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29일 수요일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 28일 화요일 저녁에는 기독학생회 출신 원내 선후배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주 서부산교회 청년 대학부 모임 이후 다시 가지는 큰 모임이다.

 선화의 동기들이 병원 인턴 기수라 인턴 선생님들도 모두 부르기로 했고 그 외 원내 회원들을 챙겼다. 처음에는 훈식이가 간단하게 식사나 하자고 얘기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어차피 한 번 인사해야겠기에 좀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낮에는 대학병원 원목실의 정한규 목사님이 결혼식때 축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물론 축도는 서부산교회 1대 목사님이신 이기석 목사님이 하시기로 내정되어 있기에 힘 들다고 얘기드렸지만 너무 감사했다.

 만나는 시간이 저녁 7시 응급실 앞이라....모두들 저녁을 못 먹고 배가 고픈채 7시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하루 일정이 대부분 그 정도 되어야 정리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배비장 보쌈에서 11명이 모였다.  훈식,현국,원택,영상,태성,영미,병득,익진,나,선화,병재....우린 그 곳에서 함께 식사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막상 특별한 얘기는 없었지만 결혼이라는 큰 사건이...... 모여 있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선화는 night 근무 때문에 병원으로 들어가야 했고 몇몇 회원들은 병원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차를 마신 뒤 함께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bowling)

그리고 다음 날인 29일은  도개공 아파트로 이사하는 날이다.

 병원 근무에서 빠질 수 없고 계속 내시경을 해야 하므로 점심시간까지는 꼼짝할 수 없었다. 이게 웬일이야...감사하게도.....다른 날보다 내시경실 오전 일과가 일찍 마쳐졌다. 12시 10분 전.  이삿짐을 나르는 영훈이에게 연락해 보니 아직 집에서 책과 책장을 싣고 있었다. 급히 집으로 가 떠나는 걸 보고 따로 이사할 도개공 아파트로 떠났다.(현희가 도와 주러 왔기에 용달차는 함께 탈 수 없었다.)

 101동 1303호가 집이다. 도착해 보니 선화짐이 먼저 도착해서 피아노와 농, 가스렌지, 세탁기 등이 들어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내가 가지고 온 건 책과 책장. 컴퓨터 책상이다. 한 낮의 더위 속에서 그 많은 책을 영훈이와 현희가 날랐다. (너무 감사하다.)

 집의 가전제품이나 큰 물건들은 배달을 이곳으로 하도록 만들었기에 일일이 나르지 않아도 되었고 피아노도 조율하시는 분들이 조율과 운반을 함께 하기로 하셔서 그 쪽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아도 되어 간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에는 피아노 조율하는 사람들과 장롱을 설치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장모님과 선화가 나와 있었다. 선화는 어제 NIGHT근무를 했기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바로 이 곳으로 나와 일하는 바람에 매우 피곤해 보이고 얼굴도 상해 보였다. 하지만 선화는 집에 가지 않겠단다....하긴 내 집 이사니까....

 조금 책과 책장을 올려 놓은 뒤.......

현희와 선화동생 정우와 영훈이를 데리고 아파트 상가 내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박찬호의 13승 째 경기를 보며 먹은 뒤 다시 1303호로 돌아왔다. 남은 짐을 다 정리하고 영훈이와 현희를 보낸 뒤 선화와 난 작은 방을 우리의 서재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오후는 내과 외래 환자를 봐야 하는 시간이다. 난 아파트의 상황이 힘들다는 것을 직감하고 병원에 전화해서 오후 외래를 볼 수 없다고 얘기하고 집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색이 다른 책장들을 배열하는 것과 좁은 공간을 이용해 책상과 컴퓨터 책상을 배열하는 것 하며.... 모든 것이 쉽지 않았고 올려 놓은 책들을 하나씩 풀어서 책장에 배열하는 것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힘이 들고 지치지만 선화나 나나 새로 만들어지는 우리 공간이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안방에는 도배지와 장판과 장롱 색이 잘 조화되고 있었고 나중에 가지고 온 선화의 화장대와 장식장 등도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안방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맘을 평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곧 냉장고가 도착하고...식탁은 내일 오전에 오기로 했단다...

피아노는 거실에 놓이고......20평 아파트가 13층에 있으니 작은 공간이지만  내 눈에는 궁궐같아 보였다. 조율된 피아노를 선화가 연주하고 여러 곡을 불렀다. 동참..우리의 어두운 눈이.. 오 기쁘도다.....

 우리에게 너무 좋은 것이 주어졌다.

결혼을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좋은 공간과 좋은 물건들이 우리에게 예비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렵게 시작할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부모님들이 참 감사했다.

다른 사람의 집이 아닌 우리 집 이삿날....선화와 내겐 행복한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