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는 한국인 목자를 기다리는데 (CCC기도편지 2001년 11월호)

광활하고 거치른 대륙,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땅이 요즘 세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피끓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슬람 선교 대상지역으로 각인되어 가고 있다. 그 런데 이 땅에 언제부터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모든 돌궐족(투르크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슬람에서 찾는 이유는 또 어디에 있는 것일까?  

AD 610년 이슬람이 태동된 후 4대 칼리프 때까지 거의 30년 안에 한 종교의 힘으로 거의 아랍 모든 지역을 점령하는 빠른 속도를 보였는데 거기에는 주변에 그럴만한 배경이 있었다. 이때 중앙아시아는 돌궐제국이 있었고, 유럽은 비쟌틴 제국(동로마제국), 아랍지역에는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대치하고 있었다. 동로마와 서로마가 분열된 후 서로마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무너졌고, 비쟌틴 제국(동로마)는 1000년 동안 내우외환으로 내적으로 로마 카톨릭이 정치와 결탁하여 부패하였고, 종교적 분쟁과 이단이 심하었다. 외적으로는 북쪽 슬라브계 민족들의 잦은 침략으로, 동남쪽으로는 최대의 강적인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으로 힘이 약해져 있었다. 반면에 사산조 페르시아는 돌궐제국과 비쟌틴 제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세력이 약화되어 있었고, 돌궐제국 역시 당나라 현종의 북방정책과 이간책으로 힘이 약해져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누어져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의 강력하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이면에는 기존 세력들이 균형을 잃고 힘이 약해졌을 때인데, 바로 이와같은 상황에서 이슬람이 태동했고 짧은 기간안에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슬람 전사들은 당시 단 한번의 패배도 없는 무적의 군대였고, 강한 종교적 결속력과 유대감, 알라의 이름으로 성전을 치르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명확한 정복의 당위성도 갖고 있었기에 이슬람의 세계적인 확장은 계속되었고, 3차에 걸쳐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겠다.

첫 째, 마호멧의 죽음 후부터 제 4대 칼리프 시대의 약 30년의 기간인데 이때 아랍의 전 지역을 석권하게 되었다.

둘 째, 당나라와 티벳제국의 연합군, 돌궐제국과 사라센제국(이슬람제국)의 연합군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사실상 중앙아시아가 이슬람화 되게 되었다. 제 5대 칼리프인 무아위야 때는 비쟌틴 제국을 공격하여 2번이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으며, 중앙아시아 쪽으로도 정복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당나라 현종이 힘을 비축하여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티벳제국의 연합군과 함께 고구려출신 명장 고선지 장군을 내세워 약해진 돌궐제국을 침략해 왔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하여 도움을 사라센 제국에 요청함에 따라 중앙아시아 진출을 꿈꾸든 그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그리하여 AD 751년에 중앙아시아 탈라스 강변에서 당과 티벳의 연합군, 이슬람 전사들과 돌궐제국의 연합군의 대 격돌이 있었고, 이 전쟁에서 이슬람 군대가 대승을 거두게 됨으로써 사실상 이 지역을 지배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무력보다는 돌궐제국의 왕족부터 이들의 도움에 감동하여 스스로 이슬람이 되기 시작했고 그후 자연히 모든 부족들도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또 한번의 이슬람의 팽창이 있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중앙아시아가 이슬람인 이유가 여기있다. 물론 그전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경교(네스토리우파)가 전파되어 몇 개의 유력한 부족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세에 몰려 모든 부족과 나라가 이슬람을 신앙하게 되었다. 무슬림 대상들과 실크로드상의 몇 몇 이슬람 왕국이 중앙아시아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나 중앙아시아 전역이 이슬람화 된 것은 탈레스 전투후부터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셋 째, 몽골제국의 징키스칸이 정복한 대제국의 많은 지역이 이슬람화가 되었다. 13세기 초에 오르콘강 유역에 유목생활을 하던 한 몽골부족 가운데 테무진이 등장하여 모든 몽골지역을 점령하여 징기스칸이 되고 난 후, 실크로드의 이권과 세력 확장을 위해 실크로드상에 있는 한 이슬람 대국 '호레즘'에 사신을 보내었으나 그나라 왕에 의해 그 사신들이 모두 처형됨으로서 사실상 정복전쟁은 시작이 되었다. 이로부터 두 국가간의 원한이 불교와 이슬람과의 전쟁으로 비화 되었고, 계속적인 정복으로 유럽원정을 포함하여 몽골제국은 징기스칸 때부터 5대 70년만에 러시아, 유럽, 아시아에 걸친 대 제국을 건설하고 서유럽, 인도, 일본을 제외한 당시 세계의 거의 전부를 통일하여 세계 역사에 유래없는 대 제국을 건설하였다(징키스칸은 금나라 원정도중 죽음). 그러나 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소수의 몽골귀족으로는 불가능하였고, 유목민족의 열악한 문화로서는 우수한 문화의 다수 민족을 교화하기란 어려웠다. 징기스칸이 죽기전에 일족 공신들에게 각 나라와 지역을 분봉하여 주었지만 반독립 상태였고 조공을 바쳐야만 했으나, 몽골제국 5대 쿠빌라이 황제(세종)가 수도 카라코룸에서 북경으로 천도하고 '원'이라 개칭하게 됨으로써 각 나라들이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더 잘 다스리기 위해 지배지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수용하기 시작하여 동화됨으로써 러시아, 동유럽, 몽골 본토와 중국 원나라 지역을 빼고는 몽골제국이 정복한 지역이 이슬람화 되는데 기여를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복음의 서진현상이 일어난 곳...

사도행전 16장 6, 7절에 보면 이곳 중앙아시아인들에게 가슴아픈(?) 말씀이 있다. 선교에 유능하고 헌신적인 사도 바울이 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고 여러번 시도했을 때 성령께서 막으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구체적으로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무리 애를써도 문이 열리지 않았고 밤에 환상가운데 마게도냐인이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도와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사실상 아시아 지역이 복음의 사각지대가 되고 만다. 비두니아는 흑해 아래에서 카스피해 지역 쪽을 말하는 곳으로 만약에 이곳에 복음이 전파되었더라면 중앙아시아는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는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복음의 서진현상'이 아니라 '복음의 동진현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질 수도 있었겠다는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선교의 주체이신 성령께서 가장 유능한 선교사인 사도 바울이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기뻐 보내시기는 커녕 왜 막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왜 유럽이 먼저이고 이 지역이 나중이 되어야 했을까? 하나님이 유럽인은 사랑하시고 아시아인은 덜 사랑하셨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복음이 동진을 계속했더라면 우리나라도 어쩌면 일찍 복음의 선진대국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분의 선하신 계획은 실수가 없다는 것이고, 오늘날 하나님의 미완성과업 가운데 이곳 중앙아시아가 중요한 선교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대한 선교사 바울도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지만 못한 지역에 내가 선교사로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감격할 수 있다. 한국인 선교사의 한 사람으로 이곳에서 느낀 바로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로 발 길을 돌리게 하시고 오늘날 우리 한국인에게 이곳을 특별히 맡기셨다고 믿어지게 되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 집중해야 할 선교지...

거기에는 선교를 집중해야할 미전도지역인 10-40도 창문지역, 새롭게 대두된 35-45도 돌궐창문지역인 이유도 있지만, 한국인이 이곳에 선교를 집중해야할 이유가 더 있다. 첫 째,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알타이계 돌궐족(투르크)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터어키, 아제르바이쟌, 카작스탄, 외즈벡스탄, 크르그즈스탄, 투르크멘스탄, 중국 신장의 위구르 등 돌궐족 무슬림이 2억 3천에 이르고 있다. 우리 조상이 북방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유목민족임을 안다면 이들의 기원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이들의 유목문화와 우리의 농경문화와의 차이를 빼고는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기 때문에 살아가면 갈수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의 생각, 인간관계, 문화, 손님접대 등 모두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피부색이 같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친밀감을 주는지 모른다. 다만 오래동안 전통으로 내려온 이슬람과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그들의 문화에 이질적인 가치와 종교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둘 째, 돌궐어는 우랄 알타이어계로서 우리 한국인이 익히기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알파벳이 다를 뿐 어순이나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여 어느 정도 언어를 배우면 생각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 선교지에서 언어습득은 최우선 사역이기에 이것이 선교사에게 얼마나 유리한지 모른다.

셋 째, 우리의 디아스포라 동포 고려인 50만이상 이곳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다. 고려인들은 1937년 사할린에서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되었는데, 그 이유는 러시아인으로 귀화하기를 거부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과 민족성을 지키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본 첩자로 몰려 모든 재산과 돈을 몰수당하고 거의 맨 몸으로 중앙아시아에 버려진 그들이었다. 이곳 K국에는 독립운동 당시 유명했던 홍범도 장군의 무덤도 있다. 고려인들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애써왔고 고려인 협회, 고려일보와 TV, 라디오 방송국, 고려인 극장, 고려인에 의해 한국어를 배우는 학교들도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이곳의 현지인들에게 부지런하고 똑똑하여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 선교사가 적응하기 좋은 음식도 많이 만들어 팔고 있고, 특히 한국 선교사가 고려인 통역을 통한 사역이 가능하여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들이 통역을 통한 사역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우리의 동포들이 우리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그들과 함께 귀한 복음화를 이룰 수 있는 이점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중앙아시아는 현재의 중동처럼 강했던 이슬람이었으나 230년 동안 재정 러시아의 지배와 영향으로 약해지기 시작했고, 70년동안 소련 공산주의의 통치를 받으면서 모든 종교와 언어, 문화 등을 말살하는 정책속에 이슬람은 더욱 약해져 이제 이슬람은 자신들의 전통이요 정체성일뿐, 형식적인 종교가 되고 말았다. 바로 그때 고려인들이 이곳에 심겨졌고 한국 선교사가 사역하기에 유리한 모든 조건을 갖춘 선교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중앙아시아 영혼들을 구원코자 하시는 증거이며, 이들을 통해 중동, 터어키 등의 강한 이슬람 국가에 복음을 전할 도구로 사용하려는 뜻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이라 믿어진다. 바로 우리 한국인 선교사들을 통해서....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이곳에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무엇이 이슬람 선교를 어렵게 하는가? (CCC 2001년 12월호 기도편지)

    오늘날,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이나 무슬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나 도리어 이슬람 선교에 대해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조차 마음문을 닫을까 염려스런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요즘 이 사태로 말미암아 중앙아시아에 어떤 영향이 미쳐지고 있는가? 이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소수의 현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며 조심스럽게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고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더 빨리 문이 닫히거나 사역과 선교사들의 안전에 악영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K국의 경우에 아직은 선교사 비자로 사역할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에게 1년주던 비자를 1달짜리 비자로 바꿔 주기 시작했는데 신분을 드러낸 선교사들에게도 어려움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하는바 전에는 결코 이런 일이 없었다. 작년의 '실크로드 2000' 행사 이후 점점 더 선교사들에게 조여들기 시작한 정부의 간섭이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말미암아 더 좋은 구실을 주게 된 것 같다.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큰 오해중의 하나는, 이슬람 지역에 들어가서 무슬림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 아브라함의 큰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13억의 무슬림들에 대한 구원의 길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지 않으셨을까? 어쩌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이들에 대해 무지한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혹 아닐까? 무슬림 선교가 왜 어려운가에 대해 문제점들을 몇 가지 적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 째,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은 바로 적대감이다. 기독교하면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에게 원수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과거 주님의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의 이기심과 죄성을 가장 잘 보여주었던 십자군 전쟁에 대한 상처와 1차 대전중 독일 편을 들다 함께 망하게 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분할 점령했던 기독교 국가들의 잘못된 행적 때문이다. 그와는 상관없지만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의 경우는, 기독교 국가로 간주되는 구소련의 지배로 인한 상처가 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믿음의 행보로 말미암아 그들로 복음을 거부하게 만든 것이다. 과거 기독교 지역이었던 북아프리카나 다른 많은 지역이 급속히 이슬람화 되는 이유는, 이슬람이 그들에게 어떤 매력이 있기 보다는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기피 때문이다.  주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과연 무슬림에 대해 무엇을 아는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이 우리의 가장 큰 적이며,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최우선 과제이다." 라는 견해에 동의는 하지만 너무나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어릴 때부터 모스크에서 기독교에 대해 배우며 적대감을 키운다. 그들이 기독교와 성경에 대해 아는 것에 비해 이슬람과 코란에 대해 터무니없이 모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거기에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 선교가 어렵고 열매가 없다는, 생명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피하고 있어서 이슬람 선교는 더욱 방해를 받고 있다.

    셋째, 중동과 터어키 등의 국가적 차원의 교세 확장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 무슬림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 전세계를 이슬람화하려고 칼로 정복을 시도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정복(?)을 시도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교육, 언론 등 어떤 것을 통해서라도 교세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터어키 정부에서 중앙아시아에 10만명의 무슬림 대학생들을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 그들을 선교사역에 투입,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근래 가장 두드러진 포교방법은 경제 활동을 통해서이다. 일단 한 명의 무슬림이 어떤 지역에 가면, 그가 학생이든, 외교관이든, 사업가든 상관없이 자신을 선교사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드려내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거기에 정부차원에서 지원을 해 주니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겪이 되는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유럽이 2050년에는 대부분 이슬람화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도 서울, 부산의 모스크를 중심으로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직업을 찾아 제3국에서 온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무슬림들이어서 안전지대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를테면, 기독교는 국가적 차원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없고, 단지 개인이 각개 전투로 외롭게 싸우고 있다면, 무슬림들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으로 융단폭격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다.

    넷째,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헌신도 차이 때문이다. 가슴아픈 일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헌신도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무슬림들의 그것에 비해 비참하리 만큼 낮다는 사실이다. 무슬림들은 삶 전체가 그들의 신앙과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과 관계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가는 이중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잘 알지만 불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기가 아닐까...? 기독교를 표방하는 많은 나라들이 경건한 신앙을 잃어버렸으며, 그속에 사는 개개인도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특별히 종교적인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오해되거나 무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우리의 경건치 않은,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은 삶에 대해 늘 도전을 주는 필요악이 되고 있다.

    다섯째,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 국가간의 대립 때문이다. 걸프전, 보스니아 사태, 아프가니스탄 사태 등 굵직한 전쟁들이 사실은 이념이나 종족간의 갈등보다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갈등과 관계가 있다.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독교를 적으로 간주하는 무슬림들은 종교적 갈등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그들의 마음문을 닫히는데 악영향을 주고 있다. 걸프전에서 패한 후세인이 아직도 무슬림들 사이에 영웅으로 칭송받는 경우도 사실은, 그가 알라의 이름으로 성전을 치룬 영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불구경하듯 보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슬람 선교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선교지에서 섬기는 선교사들과 현지 그리스도인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여섯 째,  교리적으로 성경과 쿠란의 유사성과 차이로 인한 문제 때문이다. 성경과 쿠란을 비교해 볼 때 80% 정도가 비슷하지만 정작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단지 실패한 선지자에 불과하며, 성경이 변질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쿠란을 잘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참고서로만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쿠란은 구약의 교리와 유사하여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받는다는 것과 결부되어 유대인들처럼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준 앞에 좌절과 두려움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개개인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관계를 가지는 특별계시보다는 하나님은 유일신이고 죄에 대해 분노하시는 일반계시로서의 하나님만을 알고 있어서 예수님을 소개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

    일곱째, 이슬람의 문화적 폐쇄성, 구속성, 결속성 때문이다. 다른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무슬림들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전통과 인간관계를 중요시 하기 때문에 감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기는 어떤 것을 시도할 수 없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뜻은 공동체를 배신하는 것이며, 조상대대로 내려온 전통과 종교를 파괴하는 악질 인간으로 간주되어 버린다. 중앙아시아의 경우에는 그것과 더불어 원수의 하나님(예수)과 종교(기독교)를 받아들인 민족의 배반자가 되어 따돌림받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무슬림들에게 무관심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로 여긴다면 지나친 억척일까? 당신은 과연 이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이슬람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단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채 두려움가운데 살다가 죽어가는 무슬림들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재미있는 유목생활로 본 중앙아시아 K국 (CCC기도편지 2001년 10월호)

    1991년 12월 16일, 구소련으로 독립하여 세계지도상에 나타난 K국은 중앙아시아 북부 초원지대에 위치하여, 북으로 러시아, 동쪽은 중국, 서쪽은 카스피해와 접경한 동서 약 3,000km, 남북으로 1,500km의 지역을 차지하는 2,717,000 km2의 방대한 영토로 세계에서 9번째의 위치를 차지하며 우리나라 남북한의 17배, 남한의 25배에 이른다. 구 소련지역 중에 유일하게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카스피해의 석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리비아를 비견할 만큼 많고, 큰 영토에 걸맞게 다양한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구소련 지역중 러시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외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외국 투자자들을 가장 많이 유치하고 있다. 또한 지난 2월의 CIS 국가간 통계 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K국의 월평균 임금수준이 다른 CIS 나라들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난 해 K국의 1인당 월평균 임금은 94$에 달했던 것이다(타지키스탄 8.7$, 러시아 81$, 벨로루시아 74$, 아제르바이쟌 46$, 우크라이나 42$, 아르메니아 39$, 몰다위야 32$ 등). 그뿐아니라 중앙아시아의 복음의 문이 점진적으로 닫혀져 가는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열려있으며 중앙아시아와 인접한 나라를 복음화하기 위한 센타역할을 독톡히 하고 있는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1999년 인구센서스 결과에 의하면 K국의 인구는 14,953,100명으로서 1989년 전국 인구센서스 이후 24만6천1백명이 줄었으며 계속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 몇 안되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그 이유는 이 땅을 지배했던 러시아인들이 K국이 독립한 이후로 원주민인 K족과 여러 소수민족들의 반감으로 인해 고국 러시아로 계속 돌아가고 있는 추세와 심각한 경제난이 대표적일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인구 수를 늘리기위해 타국에 거주하는 K족을 돌아오도록 여러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정부의 계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K국에는 K족 53%, 러시아인 32%, 우크라이나인 4%, 독일인 3%, 우즈벡인 2%, 그외 6% 등으로 분포되어 있으나 놀랍게도 131개 종족이 모여 살고 있는 멀티 문화권이며, 우리의 동포 고려인은 이 인구센서스에서 99,657명만명으로 집계되었다. 가장 큰 도시는 과거 수도였던 A시가 1,129,400명이며, 새로 천도한 수도 A시는 319,300명이며 정책적으로 수도로 인구를 계속 이동시키고 있다. (2001년 11월, 수도인 A시의 인구는 49만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원래 K족은 넓은 대륙을 말을 타고 질주했던, 용맹과 자유를 숭상했던 민족이었고, 전쟁과 사냥에 능하며 유목생활을 하며 춤과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하였다. 오죽하면 이 민족의 별명이 다른 민족들로부터 '자유인'이라고 불렸으랴... 그들은 오랜 과거부터 이 척박하고 광활한 땅에서 어떻게 생존했으며 어떻게 유목생활을 하며 살았을까? 우리는 유목생활을 방목의 일종으로만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먼저 중앙아시아 K국을 알기 위해 그들의 유목생활에 대해 먼저 알아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유목민족에게 있어서 가축을 기르는 일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유목생활에 필수적인 물과 풀을 찾아 다니며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한 곳에 정착할 수 없고 끊임없이 옮겨 다녀야 하는 그들에게는 크고 작은 애환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그들이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가축을 기르는 일을 주 업으로 삼은 것이 아니고 척박한 기후와 환경이 그들로 유목민이 되게 하였다. 땅은 넓지만 사람이 살기 어려운 반사막기후에, 산지(전 국토의 10%)는 적고, 넓은 구릉과 평야에는 가축을 방목하여 기르기에 적합한 풀이 거의 모든 땅을 뒤덥고 있지만 물을 찾기가 쉽지않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과 풀이 많아 사람과 가축이 함께 살 수 있는 오아시스 지역이 유목민족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했다. 그래서 씨족별로 물과 풀을 찾아 다니며 이주를 하고, 방목을 하며 사는 방랑 생활을 계절에 따라 계속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좋은 지역을 찾아 무조건 옮겨 가지는 않았는데, 각 씨족별, 부족별 주거지역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부족의 영역을 허락없이 넘어가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와 강한 군사력을 가진 부족은 다른 부족의 영역을 넘나들며 약탈을 일삼기도 했으며 무력으로 좋은 오아시스를 뺏기도 했다. 각 씨족 혹은 부족간에 세워진 평화조약이 언제 깨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상호간의 협약이 지켜지는 이유는 힘의 균형이 비등할 때이고 만약 한 쪽이 강해지면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유목민족들 사이에 배반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였을지도 모른다. K국의 속담가운데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가족과 재산(가축)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유목민들은 강해야 했고 전쟁에 능해야 했으며 나그네처럼 언제나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했다. K족들의 말에 의하면 이사할 때 그들의 전통가옥을 철수하거나 설치하는데  빠르면 5분이 걸린다고 하니 그들의 조상들이 얼마나 자주 이사를 다녔는지를 짐작할 만 했다.

     중앙아시아에 동서양의 유일한 국제 육상 무역로인 실크로드가 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물과 풀이 많은 오아시스를 위해 전쟁하고 이주했던 것에서 이제는 더 큰 실크로드의 이익을 독점하기위해서도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실크로드를 장악하면 그곳을 지나가는 대상들로부터 세금을 받거나 풍부한 물질적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실크로드를 사이에 두고 전쟁이 시작되게 된 것이다. 누가 실크로드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부와 안녕을 누리느냐 못하느냐가 결정되였기에 실크로드 독점을위한 전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따라서 작게는 오아시스, 크게는 실크로드를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들은 각 개인에게 번영보다는 죽음과 고통을 안겨주었고 사람들로 지치게 했는데, 그로인해 하나같이 누군가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 씨족, 부족들을 통합하여 강력한 국가가 되어 평안과 안녕을 누리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유목민족의 특성이 평소에는 씨족, 부족별로 움직이지만 일단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면 짧은 시간안에 단합하여 대제국을 건설하고 이웃 나라들을 노략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유목민족으로서 대제국을 형성한 것에는 위구르제국, 돌궐제국, 몽골제국 등이 유명하다. 중국의 진시황제 때부터 등장한 만리장성도 북방 유목민족들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역대 중국 왕들은 왕이 되자마자 만리장성을 보수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던 것이다.

     이런 척박한 땅에 오아시스는 한정된 것이어서 이것을 취하기 위한 씨족, 부족간에 생존을 위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 많은 남자들이 죽어갔기에 가사를 책임진 여자들 중심의 모계사회가 유목민족들 사이에 뿌리내리게 되었고,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여성들의 성비는 자연히 이슬람의 율법과 환경적 필요에 의해 일부다처제가 자연스런 전통이 되게 되었다. 남자들은 항상 전쟁, 사냥, 목축에, 여자들은 가사와 자녀 교육에 종사하였다.

     보통 한 씨족이 어떤 오아시스 지역에서 머물게 되었을 때, 3-4개월을 넘길 수 없는 것은 그 지역이 아무리 풀이 많은 지역이라도 수많은 가축들(양, 소, 말, 낙타 등)이 먹는 먹이에는 한계가 있고, 계절에 따라 살기에 더 나은 지역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가축들의 먹이인 풀이 없다는 것은 곧 짐승들을 사육할 수 없다는 말이되고, 짐승들이 살 수 없다는 것은 유목생활을 하는 그들의 주인인 사람도 살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각 계절을 따라 이동하여 머무르는 지역이 있게 되는데 봄은 짧아서 봄에는 머무는 지역이 없고 1년중 겨울, 여름, 가을을 중심으로 세 곳을 장기간(3~4 개월 정도) 머물게 되고 또 계절이 바뀌는 것과  때를 맞추어 다음 장기간 머무를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중간 중간에 잠깐동안(약 1주일) 가축을 위해 머물게 되는 지역이 있게 되는데 그 지역의 이름도 다 다르게 부른다. 여름에는 더워서 평지에서 사람이나 짐승이 살기에 어렵고 가축의 먹이인 풀이 영양가가 없기 때문에 산중턱에 위치한 풀과 물이 많은 고원지대로 이주하여 여름을 보낸다. 그동안에 각 가정에서 차출된 젊은이들은 겨울에 살아야 할 지역(평지)에 남아 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가축들이 먹어야 할 꼴을 베어 여름내내 저장하기 시작한다. 산지에서의 생활은 평지에서보다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맹수들의 습격 때문이다. 이때 남자들은 주로 맹수로부터 가족과 가축을 보호하는 일과 사냥을 주로한다. 시편 23편은 여름의 산중턱 고원지대에 맹수들이 많은 푸른초장을 말하고 있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고원지대로 올라갈 때 있는 유일한 냇가를 말하는 것으로 이곳에 맹수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을이 접어들기 시작하면 점차 산지에서 평지로 이동해 가며 겨울에 지내야 할 지역으로 움직여 가며 가을을 보내고 다시 첫 눈이 오기전에 겨울에 머물 장소로 이동해 가는 것이다. 이주지역은 매년 머무는 지역이 같을 수도 있고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할 수도 있으나 항상 이주해서 사는 주거지역의 위치가 여름, 가을, 겨울지역이 삼각형 모양을 띠게 된다. 이로 볼 때 한 가정이 1년에 평균 5-6 차례의 이사를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농경문화로 볼 때나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듯 매년 철마다 때마다 몇 차례씩 거처를 옮기고 지역마다 특이한 환경에 적응하며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살아가는 유목 민족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경이롭게만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본향 천국을 사모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왜 유목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나는 주님이 가라시면 언제 어디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