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 놓음

이용규 저 / 도서출판 규장. 2006년 3월 초판    글쓴 때: 2006.12.2

 

몽골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 은 이제 기독교 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책이 되었습니다. 조선일보에서 다룰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줄 친 부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체험에서 우러 나오는 이 신앙 고백들을 시간이 지난 뒤에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나를 위해 배려한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홈의 '기독교 서적' 코너는 저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죠.

2년간의 몽골 선교사역에서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을 보며 사람을 변화시키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큰 손길을 찬양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딱딱한 신학 서적보다도 이러한 자기 고백서들이 더 마음 가는 걸 보면....그리고 이런 책들이 20만권이나 읽히고 있음을 보면...

우리 모두는 같은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봅니다.

 

이 책에서의 고백처럼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 원합니다.

 

 

 

프롤로그

• 내려 놓는 삶은 한마디로 온유함을 이루는 삶이다. 온유의 그리스 원어는 통제된 힘이라는 함의를 지닌다. 내 속 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거룩한 소원으로 채워져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가 곧 온유한 자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실 때 내가 온유함의 성품을 덧입고 살아간다. 시편 37편 5절에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고 하는데 우리의 길을 하나님 앞에 내려 놓을 때 우리는 온유함의 길을 걱게 된다. 여기서 내려 놓음은 나를 비우고 하나님께 맡기는 삶의 결단이다.


 

하나님은 왜 내려 놓으라고 하실까

•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된다는 금지의 뜻이 아니다. 그렇게 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둘 다 누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불행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다. 우리가 사탄이 주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불행을 감수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내 행복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할 때 두려움은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 누가 복음에 나오는 어느 부자 청년은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다. 우리가 돈의 영에 붙들려 있을 때는 예수님을 택하지 못하게 된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편안함을 추구할 것인가 하나님을 추구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좁은 길과 넓은 길 사이의 선택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있기를 원하시는 곳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기쁨임을 유학이라는 광야 길을 걸어가면서 체험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미래의 계획을 내려 놓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우리를 변화시키려 하실 때 먼저 우리를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 몰아가신다.

• 한 청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필요도 느끼고 늘 말씀을 들으려고 기도하지만 막판까지 기다려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 결국 시간에 쫒겨 자신이 계획하던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곤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 때 나는 대답했다.

 “혹시 응답이 없을 때 그저 움직이지 않고 데드라인을 넘기기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것이 신뢰입니다.”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결코 늦게 응답하지 않으시며 가장 좋은 타이밍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미래의 계획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오랜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신뢰하면서 조금씩 하나님께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처음부터 큰 것을 내려놓게 되지 않는다. 작은 것을 내려놓고 단계적인 훈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큰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아브라함을 훈련시키셨던 방법이다.

• 미래의 계획을 맡긴다는 것은 내가 구상하는 시간표도 함께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한다. 즉 내가 소망하는 것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시점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인도하실 것에 대해서는 신뢰했지만 그 타이밍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계획과 나의 계획이 달랐다.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순전히 의지할 때 우리는 시간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 성경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할 때 나오는 단어는 카이로스로 하나님의 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는 뜻이다. 우리는 열심히 물리적인 시간을 아끼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기회를 잡는데는 소흘할 수 있다. 무의미하게 믿음없이 반복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애써 추구하는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의미한 반복일 수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믿고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 시간은 내가 아끼려고 노력한다고 아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타이밍이 변동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믿음 생활을 할 때 시간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인정하고 안온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초원의 강이 가는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우리의 주변은 풍성해진다.

• 하나님께 미래를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키거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이 아니라면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않으신다. 그 분은 선한 일을 시작하실 때 먼저 우리 안에 기쁨의 소원을 일으키신다.

 

• 우리가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표만 붙잡고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면 우리의 사 fa은 두려움과 절망에 구속되고 만다. 반면에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 실패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평안함과 자유함 가운데 거할 수 있다.

•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질 것을 신뢰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삶을 평강으로 인도할 것이다.

 

• 목사님은 요셉이 꿈을 꾸고 싶어서 꿈을 꾼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전하셨다. 그 꿈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자신의 욕심을 가지고 세운 미래의 계획과 비전을 종종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이 가지신 비전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비전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다. 내 것을 다 내려 놓고 하나님의 것을 붙드는 것이다. 선교사나 교회 사역의 방식도 이와 마찬가지여야 한다. 진정한 선교는 하나님이 자신을 그 땅에 보내신 이유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목도하는 증인이 되도록 자신을 참여시켜 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로 쓰임받도록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텅빈 물질 창고까지 하나님께 내려 놓는다.

• 물질에 대해 걱정하는만큼 우리는 마이너스의 삶을 살게 된다.

• 내가 유학기간 동안 받은 물질에 관한 훈련이 주로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신뢰하는 것이었다면 몽골에서 받은 물질에 대한 훈련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것은 주로 나눔의 방식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뢰하는 것이었고 내가 소유하는 물질에 대한 권리를 내려놓는 훈련이었다.

 

• 돈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돈을 추구하는 탐심의 영이 우리를 장악하는 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다. 많은 분들이 몽골인들은 원래 물질에 쉽게 넘어진다고 말하지만 실은 이 부분을 민족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영적인 부분인 것이다.

• 나는 이 땅을 섬기러 온 선교사이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정당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그들과 싸우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단돈 200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더구나 내 손에는 몇 만원어치 물건이 들려 있었다. 내가 가진 돈들은 전부 여러 분들이 헌금해 주신 돈이다. 결국 내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내 것을 빼앗기는 것처럼 굴었던 것이다.

 

• 나는 현지인을 섬기러 와서 속을지언정 현지인들과 싸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싸우는 순간 선교사는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미국에서 좋은 직장을 잡아서 돈으로 후원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속을지라도 나눔에 있어서 넉넉함과 풍성함을 잃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에게 늘 풍성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 그리고 양적으로 풍족한 후원 없이도 그때 그때 채우시는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면서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의도에 더 민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순전히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사역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도록 나의 삶을 주님께 내려놓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역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염려마저 내려놓는다.

•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비전을 이루어가면 되는지 묻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식에는 위안과 쉼이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비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함이나 상황의 절박함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과를 예상하는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는다.

•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요구하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우리가 전진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키워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초청에 응해서 우리의 전체를 맡길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우리 믿음의 반응만큼 하나님의 경이로우심을 체험하게 된다.

나는 몽골에서 사역하려는 단기선교팀을 받을 때 그들이 자신이 준비한 것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역하도록 권면한다. 상황을 모르는데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인솔 목사님이 물으셨다. 나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하셔도 되고 그저 그곳에 가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하시는 일을 보고 오면 됩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시고 그냥 떠나세요. 익숙한 것을 끊어버릴 때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나아가는 것이 선교의 시작입니다.”

한국에서 온 단기팀을 맞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준비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상황에서의 준비는 많은 경우 프로그램을 말한다. 그때마다 나는 선교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준비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자기들이 무엇인가를 이곳에 퍼부어주고 간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이 부족한 자신들을 사용해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는 것이 선교이다.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미지의 영역으로 믿음만을 가지고 들어가는 훈련이 되지 않는다면 단기선교에서 얻을 것이 제한된다. 믿음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게 마련이다. 물론 선교사와 단기선교팀마다 각자의 색깔과 방식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보다 우리가 사역 가운데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이 나를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내 것을 내려놓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내려놓음의 정도로 우리는 자신이 사역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다. 내려놓음의 귀한 가지는 사역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길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죄와 판단의 짐을 내려 놓는다.

•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이 된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의 나쁜 습관을 우상으로 가지고 있다. 죄가 주는 은밀한 달콤함이나 습관을 따라  사는 편리함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죄를 바라볼 때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다. 죄를 싫어하고 경멸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가 우리 삶과 생각 속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죄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것들이 깨끗이 씻겨지기를 열망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가 판단하지 말하야 하는 이유는 판단이 가져다 주는 크나큰 영적 해악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의로운 쪽에서 서서 하는 판단이라도 판단하는 순간 우리 마음 속에는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 죄를 짓는 것은 상처 받는 쪽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한 영은 대부분 분노나 미움으로 그 상처를 확대시킨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 선교지에 와서 이 진리를 알기 전에 나는 누군가를 판단한 적이 있었다. 많은 선교사들의 모습 가운데 부족하고 변화되어야 할 모습을 보고 속으로 힘들어한 것이다. 나는 선교사로 헌신하고 몽골에 온 그 분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분들이 변화될 것을 소망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내 안에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의 마음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되돌아보니 큰 아들이 자기 동생을 판단했던 것처럼 정말 내 안에 판단하는 마음이 있었다.

 판단하는 마음을 가지는 한 우리는 영적으로 순결해질 수도 건강해질 수도 없다. 판단의 영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판단하려 한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오직 순종하였다.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판단하고 괴로워할 때가 많다. 결국 내가 나를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 놓을 때 우리는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 문제는 나 자신의 존재가 상대방의 평가와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에 있다. 이 생각이 서로를 판단하게 하고 상처 받게 하는 것이다. 나의 존재는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달려 있음을 확인하고 그것을 깊이 묵상함으로써만 우리는 서로 찌르기 쉬운 판단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된다.

 • 연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더 잘되기를 빌어주고 축복해 주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높여줄 때 비로소 사탄이 우리 사역의 가운데 방해하기 위해 침투하려는 통로를 막을 수 있게 된다. “나는 당신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보다 더 성장하고 당신의 사역이 내 사역보다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우리는 사역의 연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이러할 때 하나님께서 서로의 사역을 축복하시고 놀라운 사역의 길을 열어가시리라 믿는다.

 

명예와 인정받기의 욕구를 내려놓는다.

• 물론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중요한 본능이며 권리이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온전한 인성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 사람들의 인정에 집착하게 될 때 우리의 영적 성장에 큰 장애가 오게 된다.

 • 우리가 약점까지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려주시고 그 분의 영광으로 그것을 바꿔 주신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니 가려주셔야 제대로 가려지는 것이다.

 그 때 나는 내가 처한 현장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으면서 주님이 내가 하는 일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만약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 그 현장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삶에 얼마나 큰 비극인가?

 

 • 결핍된 것에 초점을 맞추는 한 늘 부족함을 느끼며 힘들어하게 되기 때문이다.

 •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우리에게 없는 것에 집착하게 만든다. 우리가 없는 것에 집착하는 한 우리가 받은 것을 기쁨으로 누릴 수 없다. 우리가 세상의 인저을 추구하는 만큼 우리는 세상에 붙들리게 된다. 그만큼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자유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 사울이 다윗과 같이 쓰임받지 못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울의 관심이 사람들의 평판, 인정, 인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엘의 질책에 직면했을 때 사울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4) 라고 고백한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고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삼상 15:30)

 하나님이 그를 버리시는 순간에도 그의 일차적인 관심은 백성들 앞에서의 그의 체면에 있었다. 아울러 하나님이 그를 버리실지라도 그는 백성들의 인기만은 버릴 수 없었다.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면 그는 왕노릇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여 질투하고 죽이려고 한 이유도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삶이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사울의 모습을 제거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 특별히 영적 지도자들에게서 사울의 모습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시련과 아픔을 겪게 하시는 경우도 많다.

 • 우리는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하나님과 자신만이 아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적 지도자나 동료들에게 사울과 같은 부분이 많다고 지적할지 모른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 라는 책에서 영적으로 가장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악이 교만이라고 설명하면서 교만은 하나님과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 상태이고 남들보다 우월하다는데서 오는 즐거움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 우리가 우리의 영적 지도자를 판단하는 일은 우리에게 위임된 책임과 권한을 넘어서는 위험한 일이기에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루실 영역이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시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본성이 우리 안에 자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역의 열매를 내려놓는다.

• 사역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부담 대신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으려는 열망이 내 안을 채워야 하며 하나님의 사역은 내가 내려 놓을 때 얻어지는 것임을 되새길 수 있었다.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열매를 보기 원한다. 순전히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섬김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나도 언제부터인가 설교를 마치고 아내에게 오늘 설교가 좋았느냐고 묻고 있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설교하기보다는 교인들의 반응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결코 아내에게 그날 설교가 어떠했는지 묻지 않았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설교하려 했고 교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설교 후에는 내가 설교했다는 사실을 빨리 잊으려고 했다. 결과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것에 매이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잃게 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인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역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경계하신다. 사역의 열매가 우리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전하기를 원하신다. 사역의 동기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섞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무엇이 섞여 있는지를 정확히 보시고 불순한 목적이 섞인 것을 받지 않으신다.

 • 나는 나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백지 한 장 차이 같지만 그것을 제대로 분별하고 나의 것으로 숨겨 두었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기도가 필요함을 느꼈다.

 

 •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칼을 받아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욕구들을 찌를 때 하나님의 위로와 자유함이 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찌르심을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묶임 가운데서 놓임을 받지 못하게 된다. 진정한 위로는 찔림과 상함과 더불어 임한다. 성령이 부어질 때 그 거룩함의 임재 앞에 세상과 나의 욕구를 보며 변하지 않는 내 모습에 대해 좌절하고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갈등 가운데 십자가를 바라보고 걸어가려고 방향을 정하는 그 때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는 위로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 우리의 자아가 성령의 검에 찔려 부수어질 때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부어진다. 따라서 성령의 검에 찔린다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사용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고 싶어하신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려는 이유는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쓰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자아가 깨어져야 온전히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성령의 찔림이 임한다는 사실은 크게 기뻐해야 할 일인 것이다.

 

나의 길을 앞서 가시는 여호와 이레

•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성품을 더 깊이 알아가면서 진정한 선교사가 되는 법을 배워간다. 선교지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심이 선교 대상자의 변화가 아니라 선교사 자신의 변화라는 것이다. 선교사가 하나님 앞에 더 깨어지고 예수님의 인격의 분량으로 자라가는 것이 선교사가 해야 할 가장 큰 사역이며 선교사가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 선교지에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많은 눈물의 날을 지나야 했다.

 

하나님 마음을 품을 때 보게 되는 큰 그림

 • 물론 오랜 헌신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 경우에도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헌신이 대가를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헌신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보상이 된다. 즉 우리의 헌신 그 자체가 우리의 보상인 것이다.