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까작의 역사

아시다시피 까작스딴은 120 여개의 민족이 섞여 살고 있는 다 민족 국가입니다. 약 55%의 까작인, 35%의 러시아인, 5%의 우크라이나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고려인(한국인)을 비롯해 유대인까지...인종 백화점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있기에 각 민족별로 촛점을 맞추어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도 자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둥간족을 위한 사역, 따따르인을 위한 사역...등을 들 수 있는데...중앙 아시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민족이 까작스딴에 있는 바람에 이런 선교사들은 비교적 선교 활동이 용이한 까작스딴으로 와서 선교 훈련이나 그 민족을 위한 언어 훈련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까작스딴에서 비교적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민족은 아무래도 비 이슬람 민족...즉 러시아인들입니다. 이미 988년 러시아의 군주 블라지미르가 비잔틴 황제의 여동생과 결혼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래...거의 천년 이상 동안 러시아인들은 기독교 안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물론 그들이 받아들인 기독교는 동로마 교회 즉, 그리이스 정교였지요. 나중에 비잔틴 제국인 멸망한 뒤에는... 러시아 정교회가 제 3의 로마를 자처하며 그리이스 정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으려 할 정도로 러시아 정교회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개신교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는 의식이나 전통에 얽매여 신앙 생활을 했던 정교회 하의 러시아인들은...공산주의 이념하의 소비에트 시절을 지나면서...종교를 거저 하나의 거치장 스러운 관습으로  여기게 되고...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서 멀리 떠나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바로...이렇게 잊혀 버린 민족, 러시아인을 위해 많은 선교사들이 구 소련 지역으로 들어 왔었고.. 한 때 모스크바에는 200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운집(?)해 있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러시아인들은 그들의 언어, 사회, 문화적 관습과 전혀 대치되는 부분이 없는 개신교 선교사의 교회에서 잘 적응하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아주 어릴 적부터 성경에 대한 얘기를 들어 왔고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본 딴 이름들을 가지고 있는 민족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러시아 어(語) 만 하더라도...과거 비잔틴 제국이 지리적으로 근접한 남동부 및 동유럽의 슬라브 지역에 대한 선교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던 10세기 경... 선교사로 파송한 끼릴과 메또디우스 형제에 의해 고안된 언어가 바로 러시아어의 모체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슬라브어로 번역하기 위해 그 언어(끼릴 문자)를 만들었다는데.....그러고 보면... 러시아어는 그 기원부터 교회, 선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언어인 셈입니다.

하지만...까작스딴의 55%의 민족, 아니...이제 독립된 까작스딴에서 가장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까작인의 경우에는 상황이 180 도 달라집니다. 까작인들에게는 십자가는 미워할 수밖에 없는 흉물스러운 상징입니다.

까작 민족은 투르크계 혈통과 몽고계의 혈통이 섞인 민족입니다.  기원 후 4-6세기 경부터 돌궐 제국을 건설했던 고대 투르크 제국의 후예들은 8 세기에 이르러 중국 당에 붕괴되면서 현재 카작스딴 지역에 유입되어 여러 부족 국가를 형성합니다. 766년 탈라스 국제전에서 아랍(아라비아)의 도움을 받고 중국을 격퇴한 이후 이 지역의 투르크계 부족들은 이슬람화 되었고 ...잠시 거란의 통치를 받다가...12세기에 등장한 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혈통에 변화를 겪게 됩니다. 15세기에 들어서 우즈벡 족과 까작 민족이 나누어지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까작 민족 공동체는 16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마침내 하나의 민족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왼쪽 사진: 아스타나 현대 미술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 - 까작 전통 가옥(유르트)과 까작 인의 모습)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미 766년에 투르크 계 부족들이 이슬람화 되었기에...500년 전, 까작 민족 공동체가 형성될 때 당시부터...이슬람이라는 종교는 그들 민족의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1731년 자신들의 요구로 까작스딴이 러시아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러시아의 지배에 대한 까작인들의 불만은 날로 팽배해져 갔습니다. 러시아의 까작 식만 통치 이후 경제적으로 약간의 발전이 있긴 했지만...주요 교역이나 기술 집약적 산업은 러시아인들이  모두 장악했고 까작인들은 거저 광산 노동자, 농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수 차례의 반러시아 폭동이 1917년 10월 혁명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게다가 소비에트 연방 탄생 이후인 1929년... 스탈린은 집단 농장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까작인들을 강제적으로 집단 농장에 배속시키고 그들의 가축은 연방의 소유로 삼아 버렸는데 유목 민족인 까작인의 독특한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 정책은 집단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켜 많은 까작인들이 자신의 가축을 지키려다가 총살을 당하거나 강제 수용소에 보내져야 했습니다. 이 때 까작인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가 스탈린에 의한 억압에 저항하다 죽었다고 합니다.

이처럼...러시아 정교와 러시아 군주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까작인들은 기독교(그리이스 정교)와 기독교 국가라고 알려져 있는 러시아에 의해 많은 상처를 받아 왔습니다.  그들을 기독교화(그리이스 정교화)하려는 러시아인들에 의해 문화적 정체성과 언어를 잃었고... 많은 까작인들이 이를 반대하다 죽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까작인들에게는... 기독교를 받아 들이는 것은 러시아의 종교를 받아 들이는 것이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까작인의 유산을 배신하고 러시아인이 되는 것과 같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들로선 "십자가" 표시는 악마의 상징이요...'하나님'이나 '교회' 라는 단어는 꿈에서라도 없애 버리고 싶은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세월은 흘러...까작스딴이 독립한 지 11년이 지났습니다. 수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까작스딴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그들 앞에 내 비쳐도...그들 맘 속에서는 도무지 그 "사랑의 하나님" 이라는 존재를 받아 들이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까작인들을 전도한다는 것은...다른 이슬람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이 따른다고...모든 선교사들은 시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이 한 많은 민족 까작인에게도 하나님은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까작스딴이 독립 할 당시... 까작인 중에서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었지만...10 년이 지난 지금 7천명이 넘는 까작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고...알마티의 살렘 교회 처럼 까작인만들 대상으로 하는 교회 임에도 2천명이 넘는 대형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