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작스딴의 종교   

다민족 국가인 카자흐스탄은 민족간의 화해와 평화를 중히 여기고 있고 각 민족들의 종교를 다 허용하고 있습니다. 51%의 카자흐인은 전통적으로 이슬람 신자들이고 32%를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은 정교회 신자들이라고 할 수 있어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섞여 있는 독특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종교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2002년 11월 15일 열린 제 9차 카자흐스탄 (화합과 단결을 위한) 국민 회의에서 연설한 대통령 나자르바예브의 말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오늘 날 정치 용어에는 중세기적 개념인 '지하드' 나 '십자군' 등의 개념이 부활되고 있다. 이런 세계 정세 속에서도 최근 10년간 카자흐스탄에는 종교 단체 수가 4배 늘어 났고 회교 사원 수는 25개에서 1500개로 늘었고 러시아 정교회들도 4배 이상, 카톨릭 교회도 3배 이상, 개신교회는 거의 1천 개 이상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전통적 유물론과 전체주의 이후 헌법으로 보장되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음을 증거해 주는 사실이고 우리는 이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카자흐스탄에는 40여 개의 각이한 신앙을 설교하는 약 3천개의 종교 단체가 활동하고 있고 이 전체 종교 단체들은 국가의 지지를 받으면서 공존하고 있다. 국민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자기가 선택한 종교를 믿고 자기 모국어로 설교하며 문화와 전통을 지켜 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카자흐스탄은 세계의 모든 종교 활동가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지만 테러 주의자들과 극단주의자들이 대두되고 있는 오늘 날 우리는 사회의 안녕을 해치는 이단에 대해서는 나라와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수시로 심각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

위 내용은 현재 카자흐스탄이 어떤 방향으로 종교 정책을 펴고 있는가를 확연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국민의 50% 이상이 이슬람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밝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고 개신교 선교사들에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내 주고 있으며 교회 등록도 내 주고 있습니다. 현재 선교 활동이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인근 끼르끼즈스탄, 우즈벡스탄과 비교해 볼 때 카자흐스탄의 문은 상대적으로 넓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아스타나의 중앙 모스크(사진)

보통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모스크가 서 있습니다. 아스타나의 경우 2003년 현재 이심강변과 바자르(시장) 앞에 모스크가 서 있습니다.

사진은 중앙 시장 앞에 서 있는 중앙 모스크인데 누구든지 신발만 벗기만 하면 이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2003년 현재 외장재를 덧입히는 외부 수리 중입니다.

이 모스크에는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는 장소가 구분되어 있지만 사전에 얘기한 뒤 수건을 머리에 얹기만 하면(여자의 경우) 들어갈 수 있습니다.

2005년 12월 모습 (아래)

최근 아스타나의 중앙 모스크는 새 단장을 했습니다. 겨울 아스타나는 항상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습니다. 종교 행사가 있는 날이면 도시의 많은 카자흐인들이 이곳에 모여 듭니다. 이 곳은 바이테렉 근처의 이슬람 문화센터 사원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보다 오래 된 곳이고 최근 수리한 탓에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명이 모여 든답니다.

이슬람교

중앙아시아 대부분 지역이 역사적으로 회교 문화 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카자흐스탄 역시 회교적 가치 체제와 관행들이 70년간의 공산 지배에도 불구하고 온존 (수니파)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립 이후 민족 의식의 성장과 함께 회교 세력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인데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230여개의 회교단체와 1개의 회교대학이 있습니다. 농촌지역에서도 회교세력이 강화되고 있으나, 그 강도가 약하고 세속적인 편입니다.

1726년 경 청나라에 위기를 느끼고 있던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에 합병을 요청했고 1731년에 실질적으로 러시아에 합병된 이후 제정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을 거치면서 까작스딴 땅은 러시아 정교 문화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751년의 탈라스 국제전 이후 중앙 아시아에 살던 투르크 족들은 이미 이슬람화 된 후이지만 거의 200년 가까운 러시아와의 동거는 이 지역에서 회교의 영향력은 극도로 약해지게 되지요. 그래서 카자흐 사람 대부분은 스스로 무슬만(이슬람 신자)이라고 말하면서도 전통 무슬만들과 달리 돼지고기도 즐겨 먹고 있답니다.

1991년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 카자흐 민족 우선 정책이 시행되면서 카자흐의 민족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 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계속되고 있는데 아스타나의 경우에도 새로 건립되는 신도시 중앙에 웅장한 모스크를 건축하고 있는 중이지요.

아스타나에 건설 중인 새 모스크(사진)

2003년 현재 이심강 서편, 추바르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아스타나 신도시 지역에는 각종 관공서와 석유 회사 사옥, 새로운 모스크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 모스크는 저희 가정이 이스탄불에서 봤던 수 많은 모스크들과 모양이 흡사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모스크 맨 꼭대기에 카자흐스탄 국기와 터어키 국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더군요. 아마도 터어키에서 이 모스크를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투르크 족(돌궐족)의 후예들이니까요.

개신교

카자흐스탄의 경우 많은 선교사들과 교회가 활동하고 있는데 제 1의 도시 알마티의 경우 한인 선교사 협의회의 회원 수가 60명을 상회하고 있는데(2003년 초) 알마티에 있는 등록된 교회 중 50% 가량이 한국인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라고 얘기되고 있습니다.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도 많이 들어 와 있는데 알마티에 있는 선교사 자녀 학교인 '텐산 스쿨'의 재학생 현황을 보면 한국 학생들의 비율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목회 뿐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는 외국인 선교사의 수가 한국 선교사의 수보다 훨씬 많으리라 추정됩니다.

또 한 가지...카자흐스탄의 경우 외국에서 들어온 선교사의 교회 못지 않게 러시아인 또는 카자흐인 사역자(목사)가 인도하는 현지 교회의 교세가 엇비슷하거나 지역에 따라 더 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미국 한인은혜교회에서 모스크바에 세운 은혜 신학교 출신의 현지인(러시아인, 카자흐인) 사역자들이 알마티, 아스타나, 가라간다는 물론 중,북부 카자흐스탄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고 45년 이상 카자흐스탄 땅에서 믿음을 지켜온 러시아 침례교회의 후예들과 최근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생명의 말씀 교회, 새 사도 교회, 새 말씀 교회 등 다양한 개신교회 들이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CIS 권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이런 개신교회 들은 주로 카리스마적 교회로 안수, 치유 등의 활동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편입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카자흐스탄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동이 급격하게 위축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2000년 여름에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벌어진 '실크로드 2000' 행사의 여파였습니다. 인터콥을 위시한 주최측에선 이 지역의 영적 분위기 반전을 위해 불가피했고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평가하지만 실제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 특별히 카자흐 민족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의 한결같은 견해는 이로 인해 카자흐스탄 정부의 견제가 심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행사 이후 카자흐스탄 TV 방송사에서는 실크로드 2000행사 집회 장면을 계속 내 보내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다른 곳에 뺏기고 있다"고 호소했고 이미 번역된 카자흐어 성경을 화면에 내 보내면서 "이런 책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등...노골적으로 반 기독교적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카자흐와 러시아인 미성년자들에게는 어떤 종교 단체도 포교활동을 할 수 없고 새 교회 등록을 위해서는 50명 이상의 발기인을 세워야 한다는 등 선교 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내용을 담은 새 종교법이 제정되어 국회 상,하원에서 통과되게 됩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사역하는 모든 선교사들이 한 맘으로 기도했던 때가 바로 이 때였지요. 문제의 종교법은 2002년 봄, 마지막 대통령 결제만 남은 상황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대통령은 이 법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세계 인권 단체와 각국에서 들어 오는 외교 압력으로 인해 폐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정교회

카자흐스탄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종교를 들라면 이슬람교와 함께 정교회를 들 수 있습니다. 개신교의 선교 활동을 막기 위한 신종교법을 구상할 때 러시아 정교 측에서도 러시아인들에게는 포교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라는 의견을 내 놓을 정도였습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불고 있는 민족 및 종교 화합 정책으로 인해 아스타나에서도 새로운 정교회 건물이 아스타라한스까야 거리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알마티 젠코브 성당(사진)

알마티의 대표적인 정교회당은 판필로바 28인 공원 내에 있는 젠코브 성당입니다.

정교회 내부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마리아, 사도들, 교부, 교황 들의 초상화와 모형과 그 앞을 밝히는 촛불들로 가득합니다.

일단 이곳 정교회에는 의자가 없습니다. 앉아서 성경 말씀을 듣고 나누는 개신교회와 달리 이곳은 성화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들과 향을 피우고 종을 울리는 성직자들과 성가대의 웅장한 소리와 사제의 얘기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신앙입니다.

카톨릭

아스타나 라는 신 도시를 세울 때 여느 신 도시들 처럼 종교 부지란 것을 책정해 놓았었다고 합니다. 그 곳에는 개신교회와 카톨릭 교회 몫의 부지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개신교 부지를 불하받은 교회는 주어진 시한(1년)내에 건축을 완성하지 못해 부지를 다시 빼앗겨다 하고 카톨릭 교회 측은 카자흐스탄에 흩어진 전 신자들의 노력으로 1년 만에 이 건물을 지어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앙에서 통제되고 일원화 되어 있는 카톨릭 교회는 이런 곳에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나 봅니다.

아스타나의 카톨릭 교회(사진)

카자흐스탄의 전 카톨릭 신자 뿐 아니라 교구 차원에서 총력을 모아 지어졌다고 알려진 카톨릭 교회는 아스타나의 알짜배기 땅에  세워져 있습니다.

2001년 9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수도 아스타나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포스터가 2003년 현재까지도 떼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교황의 권위는 실로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지요.

교회 뒤로는 이심강이 지나가고 있고 스포츠 센터인 '알라타우'와 내무부 건물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신부님이 와 계시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