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7. 21. 주일>

오늘이 주일인데 나는 Big island로 향했다.

오늘의 여행은 원하는 사람들만 신청해서 가는 option tour 인데 우리학교 애들은 아무도 안가고

진주간전 애들이 8명 교수님, 조교선생님 4분, 그리고 나, 이렇게 13명이 신청을 했다. 비용은 140

dollar.

Big Island는 우리가 있는 Oahu에서 비행기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하와이 군도의 또 하나의

섬이다. 부산과 제주도와의 거리쯤 될 것 같은데 크기는 제주도 보다 크다. 여기 하와이 주변

3000여개의 섬들 중에 가장 커서 Big Island라고 부른다고 한다.(원래 이름은 Hawaii-이 섬이 진짜

하와이 섬인 셈이다.) 이 섬은 여러 이유로 유명한데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용암이 흐르는

활화산이라는 것이다. 나는 단번에 이 섬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모든 shopping을 자제하고 140$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5시까지 로비에 가야했기 때문에 카운터에 morning call을 해 놓고 잤다. 그런데도 긴장과

기대감때문인지 3시 30분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call을 받고 4시 30분에 일어났다. 내영이가

자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조용 아침을 먹었다. 물에 말은 쌀밥과 김치로.

 

TO BIG ISLAND- my best day in Hawaii...

비행기에서 내리자 강한 유황냄새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25인 정원인 tour bus에 올랐다.

우리 13명 외에 호주 사람 남,녀 2명. 독일인 부부 2명, 영국 사람 몇 명(이 사람들은 뒷자리에 쭉 앉아

항상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코스타리카에서 왔다는 사람도 있었고 미국 본토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그 곳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으니까. 처음 들어선 곳에는 온통 화산재로 덮인 황량한 곳이었다. 풀도 볼 수 가 없고 검게

타버린 돌들위에 관광객들이 남긴 흔적만이(I love you, 나 왔다간다.등의 글귀들) 뭔가 살아있어

보이는 유일한 것이었다. Big island의 기온은 호놀룰루 보다 더욱 높다. 위에서 내려쬐는 햇빛뿐

아니라 땅에서 내뿜는 열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 에어컨은 아주 시원했는데 나중에

보니 창에 닿아있던 왼쪽 팔이 벌겋게 되어있었다. 열기에 익은 것이다.

섬을 돌아 조금 지나니 이 섬의 새로운 면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었다. black sand beach라는 곳에

갔다. 모래가 검은 색이었다. 화산 폭발 때 모래가 탔기 때문이라는데 아주 신기했다. 검은 모래와

파란 바다의 조화? 거기다가 거긴 거북이가 많이 산다는데 정말 많은 거북이들이 느릿느릿 수영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화산 폭발은 92년에 있어다고 하고 지금도 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른다고 한다. 드문 드문

뜨거운 연기가 올라오는 곳들이 있었다. 가까이 가려니까 잘못하면 화상을 입는다고 조심하라고

한다. Hawaii Volcanoes National Park에서 Kilauea caldera를 바라보고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용암 분출구(caldera)가 바로 보였는데 그 구멍의 크기란 표현을 잘 못하겠다. 우리는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움푹 들어간, 그리고 풀한포기 없는, 검고 연기나는 커다란

구덩이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외계영화에서 말하는 거대한 비행물체가 내려왔다 간 흔적같이.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 내린 불을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은 정말 위대한 힘을 가진 분이다.

이 섬에 이러한 검은 흔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편은 비가 많아 열대 특유의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란 숲이 있었는데 분화구 주변과 아주 대조적이었다. 또 신기한 것은 Lava flow가 산 중간을 엄청난

힘으로 통과하면서 굴을 만들어 버린 곳도 있었다. 우리는 또 한번 입을 벌려야 했고 난 '하나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라고 흥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해변을 따라 버스를 달리면서 왼쪽 편은 푸른 숲과 폭포가 신선의 나라처럼 펼쳐져 있고, 오른쪽 편은

deep blue의 바다가 해안 자갈을 울리고 있었다. 또 다른 풍경은 앞, 뒤, 양 옆으로 건조하고 황량한

들판(살아있는 풀이 없는)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 나는 계속 감격하고 있었다. 나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 지, 이 땅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지.

중간 중간에 내려서 이 곳 특산품들도 둘러보았다. 코나 커피가 이 곳에서 나는 커피인데 다른 커피에

비해 유난히 쓴 것 같았다. 마카다미아 넛은 새로운 집에서 먹던 땅콩과 또 다른 맛이었다.

군것질거리를 좋아하시는 아빠를 위해 두봉지 샀다.

그리고 양란을 파는 농장에 갔는데,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는 손님들마다 한송이씩 귀

옆에 꽂아 주었는데 결혼을 안한 처녀들은 왼쪽에, 결혼한 사람들은 오른쪽에 꽂는다고 한다.(다들

혼란스러워했는데 내가 내린 최종결론은 이게 맞는 것 같다.)

우리와 함께 간 선생님중에 진주간전에서 모성간호학을 가르치는 송애리 교수님은 너무나 웃기는

분이었다. 지난 2주 가까이 같이 지내다 보니 대충 성격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기같다고 해야하나,

애교가 많다고 해야하나, 하여튼, 버스를 타자마자 계속 졸았는데 앞에 있기가 미안했는지 내 옆에

있던 사람과 자리를 바꾸어 잠시 나와 같이 가게되었다. 평소에도 자기가 교수라는 것에 대단히

자부심을 같고 계시는 모습을 봤었는데, 아! 한참을 고개를 이리 저리로 떨구며 자다가 잠시 깬 사이

뒤에 있던 영국 아저씨 한 명이 여기 모두들 학생이냐고 물었다. 밖을 보고 있던 나는 순간 긴장이

되었다. 이 교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 아니나 다를까 "Everybody are students except me! I am

a professor" 나는 정말 창피했다. 사실 동의대 전점이 교수님이 계시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교수님의

이미지가 구겨지는게 아닌가 해서이다. 우스운 것은 공항에서 교수님이 목 받침대를 사 오시면서

'옛날에 쓰던 게 다 떨어져서 안가져왔는데 꼭 필요할 것 같애.' 하신다. 우리는 많이 웃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곤하게 잤다. 호텔로 데려다 주는 관광버스 안에서도 다들 지쳤는지 조용했다.

끊임없이 웃고 이야기하던 영국 사람들도 조용했다. 그런데 막상 버스에서 내리려니 오늘 함께한

이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뒤늦게 느끼게 되었다. 아주 감격스러운 순간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

감정을 나누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 사진 찍어주고 행복한 표정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자주 눈이 마주쳤던, 키 큰 호주 사람도..

버스에서 내릴 때 다들 크게 인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생각난다.

오늘이 주일이라는 부담도 좀 있었지만 글쎄 후회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났으니까. 다음 번에는 2-3일 일정을 잡아,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고, 그리고 여기에 열방대학(University of nations)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거기도 가보고 싶다.

가슴 뭉클한 하루였다.

 

<1996. 7. 22 월>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날

Kimberly와 재미있는 영어수업을, 그리고 Jed의 kindness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American

Culture수업. 나는 어제 갔다 온 Big Island이야기를 했다.

짧게 만난 사람들이지만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 세상을 보는 시각,

낮선 우리를 대하는 태도, 모든 것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오늘 점심은 우리 학교 학생들과 강인순 선생님, 안혜경 선생님과 Pizza Hut 에 갔다. UH앞에 있는

Hut은 점심시간에 뷔페를 하고 있었다. pizza, ice cream, spagetti, salad등을 신나게 먹었다. 두

분이 동기이기 때문에 서로 가족이야기를 하는데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송애리 교수님

이야기도, 어제 있었던"I'm a professor"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다들 넘어간다. 거기서 우리가 너무

떠들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자제가 안되었다.

오후에 혼자 Waikiki주변을 다니며 선물을 샀다. 정우에게 줄 Levi's 남방을 하나사고 써클

사람들에게 줄 열쇠고리, 우리 과 친구들에게 줄 손콥깎이 모양의 고리, 그리고 같이 갈라먹을 수

있게 macadamia nut이 들어있는 쵸콜릿을 6통 샀다. ABC store에서 sale을 해서 좀 싸게 살 수

있었다.

이제 달러로 계산 하는 게 어느정도 익숙해 졌는데- 사실 여긴 다 정찰제이기 때문에 계산하기 편한

시스템이지만 덧셈을 해서 돈을 준비하고 있어도 세금이 붙기 때문에 다시 잔돈을 꺼내야한다.

더군다나 1센트부터 25달러짜리까지 다양하게 쓰기 때문에 모양에 익숙치 않은 나에게 계산은 또

하나의 스트레스였다-벌써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한다.

저녁에 international market place앞에서 현정, 명자, 영주와 만나 independence day를 보러 갔다.

극장 정말 좋았다. 음향, 화면은 말할 것 없고 쾌적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영화는 사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극소수에 불과했다.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어떤 말에 주위 사람들이 웃으면 우리는 그게 우스워서 웃었다. 영화는 황당한 내용에다가

좋은 영화같지는 않아보였다. 내 생각에- 내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늦게 강인순 선생님과 만나 Regency hotel 마당에 바다를 향해 놓여진 sun-ten용 의자에 누워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의 계획, 비젼. 강인순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여기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갈 거라고 한다. 자기는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공부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도 길 게

내다보고 계획하고 공부하라고 하셨다. 힘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어떤 건물 sky lounge가 특이하다고 해서 갔었는데 10시에 closed. 홀 전체가 빙빙 돌아가서 한

자리에 앉아서 양 사방을 다 둘러 볼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다음에 올 때는 여기데 꼭 와서 차를

마시고 싶다.

밤 늦게 남은 김치와 햄을 모아 부대지개를 끊여 먹었다.

마지막 밤이라 같이 밤을 새려했지만 난 너무 잠이 와서....

 

<1996. 7. 25 목>

내게 1996년 7월 24일은 없다.

집에 돌아와서 하나하나 정리해 본다.

내가 정말 Hawaii에 있었나?

거기서 나는 낯선 여행자의 모습이 아니라 그 곳의 한 일원인 것처럼 지내다 왔다. 이제 진짜 내 집에

왔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그곳이 아직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아직은 한가롭지만 곧 tight해질 삶을 생각하니...

한국은 역시 한국이다. 좁은 땅에서 부딪히고, 치이고, 혼잡함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곳.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 비가 와서 늦게 도착한 비행기들로 아주 북적대고 있었다. 국내선을

갈아타기위해 셔틀을 탔는데 서로 먼저 타려는 사람으로 정신이 없었다. 큰 배낭을 맨 어떤 남자에게

밀려 넘어질 뻔했다. 하와이에서 내 여행가방을 내가 직접 운반한 기억이 없다. 운전사 아저씨든 옆에

있는 어떤 남자든 친절이 들어줬었는데, 여긴 역시 한국이란 생각을 씁쓸하게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내겐 더없이 적합한 여행이었다. 4학년이라는 부담감이 아쉬움과

상실감으로 크게 다가왔던 1학기. 그러면서도 실습과 공부로 틈을 내어 마음의 휴식을 찾지 못하던

내게 이번 여행은 절호의 기회였다.

좋은 추억을 힘으로 삼아 내일은 봉사 준비 기도회에 가야겠다. 그래도 내가 왔다고 기억해서

전화해준 아영이와 병득이 오빠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