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일보

1930년대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소련 극동 지방에 살고 있던 많은 한국인들이 중앙 아시아로 옮겨졌고 까작스딴에는 그 후예들이 10만명이나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고려인' 이라고 부릅니다. 까작스딴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를 눈으로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 아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고려인들은 1920년대부터 한국말로 된 신문을 내며 지난 80년 동안 한국 문화와 글을 지켜 왔습니다. 그 신문의 이름은 처음에는 '선봉 신문' 이었고 이후 '레닌 기치' 라는 이름으로 전성기를 보냈었고 지금은 '고려일보'라는 이름은 까작스딴 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려일보의 주언어가 8면의 러시아어 이지만 여전히 4면으로 된 한국어판 고려일보가 나오고 있어 까작스딴에서 사는 우리 가족으로선 참 반가운 신문인 셈입니다. 이곳에서 까작스딴 뉴스를 한국말로 볼 수 있으니 말이죠.

알마티에는 한국 신문들을 짜집기 한 '한인 일보'라는 신문이 교민 사회에 돌고 있지만....역사성으로 따지자면 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려일보를 흉내낼 순 없을 것입니다. 1920년대 부터 '선봉 신문', '레닌 기치', '고려일보' 라는 이름으로 계속 내려온 이 신문은 구 소련 전역의 유일한 한글 신문이었고 한글로 작품 활동을 하던 문인들은 이 신문을 통해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김기철, 김준, 임화, 김세일, 정상진, 한상욱, 차원철, 전동혁, 이은영, 강태수, 김광현 등이 소련 조선 문학의 한 세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는 고려일보의 전신 '레닌기치'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1주일에 다섯 번씩 큰 규격으로 출판되고 부수도 1만 5천부 가량 전 소련 땅에 배포되었다고 합니다. 보도 자료도 고려인들의 생활 전반에 걸친 내용들이었다고 하는데 1주일에 한 번씩 발표되는 문예 페이지를 통해 앞에서 언급한 문인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활동했다고 합니다. 고려일보를 통해 고려인들은 민족 문화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고 민족성을 보존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레닌기치' 신문사는 한 때 끄질오르다에 위치하다 알마티로 위치를 옮겼고 까작스딴 독립 이후 까작스딴 내에서 '고려일보'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잊고 있습니다만 한글로 기사를 쓰는 옛 기자들이 하나 둘씩 운명을 달리하면서 존폐의 기로에 몰려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매주 한글판 신문을 러시아판과 함께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스타나에서 우체국을 통해 고려일보를 정기 구독하고 있습니다. 한 주에 한 번 금요일에 발간되는 이 신문은 일년 구독료가 2000텡게 정도입니다.

 

고려인에 관한 내용은 아래 글 '잊혀진 이름-고려인'에 잘 나와 있습니다.

 

2003년에  그간에 출간한 모든 고려일보를 스캔하여 CD에 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고려일보(레닌기치) CD(1938년 -2003년)는 한국의 '누리미디어'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고려일보 연락처: +7(카자흐스탄국가번호)-3272-324698

현지 언론을 통해 본 까작스딴의 고려인 뉴스

고려인들 60명 카자흐스탄 지방 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

(23003.8.22 자 고려일보)

카자흐스탄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공화국 지방 의회 의원 입후보자로 등록된 7549명 가운데 여자가 1484명(19.7%), 남자가 6065(80.3%)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민족별로 등록 비율을 보면 카자흐인 69%, 러시아인 18.96%, 우크라이나인 3.13%, 위구르인 0.37%, 고려인 0.79%, 독일인 1.23%, 따따르인 1.27% 기타  민족이 4.85%였다.

중앙 선관위에 따르면 고려인 입후보자 중 23명이 주의회, 13명이 구역의회, 24명이 시의회 의원에 출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