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속에서 떠오르는 중앙아시아   - 2000년 자료('실크로드 2000' 前 자료) 이나 중앙아시아를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하답니다. 꼭 읽어 보세요

중앙아시아의 지리적 정의는 넓게는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동()투르키스탄으로 불리는 중국의 신장자치구(新疆自治區)와 서(西)투르키스탄 및 카자흐스탄 남부를 합친 지역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독립국가의 형태를 띠고있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직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 5개 공화국을 의미한다. 중앙 아시아 국가들의 총 면적은 400 km2로서 한반도 면적의 약 20배에 달하며, 인구는 작년까지 약 5,500만 명에 이른다. 중앙아시아의 지형은 해발 4,000m의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빙하와 만년설에 뒤덮인 세계 최고의 히말라야, 카라코람, 톈산(天山) 등의 4,0008,000m에 이르는 산맥이 있다. 반면, 파미르고원 서쪽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은 극심한 건조 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여기에는 키질쿰, 카라쿰 등의 모래 사막과 카자흐스탄 초원 등과 대초원도 있다. 이 같은 건조지대에 식수와 용수 역할을 하는 아무르, 시르다리야, 일리 등 큰 강의 수원은 주로 높은 산의 빙하나 눈 녹은 물이다. 이 지역 하천은 해양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이시쿨호(), 아랄해()와 같은 호수로 흘러들거나 사막 속에서 소실된다. 파미르고원 부근에 위치한 키르키스탄, 타직키스탄 등의 주민의 대부분은 아직도 목축을 중심으로 한 유목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아시스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 남부, 투르크메니스탄 등은 사막과 스텝 지역에서 유목과 농업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실크로드 지역의 역사는 사마르칸트, 부하라, 오쉬 등과 같은 오아시스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동서의 무역상들은 낙타를 타고 이 지역을 왕래하였다.

에너지 가격 폭등과 중앙아시아의 부상

오늘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이러한 지정학적 장점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에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유라시아의 물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신()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새천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신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동서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과거 실크로드의 번영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98 7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본격적으로 중앙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발족시키고 관세, 물류, 인근 지역에 대한 자원 공급 문제 등에 대해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하였다.

중앙아시아가 본격적인 경제 개발의 길로 들어선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중앙아시아 경제는 91년말 구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고물가와 저성장 그리고 세수 부족에 따른 정부 재정의 악화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96년부터 적극적인 수출 촉진 정책과 긴축정책 기조를 유지한 덕분에 먼저 물가가 수 천%에서 30-40%대로 안정되는 등 성장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97년 하반기에 발생한 아시아 통화 위기와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외부충격에 취약한 이 지역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폭락하고 외국인 투자가들이 보따리를 싸기 시작하였다. 99년 세계 금융 위기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하반기부터 시작된 국제 원자재의 가격 폭등은 중앙아시아를 떠오르는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막대한 석유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98년도 러시아 모라토리엄의 영향을 벗어나 작년에는 미약하지만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배럴당 30달러에 달하는 석유 가격의 앙등이 효자 역할을 하였지만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나자르바예프 정부의 역할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세계 4위의 가스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도 에너지 가격 상승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최근 가스전 개발에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면서 에너지 부문의 생산이 활기를 보여 올해에는 5% 이상의 높은 경제 성장이 예상된다. 지형적으로나 산업 구조 측면에서 러시아에 덜 의존적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은 96년 이후 착실한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99년 하반기부터 원면과 금 가격의 상승은 침체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 수출의 30% 이상을 금에 의존하고 있는 키르기즈스탄도 이 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 효과를 많이 볼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를 목표로 하고 있는 키르기즈스탄은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정치적 기반을 바탕으로 IMF 및 일본으로부터의 경제 원조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구소련이 붕괴된 후 5년 동안 내전에 시달렸던 타직키스탄도 반정부군과 97 6월 평화 협정에 조인하고 국제 사회에다 적극적인 경제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회복 상태에 놓여 있지만 본격적인 성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에너지 자원 개발과 수송 파이프 라인의 성공적인 추진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한다. 중앙 아시아 각국 수뇌들은 최대 수출 품목인 에너지의 수송 루트 확보를 통해 수출을 진작시키고자 97 5월 인근 중동 및 서남아 국가들과 공동으로 결성한 경제협력기구(ECO)를 소집하여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수송망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로써 98년에는 파이프 라인 건설을 위한 국제 컨소시엄을 적극 구성하였다. 현재 모빌, 쉐브론 등 국제 석유 자본도 약 150억 달러 이상을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 개발 및 송유관 건설에 투자하였는데 최근 석유 가격의 폭등은 개발 프로젝트에 윤활유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엑슨, 중국의 국영석유회사, 일본의 미쯔비시 등도 러시아를 우회하는 야심적인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 자원의 보고로서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매력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열강들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수세기 동안 잊혀졌던 중앙아시아가 다시 세계사 속에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 동서양을 이어주던 중앙 아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인도양 항로 개발과 18세기 이후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면서 세계사 속에서 망각되었다. 그러나 91년 구소련 붕괴 이후 호르무즈 해협과 시베리아 유전 가운데 연결된 카스피해 연안의 막대한 석유 및 가스 자원은 향후 중앙아시아가 ‘제2의 중동’이 될 것을 예견하고 있다. 이 지역의 석유 개발은 세계적으로 석유 소비가 매년 증가 일로에 있는 지금 전세계에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에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동안 중앙아시아의 석유 개발은 개발 코스트 비용과 지정학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서랍 속에 파묻혀 있었지만 최근 유가 상승과 신실크로드 개발로 현실적인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다. 여기에다 면화, 비철금속 등 풍부한 지하자원도 서방 투자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정치적 도전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권위주의 체제이다. 권력은 여전히 과거 공산당 서기장이던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다. 민주적 권력 교체의 경험은 갖고 있지 않으며 종종 국제 사회의 인권 탄압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직면한 정치적 도전은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자 세력의 부상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가 및 민족 정체성을 부정하고 정교일치의 이슬람 공화국 수립을 주장하고 있다. 타직키스탄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정부군과의 5년에 걸친 내전으로 국토가 피폐해졌다. 우즈베키스탄은 카리모프 대통령이 원리주의자들의 폭탄 테러로부터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페르가나 지역에서 빈발하는 테러로부터 민심이 흉흉한 실정이다. 관광 대국을 꿈꾸었던 키르기즈스탄은 오쉬지방에서 발생한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으로 국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정치적 도전은 현재까지는 대중 시위나 정당 활동이 아니라 대중의 지지를 받기 힘든 테러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빈부 격차나 가구당 월 5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소득 수준이 계속된다면 향후 심각한 정치적 혼란이 야기될지도 모른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러시아의 체첸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중앙아시아 지역 대부분의 원리주의자들이 체첸에서 훈련받고 자금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체첸 점령은 향후 이 지역 원리주의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와 풍습

중앙아시아가 비록 동서의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지만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유럽보다는 아시아인의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은 몽골족들의 먼 후손으로 한국 시골 사람들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이들은 언어상으로는 터키계에 속하지만 혈통적으로는 몽골족인 것이다.

카자흐인은 몽골 유목 민족의 후예들로서 말을 사랑하며 승마를 즐긴다. 울락타티쉬(Ulak Tartish)는 말 위에 타서 염소의 몸통을 낚아채는 게임이고 키즈콜라쉬(Kiz Kholash)는 여자가 말에 탄 남자를 쫓아가 승마용 채찍으로 때리는 게임이다. 탄지 알루(Tange alu)는 말을 타고 질주하면서 땅에 떨어진 동전을 집는 게임이다. 또한 유목민으로 카자흐인들은 말고기로 만든 요리를 즐기며 이슬람교에게는 금기로 되어 있는 돼지고기와 술도 먹는다.

키르기즈인들도 몽골 유목 민족의 후손들로서 염소의 시체를 낚아채는 울크-타티쉬(Ulkh-Tartysh)라는 경기를 즐기기도 한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비교적 일찍 농경 생활을 시작한 우즈벡인들은 갈색의 곧은 머리, 넓은 얼굴 등 몽골족의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 일찍 대규모 농경 생활을 시작한 까닭으로 우즈벡인들은 우리 나라의 두레 같은 마을과 지역마다 마할라(Mahalla)를 구성하고 있다. 일종의 농업 및 지역 공동체인 마할라에서는 대부분 최연장자가 행정상의 위계와는 별도로 실질적인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주민들의 각종 송사 문제나 결혼, 축제, 공휴일 등의 예식 등은 마할라가 주도가 되어 이루어지는데 나이든 사람을 우대하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와 비슷하다. 명절 때가 되면 우즈벡인은 화려한 금자수가 놓여져 있는 예식용 의복 캄즐을 즐겨 입으며, 쿠르쉬’라는 우즈벡 전통 씨름을 사랑한다.

키르기즈와 카자흐, 우즈벡인들이 투르계 계통의 혈통과 언어를 갖고 있는 반면 투르크메니스탄과 타직은 페르시아계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국토의 90%가 사막이며 유명한 카라쿰 사막이 있는 투르크인들은 전형적인 사막 민족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적인 수직물 카페트 생산지의 중심으로 여인들은 주로 카페트 직조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타지크인은 인종적으로는 페르시아계 아랍인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1년에 12 31일과 3 21일 등 두 번에 걸쳐 설날을 맞는 것은 우리의 설 풍습과 비슷하다.

 

전략적 동반관계로서 중앙아시아와 한국

91년 독립 이후 중앙아시아 지역의 최대 투자 국가는 한국이다. 대우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삼성은 카자흐스탄에서, 갑을방적은 타직키스탄에서 대대적인 사업을 전개하였다. 한국 기업이 중앙아시아 지역에 투자하게 된 것은 한국 경제와 이들 국가간의 경제적 상호 보완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섬유, 전자, 석유화학, 자동차 등 구소련에서 꼭 필요한 생필품의 주공급국이었다. 한국의 제품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과 비교해볼 때 저렴하면서도 품질 측면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또한 다소 주먹구구식이기는 하지만 한국은 이들 독립국가 협상 당사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반면 서구 투자가들은 법체제, 투자 보호, 산업 전반 등 투자를 위한 철저한 사전 조사 과정에서 말많고 따지기만 하는 투자가로 인식되었다. 더구나 서구 기업가들이 보기에는 이들 신흥 독립국가의 사회나 정치, 경제 체제가 엉망이고 혼란스럽게만 보였던 반면 한국 기업가들은 경제 개발 이전의 혼동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오히려 당국자들에게 한국의 경험을 들어 산업 방향까지 제시해 주는 조언가의 역할까지 할 수 있음으로써 더욱 신임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대우는 1995-1996, 우즈베키스탄에 년간 10만대의 자동차 조립 공장을 세우고 이어 가전제품조립공장, 7만추의 면방 공장, 통신, 은행 등 다방면에 걸쳐 선두 투자자로서 활약하였다. 카자흐스탄에서 삼성은 제스카스간 구리 공단을 위탁 경영하여 97년도에는 카자흐스탄 외환 소득의 15-16%(6-7억 달러)에 해당하는 수출에 기여하였다. 갑을방적은 우즈베키스탄에 10만추 면방공장 뿐만 아니라 타직키스탄에 7만추의 면방공장을 건립하여 중앙아시아 면방산업의 최대 투자가가 되었다. 이러한 한국 투자의 확대로 아시아나 항공이 서울-타쉬켄트, 서울-알마타에 주 1회 취항함으로써 비즈니스맨과 여행자들의 편의는 물론 여타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종교단체에서도 잇달아 복음 전파를 위해 대규모 선교사를 이 지역에 파견하였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교역 규모도 97년도에 10억 달러 규모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98년도 러시아 모라토리엄 이후 이 지역의 외화 수요가 줄어듬에 따라 98년에는 6억 달러 규모로 감소하였지만 한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향후 석유개발 투자 등 구미 등의 신규 투자가 활성화될 경우 교역은 계속 증대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한국의 기업들은 중앙아시아에 투자하여 성공적인 사업을 전개해 왔으나 IMF 사태 이후 해외 신규 투자의 정리 및 축소 쪽으로 방향이 잡히고 있다. 정부 차원의 투자 역시 미미한 실정으로 향후 중앙아시아 거점 확보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우리의 국력으로 비추어 볼 때 중앙아시아에 구축된 기반을 다른 지역에 구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동남아시아가 일본의 안방이라면 중앙아시아는 한국의 안방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우리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될 것이다.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시장

현재 중앙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교민들은 스탈린 시절에 연해주 등에서 강제 이주해 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고려인들은 철저히 잊혀진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척박한 사막과 스텝의 땅에 자랑스럽게 살아 남았다. 91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을 맞이하였을 때 여기에 강제 이주한 독일계와 이스라엘계 민족들은 자국 시민권을 부여받고 대부분 귀환하였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중국의 조선족을 의식하여 이들 동포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았다. 30만 명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의 우리 동포, 고려인들은 한국 기업과 교민들의 투자 길잡이자 동반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사실 이들이 있었기에 일본과 구미 선진국에 앞서 지난 10년간 중앙아시아에 대한 한국의 투자 선점이 가능하였다. 중앙 아시아가 한국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는 효과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시장의 교두보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서남아시아와 중동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며 우리의 제3세계 외교 역량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시장인 떠오르는 신실크로드 번영의 길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중앙아시아 각국의 경제개발에 기여함은 물론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 30만 명에게도 자긍심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글: 홍성혁/ 삼트레이드 & 컨설팅 대표. )

 

중앙아시아에 부활하는 이슬람

우즈베키스탄의 남부 사르아시요에서 타직키스탄으로 국경을 건너갈 때 우즈벡 측에서는 검사와 과정이 심하고 짜임새 있지만 타직키스탄 쪽으로 일단 넘어가면 검사는 형식적이고 들어가는 사람들을 그다지 심하게 조사하지 않는다. 국경을 지나 몇몇 목화밭을 지나면 거대한 규모의 알미늄 공장이 나온다. 여기를 지나 수도 듀산베까지의 길은 가끔씩 집단농가가 보이고 시골길 연변에 집들이 늘어서 있다. 국경을 통과한 후 택시로 20분쯤 달리고 나면 99 4월까지 이곳에 없었던 커다란 건물이 눈에 띈다. 동네의 전경과 어울리지 않게 크고 호화롭게 지어진 무슬림 사원이다. 금요일 오후 1시가 되면 이 동네와 이웃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사원에 모여들어 예배를 드린다. 누가 무슬림이고 누가 아니고를 물어볼 필요가 없고 이 시간이 되면 동네 어른들을 필두로 모든 남자들은 사원으로 향한다. 무슨 내용을 기도하는지 모르고 자신이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간에 사원을 가지 않으면 동네에서는 소외되고 마는 것이다. 99년 초까지 이 마을에 지배적인 종교가 이슬람이라고 하여도 아무도 그 실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사람들의 종교성도 말뿐이었지 구체적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일단 무슬림 사원이 들어서면서 마을의 중심 구도는 바뀌어졌고 마을 공동체의 의사결정과 가치기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원 건립 이후로 이슬람의 압도적 분위기는 마을 사람들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억압받았던 이슬람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던 제정러시아의 남진 정책은 반세기 만에 대부분의 중앙 아시아를 점령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외 정책은 몽골제국과 유사하여 현지 민족의 종교와 관습, 언어, 문화에 대해서 그다지 간섭하지 않았다. 1917년의 볼세비키 혁명이후 제정 러시아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바꾸어지면서 중앙 아시아의 민족들에게 잠깐 동안의 독립을 허용했지만 1924년 스탈린의 등극 이후로 중앙 아시아의 민족들은 소비에트화 되어갔다. 종교는 아편이다’는 레닌의 가르침에 따라 소비에트는 형식적인 종교의 틀은 남겨두고 사실상 모든 종교 기관이나 건물을 황폐화 시켰다. 이슬람도 예외가 아니었고 국가 공무원이 종교 예식에 참여하거나 종교적일 경우 비판을 받거나 제거되었다. 사원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지원 받지 못했고 학교 기관에서는 각 종교의 거대 행사가 있는 날에는 의도적으로 학교 행사를 실시해서 젊은이들이 종교 행사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였다. 남아 있는 이슬람 신학교는 대외 외교 전략용으로 남겨져서 소비에트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선전용으로 사용되었다. 또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위해 이슬람 신학교 출신의 사람들이 기용되었다.

 

소련의 와해와 이슬람의 복귀

1991 9월 소련의 붕괴로 인해 일어난 일차적인 변화는 정치권에서 일어났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직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의 중앙 아시아 국가들의 전직 공산당 서기장이나 국가안보기관(KGB)의 장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중앙 공산당에 의해 임명되었던 이들이 이제 막 독립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면서 이들에게 급했던 것은 자신들의 정치 기반을 다지는 일이었다. 광범위한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급선무였던 이들은 국민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이슬람의 진입을 환영하는 척 해야만 했다. 메카를 방문하고 자신이 무슬림인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8세기에 발생한 탈라스 전투 이후로 아랍의 이슬람 세력은 중국의 서진을 막고 이 지역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었다. 타타르, 위구르 족들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족은 거대 공동체가 동시에 이슬람화하기 시작했었다. 12세기의 몽골의 지도자들은 처음 중앙 정부의 지배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역의 문화와 종교에 동화되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일칸국과 차카타이칸국에서는 왕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국민 전체가 이슬람화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남아있던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은 14세기 티무르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이후로 이 지역에서 이슬람은 국민들 전체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었다. 더구나 마리 (투르크메니스탄의 고대 도시, 옛명은 메르브)나 부하라(우즈베키스탄의 고대도시)와 같은 도시는 수피 무슬림들의 성지가 되어서 메카를 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대신 방문할 수 있는 성지처럼 되었다.

제정 러시아의 침략 이후에도 이슬람은 여전히 그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70여 년 동안 근세에 억압받고 무시되었던 이슬람은 소련의 와해 이후 국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요르단 등지에서 이슬람 선교사들의 파견, 사원 건립을 위한 자금 지원, 중앙아시아 젊은 인력의 초청을 통해서 1992년부터 이슬람은 급성장을 하게 되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서 중앙아시아의 집권 정치 세력은 주인을 잃게 되었고 정치적 공백이 된 이곳에 주변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미치고자 상당한 노력을 하게되었다.

자신들의 옛 지배권을 되찾으려는 러시아, 서서히 영향력을 미치려 하는 중국, 근본주의 이슬람의 수출국으로서 이란, 이슬람과 세속정부를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터키 등은 각각 이 지역의 정치적 지배권을 획득함으로 인하여 이 지역에 남겨진 원유, 목화, 상품시장의 점유를 노리게 되었다. 이러한 외부 세력의 압박에 대해 국민들의 반응은 정치권의 반응과 달랐다. 천년동안 이 지역을 지배해왔던 이슬람에 대한 향수와 자신들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국민들의 반응은 자신들의 국가가 이슬람 정부로 변화되지 않으면 알라가 축복하지 않을 것이며 젊은이들의 타락과 모든 도시에서 일어나는 가난과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의 근거 위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즘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즘

17세기부터 전세계가 기독교 제국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어갈 때 이슬람국가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패배와 실패의 원인이 이슬람 법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고 움마 공동체는 타락했으며 코란과 하디스의 말씀들이 무시받는 데에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이슬람의 부흥과 개혁을 부르짖었다. 와하비즘은 18세기 이슬람 부흥운동의 대표적인 예이다. 와하비즘의 창시자 이븐 압 알와하비(Muhammad ibn Abd al-Wahhab)는 무하마드 이븐 사이드와 함께 군사개혁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무슬림들의 신앙을 회복하여 코란의 준수와 메디나에서 있었던 초기 이슬람 공동체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촉구했다. 와하비 전사들은 자신들을 형제회(brotherhoood)로 부르며 군사적으로 도시들을 개혁해 나갔다. 특히 그는 아프리카의 Mahdi (Sudan) Grand Sanusi(Libya)처럼 그 지역의 수피들의 부흥을 유도하지 않고 반대로 철저하게 수피즘을 파괴해 나갔다. 그의 의도는 철저하게 이슬람과 아랍을 일치시키고 이슬람 사회 속에 역사적으로 침투해 들어 온 모든 세속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데 있었다.

중앙 아시아가 소연방에서 독립된 이후에 와하비즘은 매우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와하비즘은 중앙 아시아 수피 무슬림들에게 정부를 상대로 군사 대결을 해서 국가를 이슬람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론적 배경을 가르쳤고 이 지역의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훈련을 시켜 재투입시키기 시작했다.

 

수피 이슬람

수피는 양털을 의미하는 것으로 초기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이 입었던 옷을 가리킨다. 정통 이슬람은 규율과 법규로 외면적인 의무에 대해서는 설명해주고 있지만 외면적인 요소를 초월하여 있는 신과의 교제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계명만이 아닌 신의 현존을 느끼기를 원하는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정통 이슬람은 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8세기초에 활동했었던 알 수피는 이러한 이론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하산 알 바스리는 자신이 곧 진리다”라고 선포했다.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넘어 중앙 아시아에 정착해 나갈 때 이미 중앙 아시아는 여러 미신과 정령숭배, 변형된 기독교, 불교가 혼합되어 퍼져 있었다. 여기에 낙시반드와 같은 수피즘의 학자들은 부하라에 근거를 두고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미쳤다. 샤머니즘에 익숙해 있는 중앙아시아인들에게 정통 아랍식 이슬람보다 환상과 계시를 중요시하고 조상들의 영을 숭배하는 수피즘은 받아들이기에 아주 쉽고 자신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었다. 이로 인하여 중앙아시아에는 이슬람 수피즘이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이슬람과 중앙 아시아 정부들

구 공산당의 이념과 멘탈리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독립 이후 국가를 다스려 온 중앙 아시아 국가들의 지도자들에게는 국가를 이슬람 법(샤리아)으로 바꾸고 모든 삶에 종교 공동체가 우선해야 한다는 와하비들의 도전은 반정부 투쟁으로 인식되었다. 정부는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와하비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곳곳의 무슬림 사원에서 무기가 발견되었고 감옥에는 와하비스트로 인정되어 갇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4, 15세의 젊은이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반정부 훈련을 받고 다시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즈의 국가들에게 파견되었다.

이 일의 극한 상황은 우즈베키스탄에서 1999년 2월 14일 대통령 까리모프의 암살 기도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또한 키르키즈의 한 지역을 점령하고 일본인 지리학자 4명을 인질로 잡아 그 지역을 한달 이상 지배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지방도시들에서 분리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체첸과 다게스탄에서 독립전쟁을 지휘했다. 타직키스탄에서는 2년 동안 내전을 유도했다. 일찍부터 이란과 국경을 열고 이슬람의 전파에 자유를 주어서 국민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만족시킨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오히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중앙 아시아 무슬림에게 열려진 기회들

라마단이 한참 진행중이던 때에 택시를 잡아탔다. 나는 그에게 금식중이냐고 물었다. 그는 할때도 있고 안할 때도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루에 몇 번씩 기도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3번씩 한다고 대답했다. 5번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는 자기 알라는 3번만 해도 된다고 하였다. 모 대학의 총장님에게 교육 개혁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학교에서 이슬람 교육을 시킬 것인지를 물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슬람의 관습이 필요한데 현재 사회에서 유행하는 이슬람은 정통 이슬람과 다르고 오히려 과격 테러범이 많아서 올바르지 않은 이슬람을 좇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많은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슬림인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무슬림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며 자신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그리고 코란과 하디스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특히 아랍어로 코란을 읽어야 진짜 코란을 읽었다고 인정하는 무슬림들의 믿음세계에 있어서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은 항상 변방 무슬림으로 생각되었다. 더구나 신실하게 무슬림의 법을 따르려 할 때 자칫 와하비스트로 오해될 것을 무척 염려한다.

공직에 있던 검사 한명은 자신이 신실한 무슬림이면서도 공식 석상에서 자신이 어떻게 종교적인 관행을 잘 지키고 있는지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정통 이슬람에서 상당히 변조된 수피 이슬람을 추구하는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날 때 그들이 믿었던 이슬람에서 복음으로 매우 쉽게 돌아온다. 이렇게 돌아온 사람들이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해 양육을 받으면 그들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난 70년 동안의 소비에트의 통치는 정치적, 제도적으로 이슬람이 중앙 아시아에 다시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많이 무너뜨렸다. 일반 국민들은 정통 이슬람에 대한 지식과 신뢰가 아직 없고 반 기독교 교육을 받지 않았다. 이로써 복음을 들을 때 처음부터 거부하는 일은 없다. 시골 지역에서 맹목적인 무슬림이 더 많은 반면에 공개 전도의 열매가 더 많은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현 정치 지도자들의 정책은 무슬림의 부흥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오히려 강력한 이슬람 운동은 반정부 테러범으로 인정되어지고 있어서 국민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진실로 국가의 안정과 풍요를 원하며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인 것을 정부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인식시켜 줄 수 있다면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기독교에 갖는 호감은 훨씬 커지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중보할 것들

기독교 정교회의 러시아와 체첸의 분쟁,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 기독교 한족과 위구르와의 충돌과 갈등은 이 지역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커다란 걸림돌이다. 분명히 기독교와 자기 민족이 서로 원수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슬림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자신의 민족을 배반해야만 할 것 같은 갈등을 심하게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분쟁 지역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평화가 빨리 정착될수록 복음의 전파는 빨라진다. 현재 중앙아시아 정치 지도자들의 현명한 통치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불안정한 상황은 교회의 활동을 동시에 억압하며 합법적인 교회 활동과 확장을 방해한다. 중앙아시아 전체에서 카자흐스탄 만이 유일하게 카자흐스탄 민족의 교회를 등록시켰다. 이들 미전도 종족들의 교회가 공식적으로 등록되는 것은 이 지역의 복음화에 중요한 주춧돌이다. 중앙아시아 전체의 영적 분위기가 바뀌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 지역을 주도하는 정사와 권세를 대적하여 영적 전쟁을 하고 오히려 축복하는 일들을 통해 전체 중앙아시아의 정확하게 결정되지 않은 영적 분위기를 유도할 수 있다. 금년 7 19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실크로드2000 집회는 이 일을 위해 계획되었고 궁극적으로 중앙 아시아에 하나님의 나라가 편만하게 확장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글: 김 마가)

 

중앙아시아의 미래는 한국 교회에 달려있다 

중앙아시아 선교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중앙아시아가 당면한 선교적 과제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의 정체성과 향방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선교는 문화적, 영적 정체성을 바꾸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시적 관점과 동시적 관점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통시적, 동시적 관점에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접근을 통해 오늘날의 중앙아시아와 미래의 중앙아시아의 향방에 대한 객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중앙아시아의 역사적 배경과 현상(現狀)을 살펴보고 중앙아시아 선교의 과제와 중앙아시아 선교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중앙아시아의 현상에 대한 역사적 조명

튀르크 이슬람 문화

19세기 중반에 제정 러시아에 의해 합병된 중앙아시아는 150여 년의 러시아 통치에서 벗어나 1991년 독립하였다. 10세기에 사라센 이슬람 제국 호라산 총독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이슬람화된 중앙아시아는 전투적인 이슬람 유목민족 문화를 형성하며 셀축 제국,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여, 한 때 이슬람-튀르크 세계를 북부 아프리카, 인도, 중동과 동구 유럽까지 확대해 나갔다. 사무엘 헌팅턴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슬람-튀르크 제국은 합스부르크가 주도하는 유럽 기독교 제국, 슬라브계 기독교 정교인 러시아 제국과 더불어 세계 3대 세력으로 500여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유럽 기독교 문명권이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산업과 군사력의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면서 이슬람-튀르크 세력은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중앙아시아는 급기야 기독교 제국 러시아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다. 150여 년의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지배는 중앙아시아의 종교나 문화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처음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침략기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족의 대결은 기독교 신과 이슬람 신의 종교 전쟁의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으나,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군사지배가 확립된 이후에는 종교적, 문화적 영향은 미비하였다.

 

소비에트 문화

러시아식 문화 형태가 중앙아시아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준 시기는 소비에트 혁명 이후 중앙아시아가 공산화된 이후의 일이다. 70여 년 동안의 소비에트 정권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강압적 지배는 전통적인 중앙아시아의 유목 문화를 정착 문화로 바꾸어 놓았으며, 유목 중심의 산업 구조를 농업 및 광업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소비에트 체제에서 중앙아시아의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졌으며 공업 중심 산업화도 진척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중앙아시아는 호전적 유목민족적 기질을 바탕으로 전통적 이슬람 문화와 소비에트 문화가 혼합된 소비에트-이슬람-튀르크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반기독교적 정서

따라서 이슬람 중앙아시아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서 기독교 세력과 이방 종교권 세력의 변방에 위치하여 과거 역사 속에서 기독교 문화권의 확장을 제어하는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중앙아시아 이슬람은 다른 지역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들 보다 반기독교적 정서 혹은 기독교에 대한 경계 의식이 더 뚜렷히 나타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정서나 이슬람 단합의식은 반사적으로 반기독교 정서에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록 소비에트 문화의 영향으로 전투적인 이슬람 정서가 많이 희석되었고 자본주의가 급속히 전파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종교적 정서가 약화되었으나, 일반적으로 볼 때 중앙아시아인들의 정체성 기저에는 반기독교적 이슬람 정서가 매우 강하게 뿌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외국인에게 접근해온 중앙아시아인들이 매우 호의적이라든가, 그들의 종교적 행위나 의식이 드러나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현지인들의 이슬람 종교적 의식이 약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중앙아시아인들에게 있어서 민족의식은 곧 이슬람 종교의식이요, 애국심은 곧 알라신에 대한 충성심과 깊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실제로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현지인을 대상으로 선교하고자하는 선교사의 입국을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거나 다른 형태의 직업을 가지고 사역하는 전문인 선교사들이다.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고려인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아시아 선교 접근

전략과 과제

이와 같은 반기독교 정서를 극복하고 중앙아시아의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 한국 교회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첫째는 고려인 사역을 통한 현지인 복음화 전략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대부분의 고려인들이 현지어를 모르고 구소련 국어인 러시아어만 구사하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배우고, 고려인과 중앙아시아 내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러시아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함으로써 이들 소수민족을 통한 현지인 사역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사역하는 은혜교회의 김 선교사의 경우가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은혜교회는 말씀과 기도, 그리고 성령충만한 예배를 통해 사도행전적 영적 부흥을 이루고 있다. 선교지 사역의 성패가 목회자의 헌신과 영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김 선교사가 성도들에 의해 영적 리더로서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째는 전문인 사역을 통한 현지인 교회 개척 사역이 있다. 이 경우는 러시아어보다는 현지 언어를 배우고,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현지인을 상대로 직접 사역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전문인 사역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카자흐스탄의 주 선교사와 우즈베키스탄의 김 마가 선교사 팀의 사역을 들 수 있겠다. 형태는 다르지만 전문인 선교사 모델로서 과거 이슬람권 선교 역사에서 전례가 흔하지 않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전략적 핵심은 사역자들의 현지언어 능통, 전문인 사역, 팀사역, 현지에 대한 지역적 전문성에 근거한 사역 전략 구상, 국제 사역 네트워크 활용 등을 들 수 있다.

셋째는 단기 선교의 활성화 및 전략화를 통한 현지인 복음화를 들수 있다. 중앙아시아는 동서문화 교류의 산실인 실크로드의 중심지이며, 역사적 유물이 풍부하다. 이러한 유적지 방문을 활용한 단기선교 운영이나 실크로드 연구팀 운영을 통해서 단기선교의 전략화 등 다양한 방안이 가능할 것이다.

소비에트 문화의 영향과 관련해 한가지 유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본주의, 물질주의 문화에 젖어 있어 물질을 앞세운 선교에 익숙해 있다는 점이다. 중앙아시아인들은 지난 70여년 동안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경제적 필요에 의해 자본주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자본주의 정신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부 현지인들이나 고려인들이 돈맛을 알고 돈을 벌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무슨 일이든지 한다고 해서 현지인들이 물질지상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병폐와 발상을 선호하거나 묵인한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사회주의는 물질주의나 돈으로 사람을 평가한다거나 돈의 위력을 앞세운 어떤 행위도 도덕적으로 악하다고 가르쳤다. 돈을 벌기 위해 보따리 장사를 하는 현지인들이 이러한 도덕관을 포기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중앙아시아인들은 사회주의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러시아인들과의 역사적 갈등에서 발달한 중앙아시아 내 반기독교 정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또한 물질주의적 접근을 지양하면서, 효율적으로 선교할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될지라도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낮아져서 섬기는 성육신적 선교(incarnational mission)와 전인격적 접근으로써 현지인 한사람 한사람을 주님의 제자로 양육하는 제자 양육을 기조로 한 교회 개척이 주력을 이루는 형태를 취하지 않고서는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할 것이다.

한편 국제 사회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점차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특히 강대국들이 중앙아시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방대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과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슬라브 문화권, 중국 문화권, 아랍 문화권, 인도 문화권의 교차 중심지역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아시아 대륙의 전통적인 주요 세력 간 완충지역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아시아와 유럽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대륙의 문화 지도나 정치 지도를 그려볼 때 중앙아시아는 전략적으로 요충지역에 위치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양대 구도가 지배적인 과거 냉전 체제에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 중앙아시아가 국제 사회에서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이데올로기 대립체제에서 문명권을 중심으로 다원화되어가는 지구촌 국제 환경의 변화를 단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21세기 국제관계에서 중앙아시아가 차지할 비중이 어떠할 것인지를 암시하는 것으로, 앞으로 중앙아시아의 향방에 강대국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거대 다문명권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아시아의 정체성과 향방에 대해 세계 제국들은 유의 깊게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미묘하고도 민감한 상황에 처한 중앙아시아 국가의 지도자들은 구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가를 형성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국가 정체성과 방향성 문제와 관련한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국가 정체성과 방향성은 국제 정치뿐만 아니라 국제 관계와 안보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지도자들은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데 단순히 경제 논리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당장 경제적 이득이 많다 하더라도 국가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는 매우 신중히 대응한다. 중앙아시아 국가 지도자들의 이러한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왜 경제 개방을 빨리 하지 않느냐, 제도를 빨리 바꾸지 않느냐, 우리와 협력하면 경제적 이익이 많은데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등의 불평을 늘어 놓기가 일쑤다. 이슬람 국가, 중국, 러시아, 인도 등 4대 인접 세력과 동일 민족 국가 터키, 그리고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주요 세력의 영향력과 압력에 적절히 대응하며 자기 정체성과 주권을 지키고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약소국인 중앙아시아 국가 지도자들은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 편에 서서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며, 때로는 두려워하며 때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물쭈물하며 세월을 보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 지도자들이 국내에서 매우 독재적으로 행동하고 발언하는 것은 이와 같은 대외적인 무력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국가 정체성과 대외 정책에 있어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이러한 입장과 처지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에 대한 공동 대응, 극우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공동 보조, 군사와 첩보 영역에 있어서의 긴밀한 협조, 대외 관계에 있어서의 4대 인접 세력에 대한 공동의 정책적 대응 등에서 이러한 면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한국 교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중앙아시아 및 알타이 문화권에서 한국 교회의 선교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앙아시아 언어가 우리말과 유사한 알타이어(튀르크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우리 사역자들이 현지어를 쉽게 배운다거나 중앙아시아에 고려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선교 접근이 용이하다는 것은 이미 한국 교회에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선교접근의 장점 이외에 중앙아시아 선교에 있어서 한국 교회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는 우리 나라가 역사적으로 세계 지배세력에 속하지 않았으며 중앙아시아와 갈등해 본 적이 없는 국가로써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우리에 대해 상대적으로 매우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장점이 강점이 되기 위해서는 겸손한 태도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사역하는 한국 선교사들이나 선교지를 방문하는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현지인이나 현지 그리스도인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은 이미 세계 선교계의 국제적 이슈가 된지 오래다. 왜 그렇게도 교만하고 거만하고 교양이 부족한지! 타문화권 접근에 있어서 교양을 갖추는 것은 기본적 소양이지만, 특별히 중앙아시아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겸손한 태도는 선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과거 구소련 체제에서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모국어인 한국어를 잃어버리면서까지 지배 민족 언어인 러시아어를 열심히 배웠으며 결과적으로 우즈벡인이나 카작인들 같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지배 민족인 러시아인들에게까지 고려인들은 우수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러시아인들은 이와 같이 유능하고 열심히 러시아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고 체제 내에서 성공하기를 원하는 고려인들을 전통적이고 반러시아 정서가 강한 중앙아시아인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곤 하였다. 러시아인들이 직접 나서기 곤란한 때는 고려인들을 주요 위치에 배치시켜서 소수 민족 고려인들을 통해서 중앙아시아 현지인 통치를 시도하곤 했던 것이다. 중앙아시아인들은 고려인들이 우수하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고려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편향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내심 섭섭함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유로 1995년에 필자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많은 중앙아시아인들은 고려인들에 대해서 근면하지만 기회주의적’, ‘출세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앙아시아 현지인들이 고려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고려하여 보다 신중하고 진솔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중앙아시아에 잘 사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앙아시아인들에 대해서 거만하다거나 우쭐거린다는 식의 오해를 받지 않도록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중앙아시아인들을 21세기 동반자로 생각하고 접근해야 하며, 모든 선교지에서 마찬가지지만 현지인들을 제자로 세우되 진정한 동역자로 생각하고 함께 팀으로 일하려는 성숙한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이슬람권 선교는 세계 교회의 최대의 과제

세계 이슬람권은 북부아프리카, 중동, 서남아,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으로 분류된다. 이들 이슬람 권역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많은 지역은 중앙아시아 지역이다. 중앙아시아 공략을 통해 서남아 및 중동으로 진출할 수 있다. 세계 인구 60억 가운데 약 16억에 달하는 이슬람권 선교는 세계 교회의 최대의 과제이다. 갈수록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이슬람권을 제어하고 역으로 이슬람의 복음화를 이룰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은 7세기 이슬람이 등장한 이래 기독교계의 최대의 과제였다. 그러면서도 이슬람권 복음화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수백년이 흘러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슬람은 도리어 실질적인 신도 수가 가장 많은 거대 종교 집단으로 성장하였다. 중앙아시아는 한국 교회의 최우선 선교 대상 지역으로 분류된다. 세계 선교 대상 지역 가운데 한국과 언어적, 역사적, 문화적 친근성이 가장 강한 지역이 바로 중앙아시아이며, 한국 교회가 가장 효율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지역이다. 서구 선교사들이 중앙아시아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활동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는다. 우리 선교사들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이 지역 상황과 환경이 우리에게 맞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와 주변 알타이문명권은 세계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현지인을 기준으로 볼 때 중동 이슬람권보다 인구 비례 면에서 복음화율이 더 낮다. 반대로 한국은 재력, 인력, 복음적 열정 등을 고려할 때 세계에서 실제적으로 선교적 역량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의 알타이문명권 복음화를 통해 10/40창에 대한 신속한 복음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미래는 한국 교회의 역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 최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