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여행기 2  여름 궁전과 황제의 마을 (상뻬쩨르부르그 I)

2 일째(10월 18일 토요일): 상뻬쩨르부르그 - 뾰뜨르 대제의 여름 궁전, 황제의 마을 에카쩨리나 궁

'쌍 뻬쩨르부르그'의 한국어 표기는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입니다. '상트'는 영어의 'saint'와 같은 의미로 '거룩하다'는 뜻이고 '페테르'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베드로(러시아어로는 뾰뜨르)'를 일컫는 말인데 여기선 이 도시를 조성한 러시아의 황제 '뾰뜨르 대제'를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부르그'는 독일어로 '도시' 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독일에는 '함부르크'라는 도시가 있죠. 

1703년 5월 27일 뾰뜨르 대제(피터 대제)의 계획에 따라 이 도시의 토대가 세워졌고 이후 1734년까지 황제의 계획에 따라 도시가 건설되어졌습니다. 경험 많은 건축 예술가들에 의해 소위 말하는 '뾰뜨르식 바로크 양식'이 창출되는데, 이후 이어지는 여자 황제들의 통치기에도 예술적 건축물들이 계속 들어서게 됩니다. (이오아노브나-->뻬떼로브나-->에카쩨리나 여제)

(사진 설명)

상뻬쩨르부르그 근교 '황제의 마을'에 갔을 때입니다. 에카테리나 궁전 앞 정원은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달력 사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이 바로... 상뻬쩨르부르그입니다.

 상뻬쩨르부르그에 온 다음 날...여느 때처럼 맞은 아침이었지만 이미 우린 카자흐스탄이 아닌 러시아에 와 있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 식사는 늘 우릴 들뜨게 하지요. 카자흐스탄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역시 호텔 매 층마다 (보통 엘리베이터 맞은 편에) 탁자 하나 가져다 놓고 앉아 있는 호텔 여직원들이 있는데 아침 식사 장소가 어딘지 그녀에게 물어본 뒤 세 아이를 데리고 식사 장소로 가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글쎄요...음식 종류나 맛은 카자흐스탄에 비해 러시아가 좀 나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도 많았고....

어젯밤부터 내린 비는 아직도 멎지 않은 채 부슬부슬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어젯밤 한국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비를 만났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올 것 같았습니다. 우린 어제...이 도시를 돌아보기 위해 기사 딸린 택시 한 대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상뻬쩨르부르그 도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입니다. 거리 블록 블록마다 황금빛 사원들과 오색 찬란한 정교회 건물(사보르)들이 우뚝 우뚝 솟아있지요. 그래서 도심 구경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일단 도시 외곽의 명소부터 찾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차가 없이는 도저히 아이들을 데리고 근교까지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지만 우린 예정대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가이드는 따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웬만큼 러시아어를 구사하기에 오히려 그 점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행 내내 기사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처음 간 곳은 흔히 '여름 궁전'으로 알려진 '뻬쩨르고프' 였습니다. 뻬쩨르고프는 18-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의 황제들이 여름에 기거하던 궁전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곳이 이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아래 공원'의 모습으로 황금으로 된 독특한 모양의 분수들과 폭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호화 공원은 핀란드만 해변서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뾰뜨르 1세가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여름 궁전은 말 그대로 여름에 와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물이 어는 시기(겨우 10월 중순이었는데도..)라 동파를 막기 위해 모든 분수의 물을 잠궈 둔 바람에 분수의 모습을 볼 순 없었습니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탓에 화려하고 밝은 모습의 공원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여름 궁전의 비 오는 가을날의 모습을 볼 기회가 또 어디 있을까요?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우리 가족은 아래 공원의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깊은 가을의 빚어내는 정취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죠.

 

우리 뒤로 '삼손 분수'의 모습도 조그맣게 보이는데 보이시나요? 1709년 스웨덴군을 물리친 일을 비유로 나타낸 것입니다. 삼손이 사자의 입을 째고 있는 형상이죠.

형민이나 시은이도 이곳이 너무 맘에 들었나 봅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형민이는 노란 단풍잎과 아름드리 큰 나무숲을 거니는 순간이 너무 좋기만 합니다.

사실 형민이는 산만한 걸 싫어합니다. 주일날 교회에서도 1층의 영아부 모임보다는 2층 본당에서 드리는 어른 예배를 참석하려고 고집을 부리는데...우리 생각으론 영아부의 시끌벅적하고 산만한 분위기보다는 2층이 훨씬 낫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형민이가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도 자그맣고 가족적인 곳이죠.

배가 부른 선화도 낭만적인 이 곳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잠시 후 비가 다시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지만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우리들은 이 늦가을의 정원 속을 뛰어 다녔습니다.

대궁전 앞 쪽 마당에선 전통 복장을 한 합주단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고 있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에 대한 예우 같았습니다. 오전 10시...대궁전 관람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지만 우린 아이들을 동반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관리인으로부터 먼저 입장하라는 특혜를 누렸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은 여러 모로 편리할 때가 있습니다.

대궁전 안의 모습은 화려했지만...비가 오는 어두운 날씨인데다, 아이들이 이 방 저 방 헤매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 그만 둬 버렸습니다. 형민이나 시은이로선 비가 와도 바깥이 더 좋은 모양입니다.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기사 아저씨는, 빗 속에서 우산을 든 채.. 아이를 안고 엎고... 궁전을 돌아 다니는 우리 모습(임신부도 포함)이 퍽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여러 가지로 도와 주려고 많이 애쓰셨고 관광지의 이면을 보여 주려고 우릴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왜 성수기가 지난 지금에서야 이곳을 찾아 왔냐?" 고 ... 그 말을 듣고 보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선화와 단 둘이서 상뻬쩨르부르그가 가장 아름답다는 5-6월에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 궁전을 떠난 우린 다음 목적지인 '황제의 마을(짜르스꼬예 쎌로)'로 향했습니다.

빗물로 흐려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자작나무 숲을 보며 카자흐스탄의 바라보예(아스타나 북쪽 300Km의 호수 지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곳에도 자작나무 숲이 무척 아름답거든요. 

빗 길이었지만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황제의 마을' 입구의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유명 인사가 많이 찾는다는 큰 레스토랑이었는데 산장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아이들을 생각해서 조용한 2층에다 자리를 잡았습니다.

점심 식사인데도 촛불을 밝혀 주더군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자작나무 숲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우린 보르쉬(러시아식 국)와 스테이크류를 주문했습니다. 보르쉬는 카자흐스탄에서도 많이 먹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식 음식이니 러시아에서 먹는 보르쉬가 진짜일 것 같아 시켜 보았는데...정말 정말 맛있었습니다. 고기맛도 담백하게 우러나고 맵지도 않은 것이 우리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붉은 빛이 도는 국이 바로 보르쉬 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가족 사진을 찍은 경우는 무척 드물었는데 이 날은 운전 기사 아저씨가 있는 덕분에 두 번이나 포즈를 취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린 다시 '황제의 마을'로 다시 들어 갔습니다.

18-19세기의 궁전인 이 곳은 에카쩨리나 1세, 엘리자베타 뻬뜨로브나, 에카쩨리나 2세(에카쩨리나 대제), 니콜라이 2세 등이 즐겨 찾던 황제의 별장이었습니다. 특히...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꼴라이 2세'가 무척 좋아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흔히 에카쩨리나 궁전으로 볼리는데 이 궁전 내부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입니다. 온 벽이 호박으로 꾸며진 '호박실'을 포함해 아름다운 침실, 청실, 회화홀이 무척 유명합니다.

이 곳 말고도 봐야 할 곳이 있는 우리로선 기대감과 조급한 맘으로 에카쩨리나 궁전을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 헤매야 했습니다. 분명 거대한 하늘색 궁전이 보이긴 한데 어디로 들어 가야 하는지 아무런 표시가 없더군요. 그러다가 입구를 찾아 들어가 보니 외부 매표소는 모두 문이 닫혀진 상태였고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위해 길게 줄 지어 서 있었습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누구 하나 움직이는 사람은 없고...긴 줄을 본 우린 이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건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빗줄기 속에 줄을 서다간 선화와 아이들이 고생할 것 같았습니다.

누구 말로는 관람을 위해 궁전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밖으로 나오면 그 숫자만큼 새 관람객을 안으로 들여다 보낸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어쨋든...러시아는 큰 나라인 것 만큼 줄도 길게 서야 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이 지역은 부유한 핀란드의 농촌 영지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708-1724년 뾰뜨르 1세의 왕비 에카쩨리나의 거처가 되면서 2층짜리 석조 궁전과 바로크 양식의 영지와 정원이 만들어졌고 이후 궁전교회와 여러 건물들이 추가되면서 지금의 거대한 건축물로 변모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휘황찬란한 돔형 교회 지붕에다 황금빛 조각들로 외벽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비록 에카쩨리나 궁전의 내부는 둘러 보지 못했지만 궁전 주변의 아름다운 정원과 자연 경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 잘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린 지금까지 너무 미국이나 서유럽 중심 문화에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뉴욕, 파리, 로마...그 어느 문명권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상뻬쩨르부그였습니다.

이념의 대립이 치열했던 과거...러시아는 먼 나라일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멀리 있기만 하던 그 나라가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 왔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황제의 마을에는 왼쪽 사진과 같은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러시아의 문학가 "뿌쉬킨"의 동상이었습니다. 뿌쉬킨은 젋은 시절 이 곳에 있는 귀족 남자 학교에서 공부했었다고 합니다.

뿌쉬킨은 아프리카 혈통이 섞인 사람(외증조할아버지가 이디오피아 출신 흑인)이어서 작은 키에다 꼬불꼬불한 머리카락, 어두운 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유색민족에 대한 차별 의식이 심한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뿌쉬킨만큼 존경 받는 문학가가 드문 걸 보면 뿌쉬킨이야말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문학적 재능을 가졌나 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 (뿌쉬킨)

빗줄기는 다시 굵어졌습니다. 아쉬운 맘으로 에카쩨리나 궁을 빠져 나오며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에서 에카쩨리나 여왕을 연상케하는 봉제 인형을 하나 샀습니다.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 곳을 정말 오래토록 기억할 것 같습니다.

에카쩨리나 궁 앞의 정원에서 러시아의 가을을 한껏 즐기고 있는 형민이와 선화의 모습입니다.

렌즈에는 빗방울이 묻어 있지만 두 사람은 정원을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황제의 마을'을 떠난 우린 기다리고 있는 차를 타고 폭우 속에서 다음 목적지인 '빠블롭스크'로 향했습니다. 빠블롭스크에서도 우린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러시아의 가을 풍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비오는 가을 날의 상뻬쩨르부르그....그 특별한 추억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