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작스딴 의료 엿보기 1  약(Medicine) 이야기

까작스딴에서 진료를 한 지도 어느 덧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군 복무를 대체하는 국제협력의사로 지원했기에 나오게 된 까작스딴 행이지만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은  평생토록 큰 자리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까작스딴 생활의 모든 면이 새로움과 신비로움 그 자체지만 특히 이곳에서 의사로 생활해야 했던 제 눈에 비친 이곳의 의료 환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의사 면허증을 받아든 지 5년 만에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까작스딴에서 진료 활동을 하면서 들게 된 생각은 한국의 의료 복지 수준은 까작스딴보다 낫다는 단순 비교의 차원을 뛰어 넘어 까작스딴 의료를 위해 앞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숙제까지 떠 안게 되었으니 이곳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은 날로 커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 나라의 복지 수준(의료를 포함한)은 어쩔 수 없이 그 나라의 사회 경제력과 비례하는 법이기에 이제 겨우 1인당 GNP 3천불 남짓의 까작스딴을 두고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병원 문을 드나들 때마다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의료, 복지 분야에 대한 까작스딴 현실은 아쉽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홈페이지에 소개된 까작스딴 의료 현실에 관한 글에는 의료 분야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경제적인 면에서 의료 인력이 겪고 있는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한 달 급여가 5-6만원), 의대 교육의 부실화 등과 같은 단편적인 사안들이 그 때 그 때 짧게 묘사되어 왔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번에 진료실에서 경험하고 있는 의료 상황 위주로 까작스딴 의료 전반에 대해 한국인 의사의 눈으로 묘사해 볼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까작스딴에서 진료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앞으로 제 후임으로 까작스딴에서 진료를 하게 될 또 다른 한국인 의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적어야 한다는 현실적 부담감과 함께 까작스딴으로 찾아 오는 많은 의료 선교팀에 자그마한 도움을 드리고 싶은 생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또...이곳의 의료 현실을 더 많은 분들께 알리고 싶은 개인적 바램도 한 몫 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주제로 이곳 진료실에서 사용되고 있는 약품에 얽힌 경험들을 소개할 까 합니다.

1. 도대체 이게 무슨 약이야?....

까작스딴에서 진료를 해야 했던 제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곳에서 통용되고 있는 약품명을 빨리 익히는 일이었습니다. 까작스딴은 구 소련 시절부터 철저하게 의약분업을 시행해 온 나라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그동안 철저하게 지켜져 오던 의약분업의 원칙이 흐릿해 지면서 누구나 돈만 있으면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아무 약이나 사 먹을 수 있는 '실패한 의약 분업' 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갑작스런 개방과 함께 밀려 들어온 자본주의의 물결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전 사회적 부작용 중 하나로 볼 수도 있기에 좀 더 지켜 볼 일입니다.

어쩃든 까작스딴은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이기에 원칙적으로는 저를 찾아 오는 환자들에게 약을 투여해야 하는 경우에는 처방전을 발행해야 하지만....한국에서 1년간 4천불 정도의 의약품을 지원받고 있는 우리 진료실은 주로 한국약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형태로 진료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 사람들의 평균 임금에 비해 시판되는 의약품 가격은 턱 없이 비싸 대부분의 서민들은 처방전을 받고도 약을 사지 못하는 경우가 이곳의 현실인지라 한국을 통한 무상 의약품 지원은 이들에겐 꼭 필요한 도움이라 할 수 있지요.

 전 세계에 흩어져 일하고 있는 국제협력의사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 그 국가에 무상 건립해 준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개발 도상국에 제공하는 공적 원조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KOICA(국제협력단)는 프로젝트 사업 형태로 여러 국가에 병원을 세웠는데 페루에 있는 한-페 병원, 방글라데시에 있는 한-방 병원, 베트남에 있는 한-베 병원, 필리핀에 있는 한-비 병원, 카자흐스탄에 있는 한-카 병원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협력의사들은 바로 이런 친선병원(우정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지요.  

그러나...일부 협력의사들은 이런 한국산 병원이 아니라 현지 병원에 단독으로 파견되어 근무하기도 하는데 제가 바로 그 중의 한 사람인 셈입니다. 저는 까작스딴의 수도 아스타나의 1 외래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중 한 사람이니까요... 그러다보니 현지 병원의 검사 결과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환자들이 가지고 오는 현지 약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때가 많습니다.

왼쪽은 까작스딴에서 사용되고 있는 약품명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비달 쁘락띡" 이라는 약품 안내 책자입니다.

이 책은 원래 동부 유럽 용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러시아, 폴란드, 불가리아 등 그 쪽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약들을 러시아어로 적어 놓은 책입니다. 동부 유럽은 슬라브 족이 많이 살거든요.

 이 책을 보면 동부 유럽은 아니지만 러시아어권인 까작스딴으로 유입되어 들어오는 상당수 약품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까작스딴 국내 생산(Made in Kazakstan) 약품들은 이 책에 소개되지 않고 있어서 그와 관련된 정보는 얻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약들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낱알 포장으로 들고 다니기에 첨부된 약품 설명서를 보기도 어렵고....그저 환자에게 "이 약 무슨 약이예요?" 하고 물어 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간혹 러시아어 사전을 들춰 가며 표지에 적힌 성분명을 조사해 볼 때도 있지만 그 때마다....사전에 안 나오는 성분이거나 도저히 사용되지 않을 것 같은 성분들이 적혀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하지요. 그럴 때마다 중얼거립니다. "도대체...이게 무슨 약이야..."

2. 한국 약이 좋지만...

내과 의사가 하는 일은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 방침을 정하는 일입니다. 만일 치료 방침이 약물 치료로 정해지면 적절한 약을 선택해서 복용하게 하는 단계가 이어지게 되는데 제 경우에는 한국에서 공수되어 오는 약들을 무상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액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무조건 모든 약을 공급받을 수도 없고....가장 흔한 질병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약들 위주로 한국에 신청하는데 주로 고혈압, 위장계 질환, 퇴행성 관절염이 주가 되고 항생제와 갑상선 호르몬제를 포함한 다양한 약물들도 소량씩 구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진료실을 통해 한국 약품을 먹어 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한결 같습니다. "정말 대단하다....잘 듣는다..."는 것이죠. 많은 환자들이 제가 처방하는 약품의 이름을 알고 싶어해서 전 영어로 성분명을 적어 건네 주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종종 "어...이곳에도 이 약이 있는데요...." 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같은 성분의 약이 이곳 현지 약국에서도 통용된다는 거지요.

예를 들면 항고혈압 약제로 제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아테놀롤'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에서도 아테놀롤은 많은 의사들에 의해 처방되고 있는 대표적인 항고혈압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이 약을 복용한 환자들의 의견입니다. 모두 하나 같이 우리가 준 한국산 아테놀롤은 효과가 있는데 이곳 약국에서 팔고 있는 아테놀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아스타나 대법원에서 판사를 맡아 보고 있는 '쟌나' 라는 여성은 제가 주는 아테놀롤을 복용하고 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 다른 의사를 찾아 갔을 때도 아테놀롤을 처방하길래 약국에서 일주일 정도 복용한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때는 올라간 혈압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어요...그런데 선생님이 준 한국산 아테놀롤을 먹고 나니 바로 혈압이 정상으로 떨어지더라구요...역시 한국약이 좋은가봐요..."

같은 성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더라도 제조법이나 제조 기술에 따라 순도나 약효가 차이가 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한국약이 까작스딴에 수입되는 인근 국가의 약품보다 효과가 뛰어난 이유는 그 만큼 한국 제약회사들의 제조 기술이 세계 수준에 올랐음을 반증하는 것이겠지요.

수련의 시절...효과가 좋지 않은 약을 우리는 '밀가루'라고 불렀습니다. 모양은 약이지만 밀가루 먹는 거나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지요. 제 기억으로는 국내 제약회사들 간에도 약효는 차이가 있었고 다국적 제약회사 와 한국 제약회사 사이에서도 같은 성분의 약품임에도 효능에 차이가 있었음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의사로서는 자신이 믿음을 보내 주는 약품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최근 한국 상황을 듣자 하니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의약 분업을 둘러싸고 몇 가지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하더군요. 의사들이 처방전에 상품명이 아니라 성분명으로 처방해 줄 것을 몇 몇 이익 단체에서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유는 의사가 비싼 약만 처방해 건강보험 재정에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더군요. 나 참....이런 얘기를 들으면 사회 구성원 간에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믿음을 깨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뭐....오늘은 그냥 넘어가지요..

어쨋든 한국의 평균적인 제약 기술이 까작스딴에 수입되는 외국 제약사들보다 뛰어 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싶습니다. 더 열심히 해 주세요...

그런데...까작스딴에서 살 수 있는 약품 중에는 같은 성분의 한국 약보다 훨씬 가격이 싼 약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까작스딴에 들어오는 약들은 수입 약제들이라 같은 성분을 가진 한국 약의 국내 가격보다 비싼 게 일반적인데 의외로 싸게 팔리는 약들이 있는 거지요.

사진에 보이는 약들이 바로 그런 약품들입니다. 왼쪽이 에드닛(헝가리 산, 성분명은 에날라프릴) 이라는 항고혈압제이고 오른쪽이 오메즈(인도 산, 성분명은 오메프라졸)이라는 항궤양제입니다. 이 두 약은 한국에서 팔리는 같은 성분의 약에 비해 3-5배 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물론 약효도 고려해 봐야겠지만...한국보다 싼 약이 있다는 사실은 제게 특별한 의미를 던져 주는 사실입니다.  KOICA에서 지원해 주는 4천불로 그동안 한국에다 계속 약품을 신청해 왔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약품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는 진료에 꼭 필요한 약제 중 이곳 가격이 상대적으로 훨씬 싼 약들을 골라 현지 구입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거든요. 에날라프릴 제제인 '에드닛'이 대표적인 약품이었습니다. 항고혈압제로 쓰이는 약물은 그 종류가 아주 많은데 그 중 일차 약제로 쓰이는 약물 중에는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차단제' 라는 부류가 있습니다. 이 약들은 특히 심근 경색증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나 심부전이 있는 사람의 고혈압 치료에 있어서 꼭 필요한 약제이지만 약제의 가격이 다른 고혈압제 보다 훨씬 비싸 그 동안 한국에 약품을 신청하지도 못했던 약들이지요.

한국에 이런 약품들을 신청하면 약값 자체에다 운송비 부담으로 훨씬 비싸지겠지만 이곳에서 바로 구입하면 2-3배 저렴한 가격으로 약품을 확보할 수 있으니...그렇게 되면 그 동안 이 약이 필요함에도 나눠 주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올 2003년 KOICA 약품 신청분에는 현지 구입 약품을 품목에 올렸습니다.

3. 풀로 만든 거예요? 화학적으로 만든 거예요?

1 외래 병원 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진료실에서 한국인 의사가 진료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진료실을 찾아 왔습니다. 그 중에는 실제로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신이 치료받고 있는 병에 대한 한국인 의사의 견해를 듣고 싶다거나 한국 병원에서 임상 경험을 쌓고 싶다는 의사 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진료실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꾸며진 우리 진료실을 둘러 보며 진료 장비나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많이 설명해야 했던 것은 내가 '내과 의사' 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까작스딴에는 '내과'라는 전문 분야가 없기 때문입니다. 까작스딴에는 내과의 각 분과들이 이미 모두 독립되어 소화기, 순화기, 내분비 등의 이름으로 전문 과목을 표방하고 있었고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 가 한국의 내과 전문의 처럼 내과 영역의 1차 진료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사들을 '쩨라뻬프트' 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들이 '쩨라뻬프트'라고 절 호칭할 때마다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들의 생각 체계로는 저는 영락없이 '쩨라뻬프트'이지만 실제로 나의 역할은 이곳의 십여개의 전문의들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브라치 빠 브누뜨리님 발레즈냠(신체 내부 질병을 보는 의사)' 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이곳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쨋든 이런 '내과'라는 용어에 얽힌 질문들은 늘 예상 되는 질문들인데 반해...예상치도 못했던 질문들도 가끔씩 만나게 됩니다. 그 중 가장 자주 들었던 예상치 못했던 질문은 한국에서 공수되고 있는 우리 진료실의 약들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 이 약....풀로 만든 건가요...공장에서 화학적으로 만든 건가요?"  질문의 겉은 약 성분이 생약인지 화학 약품인지를 묻는 질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화학 약품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이 사실을 이해하려면 까작스딴 땅에서 지난 수백년간 행해져 온 의료에 대해 돌아 보아야 합니다. 까작스딴에서 지난 세기동안 행해져 온 의료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약, 주사, 물리 치료 등과 같은 치료 방법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중앙 아시아를 포함한 러시아권 안에서는 소위 서구식 의료라는 것이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사회주의식 의료를 표방했던 소련 시절을 거쳐 가난한 까작스딴 국민으로 살아 가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구미 각국에서 발전하고 있는 의약품과 의학 기술의 발달은 먼 나라의 얘기였고 그들은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을 겨우 겨우 이어나갈 뿐이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신약과 새로운 기술이 발견되어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좋은 약품들이 전 세계에 소개되고 있는 때에도 외부 세계와 격리되어 살고 있던 그들의 손에 쥐어진 약은 수 십년전부터 내려온 공장 기계로 만들어진 똑같은 약품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까작스딴 분리 독립 이후에는 효과는 없으면서 속만 쓰리기로 유명한 'Made in Kazakstan' 약품마저 합세해서 사람들 속에 생겨나고 있는 '알약 불신주의"를 더욱 부추겼지요.

경제적 측면이 그렇듯이...오래된 사회주의 체계 하의 의료는 진료 적당주의, 진료의 하향 평균화, 약품 개발과 진단 기술에 대한 투자 저하를 초래 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약 보다는 민간 요법에 의존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곳 사람들 눈에는 지난 수십년간 먹어 왔던 약들은 속만 쓰린 '밀가루'로 비쳤고 결국 그들은 약보다는 약초나 최근 접하게 된 침술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들어 보면 재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예부터 내려 오던 약, 주사등의 도구를 사용하는 서양 의학을 '전통 의학'이라 부르고 최근 중국이나 고려인 등을 통해 접한 침술, 약초 등에 의한 치료를 '첨단 의학' 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공장에서 만드는 약은 몇 백년 동안 먹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약들 중 하나로만 비치는 것이죠.

그래서...까작스딴의 약국에 가 보면 도무지 무슨 약인지 알 수 없는 약들이 진열대에 가득합니다. 아무리 러시아어로 적혀 있다고 하더라도 약품의 성분명 정도는 대부분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는데...도대체 이 동네에 있는 약들은 전 세계적인 교과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성분은 하나도 없는 '또 다른 약' 들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죠.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노랗고 파란 병에 든 용액들은 이곳 사람들이 믿고(?) 애용하는 약들입니다. 하나같이 우리 돈으로 2-3백원 정도 하는 값싼 약들입니다. 맨 왼쪽 약처럼 어떤 식물을 빻아 만든 용액이 약병에 담겨 있는가 하면...전설처럼 약효만 알려진 성분 미상의 베스트 셀러 약들도 있습니다. 맨 오른쪽의 '아날긴' 이라는 약은 까작스딴 제약 회사에서 만든다는 약인데...도무지 성분을 알 수 없는 약입니다. 이름을 보아선 진통제인 것 같은데...이 약 먹고 머리가 깨지는 것 같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수두룩하게 많아 이곳 사람들이 왜 공장(제약회사)에서 만든 약을 싫어하는지 금새 알아 차릴 수 있지요.

어쨋든 이런 배경 하에서 우리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한국에서 가지고 왔다는 약들이 풀로 만든 약인지 공장에서 만든 약인지 묻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황당하기도 하고 기분도 나빴지만 나중에는 이곳 사람들이 그렇게 불쌍하게 여겨지더군요.

'그동안 먹었던 약들이 얼마나 부작용이 심했으면 화학적으로 만든 약들을 저렇게 싫어할까....'

화학 약품이라는 얘길 듣고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도 약을 받아 갔다는 사람들 중에는 약이 효과가 있다며 고맙다고 얘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무 소식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 제 생각으로는...화학 약품이라는 말에 약을 먹지 않은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 의사 생활을 했으면 하지도 않았을 생각과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곳 생활입니다. 그 만큼 경험도 많아지고 생각도 다양해진 수확도 있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내 조국 대한 민국의 의료 환경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의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까작스딴과 비교해서 느끼는 것이지만....3년동안 경험하게 될 까작스딴의 현실은 앞으로 의사로 살아야 할 제 생각을 조금은 바꾸어 놓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사진은 2002년 5월...아스타나에 있는 어느 외과 병원 앞에서 찍은 것입니다.

제 뒤로 보이는 나뭇 가지에서 새 잎이 돋아나고 있는게 보이지요? 5월이 되면 이렇게 나무에 새 잎이 돋아 나기 시작한 답니다.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까작스딴에서 환자를 돌보며 이름 모를 약품들을 볼 때마다 황당한 웃음이 떠 오르겠지만 소중한 이 시간들을 더 값지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한국 산 약품들의 약효 뿐 아니라 한국에서 온 의사 역시 훌륭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