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가는 길
자동차 면허를 획득한 날은 1999.3.30이다. 자동차를 몰고 다닌 뒤 가장 처음 간 장거리 운전이 밀양이었다. (한 달만에) 당시 원택,병재,석훈이와 함께 단장면 보건소에 방문한 것이었는데 부산에서 출발한 시간이 저녁 7시가 넘은 야간 운전이었다. 물론 차안의 다른 사람들은 불안해 했었겠지만 운전하는 나로선 멋진 경험이었다.
7.16일은 새벽별 모임이 밀양에서 있는 날이다(한 달전에 예정되어 있었음). 이 날은 또 하필 양웅석 교수님 댁에서의 모임도 있었기에 서창(노포동역에서 301번을 타고 30번 더 울산 쪽으로 올라가 종점에서 내린뒤 다시 20분간 시골길을 걸어 들어가야 함) 교수님 댁에서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밀양에 가기 위해 나올 수 있었다. 노포동 지하철 역에 도착한 것이 밤 9시, 차가 있는 동아대 구덕 캠퍼스에 도착한 것이 밤 10시..... 밤 10시에 밀양으로 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동아대 밖으로 나왔다.
구덕 터널을 지나 이내 남해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오늘은 나 혼자 운전하는 거라 적적한 맘도 있었지만...의외로 혼자 가는 여행도 그런대로 할 만 했다. 진영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 밤 10시 40분.... 전화 한 통화 하고....밀양에 있는 원택이에게 전화 했지만 PCS가 연결되지 않았다.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전에 밀양에 간 기억으로는 진영 휴게소 지나 나오는 인터체인지로 바로 빠져 나갔던 기억이 나는데 그 인터체인지 이름을 하필 부곡인터체인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진영 휴게소를 지나 이내 나온 인터체인지는 진영 인터체인지였다. (사실 그 때 그 곳으로 빠져 나가야 했다.) 난 부곡 인터체인지가 아니라는 나에 대한 믿음(늘 실수와 사고의 길잡이가 되는..) 을 의지하고 계속 진행했고 이내 동마산 요금소 앞까지 오게 되었다. 동마산 요금소 앞에서야 내가 지나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계속 가다가(동마산 요금소에서 도로비를 또 내고...) 계속 이렇게 가서는 밀양과 더 멀어지겠다 싶어 사전 지식 없이 내서 분기점에서 대구,칠서 방향으로 선회해서 구마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약간 후회되고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밀양을 지도에서 한 번 확인하고 오는 건데.... 난 동마산 요금소에서 요금소 직원이 대구 방향으로 7 Km 쯤 가면 부곡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대구쪽으로 달리고는 있지만 이후 어느 곳으로 빠져 나가야 될지 모르는 상태였다. 이렇게 계속 가면 대구로 갈 건데....
조금 더 가다가 칠원 요금소 앞에서 고속도로 카드를 뽑아내고 U-턴을 해서 차를 세워놓고 한국도로공사 영업소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밀양 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직원은 내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남지나 영산 인터체인지로 빠져 나가 밀양,수산 방향으로 달리면 될 거라고 얘기했다.
정말 지도가 있으면 잘 이해했을텐데.... (난 이 지역의 위치를 모르니 감을 잡을 순 없었다.) 난 계속 달리다 칠서 인터체인지를 지나 남지 인터체인지로 빠져 나가 남지 입구에서 다시 요금소 직원을 붙잡고 왼쪽으로 가야하는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 보았다. 왼쪽으로 가야 한단다.......밤 길....시간은 밤 11시 10분이 넘었다. 길은 국도였다. 한참 달리니 영산이 나오고 영산 인터체인지를 통해 빠져 나오는 차들이 눈에 보였다.
'그렇구나 ...저 영산 인터체인지를 통해 앞으로 쭉 가기만 하면 된다고 직원이 그랬는데......" 이정표에 수산 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길은 국도가 아니라 지방도였다. 좌우 도로폭이 가늠하기 힘들어 약간 위험하기도 했고 갈림길에서 방향 선택을 잘 못해 다시 U-턴 하기를 두 세 번.... 남지-->송진-->영산-->부곡 에 도달했다. 많은 온천 호텔과 관광 건물들이 시야에 지나가고 난 뒤 이내 시야는 칠흙같은 어둠에 싸였고....헤드라이트에 비치는 야광색의 도로 라인을 보며 계속 차는 달리고 있다.
부곡을 지나 차는 무안을 지났고.... 밀양으로 가는 길에 커브길이 나타났다. 이전에 사고를 낸 거제도의 커브와 비슷한 커브였고 난 조심..조심.... 이 고갯길을 지나니 밀양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밀양시에 들어와 보니 이제는 승익이가 근무하는 단장면 보건지소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PCS 연결이 안 되기에 물어 볼 수가 없고(처음에는 PCS로 물어 볼 생각을 했었다.) 기억을 더듬어 표충사 방향으로 달렸고......가는 길에 두어번 물어 보기도 했다. 우스운 것은 밀양안에서도 계속 승익이가 산내면 보건지소에 근무한다고 생각하며 차를 몰았었다.
산내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표충사 방향이라는 기억이 있었고 계속 차를 몰았는데 이정표에 산외면이 보였다. '산외면이 나오니 산내면도 곧 나오겠지.....' 갈림길에서 물어봤다. "아저씨, 산내면이 어디예요?" "산내면? ...송백 말하는 거예요....이 길로 쭉 가세요..." 많은 갈림길 중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로 계속 달린다.
달 리는 도중 이정표에 갈라지는 곳에 표충사, 단장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제서야.....'아! 승익이가 단장면 보건지소에 있지!...'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확인한 거지만 어차피 단장, 표충사 쪽으로 가야 산내면이 나온다고 한다.....만약 산내면이 단장면 쪽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난 단장면을 못 찾았을 거다.. 길에서 만났던 아저씨가 산내면으로 길을 가리켰을 테고 난 단장면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
계속 달려 밤 12시 30분에 단장면 보건지소에 도착했다......
까만 밤, 시원한 맑은 바람을 마시며 달려온 이 여름밤...
반가운 얼굴들과 만나며 즐거워 했던 그 시간... 마음 한 구석에는 또 하나의 어려움을 무사히 헤쳐 나왔다는 성취감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고속도로 상에 부곡 인터체인지는 없었다. 진영 인터체인지가 부산에서 가장 빨리 부곡으로 가는 길이라 부곡 인터체인지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