하리라 생각하고 갑니다....물론 저희 가정의 안전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겠지만.....

협력단에서는 비자까지 다 받아서 여권을 우리에게 줍니다. 왼쪽을 보시면 협력단에서 한국의사임을 증명하는 조그마한 카드도 발급해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권은 관용여권입니다. 3년짜리죠...3년이 지나면 효력이 만료됩니다. 일반여권이 아니라 관용여권을 사용해서 외국에 다녀 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한국을 훌쩍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 중 한가지는 그 동안 가깝게 지냈던 많은 분들과 아쉬움의 인사를 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헤어질 때는 말없이 가야 하지만....섭섭한 맘을 꼭 나누고 싶은 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부산대학교 병원의 소화기 내과 교수님과 병동(선화의 경우 이전에 근무한 일반외과 8병동을 다녀왔습니다)...그리고 어느 모임보다 저희 가정과 각별한 새벽별(부산의대 기독학생회 학사모임) 식구들.....그리고 서부산교회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가족들과는 송도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고...새벽별 모임과는 지난 토요일 밤에 함께 모임을 가졌습니다.

다들 바쁠 텐데도...토요일 저녁 시간을 아낌없이 저희 가정을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물론 병원 생활을 하는 모임이라....참석하기 힘든 사람도 있었지만....동기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남포동의 배비장 보쌈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모습입니다. 당직임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나왔던 신권이와 기욱이의 모습이 눈에 띄네요....

식사할 때는 못 왔지만 태성이와 원택이는 멀리서 자리를 빛내 주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최근(?)에 결혼한 승익이의 집으로 가서...함께 얘기를 나눈 뒤...마지막으로 떠나는 저희 가정을 위한 중보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선화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진다는게 참 슬픈 모양입니다. 떠나기 전에 특송을 부르라는 말에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슬픔 없네..두려움 없네....." 를 함께 부르는데...선화가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앞으로 어떤 일이 다가올 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눈 앞에 보이는 다정했던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 슬펐기 때문일 겁니다.

1990년...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해서 알게 된 동기들과 그 푸르른 대학시절 함께 땀을 흘린 선후배들을 두고 이제 우리 가정이 먼 타국으로 가게 된 것이죠...

승익이네 집에서 다시 한 번 기념 사진을 찍고 어두운 거리로 나와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축복하며 헤어졌습니다.

 지난 30년 이상 살아 온 땅에서의 삶을 정리하는 건 일주일도 걸리지 않음을 보면서..언제가 정말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는 정말 훌훌 가 버리고 말겠구나...라는 이상한 생각마저 듭니다.

 본가가 있는 정든 땅...부민동을 떠나는 것도 참 섭섭한 일입니다. 전 초등학교 다니기 전...5살 정도 때부터 지금 본가가 있는 부민동 임시 수도 기념관 옆에서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하게 되는 이사 속에서 ....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하기가 일쑤지만...전 초등학교 일학년 들어간 이후로 한 번도 부민동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옆 사진에서 보는 선화 뒤로 나 있는 길은 그 어린 시절...제가 뛰어 놀던 곳입니다. 주변의 건물은 새로 지어졌어도...길따라 나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고...주변의 큰 집들과 조용한 주택가 분위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정말 좋은 곳이지요....

하지만...정든 이 길도 떠나야 합니다. 임시 수도 기념관에 심어진 벚나무에서 해마다 4월이 되면....비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꽃비를 맞으며 봄정취에 푹 젖어드는 것도 이제 잠시 중단해야 하고.....이젠 열매를 맺지 못하는 플라타너스 나무지만....그 넓은 나뭇잎을 보면서 초등학교 시절....나뭇잎에 손을 대기 위해 길을 달려 내려가 나뭇 가지 위로 폴짝 뛰어 오르던 추억을 되살려 보던 것도 이제 접어 두어야 합니다.

아마 카쟉스탄에 있으면서 이 곳을 아주 그리워할 겁니다. 누구보다도...그 곳에서 이 웹페이지를 열어 보면서....부민동 주택가 거리를 떠 올리겠지요..

그 길의 중앙에 고등검찰청장 관사가 있습니다. 관사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붉은 장미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선화에게 서 보라고 하고...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3년 뒤...5월의 어느 날...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이 장미들을 배경으로 선화와 형민이를 다시 촬영할 생각입니다. 그 때...이 사진을 보며...세월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가 있겠지요.....

내일....이 컴퓨터도....항공 수송을 위해 서울로 보내야 합니다...정말 ....이 컴퓨터는 별의별 경험을 다 합니다.(데스크 탑인데도...) 서울도 부족해 알마티까지 저와 함께 갑니다. 알마티에서....인터넷 접속선을 다시 찾게 되면....our story를 통해서라도 여러분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공항에서의 모습이나...떠나는 날의 모습은 카작스탄에서 전할 수 있겠군요....대한민국에 있는 동안 이 곳을 사랑해 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 다시 소식을 전할 때까지...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