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여행기 1  여기는 핀란드 만 

1 일째(10월 17일 금요일): 아스타나-->모스크바-->상뻬쩨르부르그

2003년 10월 23일 오전 11시 40분 ... 모스크바 세리미띠에보 국제 공항을 출발한 대한 항공 KE 924 기는 인천 국제공항 상공에 접근하고 있었고 비행기 속에는 2년 반 동안의 카자흐스탄 생활을 마치고 러시아를 거쳐 귀국하는 네 명의 우리 가족이 타고 있었습니다.

2004년 10월 23일은 우리가 귀국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입니다. 되돌아보면 꿈같이 흘러 간 지난 1년이었습니다.

그 때의 찬 바람이 다시 불어오는 이 계절에 그동안 소개 못했던 러시아 여행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솔직히 그 동안은 러시아 여행기를 소개할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고 이제 기쁜 맘으로 1년 전 얘기들을 풀어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기적을 체험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요.

우리의 러시아 여행은 2주 동안 다녀왔던 터어키 여행과 여러 점에서 비교가 됩니다.

 

러시아

터어키

기간

6박 7일 (2003.10.17-10.23)

14박 15일 (2002. 4.4-4.18)

인원

4명(우리 부부와 만 3세의 형민, 11개월의 시은), 임신 중

(우리 부부와 1년 6개월 된 형민)

방문지

상뻬쩨르부르그, 모스크바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 소아시아 7대 교회 소재지(에게해)

순수 항공비

2123 달러(인천-부산 제외)

740 달러3명

순수 항공비만 따져도 터어키의 3배나 소요되는 이번 여행을 추진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됩니다.

1. 러시아를 가 보고 싶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을 사는 동안 진료와 생활을 위해 우리가 익혔던 언어는 러시아어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을 2백년 이상 지배했던 그 러시아를 가 보고 싶었던 맘이 제일 앞섰던 것 같습니다. 러시아어를 배웠다고 하면서 러시아를 못 가 봤다면 두고 두고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2. 비용이 많이 들지만 어차피 아스타나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는 항공 비용은 한국 국제협력단(KOICA)에서 부담해 주기 때문에 그 차액 만 부담하면 러시아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3. 이번 해외 여행이 끝나면 좀처럼 이렇게 온 가족이 외국에 나가게 될 기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셋째가 곧 태어나고 한국에서 세 아기를 기르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바빠질테니까요...

이렇게 여러 가지를 예상하고 시작했던 일이지만 막상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로 가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유럽인 터어키와는 달리 러시아로 가려면 비자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초청장이 필요했습니다.

초청장 발급을 위해 모스크바의 현지 선교사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도 FAX 사본이 아니라 원본을 제시해야 했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사진은 모스크바에서 온 초청장을 들고 있는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DHL 우편으로 배달되었죠.

초청장과 비자 발급에도 많은 경비가 들었는데... 이 때 아쉬웠던 것은 형민, 시은이의 여권이 모두 따로 되어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통상 아이들은 동반 자녀로 부모의 여권에 등록시킬수 있고 그렇다면 우리만 비자를 받으면 아이들의 입국은 아무 문제가 없을텐데...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우리는 아이들의 여권을 다 따로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1인당 물게 되는 초청장과 비자 비용을 그대로 다 물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영사관(아스타나)은 비자 발급에 소요되는 날짜별로 비자 수수료를 별도로 책정하고 있어 날짜에 쫒긴 우린... 급행료를 물고 비자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비자 발급에만 580불이 소요되었습니다.(1인당 비자 수수료 95불, 여행사 초청장 발급 비용 50불)

(사진: 출발 직전 아스타나 국제공항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정들었던 카자흐스탄...내 생활의 터전이었던 이곳을 떠난다는 게 실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들었던 도시와 선교사님들을 남겨 두고 떠나는 마음은 착잡할 뿐이었습니다. 이 공항을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런지...하지만 카자흐스탄을 떠나는 건...정말 한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형민아...가자."

아빠와 함께 또 다른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눈치챈 형민이는 여느 때처럼 따라왔고 그렇게 온 가족은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기내에서도 담담하게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온갖 생각들이 스쳐 갔지만...그 옛날 카자흐스탄으로 처음 왔을 때를 돌아 보며 이번에도 하나님이 우릴 인도하실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행기는 상공으로 날아 올랐습니다. 2003년 10월 17일 오전 10시 20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카자흐스탄에서 곧바로 한국으로 귀국했었다면 이 엄청난 변화를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러시아 여행은 어쩌면 지난 2년 반 동안의 카자흐스탄 생활을 서서히 마감하도록 배려해 주신 하나님의 작품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페이드 아웃(F.O)처럼...

셋째를 임신(7개월) 중이던 선화로선 부담 되는 러시아 길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10개월이던 시은이와 만 3살의 형민이를 데리고 나선다는 것은, 형민이만 데리고 다녀 온 터어키 여행 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어려움을 예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떠났습니다.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선화가 아니라면 애시당초 시작하지도 못했을 일일 겁니다.

이번 여행은 "아스타나-->모스크바-->상뻬쩨르부르그-->모스크바-->인천"  이라는 복잡한 경로를 택해야만 했습니다. 한국행 비행기는 모스크바에서만 출발하고 아스타나에서 상뻬쩨르부르그로 가는 직항편(풀코보 항공)은 하절기에만 운항되는 탓에, 모스크바와 상뻬쩨르부르그를 다 보려면 아스타나에서 모스크바로 갔다가 다시 상뻬쩨르부르그로 옮겨 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한국으로 들어갈 때는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 와야 하는 것이죠.

우리의 비행 스케줄은 다음과 같습니다.

행선지

출발 일시

출발공항

항공편

운임(어른 1인)

아스타나-->모스크바

04.10.17   10:20

아스타나 국제공항

에어 아스타나 (4L 873)

195 USD

모스크바-->상뻬쩨르부르그

04.10.17   13:30

모스크바 세리미띠에보 공항

풀코보 항공(FL 0130)

80 USD

                                                                               상뻬쩨르부르그 여행(10.17-20)

상뻬쩨르부르그-->모스크바

04.10.20   19:40

상뻬쩨르부르그 공항

풀코보 항공(FL 159)

80 USD

                                                                모스크바 여행(10.20-22)

모스크바-->인천

04.10.22   22:30

모스크바 세리미띠에보 공항

대한항공(KE 924)

550 USD

(국제선의 경우 형민이는 어른 운임의 80%, 시은이는 10% 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USD:US dollar)

이미 5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보유한 형민이인지라 비행기는 익숙한 공간입니다. 지금도 이모(스튜어디스)가 주는 음료수와 기내식에 만족해 하며 아빠를 쳐다 보고 있습니다. 형민이에게도 좌석이 주어지기 때문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습니다. 형민이는 어김없이 창가에 앉지요...시은이는 안아야 하고...

비록 어리지만 형민이는 우리 삶에 중요한 동반자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터어키에서도...우린 형민이를 데리고 늘 새로운 시도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도 형민이와 함께 출발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웬지 모를 안정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모스크바 까지는 3시간 반...생후 10개월된 시은이가 비행시간 내내 자 주는 바람에 수월하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여행을 앞두고 우린 인터넷을 통해 나름대로 준비를 해 왔습니다. 하지만 관광객으로서 체험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카자흐스탄에서 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1-2주 단위로 카자흐스탄을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돌아가는 건...아름다운 자연 환경이나 도시 모습 같은 피상적인 것들일 뿐이고, 정작 카자흐스탄의 삶과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년을 함께 살아도 모자랄 노릇입니다.

따라서 이번 여행도 러시아의 겉모습만 훑고 돌아올 거라는 염려 아닌 염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러시아권인 카자흐스탄에서 오래 동안 살았었고 러시아어 회화가 가능하기에 다른 일반 관광객들보다는 러시아의 모습을 좀 더 이해하길 쉬울 거라는 기대감도 갖고 있었지요.

얼마쯤 흘렀을까...비행기가 곧 모스크바 세미리띠에보 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창 밖을 봤을 때 모스크바의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고 구름 밑으로 성낭갑만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모스크바에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10월 말 모스크바의 기온은 꽤 쌀쌀했지만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기에 괜찮았습니다. 아스타나에도 이미 첫 눈이 왔었기에 러시아도 추울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활주로에서 공항 청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세리미띠에보 공항 건물의 모습입니다. 비행 접시처럼 생긴 건물이 특이했지만 전체적으로 받은 인상은 카자흐스탄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느낌은 공항 건물로 들어가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러시아인들도  카자흐스탄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전혀 새롭지 않았고 공항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어 안내 문구나 광고판들도 카자흐스탄에서 보던 것들이랑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치 좀 큰 카자흐스탄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인상을 결정적으로 굳히게 만든 장소는 바로 "입국 심사" 에서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꼭 닮았을까....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입국했는데도 달랑 창구 2개 열어 놓고 굳은 표정에 쏘아보는 듯한 표정으로 사람을 쳐다 보며 여권을 건네는 직원들을 보면서 저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거머시...카자흐스탄이랑 똑같다..."

이런 걸 보면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은 이미 입국 심사 때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도 이런 데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대만에 갔을 때 입국 심사에 도장 찍는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가벼운 목례까지 하는 걸 봤는데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도 참 친절하게 한다던데...한국은 어떻는지...

활주로가 보이는 곳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비행 내내 깊은 잠에 푹 빠져 있던 시은이도 눈을 뜨고 있네요. 답답한 걸 싫어하는 시은이는 쌀쌀한 날씨인데도 옷을 열어 젖히고 엄마에게 안겨 있습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긴 했지만 곧바로 40분 후 출발하는 풀코보 항공의 상뻬쩨르부르그 행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우리로선 도시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공항 안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공항 안에서 빵 같은 것으로 요기만 하고 짐을 찾아 들고 또 다른 탑승구로 가야 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사는 동안 우린 러시아를 다녀 온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두의 경험은 달랐지만 모두의 공통된 의견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모스크바는 좀 큰 알마티(카자흐스탄 제 1의 도시)라고 생각하면 되는데...상뻬쩨르부르그는 그렇지 않아요. 정말 아름다운 도시죠. 꼭 한 번 가 보세요."

모스크바의 모습은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국제적인 대도시의 모습이지만 상뻬쩨르부르그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야말로로 제정 러시아의 고풍스러운 미가 그대로 녹아 들어 있는 그림같은 도시라는 평이었습니다.

이렇게 잔뜩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올랐지만 상뻬쩨르부르그로 향하는 비행기는 크기도 작은 데다가 기내 청결도마저 좋지 않았습니다. 오랜 여행이 힘들었는지 시은이가 보채기 시작했고 형민이도 집에 가자고 졸라댔습니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어쨋든 모스크바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이 비행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상뻬쩨르부르그 공항에 도착한 뒤 공항 청사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선화와 아이들의 뒷 모습이 보이지요?)

상뻬쩨르부르그 공항에 도착하자말자 우리는 택시를 잡아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사실...러시아로 떠나기 직전 우리의 여행 업무를 봐 주시던 모스크바의 선교사님(여행업을 하시는 자비량 선교사)과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해 호텔 예약이 원래 예정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무리 전화해도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구요...

모스크바에 내린 뒤 전화를 한 번 하려고 했는데 모스크바 공중 전화 카드 사용법을 잘 몰라 이렇게 상뻬쪠르부르그 까지 와 버렸습니다.

'선교사님이 예정되로 예약을 해 놓으셨다면 오늘 날짜에 우리 앞으로 객실이 예약 되어 있을텐데...' 그저 이렇게 기대하고 호텔로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텔 이름은 마르스까야 호텔이고 하루 숙박료는 60불 정도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호텔 이름을 대고 상뻬쩨르부르그의 도심을 지나 갔습니다. 호텔까지 약 40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가는 길에서 아름다운 상뻬쩨르부르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대부분의 건물들이 몇 백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석조 건물도 많이 보였고 크고 작은 하천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와 우리 가족과 상뻬쩨르부르그에 대해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상뻬쩨르부르그 여행 내내 택시 기사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빼 놓을 수 없는 재밋거리였습니다. 덕분에 가이드도 필요 없었고 러시아어 연습도 할 수 있어 퍽 유익했습니다. 러시아의 속사정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상뻬쩨르부르그는 핀란드 만으로 흘러 나가는 네바강의 삼각주 섬들 위에 세워진 도시로 거미줄처럼 조성된 운하로 인해 100개 이상의 섬과 365개의 다리, 65개의 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북쪽의 베니스' 라고 부르죠. 물의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설명: 상뻬쩨르부르그의 '피로 구속 사원' 앞에 있는 운하의 모습입니다. 상뻬쩨르부르그는 이런 운하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이런 운하들을 이용한 수송 수단도 발달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상뻬쩨르부르그의 건물들은 최근에 지었다 하더라도 도시 전체 미관을 고려해서 예전 건물들의 특징을 살리는 쪽으로 건축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찾은 마르스까야 호텔은 핀란드 만의 한 부둣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호텔 건물 위에 "마르스꼬이 바그잘" 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니 이곳은 아마 해상 운송을 담당하는 여객 터미널인 듯 보였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바다에서 매서운 찬 바람이 불어 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곳에 정박하고 있는 여객선을 타고 인근 도시나 북유럽 국가(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들로 여행하는 모양입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전체에 걸쳐 있는 국가이면서도 스스로를 유럽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모스크바와 상뻬쩨르부르그와 같은 자국 1,2의 도시들이 모두 지리적으로 유럽에 위치하기 때문이겠죠.

상뻬쩨르부르그의 바로 앞에 핀란드가 있고 잘록하게 들어와 있는 만이 핀란드 만이 보입니다. 북해로 연결되는 곳이죠. 우린 바로 이 바닷가에 서 있는 한 호텔에 들어온 것입니다.

호텔로 들어가서 '이성훈' 이라는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는지부터 물어 봤습니다. 아니나다를까...그런 예약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날은 저물었는데 지금에서 다른 호텔을 찾을 순 없는 노릇이고 ..빈 객실이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마침 트윈 룸이 하나 있긴 한데 객실료는 자그마치 110불이었습니다. 우리 예상의 2배가 되는 금액이었죠.

마지막까지 확인하지 못한 제 실수를 원망하며 일단 오늘은 여기서 묵기로 했습니다. 6층의 객실로 올라가 샤워를 하고 시은이 우유부터 먹이고 나니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더군요. 호텔은 깨끗하고 고급스러웠습니다. 카자흐스탄의 60불 짜리 호텔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시설이었죠.

창가로 가 보니 눈 앞에 커다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로 앞 항구에는 러시아 깃발을 펄럭이고 있는 커다란 여객선들이 줄 지어 정박해 있었고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상선과 오징어 잡이 배처럼 등불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어선들도 보였습니다.  저 바다를 건너면 스칸디나비아 반도인데...여기서 북유럽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왼쪽은 항구에 정박해 잇는 커다란 여객선이고 오른쪽은 우리가 묵었던 마르스까야 호텔 앞입니다. 멀리 "마르스꼬이 바그잘"이라고 적힌게 보입니다. 우리로 치면 '해상 여객 터미널' 같은 곳이죠.

(사진: 도착한 당일...핀란드 만이 보이는 마르스까야 호텔 발코니에 나와 서 있는 선화의 모습입니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지만 선화 뒤쪽으로 북해로 나가는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

천만 다행스럽게도 호텔 방에서는 모스크바에서 여행사 하시는 선교사님과 전화 연락이 되었습니다. 사연은 생략하고....미안해 하시면서 우리가 도움을 받을 만한 상뻬쩨르부르그의 한국인 여행사와 식당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던 우린...아이들을 데리고 선교사님이 말씀해 주신 한국 식당으로 가서 김치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곳에서 한국 사람도 볼 수 있었고 여행사 하시는 분을 만나 내일부터 펼쳐질 우리들의 상뻬쩨르부르그 관광 일정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을 떠난다는 마음에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러시아로 날아 왔는데...첫날부터 좋은 음식과 좋은 사람을 만나 편안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곳 한국 식당에서 한국 사람들도 많이 봤었는데 의외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아스타나와는 다르게 이곳에는 상주하는 한국 교민들과 관광객들의 수가 많기 때문이겠죠? 아스타나 같으면 한국말 하는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당장 달려 가서 인사를 나눌텐데 말이죠. 그래도 귀여운 형민이 덕에 한국 식당 종업원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식사 후 바로 옆 상점에 가서 간식 거리를 사 가지고 호텔로 들어온 시간은 10시를 넘긴 때였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첫 날이었지만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에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우린 이스탄불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뻬쩨르부르그 지도를 하나 사서 늦은 밤까지 내일부터 하게 될 관광 일정을 돌아 보았습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긴 하지만....비 오는 날의 추억도 멋진 거니까요..

 

호텔방 침대 위에서 첫날 밤을 맞은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형민이가 들고 있는 건 상뻬쩨르부르그 지도이고 시은이 앞에는 성경책이 놓여져 있습니다.

우린 두 아이와 커다란 슈트 케이스 2개, 작은 가방 1개, 카메라 케이스 하나를 들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책 하나가 무겁지만...성경책만은 꼭 들고 다녔습니다. 상뻬쩨르부르그에서도 가정 예배를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멀리 떠나 온 여행...비록 아는 사람 하나 없어도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핀란드 만의 찬 바람 속에서도 어김없이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 러시아 여행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