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여행기 6  붉은 광장에서 (붉은 광장, 크렘린 궁, 바실리 사원, 아르바트 거리, 모스크바국립대) (모스크바 #5-7)

5-7일째(10월 20일 월요일 밤 - 10월 23일 목요일: 3박 4일 ): 모스크바 여행

10월 20일 월요일 밤:  뻬쩨르부르그에서 저녁 7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는 칠흙같은 어둠이 깔려 있을 때였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러시아 여행 일정을 짤 수 있었던 것은 모스크바에서 여행사를 하고 계시는 UBF 선생님의 도움 덕택입니다. 모스크바에서의 우리 숙소는 살루트 호텔로 예약되어 있었고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살루트 호텔로 향했습니다. 가이드 없이 우리 가족끼리 다니는 여행은 이미 터어키에서도 오랫동안 경험한 바 있고 러시아 사용이 익숙하기에 우리 가족끼리도 이렇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10월 21일 화요일

곤한 몸으로 살루트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뒤 우리는 호텔 안에 있는 '토담골' 이라는 한식당에서 따뜻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힘이 났지요. 우리를 도와 주신 여행사 하시는 UBF 선생님과 이 호텔에서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형민, 시은이랑 호텔 입구에 나와 있는 모습입니다.

살루트 호텔 로비 - 그런데 이날 나오기로  하신 분이 늦게 오시는 바람에 우리가 좀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날은 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었죠.

임신 7개월의 성은이를 뱃속에 안고 아직 돌이 안 된 시은이를 품에 안고 형민이와 함께 하는 이 여행은 선화에게 가장 힘든 여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시기를 회상할 때마다 어떻게 그 몸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는지... 정말 용감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 후 약속하신 선생님이 나타났고 우리는 빗속을 뚫고 예정대로 모스크바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비가 많이 오는 탓에 그냥 주변만 돌아보고 선생님이 하신다는 여행사가 있는 아르바트 거리 쪽으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거리죠.

멀리 엠게우(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가 보이는 길에서 시은이를 안고 기념 촬영하고 있네요. 엠게우의 모양은 아스타나에서도 이를 본 따 만든 건물이 많을 정도로 CIS 권 안에서는 꽤 유명한 건물입니다. 또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 구 소련 시절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습니다.

영미권에 익숙한 우리로선 잘 알지 못하는 명성이겠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이 곳에서 시간을 가졌습니다.

(엠게우 반대 쪽에서, 비와 안개로 모스크바 시내가 잘 안보이네요)

오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아르바트 거리의 맥도날드에서 버거로 점심을 먹고 이내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계속되는 여행에 오히려 휴식이 필요했었는데... 모스크바에선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셈입니다. 임신으로 얼굴이 부어 있는 선화의 모습과 그 와중에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은이가 보입니다.

10월 22일 수요일

다음 날에는 선생님이 보내 주신 현지 기사분이 우리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날도 개었지만... 10월임에도 눈발이 날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습니다.  운전 기사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재미있게 모스크바 여기저기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날은 붉은 광장, 크렘린, 바실리 사원 등을 보기로 한 날입니다.

이곳은 기사 아저씨가 사진 찍으라고 내려 주신 곳입니다. 아직도 이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어쨋든 최근 수리를 마쳤다며 이곳에서 꼭 사진을 찍으라는 기사 분의 권유를 따라 찰칵 한 것입니다.

운전사 아저씨의 배려로 붉은 광장을 잘 찾아 갈 수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 전자 기업으로 인해 어깨가 으슥한 게 사실입니다. 모스크바 중심부 붉은 광장 앞에 이렇게 선명한 삼성 간판이 새겨져 있습니다. 붉은 색 벽돌이 눈에 띄지요?

원래 붉은 광장은 러시아어의 '아름답다'는 "끄라스늬' 라는 말이 '붉다' 라는 단어로도 쓰이기에 빚어낸 오역이랍니다. 아름다운 광장, 멋진 광장이라는 말이 어원인 모스코바의 붉은 광장 바닥에 깔려있는 포석은 다갈색이며, 규모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폭이 70 m이고 길이는 330 m이며 동서로 길고, 남쪽에는 노란색의 대통령 관저, 블라디미르 레닌의 미라가 보존되어 있는 레닌 묘, 북쪽에는 국립 백화점 굼(ГУМ), 서쪽에는 국립 역사 박물관, 동쪽에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성 바실리 성당과 처형장이었던 로브노예 자리가 있습니다.

이곳은 붉은 광장 한 쪽의 바실리 시원입니다.  세라믹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바실리 성당은 이 성당을 너무나 사랑한 이반 대제가 또 다시 이토록 아름다운 건물이 지어질까 두려워 건축가 두 명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1919년 8월 KGB가 성당의 성직자를 총살시키고 1929년에는 역사박물관에 넘겨지는 비운을 겪기도 했고 1936년에는 철거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나 간신히 위기를 넘겨 지금에 이르고 있지요. 1990년부터 이 성당에서 예배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성 바실리 사원은 유명한 게임 테트리스의 첫 화면에 사용되어지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에게 더 친숙해진 것 같습니다.  정말 수 많은 사람들을 중독시켜 “KGB의 음모다” 라는 말까지 유행시켰죠^^  

테트리스를 만든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소비에트 과학원에서 음석인식과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연구원으로 러시아의 퍼즐인 ‘펜토미노’에서 영감을 얻어 1984년에 처음 이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이후 동유럽, 헝가리를 거쳐 서방으로 넘어가면서 명실상부한 역대 최고의 게임으로 인정받았는데 1989년 미국 소프트웨어 배급협회에서 최초로 4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했답니다. 아케이드 버전, 휴대용 게임, 콘솔 게임, 모바일 게임 등 무려 59개의 게임 플랫폼에서 위용을 떨친 이 게임은 “믿지 못할 만큼 간단하고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중독적이다”라는 평을 얻었지요. 당시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던 소련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게임의 인기와 상관없이 돈을 벌지 못했던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 96년경부터 마이크로소프트와 테트리스 컴퍼니에서 일하면서 게임개발자들의 영웅으로 [해트리스], [클락웍스] 등의 게임을 만들며 계속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붉은 광장 서쪽에 있는 국립 역사 박물관)

바실리 사원을 뒤로 하고... 크렘린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붉은 광장”은 모스크바의 붉은 심장입니다. 크렘린의 전면에 펼쳐진, 레닌의 묘가 있는 광장. 예전부터 짜르의 선언, 판결, 포고가 내려지던 곳. 지금도 메이데이와 같은 행사나 사열식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죠. 붉은 광장이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때는 17세기 말이라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상업광장, 화재광장 등으로 불렸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바로 이 곳에서 일어났지요.

붉은 광장 옆 쪽으로 역사박물관과 크렘린 성벽을 배경으로 한 레닌묘, 스빠스까야 탑이 붉은 광장을 중심으로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1990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이곳은 이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역사적 장소로 탈바꿈했습니다.

뒤에 보이는 붉은 건물이 국립 역사 박물관입니다. 이제 크렘린 궁으로 들어가야겠네요.

원래 크렘린의 의미는 고대 러시아에서 쓰이던 보통명사로, ‘도시 내부의 요새, 성벽’ 의미입니다. 러시아 내의 오래된 도시들은 다 크렘린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모스크바의 크렘린이 가장 유명하며, 러시아어 대문자로 시작할 경우 보통 모스크바의 크렘린을 말합니다.

1156년 모스크바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유리 돌고루키 공이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 이곳은 러시아의 역사의 증언자 인 셈이죠. 귀족들의 결혼식, 짜르의 대관식, 온갖 출정식 등의 공식 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담장도 모두 붉은 색이죠. 아이들과 함께 한 참을 들어가야 했씁니다. 무척 추웠던 터라 시은이도 뻬쩨르부르그에서 산 붉은 모자를 머리에 덮어 씌웠습니다.

크렘린의 모식도입니다.

레닌묘가 있는 크렘린 성벽 아래는 일종의 공동묘지입니다. 현재 230여 개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데, 트로츠키, 스탈린, 흐루시초프, 막심 고리키 등의 흉상을 그들의 무덤 앞에서 볼 수 있습니다. 레닌 묘는 현재 붉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 안에는 검은 양복을 입고 반듯하게 누워있는 레닌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그 곳까지 들어가볼 정신이 없었답니다. 얘들 데리고 너무 추워서...

CIS 어딜 가더라도 볼 수 있는 호국 영령 들에 대한 '꺼지지 않는 불꽃' 이 크렘린 궁 안에도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조절되고 운영되던 소비에트 시절을 떠 올릴 수 있습니다.

크렘린의 아름다운 건물들은 제각각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  

(The TSAR Cannon, 1586년), 황제의 대포

16세기 말에 만들어 졌으며, 구경 890mm 무게 40톤의 대포. 당시에는 세계 최대 구경이었으나, 한 번도 발포된 적은 없다고 합니다.  한 번도 울리지 못한 거대한 종도 볼 수 있었습니다.

독특하게도, 크렘린 내부에는 성당이 많았씁니다. 3대 성당인 성모승천교회와 성수태고지교회, 대천사교회 이외에도 많은 교회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모스크바의 정중앙이라고 알려진 곳에 있는 높이 100m의 이반 대제 종탑은 한때 모스크바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성당 안에도 들어갔습니다.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흔히 보는 정교회 성당 내부와 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붉은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네요.

국영 백화점 굼으로 들어왔습니다. 명성답게 화려한 잘 정비된 쇼핑 공간입니다. 소비에트 시절 고위 당 간부들만 이용했겠지요?

굼의 어느 카페에서 피자를 주문했습니다. 형민이가 가장 종아하는 음식이 바로 피자 거든요. 이 곳에서 참새와 놀기도 했습니다.

굼 안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쇼핑 상가였습니다.

그리고 너무 추워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인 살루트 호텔로 들어가서 푹 쉬었습니다.

 

 10월 23일 목요일

사실 이 날 오전에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늦잠을 자고 모스크바의 한국 식당을 찾아가서 실컷 먹었던 기억이 제일 남습니다. 몸스크바에서 3-4군데의 한국 식당을 다녔던 것 같습니다. 사실 모스크바에서의 시간은 휴식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호텔에서 많이 자고 한국 식당에 식사 하러 다니고... 어쩌면 임신 7개월의 아내와 어린 두 아이를 가진 우리로선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지난 3년간의 시절을 정리해야 했던 특별한 시간이었던 셈이죠.

이제 한국으로 갈 시간입니다. 일찍 도착한 모스크바 공항에서 3시간 정도 비행기를 기다렸습니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출발한 우리의 귀국 여행은 이제 끝에 다다랐습니다.

2001년 5월 한국을 떠나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산 지 2년 6개월... 카작에서의 삶은 우리 인생길을 완전히 바꿔 놓은 일련의 사건이었죠.

한국으로 가는 걸 아는지... 형민이는 울고 있네요.

모스크바 공항 면세점.

서울 행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받았을 때 이미 우리 맘은 한국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이 아이들이 훌쩍 자란 어느 날... 언젠가 아내와 함께 다시 모스크바 거리를 걸을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2003.10.23 /2010.12.19

* 모스크바에서 찍은 사진은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라 일반 인화용 카메라로 촬영한 것입니다. 뻬쩨르부르그를 떠나올 때 이미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는 가득 차 버린 상태였고 메모리를 다운 로드할 컴퓨터나 외장 하드를 갖고 있지 않는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이번 글의 사진은 모두 스캐너로 스캔한 것이고 따라서 화질도 조금 떨어집니다. 모든 것이 다 추억거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