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앙 아시아에서는.....

 

러시아 비자법 개정 외국인 체류기한 축소… 한국 선교사 현지활동 타격  [2008.01.20 18:43]          

러시아 정부가 지난해 10월 비자법을 개정,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체류 기한을 최대 6개월까지 제한하고, 한 번 머물 수 있는 기간도 3개월로 한정해 한국 선교사들의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이에따라 영주권이나 취업비자를 취득해 활동을 계속하는 방안과 함께 타국으로의 재배치까지 거론되는 등 국내 선교담당자들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지난해 10월17일 발표한 개정 비자법에 따르면 1년 상용 혹은 인문 비자를 받은 사람들은 최대 6개월간 머물 수 있으며, 3개월씩 나눠 체류하도록 했다. 3개월 체류 후에는 러시아 영외 지역에서 3개월간 체류한 뒤 다시 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러시아 영외 지역에서 3개월 체류한 것이 증명이 안 되면 한국에서 비자를 연장해야 한다.

그동안 선교사들은 러시아 개신교단과 여행사에서 발행한 초청장을 통해 1년 인문 복수비자로 연 2회 6개월씩 거주등록을 받아 체류해왔다. 하지만 이번 비자법 개정으로 상당수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이와 관련,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통합, 고신, 대신, 합신, 합동정통 등 6개 교단 선교회 총무들은 지난 16일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선교회 총무들은 장기적으로 러시아에 단일 장로교연합회를 세워 공동대처한다는 의견을 모았으며, 구체적인 대책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러시아 선교사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해 영주권을 얻는 방안이다. 하지만 선교사가 많이 모여 있는 모스크바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 외곽지역으로 나가야 할 형편이다. 둘째, 비즈니스 비자를 발급받는 방법이다. 셋째, 러시아 주변 국가로 선교사를 재배치하는 방안이다.

교단들은 이들 방안 중 한 가지로 확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해당 선교사에게 세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교단 총무들은 3월 26∼29일 열리는 모스크바 선교사대회에서 이 문제를 공식 발제하고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6개 장로교단이 러시아에 파송한 선교사 가정은 모두 84가정이다. 이 가운데 4분의 3은 영주권이 없는 상태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러시아에 파송된 한국 선교사는 모두 58개 단체, 544명(가족 포함)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 선교 정교회 견제등 ‘위기’… 현지 선교사가 말하는 사역 현황과 문제점

한국 교회의 선교는 유행을 너무 타는 것 같고 선교사를 무조건 많이 파송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나 봐요.”

6월 한달간 전국 15개 도시에서 진행중인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처럼 고국을 찾은 러시아 선교사들의 말이다. 이들은 1990년대 한국 교회 북방선교의 중심축이었던 러시아를 강조하는 목회자들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서글픈 마음까지 든다고 말했다.

공산당 통치 70여년간 목회자 35만명을 비롯,2000여만명의 기독교 순교자가 나왔던 러시아권에서 한인선교사들이 활동해온 것은 올해로 16년째이다. 소련선교회가 1991년 4월
김봉석 선교사 등 8가정,같은 해 9월 허충강 선교사 등 6가정을 파송한 이래 러시아는 한국 교회의 5번째 선교대상국이기도 했다.

한때 각 교단 및 선교단체들이 파송한 한인선교사들이 500가정(1000여명)을 넘어섰지만 현재 300여 가정으로 줄어들었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고물가에 허덕이던 선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철수한 것도 이유였지만 더 이상 주요 선교지로 간주하지 않는 한국 교회의 선교정책 변화와 무관심이 더 큰 원인이었다. 박형서 선교사는 “현지 상황을 잘 알지 못한 채 한국식으로 사역을 펼치다가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테러 등 많은 핍박 속에서도 열심히 사역한 선교사들이 더 많았다”면서 러시아선교에 대한 한국 교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현재 러시아선교는 장기적인 사역 장소 확보의 어려움,일부 잘못된 선교사들이 주도했던 물량공세식 선교에 따른 부작용,러시아정교회의 견제 등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91년 12월25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제도를 추구하는 러시아연방이 탄생하면서 정교회가 민족종교로 재부상했다. 러시아인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종교를 물으면 정교회 신도라고 한다. 그만큼 명목상 신자가 많다는 것. 정교회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기독교를 이단으로 몰아붙이면서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공격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선교전문가들은 “정교회 신자들이 개신교 신자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정교회가 협력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러나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정교회 신부들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며 이제는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다양한 사역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선교사는 “가능한 한 현지 종교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만약 정교회가 선교사들을 박해한다면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교는 핍박과 눈물을 통해 이뤄지고 도덕성이나 영적 우위가 나타나면 현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선교의 미래는 정교회와의 건강한 관계 설정 외에도 현지 기독교 교단과 협력 네트워크 구축 및 확대,현지인 리더십 양성의 다극화 등에 달려 있다고 선교사들은 지적했다.
조동석 선교사는 “러시아내 기독교 교단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거의 무시해온 선교사들의 활동에 불만이 많다”면서 “현지 기독교단을 활용하면 법적 보호를 통해 사역을 한층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인 교회 개척과 신학교 사역으로 미래의 교회 지도자들을 더 많이 육성하고 스포츠 선교,장애인 및 미전도종족 선교,가정회복 운동 등 사역 내용과 대상을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러시아 선교사는 “러시아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점차 복음 전도에 유리하게 변화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영어·컴퓨터교실 운영,유치원 사립학교 설립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사역 장소를 빌려서 해결하고 있다. 주로 영화관 문화회관 강당 체육관 등을 사용하는데 임차료가 폭등할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 따라서 한국 교회가 선교사들이 마음껏 사역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선교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키르기스스탄 선교장벽 높아진다

중앙아시아에 기독교 선교 장벽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선교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현지 선교사들이 1일 전했다.

현지 선교사들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쿠르만벡 바키예프 대통령이 실권을 장악한 이래 교회등록을 더 이상 해주지 않고 선교사 비자를 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일부 선교사들을 추방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1996년 12월 이래 종교 활동을 하는 모든 외국인과 단체들에게 종교위원회에 등록할 것을 의무화했다. 선교사들이 개척한 교회도 매년 재등록을 해야 한다. 현지 관리들은 이를 이용,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선교사의 활동 연장과 교회 재등록을 지연시키면서 각종 뇌물을 요구해왔다.

2005년 10월말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교회는 279곳이다. 이는 2003년 297곳보다 줄어든 것으로 교회의 60%,166곳이 비슈케크와 추이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교단별로 보면 한국인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가 98개 35%이고 예수그리스도의교회 74개 27%,침례교회 64개 23%,하나님의성회 21개 8%순이다.

외국인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 109곳 중 약 90%가 한국인이 세운 것이다. 한인 선교사들은 그동안 주로 고려인 등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현재 약 40%가 키르기스인을 대상으로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인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 중 정부에 공식 등록한 교회는 20%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구조상으로 취약하다.

연도별 교회 증감 상황을 분석해보면 침례교회는 2년전 117곳으로 가장 많았지만 현재 한국인 선교사 개척교회와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이는 독일 러시아 미국 등지로 이민을 떠나면서 교인 수가 줄어들고 교회 지도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비신자들이나 키르기스인에 대한 전도율이 낮았다. 반면 한국인 선교사 개척교회와 은사주의인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는 2년전보다 각각 29곳,18곳 증가했다.

1991년 독립 당시 키르기스스탄 신자는 20명 안팎에 불과했지만 2003년 3000명을 넘어섰다. 독립 이전 기독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인의 정교회,우크라니아인의 가톨릭,독일인의 개신교 등 비토착인의 종교로만 인식됐었다. 현재 성경번역단체를 통해 키르기스어 신약성경이 완역,출간됐다. 신학교육기관은 비슈케크바이블칼리지 키르키스연합신학교 등 8곳에 달한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06.1.3 국민일보

 

우즈벡 기독교 탄압 극성

우즈베키스탄의 종교상황이 심상치 않다. 9·11테러 이후 18세 이상 미성년자가 교회에 나올 경우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하고 현지인을 개종시킬 수 없다는 규정이 담긴 새로운 종교법이 시행된 이래 기독교 선교사들의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정부 당국은 아랍권의 경제 지원을 받기 위해 지난해 모슬렘을 탄압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4억달러를 지원받은 데 이어 올해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한 탄압과 추방을 조건으로 3억달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본보는 한국선교연구원(KRIM)의 선교정보지 ‘파말마’ 등을 통해 날로 악화돼가는 우즈베키스탄의 종교 상황에 대해 알아보았다.


△미등록 종교활동 금지=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총인구의 95%가 모슬렘이면서도 이슬람 과격주의를 국가 안보의 최대 위협 요소로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것이 모든 종교 신자들의 권리에도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주게 됐다.

종교법에 따르면 법인 등록을 하고 사법기관에 등록한 후에야 정식 활동을 할 수 있다. 미등록된 종교활동에 대한 금지를 형사법 및 행정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행정법에서 불법적인 종교활동은 최소 월급(5달러 정도)의 5배에서 10배에 이르는 벌금이나 15일 이상 구류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수피 신자들이 종교의식의 일환으로 춤추기 위해 개인 아파트에서 모이는 것은 막지 않는다. 지역적인 관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수피운동이 근본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종교법은 개인 자격으로 종교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종교과목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종교 교육을 받아야 하며 행정부의 승인을 얻어야만 한다. 이를 어길 때에는 징역 3년형까지 처할 수 있다. 등록되지 않은 도시에서 가르친다면 규정 위반으로 기소된다.

△기독교 개종과 선교사역에 대한 금지=복음전도와 선교활동을 하면 감옥에 투옥되거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종교법에는 ‘신자의 신앙을 다른 신앙으로 개종시키는 행위는 금지되며 그외 선교사역에 속하는 행위도 모두 금지된다’는 조항이 있다. 개종에 대한 처벌은 형사법 및 행정법에도 있다. 첫번째 위반시 벌금형이나 15일 이상 구류에 처할 수 있다. 추가 위반인 경우 최소 월급의 50∼100배에 이르는 벌금을 내거나 3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기독교로 개종한 한 사람은 카라칼팍스탄자치공화국의 수도 누쿠스 근교 얀보시칼라 마을사람들에게 여러 번 폭행을 당했다. 이슬람으로 되돌아오거나 마을을 떠나라고 했다. 주 경찰과 비밀경찰에 항소했지만 두 기관 모두 고소를 무시했다. 신학 관련 책자들은 종종 극단으로 평가를 받는다. 성경을 비롯 여러 문서가 종교위원회의 허가 없이 우즈베키스탄에 유입되었다가 법원의 결정에 따라 불태워지기도 했다.

카라칼팍스탄에 있는 마지막 합법적인 개신교회 임마누엘교회가 지난 5월4일 법무부에 의해 폐쇄됐다. 교회 성도들이 선교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9월 벌금을 물은 적이 있었다. 카라칼팍스탄의 관리들은 기독인들과 여호와의 증인들의 활동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독인 회심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폭행 당했을 때도 지역 기독인들을 위협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지난해 한 기독인 대학생은 대학교에서 추방됐다. 다른 기독인들은 심문을 받거나 위협을 당하고 가택수색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에 아이들을 상대로 불법적인 종교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등록이 취소된 평화교회는 여러 차례 재등록을 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옛소련 공화국 독립후 14년…자유 얻고 철권통치·내전에 '신음'

푸틴 경제성장 딛고 장기집권 시도… ‘폭정의 전초기지’ 벨로루시 등 대부분 독재 시달려
그루지야ㆍ키르기스스탄은 혁명으로 정권교체 불구 스캔들, 경제난으로 정국 불안정

모스크바=정병선 조선일보 특파원 bschung@chosun.com 입력 : 2005.09.04 17:49 16'

 

15년 집권… 재선 위해 야당 탄압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991년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불법화하고 단체 등록 의무제를 도입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딸을 제1야당 지도자로 내세우는 변칙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 또 스스로를 카자흐 독립의 아버지로, 카자흐스탄을 구한 영웅으로 자처해왔다.

그러나 민주적 지도자란 평가는 아직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야당 폐쇄 조치 등 반(反)정부 인사들에 대한 옥죄기에 나섰다. 법원은 가장 강력한 야당인 ‘민주 선택당’에 대해 해산 결정을 내렸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8월 24일 오는 12월로 예정된 조기 대선 출마선언을 해 끝없는 권력욕을 보이고 있다. 카자흐스탄 대선은 2006년에 예정돼 있었지만 의회가 조기 대선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의뢰해 지난 8월 19일 오는 12월 조기 대선 실시 가능 판결을 내렸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990년부터 카자흐스탄을 통치해왔으며 1999년 1월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재당선됐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시민혁명 발생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카자흐스탄 경제는 매년 10%씩 성장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등 다른 옛 소련국가들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안정의 비결은 정치보다 자원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을 누르고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로 성장한 카자흐스탄의 직접적인 배경이 카스피해 석유·가스 자원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올해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주도했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한 지 만 20년 되는 해다. 그의 정책은 옛 소련 전역의 민주화와 독립분위기를 고취하면서 1991년 소비에트 정권의 종막을 고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카자흐 우즈베크 투르크멘 키르기스 타지크 몰도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됐던 소련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연안 3국이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한 뒤 나머지 13개 공화국이 차례로 독립하면서 해체됐다.

각 공화국은 독립 이후 각기 다른 형태의 정치체제를 갖췄다. 대부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14년이 지난 지금 공화국의 위치는 천차만별이다. 국력향상과 몰락에는 지도자의 역량과 리더십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옛 소련국가 대통령들은 독립 이후 한결같이 독재와 철권통치를 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왔다. 미국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발트3국을 제외한 옛 소련국가들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장기 전망이 여전히 취약하다”며 “이들 국가의 전반적인 민주발전 결여는 해당 정부지도자들이 적극적인 변화를 추진하려는 의지가 부족할 뿐 아니라 이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개헌 추진 등 3선 위한 시나리오 가동

●푸틴 러시아 대통령

푸틴 대통령은 2000년 대선에서 당선된 뒤 4년 임기 동안 ‘강한 러시아’ 정책을 밀어붙이며 러시아를 재차 강대국 위상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대통령에 재선됐으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국력을 신장시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이후 공교롭게도 고유가 시대가 계속되며 국가 경제가 활황세로 돌아서면서 경제를 살린 영웅이 됐다.

러시아 정가는 푸틴 대통령의 3선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그는 헌법에 명시된 중임조항 때문에 2008년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러시아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이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푸틴 대통령도 장기 집권 지도자가 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크렘린궁은 내각제 개헌 대통령 3기 연임 허용 개헌 러시아·벨로루시 공화국이 통합을 선언한 뒤 통합 대통령 취임 등 다양한 장기 집권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연임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언론 등 극단적 사회통제로 15년 통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로루시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월 상원 외교위원회의 인준청문회에서 벨로루시를 북한 쿠바 미얀마 이란 짐바브웨 등과 더불어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했다. 그리고 루카셴코 대통령을 지목하며 “유럽에 남은 마지막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1991년 이후 벨로루시를 15년 동안 통치하고 있다. 1994년 5년 임기 대통령에 재선된 뒤 1996년에는 헌법을 개정해 임기를 2001년까지 연장했고, 지난해 3선 연임했다. 야당세력의 반발과 서방세계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루카셴코 대통령의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한 상태다.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폴란드와 라트비아 등 주변국이 루카셴코를 낙선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야당 후보를 물색,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루카셴코는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혁명을 의식, 올해 들어 자국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외국 음악의 비중을 20%로 줄일 것을 명령하는 등 극단적인 통제에 들어갔다. 그는 “벨로루시에서는 장미(그루지야 혁명), 오렌지(우크라이나 혁명), 바나나 등 어떤 혁명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특히 “대통령의 임무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가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벨로루시에서 민중혁명이 발생할 경우, 무력진압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민주화 업적 불구 아들 교육 도마에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지난 1월 대통령에 취임한 유셴코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민주화 지도자로 우뚝섰다. 유셴코 대통령은 쿠츠마 전 대통령이 후계자로 내세웠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총리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루지야에 이어 민주화혁명을 이뤄낸 지도자로 그루지야 사카슈빌리 대통령과 더불어 세계적인 뉴스메이커가 됐다. 유셴코 대통령은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 투명성 결여, 사회주의 의식구조를 청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집권 이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재산 취득 과정에 대한 합법성 검토에 나섰고, 최근에는 부정부패의 온상인 교통경찰을 해체시키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대통령 전용기를 구입하려 하는 등 사치를 보이고 있다는 소문과 오렌지족 행세를 하고 있는 아들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아들 안드레이(19)가 13만유로(1억6000여만원)짜리 BMW 승용차를 몰고다니며 사치 행각을 벌이다가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최고 3만5000유로에 팔리고 있는 베르투사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가 하면 고급 클럽에서 돈을 마구 뿌리면서 대통령 가족에 대한 윤리·도덕성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나 유셴코 대통령은 “내 아들을 아는 사람은 한결같이 이 녀석이 잘 배웠고, 도덕적이고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면서 아들을 두둔했다. 그러나 국민은 여전히 대통령과 가족에 대해 아직은 확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은 않다.

 

독립 이후 헌법개정 계속 임기연장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1991년 독립 이후 권력을 장악해온 카리모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임기를 현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국민투표로 통과시켰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앞서 1995년 헌법을 개정해 임기를 2000년으로, 2000년에는 다시 2005년으로 각각 연장했다. 지난 1월 우즈베크 총선에도 자유민주당과 인민민주당 등 친정부계열 정당이 의석을 독식했다. 우즈베크 야당은 모두 공식적인 당으로 인정받지 못해 이번 총선에 참여하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이뤄진 중앙아시아 국가 맹주를 자처했었다. 특히 카자흐스탄과는 옛 소련 때부터 중앙아시아 이슬람 대부국(代父國)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카리모프 대통령 집권 이후 폐쇄정책으로 우즈베키스탄은 경제 후진국이 돼버렸고, 경제개방 정책으로 일관한 카자흐스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경제적 격차가 벌어졌다. 카자흐스탄에 대해서도 이슬람 맏형국이라고 자처해온 우즈베키스탄 국민의 자존심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안디잔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무력진압, 7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의 독재성향을 과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더욱 폐쇄적인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시위때문에 물러났다 시위로 컴백

●쿠르만벡 바키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쿠르만벡 바키예프 신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지난 8월 14일 취임식을 갖고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15년 동안 철권통치해 온 아카예프 전 대통령이 ‘레몬 혁명’(시민 무혈혁명)으로 축출된 지 하루 만인 지난 3월 25일 대통령 권한대행 겸 총리에 임명돼 지금까지 정국 안정과 혼란 극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남서부 잘랄라바드주의 마사단 출신으로 러시아 쿠이비셰프 공과대학을 졸업, 전기기술자로 일하다가 1990년 코크 얀가크 시의회 의장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1992년 잘랄라바드 주지사를 거쳐 2001년 총리직에 올랐다가 이듬해 남부지방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를 유혈진압해 파문을 불러일으킨 후 사임했다. 당시 반정부 시위로 쫓겨났던 그가 반정부 민주화 시위로 다시 정계에 복귀해 대통령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아직 그의 지도력을 평가할 단계는 아니지만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언제든지 또다른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바키예프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경제난 해결과 러·미 사이에서의 외교적 돌파구 마련이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키르기스스탄에 미군 주둔 대가로 키르기스스탄 정부 예산의 60%가 넘는 2억달러의 현금 차관을 무이자로 제공받으면서 미군 주둔에 합의했다.

우상화 정책 ‘최악의 독재자’ 악명

● 사파무라트 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

‘수도 아슈하바트를 제외하고 전국에 있는 병원과 도서관을 폐쇄하라.’ 사파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지방 공무원들과의 회의에서 기상천외한 명령을 내렸다. 니야조프 대통령은 “만일 아픈 사람이 있다면 아슈하바트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또 지방에 주민이 책을 읽지 않는다며 지방 도서관 폐쇄 명령도 내렸다. 2001년 국민정서에 반한다며 오페라와 발레, 장발, 금니 등을 금지시켰다. 1997년에 자신이 심장 수술을 받은 후 금연 권고를 받자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전면 금지했다.

1985년부터 20년째 투르크메니스탄을 통치해온 니야조프 대통령의 말은 곧 법이다. 그는 자신과 어머니의 이름을 딴 ‘니야조프 달력’을 만들고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자신의 시를 섞은 교시록을 새 경전으로 제시하는 등 개인 우상화 정책으로 ‘지구촌 최악의 독재자’ ‘중앙아시아의 김일성’으로 불리고 있다.

니야조프 대통령은 2002년 11월 암살 위기를 모면한 뒤 외무장관 등 40여명을 투옥했다. 2003년 UN 총회에서 ‘투르크메니스탄 내 인권 남용 시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카스피해(海)에 면한 인구 500만명의 투르크메니스탄은 1인당 GDP가 2633달러(2003년)로 부유한 편. 석유확인 매장량만 2만1300만톤, 천연가스는 전세계 매장량의 10%에 이르는 10조㎥에 이른다. 에너지를 철권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취임 후 정국 안정, 빈곤 타파 과제

●에모말리 라흐모노프 타지키스탄 대통령

라흐모노프 대통령은 2003년 헌법을 통해 국민투표로 오는 2020년까지 집권을 보장받았다. 타지키스탄은 1991년 독립 이후 군벌(軍閥)들이 난무하며 내전을 겪다가 라흐모노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국 안정을 이뤄가고 있다. 옛 소련국가 중 가장 빈곤한 나라 중의 하나로 현재로서는 라흐모노프 대통령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어 장기 집권은 불가피한 상태다.

민주화 주역 ‘제2르윈스키’ 스캔들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

사카슈빌리(37) 대통령은 2003년 총선부정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를 이끌면서 셰바르드나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화혁명(장미혁명)을 통해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을 축출시킨 30대 기수. 지난해 1월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압도적 지지(96%)를 받고 당선됐다. 집권 이후 아자리야 자치공화국의 분리독립 문제로 내전 발발의 위기로까지 치달았으나 평화적으로 해결하면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옛 소련국가 중 가장 먼저 민주화 혁명을 일으켰던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여비서와 애정 행각이 알려지며 민주화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 언론은 지난 8월 11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여비서 알라나 가글로예바(20)와 적절하지 못한 관계이며, 가글로예바가 임신 중이라고 공개했다. ‘그루지야판 르윈스키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수개월 전 대통령 부인 산드라 로엘로프스(36)는 사카슈빌리 대통령과 가글로예바가 서로 껴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쇼크를 받아 별거에 들어갔고, 두 달 전 아예 그루지야를 떠나 친정인 네덜란드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로엘로프스 여사가 더 충격을 받은 것은 자신 역시 임신한 상태로 오는 12월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알려졌다. 여비서는 11월 출산 예정.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뉴욕의 로펌에서 근무한 변호사 출신에다 네덜란드 출신 미인 부인을 두고 있는 그에게 닥친 첫 정치적인 위기다.

30년 독재 아버지로부터 권력 승계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44)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2003년 대선에서 83%에 육박하는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다. 일함 대통령은 30년 동안 독재통치를 해왔던 아버지로부터 독재권력을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옛 소련국가 중 아제르바이잔에서 처음으로 부자간에 ‘왕조적 권력승계’를 했다. 당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는 1만명 이상의 야당 지지자들이 ‘권력 세습반대’ 시위를 벌였다. 야당 측은 “알리예프 전 대통령이 아들을 후계자로 삼은 데 대해 왕정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라며 알리예프의 사퇴를 촉구해왔다.

아제르바이잔은 오는 11월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반정부 성향을 보이고 있어 장미, 오렌지, 레몬 혁명의 여파가 계속될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더불어 카스피해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경제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만성 재정적자에 끊임없는 반정부 시위

● 로베르트 코차리안 아르메니아 대통령

1998년 4월 취임한 코차리안 대통령은 1999년 의회와의 협력하에 내각을 구성하고,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며 경제발전책을 추진해왔다. 1999년 10월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 처리에 불만을 품은 국수주의자들이 의회에서 총기를 난사, 국회의장, 총리 등이 사망하면서 극심한 정국 혼란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은 의회의 개헌요구를 묵살하며 군대 및 보안부서를 강화,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2003년 재선됐으며, 지난 5월 총선에서도 친대통령계열 정당이 다수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야당세력들은 선거부정 등을 이유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1991년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 이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위해 사유화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으나 폐쇄적 경제구조와 국가기간산업의 부재로 만성적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옛 소련국가들 '집안 단속'강화

[중앙일보 유철종] 옛 소련 국가들이 '집안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그루지야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도 성공한 서구식 민주주의 혁명 바람이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것을 우려해서다. 사회주의식 권위주의 통치를 유지하고 있는 옛 소련 국가들은 서둘러 개혁 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1991년부터 카자흐스탄을 장기 통치하고 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최대 야당인 '민주선택당'을 해산시켰다.

민주선택당은 최근 "현 정권이 독재를 일삼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불복종 운동을 촉구한 바 있다. 지난해 말에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전직 보좌관이 대통령 비방죄로 보안당국에 체포됐다.

94년부터 벨로루시를 철권통치해 오고 있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는 7일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슬라브 성탄절 기념 대중 집회에서 "벨로루시에서는 장미.오렌지.바나나 등 어떤 혁명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루지야의 '장미 혁명',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을 빗댄 말이었다. 시민혁명이 일어날 경우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전제주의적인 통치 스타일로 국내외 비판을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반정부 세력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시민혁명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옛 소련 국가로 벨로루시를 꼽는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3기 연임을 가능케 하는 개헌안을 통과시키면서 반정부여론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cjyou@joongang.co.kr

 


 서해에 울린 포성… 중국 주도 '반미연대' 신호탄인가

베이징=조중식특파원  입력 : 2005.08.21 21:40 02' / 수정 : 2005.08.22 03:45 35'

지난 18일부터 시작된 중·러 합동군사훈련에는 8개국 군사관계자들이 참관 중이다. 우즈베키스탄 등 상하이협력기구(SCO) 4개 회원국과 인도·파키스탄·이란·몽골 등이다. 이 현장에 미국 일본 한국은 참관이 거부됐다. 피아(彼我)구분이 뚜렷해진 이 합동훈련을 놓고, 전문가들은 냉전붕괴 이후 중국이 미국에 대응하는 새로운 질서 구축에 적극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인민해방군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정점으로 한 4세대 지도부 등장과 함께 중국의 군사 전략에 나타난 뚜렷한 변화는 장막 속에서 은둔하던 중국군이 양자·다자 간 군사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2002년 10월10~11일 키르기스스탄과 양국 국경지대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인민해방군 창군 이래 첫 외국 군대와의 합동군사훈련이었다. 그 후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 및 파키스탄·인도·프랑스·영국·호주 등과 잇달아 군사훈련을 가졌다.

◆反美동맹화하는 상하이협력기구

중국의 군사동맹 구축은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SCO는 2002년 중국이 주창해서 만들어진 다자 간 협력기구. 중국·러시아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 6개국이 회원국이다. SCO 정상들은 지난 7월 초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 모여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에 주둔 중인 미군을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SCO가 노골적인 ‘반미 연대’ 움직임을 보인 것은 미국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시민봉기인 ‘색깔혁명’으로 정권 유지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과거 숙적과의 화해

중국은 과거 국경분쟁을 치렀던 러시아·인도·베트남 3개국과 관계를 개선, ‘주변정리’에 성공을 거두었다. 러시아와는 이미 군사동맹 수준으로 관계를 회복했고, 인도·베트남과도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지난달 쩐득렁 베트남 국가주석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갖고 늦어도 2008년까지 국경 획정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 4월 인도를 방문해 만모한 싱 총리와 국경획정 원칙을 정하고 경제·통상협력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델리 협약’도 체결했다.

 

▲ 중국·러시아 간 사상 첫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에 참가한 수륙양용 탱크들이 20일 중국 산둥반도 근해를 질주하고 있다. 18일 시작한 양국 군사훈련은 20일 2단계로 접어들었다. /연합

◆미국의 동맹 고리 약화시키기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지난 4월 18~19일 중국 방문에서 중국을 ‘완전한 시장경제 지위’ 국가로 승인했다. 앞서 작년 말에는 대만해협에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무조건 미국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원자재 블랙홀’인 중국은 호주로부터 막대한 양의 철광석과 석탄을 수입, 호주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편에 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중국은 또 EU국가들 가운데 무기판매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 및 독일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미일동맹의 한 축인 일본에 대해서는 안보리진출 반대 등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북한과의 군사교류 강화

지난 2003년 8월 중국 인민해방군 쉬차이호우(徐才厚) 총정치부주임은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같은 해 10월 북한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6·25참전 52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거행해 답례한 데 이어, 인민무력부 이태일 부부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 군사동맹과의 대치관계에서 북한을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앙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쟁탈전 (고려일보 2003.3.14자 기사)

현재 중앙 아시아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사회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민족적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이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이해하려면 이 지역 국민들의 심리 상태, 과거 역사, 문화를 알아야 하고 그들 상호간의 내막과 고대 및 현대의 신화 체계, 그들의 내부 모순과 유럽 및 동방 문화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

공산주의 제도가 붕괴된 이후 중앙 아시아는 제멋대로 내버려지고 말았다. 이 나라들에는 다른 정치적 세력들이 없었던 관계로 정권은 여전히 옛날의 공산당 간부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자립적인 국가 관리 경험이 전혀 없었고 그들의 문화적 세계관은 여전히 공산주의 인용문에 제한되어 있었다.

그들의 손에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게 되자 그들은 그 재산을 자신이나 친척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생긴 막대한 부와 권력은 그들로 하여금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 국제주의와 농민 출신으로 긍지감을 느끼던 지난 날의 당 지도자들은 대통령 또는 총리가 되자 자기들을 민족 정신의 비호자로 가장하기 시작했고 자기 신분을 위대한 한, 에미르 또는 그들만 알고 있는 바띠르(대장부)의 후손과 연결시켜 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 결과 이 지역은 점차 잔악한 독재자와 야만적인 봉건주의의 침전지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런 경향은 동방에서 서방으로, 즉 끼르끼즈스딴에서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변화의 문턱에서

그런데 이런 사태는 다음과 같은 원인에 의해 오래 지탱될 수가 없다. 첫째 국민들은 자유에 취한 기분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들이 자기들을 어디로 몰고 왔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둘째 생활 수준이 낮아지고 실업, 범죄행위, 뇌물행위가 극단에 도달하자 사회는 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셋째, 관리들과 그들의 앞잡이들은 자기 나라에서 훔칠 것은 다 훔쳤고 약탈할 수 있는 것은 다 약탈했으며 관리 계급 내부에서 친족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정권 내부의 분쟁도 심화되고 있다.

이 외에도 외부 압력이 집중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서부 전선'에서의 대승리를 거둔 뒤 이전 사회주의 나라들에 나토 질서를 세웠고 이제는 옛 원수 국가인 이라크와 새 중앙 아시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러시아는 한 때 대열강이었고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또 다시 이곳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를 성공적으로 반환받고 정권을 3세대에서 4세대로 막힘없이 넘겨 주었으며 덩샤오핑의 개혁 노선과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중국도 눈길을 이웃 나라들로 돌리기 시작하고 있다.

결국... 중앙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체제는 내부와 외부적으로 위와 같은 압력을 받고 있으며 그동안의 유리했던 시간들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앞으로는 견뎌내기 어려운 시련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중앙 아시아는 쿠바와 같은 섬나라도 아니고 북한 같은 반도 국가도 아니다 또 이 지역 나라들은 잘 정비된 국가 기구도 없고 충분한 경제적 토대도 없으며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도 없는 상태이다.

대국들의 지향

결국 중앙 아시아는 점차 미국, 중국, 러시아, 터키, 이란 등 대열강 등의 전투장으로 변하고 있고 세계 역량 대립의 중심이 중앙 아시아로 이전되고 있다. 지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데 중앙 아시아는 대륙의 중심지이고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누가 이 지역을 장악할 것인가? 옛날과 오늘날 지정 학자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세계를 장악한 자가 이 지역도 장악하게 될 것이다. 많은 열강들의 주목이 이 지역에 쏠리는 부가적인 원인은 이 지역이 상대적으로 정치적 공백과 정체의 허약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 열강인 미국은 자기네 영향력이 온 세계에 뻗쳐야 한다고 여기고 있는데 이 중앙 아시아 지역은 미국의 잠재적인 세 경쟁국인 러시아, 중국, 무슬만 나라들의 교차점에 있는 만큼 여기에 반드시 자기의 발판을 굳게 만들고 싶어한다.

징키스칸 제국의 후계자로 여기고 있는 중국은 19세기 초까지 러시아 영지에 들어있지 않던 구 소련 아시아 지대에 자기의 영향력이 미쳐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러시아는 발틱연해 나라들을 제외한 전체 구 소련 가맹 공화국들이 자기네 위성국가로 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터키는 이곳 중앙 아시아에서 민족적 뿌리를 찾고 있으며 타지크스탄을 제외한 5개의 국가 중 4개의 투르크계 국가들을 자기네 손아귀에 쥐고 싶어 한다. 이란은 전체 중앙 아시아가 한 때 자신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음을 상기하며 이를 회복시켜 볼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나라들이 중앙 아시아에서 복잡한 지정학적 놀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