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시대 강제 이주 희생자 위령비

오늘 소개할 곳은 구 소련 스탈린 시대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위령비 입니다.

이 날은 한국과 비슷한 구름으로 하늘이 덮여 있었고 햇살이 따가운 날이었지요...우린 모두 차에 타고..강 건너편에 있다는 놀이 열차를 타 보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심강 다리를 건너서...놀이 열차가 있을 만한 곳에 차를 세우고 나니....아니?... 커다란 기념비를 가진 기념물과 공원이 보였습니다.

마치 거대한 피라밋과 같은 언덕이 만들어져 있었고...그 위로는 계단이 나선형으로 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철탑이 세워져 있었는데...하늘을 향해 뾰족한 모양이었지요....

우린 '저게 뭘까?' 궁금한 맘으로 가까이 가 보았고...거기서 뜻모를 그림들과 글자...그리고 여기 저기에 던져져 있는 꽃다발 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스타나에는 1,2 차 세계대전 때 전몰한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탑이 있습니다. 물론 알마티에도 있지요..그게 28공원이라는 곳 안에 있는데...꺼지지 않는 불꽂이 항상 타오르는 곳입니다.

그런데...이 기념비 근처에는 군인이나..총, 대포같은 그림이 전혀 없고...그런 내용을 암시하는 글도 하나도 없더군요...그래서 이게 무슨 기념비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그 기념비로 올라가는 언덕에 나선형으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펼쳐져 있는 부조입니다.

맨 앞에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어떤 수레 바퀴 같은 그림이 있고...그 옆에 여러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어딘가로가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또 보면 죽은 사람을 메고 어디로 가는 것 같은 형상도 있습니다.

전...마치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행적 중...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고치시는 장면이 생각나더군요...모두가 울고 있고..아들을 매고 장사지내려 가는 장면과 유사했습니다. 하지만...이곳에 그런 부조가 새겨져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슬람 국가에서.... 

그 이상한 부조 위에는 또다른 것들이 새겨져 있었는데..그래도 좀 알 만한 것은 왼쪽의 사진입니다..

거기에는 까작스딴에 있는 많은 도시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더군요...여기서 우리의 추리는 더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더욱 영문을 모르겠더군요..도대체 이게 뭐지?...

이 해답은 그 당시에는 풀 수 없었고...이글을 쓰는 지금...저희 가정의 냐냐인 '먀샤'에게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스탈린 시대...이 까작스딴 땅으로 강제 이주된 수 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잘 알려지다시피 1937년 경...스탈린의 소련 정부는 수 많은 민족들을 중앙 아시아로 이주시켰습니다. 우리 한국인들도 연변 지역에서 살고 있다가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한다는 오명을 씌워 이곳으로 강제 이주되었고...그로 인해 지금도 까작스딴 땅에는 10만명의 고려인(한국인)이 살고 있으며...까작스딴 아래의 우즈벡스딴에도 25만명의 고려인이 살 게 된 것입니다. 초기 강제 이주 시절...낯선 땅에서 기후와 풍토병에 적응하지 못해 이주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었고...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빈 손으로 다시 일어서야 했던 역경의 시간들을 맞게 되었습니다.

덕분에...현재...까작스딴은 다 민족 국가가 되었습니다. 비단 한국인들 뿐 아니라...이 당시 강제 이주된 민족 중에는 고려인, 유대인, 체첸인 등 많은 민족이 포함되었었고...당시 예정된 프로그램에 의해 기차표까지 주면서 이주했던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그야 말로 트럭에 실려 강제로 이곳에 던져진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마샤'는 그건 스탈린 시대에 잘 못 한 일이라고 얘기하더군요... 사진에 있는 여러 도시들은 바로 그 집단 수용소 또는 숙영소가 있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까작스딴 영토 내에...위와 같은 집단 수용시설이 있었던 셈입니다. 강제로 이주되어 죽어갔던 사람들 중에는 우리 한국인의 선조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기 기념비의 부조에서 봤던 사람들이 고개 숙인채 어디론가 가는 장면들과 ...죽은 사람을 매고 가는 조각들이 이해가 되면서...까작스딴의 과거 뿐 아니라 우리의 과거이기도 한 이 건축물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어쨋든 이 당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 덕분에 유목민이던 이 땅의 까작 사람들은 농업을 배우게 되었고..지금도 이곳의 메스컴들이 얘기하듯이(2001년 10월 Globe지) 한국인들은 까작스딴의 현재의 농업이 있도록 만들어 준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이 때 함께 이주했던 독일사람들도 이 까작스딴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의 독일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데 반해.. 강제 이주된 한국인들이 지금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지 않습니다.

아스타나에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무시무시한 또는 너무 진지한 기념비들이 많습니다. 차차 소개해 드리지요...

마샤 말로는 방금 보신 위령탑은 만든지 1년도 채 안되었다고 합니다...우리가 갔을 때도...그 위령탑 주변으로 아주 넓은 공원을 막 조성하고 있었는데...마치 모델 하우스처럼 까작스딴 전 국토를 축소해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도 한 쪽에 보였습니다. 아직 완성은 안 되었더군요...

이 공원 근처에...대통령 영빈관도 있었고...대통령이 사용하는 테니스 코트(돔형인데...아주 큰 건물입니다...아무리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테니스를 칠 수 있게 만들었지요...대통령이 운동을 좋아하나 봅니다.) 도 있었습니다. 그리고...우리 나라의 십이지신 같은 석상들과...군데 군데...돌무더기를 쌓아 무덤처럼 만든 것도 있었습니다. 하여간...이 곳은 좀 특이한 곳이었습니다.

 

아래는 눈 덮인 겨울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위령비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