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작 민족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  (카자흐스탄 지역 역사)

1219-1221`년 동안 카자흐스탄 지역은 몽골 제국의 국경을 받게 되었고 징키스칸 후손들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몽골 제국 후기에는 타타르족이 지배하는 금 호르드(Golden Horde, 큽착 칸국) 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몽골 제국 붕괴 후에는 백 호르드(White Horde)와 모굴리스탄 의 통치를 받았다.  백 호르드는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에 걸쳐 노가이 호르드와 우즈벡 칸국으로 나뉘게 된다. 노가이 호르드는 우랄과 볼가강 유역을 지배했고 우즈벡 칸국은 아랄 해로부터 북부의 토볼, 동부의 이르튀쉬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큽착 칸국이 붕괴된 뒤로 15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큽착 초원을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튀르크계 우즈벡 족이 시르다리야 강을 건너 서튀르키스탄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그 곳에서 샤이바니 왕조의 부하라 칸국을 건설하게 된다.  이 때 카작인들은  우즈벡 족으로부터 분리되어 현재의 카작 초원 중부와 남동부로 이동,  독립적인 유목민 집단을 이루게 되었고 이로써 카작 민족 공동체가 이 지역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탈라스와 추 지역에도 다시트-이  큽착 지역에서 이동해온 이주민들의 커다란 정착지가 형성되었다. 몽골제국과 튀르크계 민족 타타르의 지배가 끝이 나면서 15세기 말과 16세기 초, 세미레체는 카작 민족 공동체의 중심 지역으로 크게 발전하게 된다.

16세기 초반에는 30만 내지 100만에 달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여 서쪽으로는 우랄 산맥과 카스피해 북서안, 동쪽으로는 발하쉬 호수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카작 가슴(Kazakh Kasym) 통치 하에(1511-1523) 카작 칸국은 크게 발전하였고 인구도 1백만에 이르게 된다.

16세기 중엽, 노가이 호르드가 무너지고 모굴리스탄과 시베리아의 칸국들이 멸망하게 되자 이들 칸국들의 주요 부족으로 이루고 있던 카작인들이 카작 민족 공동체에 합세하게 되었고 카작 공동체는 민족 공동체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들은 유목 생활을 주로 하고 칸을 중심으로 왕후가 지배 계층을 구성했다. 카작 사회에서 농민은 봉건적 예속 농민으로서 샤루아(Sharua) 라고 불렸다. 농민 이외에도 노예 계급을 이르는 쿨(kul) 도 있었다. 농민들은 법적으로 노예는 아니었으나 봉건 영주의 노역에 봉사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유목 사회가 혼란해질 때에는 노예 농민들이 봉건 영주의 소유물을 약탈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하는 일이 빈번했다.

중세 카작인들은 외적으로는 수니파 무슬림이었으나 종교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카작 민족 사회는 관습법과 이슬람법에 의해 통제받았고 영웅 서사시와 해학적인 이야기, 젊은 영웅들의 비극적인 이야기 등의 구전 전승 문학이 유행하였다.

17세기 중엽, 카작 민족은 3개의 호르드 - 대 호르드(발하쉬 주변에서 시르다리야 강 하류), 중 호르드(카작 중부 초원 지방), 소 호르드(아랄 해 북부 초원) - 으로 나뉘어 진다.

cf ) 호르드 : 호르드(Horde) 는 튀르크 -몽골계 어휘로 '군대'를 뜻한다. 군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거나 전체 부족민이 군대화된 성격을 가진 유목 사회에서는 지배자 칸 혹은 술탄을 중심으로 형성된 독립적인 유목민 통치  집단을 호르드(Horde), 또는 오르두(Ordu) 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